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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밤바다
“여름 휴가 때 연서 데리고 여행 좀 가죠. 나는 8.1일부터 3일까지 휴가를 낼 수 있는 데 당신은 어때요?”하는 아내의 말에 나는 내심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 가족은 요 몇년간 여행다운 여행을 못해 본 상태라 오랜만에 가족여행이 기대되기도 했고 장모님이 돌아가시고 내내 우울해 하던 아내가 여행얘기를 꺼낸 것이 깊은 슬픔에서 빠져 나오는 징조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래. 8월 1일부터 3일까지 여름휴가 낼 수 있어. 연서야 이번 휴가 때 어디로 가지?”하고 내가 딸에게 묻자 연서는 “여수”하며 버스커버스커의 여수밤바다 노래를 최근에 배운 기타를 치며 부른다.
“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 싶어
이 거리를 너와 함께 걷고 싶다
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 싶어
여수 밤바다”
나와 아내는 그 모습을 기특해 하며 여수로 목적지를 결정했다. 올라오는 길에 순천에 들러 순천만 습지를 위주로 순천여행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인터넷에 접속하여 2박3일 숙박할 수 있는 시설을 찾아보았다. 몇년 전 직장동료들과 펜션에 숙박했던 기억을 갖고 여수시청 홈페이지에서 추천펜션을 검색해 보았지만 대부분 성수기라 예약이 종료되었고 남아있는 방도 1박에 30만원이 넘는 가격으로 마음에 드는 펜션을 찾을 수 없었다. 어차피 여행을 가면 식사를 방에서 하기보다 밖에서 외식을 위주로 할 것 같아 주방이 없어 조리를 할 수 없는 호텔을 검색해 보았다. H호텔이 가격도 적당하고 빈 방이 있어 예약을 하고 바다가 보이는 3인실 방으로 부탁한다고 말하고 선금을 10만원 보냈다.
남은 기간 여수여행을 위하여 맛집과 명소를 검색하며 여행을 준비한 우리는 8월 1일 당일 우리 가족의 애마 2004년식 베르나를 몰고 여수밤바다 음악을 들으며 2박3일의 여정을 시작하였다.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던 우리는 호남고속도로 초입에서 기름이 다해 임실근처 오수휴게소에 들러 가득 주유를 하고 휴게소에서 소시지와 핫도그로 허기를 달랬다.
장장 5시간을 달려 여수에 도착한 우리는 체크인을 위하여 H호텔로 향했다. 도착한 호텔에서 출입카드를 받고 5층 객실에 들어가니 바다가 보이는 창가 풍경과 생각보다 넓은 방에 만족감을 느꼈다.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컴퓨터의 모니터도 화면이 커서 연서는 들어오자 마자 컴퓨터를 켜고 좋아하는 웹툰을 보며 키득키득거린다.
“연서야. 여기까지 와서 컴질이냐. 바깥 풍경도 감상하고 사진도 찍고 해야 방학숙제인 포토에세이도 쓸 수 있지.” 아내의 잔소리에 연서는 싫은 기색을 보이면서도 마지 못해 컴퓨터를 끄고 바깥 풍경을 보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내가 신고 온 샌들의 밑창이 갑작스럽게 떨어져 샌들과 간단한 간식거리를 구입하기 위하여 우리는 가까운 이마트로 차를 몰고 갔다. 이마트에 들러 이것저것 필요한 것을 구입하고 스포츠용품점에서 스포츠샌들을 하나 구입하니 이곳이 서울인지 여수인지 헷갈렸다. 하지만 밖에 나와 저녁식사를 위하여 여수항 선착장 근처에 가니 벌써 밤이 되어 교교한 밤바다와 어선들이 물결에 흔들리는 모습에 객창감이 들며 여행을 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우리는 근처에 식당을 확인하기 위하여 거리를 걷다가 인심좋아 보이는 할머니의 호객에 혹해 선창가횟집이라는 식당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들어가니 말이 횟집이지 하모하모샤브샤브 전문집으로 주위에 모든 사람이 샤브샤브를 먹고 있어 우리도 같은 메뉴로 시켰다. 하모하모가 일본말이고 우리말로 바다장어인 갯장어를 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2층에서 식사를 했는데 창 밖으로 돌산대교와 밤바다 풍경이 펼쳐져 있어 여수밤바다의 정취를 느끼며 식사를 하였다. 때마침 축제기간인지 돌산대교 위로 불꽃놀이가 펼쳐져 오랜만에 여행 온 우리가족의 여흥을 돋우어 주고 있었다. 생선이라 비릿하면 비위가 약한 연서가 먹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연서는 맛있다며 연신 아내가 주는 갯장어와 채소 등을 잘 받아 먹고 있었다. 샤브샤브를 다 먹고 불꽃놀이도 끝나가서 우리는 돌산대교를 건너 숙소인 H호텔로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향일암으로 가기 위하여 아침을 빵과 우유로 간단히 떼우고 차를 몰았다. 그런데 향일암 근처에 도착하자 차가 너무 막혀 도로는 거의 정지상태였다. 30분 정도 기다리던 우리는 기다림에 지쳐 향일암을 포기하고 차를 돌려 점심을 먹기 위하여 시내 쪽으로 돌아갔다. 나래밥상이라는 상호가 보이기에 개그맨 박나래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생각하고 호기심에 들어갔지만 상호만 나래밥상일 뿐 박나래와는 무관한 식당이었다. 생선구이정식과 여수의 명물인 서대회를 먹었는데 깔끔하고 맛있어서 들어 온 것이 후회되지는 않았다. 특이한 것은 서빙을 보는 직원이 여성이 아니고 동유럽에서 온 듯한 젊은 청년들이었다는 점이다.
