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화
손등의 점 하나
언제부터 너 거기에
있었니?
주먹을 살짝 쥐어도
주먹을 세게 쥐어도
손끝으로 살살 물질러도
사라지지 않고
'나는 나야.'라고 소리치는
얕보지 말라고 소리치는
내 손등의
점 하나!
기수
지금은
심장에 기계를 단 나지만
지금은
휠체어를 타야 하는 나지만
중간 놀이 시간에 휠체어에서 나와
한 걸음 걸었어요.
- 와! 기수 걷네!
박수 치며 기뻐해 주는 친구들.
- 얘들아, 나 걷기 연습할래.
매일 조금씩 연습할래.
언젠가는 한라산에 가 보려고요
처음으로 용기 낸 날
2학년 될 때까지
한 번도 축구해 본 적이 없어.
용기가 없었거든.
- 얘들아, 점심시간에
밖에서 축구하자.
엄청 용기 내어 말했어.
땀을 뻘뻘 흘리며
공을 쫒아 다녔어.
히죽히죽 웃음이
싱글벙글 웃음이 나와.
하늘도, 나무도, 운동장도
모두 축하해 주는 것 같아.
나도 나에게 박수 치고 싶어.
비누의 걱정
비누는 오늘도
걱정투성이다.
길영이 양말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무리 문질러도
계속 검정물이야.
엄마의 난닝구는
이제 그만 버려도 될 것 같아.
조금만 문질러도
구멍이 쓩쓩 나잖아?
해연이의 곰돌이 푸 초록 티는
엄마를 울게 해서 고민이야.
빨다가 울고, 또 빨다가 울고,
빨 때마다 자꾸 엄마를 울리거든.
광이오름 야자 매트
나를 디딤돌 삼아
올라가세요.
나를 계단 삼아
올라가세요.
정상에서 본
한라산 모습.
내려올 때
이야기해 주시면 돼요.
내려갈 때도
걱정 마세요.
나를 디딤돌 삼아
내려가면 돼요.
오가는 길에 본 풀잎,
오가는 길에 핀 들꽃,
향기만 조금씩
가져다 주세요.
카페 게시글
시 창작강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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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봄호 동시 당선작(이봉화: 손등의 점 하나 외 4편)
기독문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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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3.13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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