이장로의 이야기 房 127번째 < 마디그라 (Mardi Gras) 축제에 대해 아십니까?>
남녀평등(Sex Equality) 이라는 말이 있다. 남자와 여자는 생래적으로 한두가지를 넘는 수많은 차이(Difference)가 있는데 각종 제도나 규범 또는 사회적 인식에 좌우되지 않는 공평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나 사회에서는 성별에 무관하게 책임.권리.기회가 균등하게 적용되고 있다. 다른말로 양성평등(兩性平等=Gender Equality) 이라고도 하는데 한국의 양성평등 기본법 3조 1호를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성별에 따른 차별.편견 비하및 폭력없이 인권을 동등하게 보장받고…>. 고대사회에서는 생계를 위한 수렵이나 전쟁을 담당하는 남성의 수고와 종족번식을 위한 여성의 생리적 중요성의 경중을 가려본다 해도 우선순위가 누구였는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종족과 나라에 따라 차이점이 중세에 이르러 남성이 여성의 사회적 위치보다 높게 위치했다. 근대를 거쳐 현대사회에 이르며 점차 남.녀간의 관계가 평등이라는 사회적 공감과 법적 규제로 현실화 됐다.작금의 한국에서는 20대가 가장 양성평등이 완벽하게 이루어진 세대라고 말한다.그런데 요즘 양성평등 만으로는 설명이 불가하고 법적으로나 사회적 가치관에서도 또 다른 용어가 강제되고 있다. 다름아닌 성평등(性平等)이라는 평이해 보이지만 복잡한 용어다. 남.녀외에 제3의 성(性)이 있다는 말이다. 호주만 해도 이미 각종 행정서류상에 Mr& Mrs 또는 His or Her 라는 호칭이 생물학적 남.녀를 지칭하고 구분하는 용어로만 쓰이지 않고 동성간의 사실혼이나 결혼관계일 때 동성이라도 배우자역할을 지칭하는 행정용어가 되었다. 미국이나 유럽의 일부 국가가 동성결혼을 합법화 했으니 행정절차의 변화는 예상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한국에서도 양성평등이라는 용어 대신 제3의 성을 포함한 성평등이라는 말을 사용해야 법적으로 안전하며 개화된 사람으로 취급받는 인식이 보편화 되고 있다.
제3의 성(性) 이란 쉽게 말해 남.녀 외에 가/ 남.녀 정체성이 없는 에이젠더 2/ 남성.여성을 다 가지고 있는 바이젠더 3/중성의 안드로진 4/ 남.녀의 성적본능이 혼재하는 젠더 플루이드(Gender fluid) 5/ 무성(無性) 과 양성을 모두 가진 3중성(Tri-gender) 6/성전환자(Trans-gender)등을 말한다. 결국 남.녀평등과 꼭같이 제 3의 성(性)도 권리와 기회를 평등하게 보장하라는 것이 성평등의 함의(含意)다. 사람은 차이(Difference)에 의해 차별(Discrimination)받아서는 않된다.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원칙이기도 하다. 다만 평등은 기회를 얻기 위한 권리가 책임이라는 의무에서 발생하기에 성적 정체성이 모호함으로 야기되는 약점을 지닌 채 국민의 책임과 의무를 감당하는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가진다. 또박또박 양성평등과 성평등을 설명하는 이유는 제목이 말하는 시드니 동성애자 마디그라 축제가 이문제와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마디그라 (Mardi Gras)는 원래 불란서(France) 말이다. 참회의 화요일 (Shrove Tuesday)과 기름진 화요일 (Fat Tuesday)의 두가지 뜻이 담겨 있는데 기독교의 사순절 (Lent)과 관계가 밀접한 용어이다. 이런 종교적 의미가 지난 41년동안 시드니 마디그라 동성애자 축제의 대명사(代名詞)로 쓰여지게 된 걸 알면 아이러니를 넘어 태산명동(泰山鳴動) 아수라장이다. 사순절은 예수그리스도가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을 견디며 40일 금식기도한 것을 기리는 기독교 절기다. 십자가에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날로 부터 주일(Sunday)을 빼고 거꾸로 40일 동안을 예수 수난기간이라 하여 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부터 시작하여 부활주일(Easter Sunday) 전날인 토요일 (St.Sat)까지를 사순절이라고 부른다. 기도와 참회로 동참하고 절제된 생활을 즐겨먹던 음식을 멀리하고 절제되고 거룩한 생활을 지향하는 대단히 엄숙한 시간이 사순절의 참 뜻이다. 마디(Mardi)는 화요일을 뜻하고 그라스(Gras)는 기름지다는 의미의 합성어로 기름진 화요일이 되는데 간단히 말해 사순절이 시작되면 수요일부터 견뎌야 하는 금식(禁食)과 절제와 경건의 생활이 동반하는 취식의 곤란과 몸의 영양을 염려하여 바로 전날인 화요일 육식이나 기름에 튀긴 음식을 먹으며 즐긴다고 하여 마디그라(Mardi Gras) 즉 기름진 화요일로 부른것이 시작이다.