점심을 먹은 후 오동도를 가기 위하여 차를 몰아갔지만 향일암에 갈 때와 마찬가지로 오동도 근처에 이르자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여수도 차들이 많이 늘고 휴가철이라 외부에서 온 차량들도 많아 시내는 교통체증이 극심하였다. 겨우 공영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오동도 인근해안을 한바퀴 도는 유람선을 탔다. 유람선에는 연인들이 많이 타서 영화 타이타닉의 주인공들을 흉내내며 분위기를 잡고 있었다. 새우깡으로 갈매기를 유혹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늘 위에는 여수와 오동도를 잇는 케이블카가 연신 지나가며 관광객들을 유혹하였다. 선내방송의 여수소개를 통하여 하멜이 표류해 와 조선정부의 명령으로 서양의 무기를 연구하던 곳이 여수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유람선에서 내린 후 여수엑스포공원내에 있는 아쿠아리움으로 갔다. 그곳의 규모는 서울의 코엑스나 63빌딩의 아쿠아리움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바다생물을 구경할 수 있었다.
아쿠아리움을 관람하고 나니 시장기가 몰려 왔다. 항구도시에 왔으니 회를 안 먹을 수 없어 어부사시사라는 횟집에 갔다. 일반코스가격은 10만원이었다. 우리는 일반코스를 주문하여 식사를 하였다. 그런데 우리보다 먼저 자리를 잡고 앉은 가족은 20만원의 특별코스를 시킨 것 같았다. 그런데 우리의 일반코스와 메뉴가 많이 다른 것 같지는 않았다. 옆의 가족은 우리의 메뉴를 보고 자기들 것과 별 차이가 없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며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었다. 이윽고 매운탕이 나오고 밥을 시키자 종업원이 밥은 별도주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남편은 “아니 저 집보다 10만원이나 비싼 스페셜코스를 시켰으니 밥값은 받지 말아야지.”하며 우리를 보고 들으라는 듯이 소리를 치는 게 아닌가. 10만원 더 냈다고 갑질하려고 하는 그들의 모습에 웃음과 함께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식당에서 나와 거북선과 여수밤바다로 유명해진 해양공원을 향해 차를 몰았다. 거북선을 관람하고 밤바다로 나서니 야시장이 열리고 야외버스킹 공연이 한창이었다. 10여곡을 계속해서 열창하는 젊은이의 노래에 대한 열정이 대견하여 모금을 위하여 열어놓은 기타박스에 만 원짜리 한 장을 집어넣으니 그 속에 수북이 지폐더미가 쌓여 있었다. 역시 예술은 부가가치가 높은 사업이라는 생각을 하며 노래를 부르던 청년을 바라보니 나를 보고 싱긋 웃고 있었다. 버스킹공연과 함께 여수밤바다의 향취를 즐긴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다음날을 기약하며 잠을 청하였다.
다음날 여수를 떠나 마지막 여행지인 순천으로 향했다. 순천으로 가던 중 네비게이션으로 거취대에 걸어놓은 핸드폰이 갑자기 꺼져 나는 옆의 아내에게 다시 핸드폰을 켜달라고 하였다. 아내는 자기핸드폰이 아니라 조작법을 모르는 지 딸아이인 연서에게 핸드폰을 켜달라고 하였다. 때마침 교차로가 나왔고 나는 길을 몰라 당황하고 급한 마음에 딸아이에게 “티맵(Tmap, SK사의 네비게이션) 못 켜, 길을 놓쳐버렸잖아!”하며 소리를 질렀다. 순간 실수한 걸 깨달았지만 그 이후 아내와 딸아이는 계속 나를 “티맵못켜”라고 놀리며 허둥대던 모습을 흉내내며 자기들끼리 깔깔거린다. 그 모습에 나도 왜 갑자기 소리를 질렀는지 부끄러운 마음에 같이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순천만에 도착하여 관람열차를 타고 세계정원을 투어한 후 더운 날씨때문에 걷지 않고 스카이튜브를 타고 순천만을 일주하였다. 순천문학관에서 김승옥 등 순천 출신 작가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김승옥이 소설가이기도 하지만 당시 영화시나리오를 많이 쓴 영화인이기도 하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나는 드라마나 영화 대본을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선암사로 가기 전 배가 고파 점심을 먹기 위하여 덕정가든이란 식당에 들렀다. 흑염소로 유명한 집인데 딸아이가 부담스러워 해서 흑돼지떡갈비구이를 주문하였다. 남도의 풍성한 반찬과 함께 나온 떡갈비는 “음식은 역시 전라도야.”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맛있었다. 연서는 특히 처음 먹어보는 갓김치가 맛있는지 서울에 가서 해달라고 엄마에게 조르고 있었다.
선암사 구경을 하고 나오는 길에 가족과 친지들에게 선물할 연잎으로 만든 연굴빵을 몇 상자 구입하였다. 서울로 향하기 전 와온 해변에 들러 일몰을 바라보며 남도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즐겼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차가 막혀 우리는 여산휴게소에 들러 라면과 우동, 된장찌개 등으로 허기를 달래었다. 차가 막히는 이유가 호남고속도로에서 일어난 졸음운전으로 인한 12중 추돌사고때문이라는 사실을 라디오를 통해 알게 된 나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운전을 하여 집에 도착할 즈음에는 녹초가 되고 말았다. “티맵못켜”라며 나를 놀리던 아내와 연서가 미안했던지 어깨와 팔을 안마해주어 내가 “이 맛에 운전한다.”말하니 모두 웃으며 2박3일의 여수여행이 막이 내리게 된다.
<2018년 국세가족문예전 수필분야 입선 수상작품>
첫댓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