이렇게 고기를 먹으며 경건한 시간을 준비하며 즐기는 것을 카니발(Carnival)이라고 하고 사육제 (謝肉祭)라고도 한다. 육고기를 뜻하는 Carne과 헤어질 때 쓰는 Bye Bye의 뜻과 같은 Vale이 합쳐진 카니발 (Carnival)은 맘껏 고기를 먹고 고기와 다시 헤어진다는 야릇한 단어다. 선정적인 여성이 상.하체를 현란하게 흔들고 고기와 술이 질펀한 리우데자이네르의 축제가 대표적인 사육제이다. 마디그라의 처음 시작은 미국의 앨마바마에 입성한 프랑스 군인과 정착민이 함께 1703년 모빌(Mobile) 이라는 지역에서 치뤄 낸 축제가 효시인데 동성애자들의 행진과는 거리가 먼 순수한 마디그라 행사였다. 뒤를 이어 1837년에 뉴올리언즈에서 출발한 치즈퍼레이드를 규모나 다양성면에서 최고로 쳐 주는데 가장 무도회에서 사람들이 입는 형형색색의 옷을 흉내내서 시드니 동성애자 마디그라 축제에 편용(便用)한것이 아닌가 한다. 더구나 보라색.녹색.황금색은 정의.믿음.권력을 뜻하는 것인데 소수성애자들은 성평등을 주장하며 그것이 정의와 믿음의 상징으로 믿고 있는듯 하여 보기 어색하고 엉성해 보인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3월2일(토) 열리는 시드니 동성애자 마디그라 축제 (Sydney Gay and Lesbian Mardi Gras Festival)는 마디그라의 본뜻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참회나 수난의 기독교 역사와도 무관하다. 단지 그들은 축제의 방법과 의상및 화려한 장식을 도용한 것인데 내심 경건하고 정의로운 기독교적 비장함을 성소수자 본인들에게도 오버랩 하여 성평등을 향한 행사를 돋보이게 하여 그들의 모습이 성스러운 고백이고 도전이며 세상의 가치관을 바꾸는 당당한 외침으로 정당화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1978년 6월 그들은 첫 행진을 시작했다 58명이 시작한 불법집회는 전원 체포 구금으로 결말이 났다. 동성애는 에이즈 확산의 주범이라는 의료진의 판단과 동성애 자체를 불법으로 간주한 정부에 대항하여 시도한 행사였다. 초기에는 성소수자를 반대하는 원리주의자 그룹과 성경적 교리에 충실한 기독교 단체가 힘을 모아 그들과 맞서서 물리적 충돌도 빈번했지만 이젠 속수무책이 되었다. 우선 규모가 엄청나고 시드니 시장 클레버 무어(Clever Moore)의 전푹적인 지원에다가 1994년 부터 시작된 국영ABC방송의 생중계에 힘입은 바 크다. 전 세계에서 참가하는 동성애자 숫자만도 만 이천명이 넘고 관광객이 수십만에 이르다 보니 행정가나 정치인들이 군침을 흘리며 지원하는데 앞을 다투고 있다. 시드니 시티 중심의 하이드 파크(Hyde Park)에서 출발하여 옥스포드 거리(Oxford Street)를 지나 무어 파크(Moore Park)에 도착하는 퍼레이드는 행사의 절정인데 다음날 아침 8시까지 술과 춤과 마약이 난무하는 현대판 소돔과 고모라의 난장판이 딱 맞는 말이다. 성난 파도처럼 밀려 오는 고약하고 요상한 분장뒤에 흔들리는 웃음과 광기(狂氣)를 바라 보노라면 사람의 존엄성과 평등을 말하기 전에 신이 허락하신 인간의 품격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이 우선됐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앞선다. 몇년전인가 한국의 홍석천이 커다란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근사한 한복을 입은채 행렬 한가운데서 흔쾌히 웃던 얼굴이 생각난다. 야박한 평가 같지만 소수성애자의 운명이 팔자이며 불가항력의 불치 병이라고 하자. 안타까운 일이 될지는 모르나 드러내놓고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싶다. 더구나 국가를 대표할 만한 일도 아닌 행사에 한 개인이 대형 태극기를 펄럭이며 마구 즐거워 하는 행보는 적어도 내겐 참혹한 기억이다. 대한민국에도 동성애자가 있다고 세계만방에 자랑이라도 해야 할 당위성이 있는지 모르겠다. 어쨋든본말에서 엄청 벗어난 변종(變種)의 마디그라축제가 되어버린 시드니 동성애자 행사에 구경이라도 한번 해 볼 작정이라면 이것 하나는 분명히 해두자. 다가오는 동성애자들에게 실없이 웃으며 호감을 보이는 날엔 같은 편 동성애자로 오인받아 한쪽 엉덩이 쯤은 빌려주는 불상사를 만날 수 있다. 분명한 목소리로 “NO”고 말해야 한다. 나는 전폭적으로 인권과 평등에 동의한다. 시드니 마다그라 동성애자 축제가 끼치는 어린세대를 향한 성정체성 파괴에는 반대하며 혹여 창조의 질서에 역주행하는 너그러운 시선이 일반화되는 불행에는 절대 반대한다.
KunHee Jeong 동성애의 문제는 약 10년 전의 우리 자녀의 학교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제 딸이 전에 다니던 학교는 무슬림 배경의 학생들이 절반이라 동생애의 생각은 단호한 반대를 갖고 있었지만, 종교가 문화로 자리한 무슬림들 조차 시간이 가면 갈 수록 세상 가운데 자리한 영적 타락을 어떻게 대항 할런지 자녀 세대를 돌보는 부모의 마음으로 걱정과 염려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전교생의 2명 정도 있는 동성애 옹호 학생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책임을 자녀에게 부여 하지만 자녀가 그들과의 대화를 지혜롭게 대처하고 견고한 믿음 안에서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다가가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성시화란 도시를 거룩하게 한다는 뜻인데 가시적인면에서 어느정도 의미는 둡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이 거룩한 세상에 빛이고 소금이기에 역할을 보임으로서 세상을향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이는것이고 둘째는 그와같은 행사를 통해 信者 자신이 거룩함의 의미와 복음엪대해 옷깃을 여미는 내면세계의 정돈을 할수 있다는 측면에서 의미를 둡니다. 다만 본질적인 면을 짚어 보자면 예수를 믿고 그의 제자가 되며 사랑이 담긴 거룩한 삶을 신앙고백으로 이루어 낸다는 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보이는것인데... 좀더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성시화를 이루러 내는것에 무게를 둡니다. 두번째에서 계속...
다시말해 0.9%의 염도가 우리몸의 건강한 피와 살을 지켜주듯 이시대 개신교인들이 성경을 깊고 힘있게 살펴 예수가 살어가신 3년의 공생애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선하고 바른 사랑.섬김.믿음.희생의 신앙적 덕을 쌓는것에 엄중한 생각을 쏟아야 겠다 생각합니다. 이시대 교회의 역할이 쇠잔해진 이유가 인간성 상실과 이기적 파행으로 사람과 세상의 품격을 잃게 하는데 책임이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각자의 삶에 충실한 바른 믿음이 구호보다 앞서야 할 덕목이라 사료됩니다
첫댓글 소수자란 이름으로 마디그라행사에대한 존재의 당위성 주장하지만 결국은 게이 레즈비언들이 지저분 떠는거잖아요. 자녀들 세대가 걱정이에요
한쪽 엉덩이 쯤은 빌려주는 불상사를 ...... 웃음이 절로나오네요. 하지만 웃을일이 아닌듯 ㅎㅎ
KunHee Jeong 동성애의 문제는 약 10년 전의 우리 자녀의 학교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제 딸이 전에 다니던 학교는 무슬림 배경의 학생들이 절반이라 동생애의 생각은 단호한 반대를 갖고 있었지만, 종교가 문화로 자리한 무슬림들 조차 시간이 가면 갈 수록 세상 가운데 자리한 영적 타락을 어떻게 대항 할런지 자녀 세대를 돌보는 부모의 마음으로 걱정과 염려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전교생의 2명 정도 있는 동성애 옹호 학생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책임을 자녀에게 부여 하지만 자녀가 그들과의 대화를 지혜롭게 대처하고 견고한 믿음 안에서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다가가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몇년전 블루마운틴에서 제가 직접 목격하고 찍은 사진입니다. 카툼바의 어느 호텔 앞마당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장면인데... 그날 그거리에 관광객을 위해 교회들이 문을 열고있었어요. 지금까지도 잊혀지지않네요 혼란스러웠던 그 거리
이번주일에 성시화 행진 한다는데 그거 꼭 해야하나요 ?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성시화란 도시를 거룩하게 한다는 뜻인데 가시적인면에서 어느정도 의미는 둡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이 거룩한 세상에 빛이고 소금이기에 역할을 보임으로서 세상을향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이는것이고 둘째는 그와같은 행사를 통해 信者 자신이 거룩함의 의미와 복음엪대해 옷깃을 여미는 내면세계의 정돈을 할수 있다는 측면에서 의미를 둡니다.
다만 본질적인 면을 짚어 보자면 예수를 믿고 그의 제자가 되며 사랑이 담긴 거룩한 삶을 신앙고백으로 이루어 낸다는 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보이는것인데... 좀더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성시화를 이루러 내는것에 무게를 둡니다. 두번째에서 계속...
다시말해 0.9%의 염도가 우리몸의 건강한 피와 살을 지켜주듯 이시대 개신교인들이 성경을 깊고 힘있게 살펴 예수가 살어가신 3년의 공생애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선하고 바른 사랑.섬김.믿음.희생의 신앙적 덕을 쌓는것에 엄중한 생각을 쏟아야 겠다 생각합니다. 이시대 교회의 역할이 쇠잔해진 이유가 인간성 상실과 이기적 파행으로 사람과 세상의 품격을 잃게 하는데 책임이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각자의 삶에 충실한 바른 믿음이 구호보다 앞서야 할 덕목이라 사료됩니다
@richard lee 친절한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지적하신 여러가지 중 내면세계의 정돈, 바른믿음 두가지를 크게 받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