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새아침 또 하나의 다짐
‘飮水思源 報本反始’
음수사원(飮水思源 물을 마실 때는 그 물의 근원을 생각하라), 보본반시(報本反始 출생하거나 자라온 근본을 잊지 않고 그 은혜에 보답하라.) 두 가지 한자성어 모두 근본을 잊지 말라는 경구를 담고 있다. 말에도 어원이 있는데 조상의 뿌리를 모르고 지낸다면 우리가 바르게 공부한 사람이라고 자부할 수 있겠는가.
우리 부모님들은 봄가을 시제에 참례하여 지경존성의 예로 조상유업 이어가면 일가들의 번영을 기약할 수 있다고 행동으로 가르쳐 주셨다. 새해 새아침을 맞아 조상님을 사모하는 감회를 느끼고 싶다면 고향을 찾아 선산에 묻힌 조상님을 찾아뵈면 어떨까.
우리 전통문화 중에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제례문화가 해를 거듭할수록 쇄락의 길을 걷고 있다. 제례문화가 바뀌어져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고개를 들고 있다. 제례문화를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그 대안을 제시하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제사는 물론 조상님의 봄가을 시제조차 참제參祭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에게 종사에 관심을 갖게 하고 참여케 하는 일이다
국민에게 참정권參政權이 있듯이 종원에게는 종사에 참여할 수 있는 참종권參宗權이 있다. 참정권의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할 국민의 의무가 있다. 국방, 교육, 근로, 납세의 의무를 통상 국민의 4대 의무라 칭한다. 마찬가지로 참종권을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할 종원의 의무가 있다. 조상님의 유덕을 기리고 빛내기 위해 봄가을시제 등에 참례하는 의무, 선조님들께서 물려주신 유형무형의 유산을 제대로 보존하고 유용하게 활용하는 의무, 연회비 납부의 의무, 종보 구독의 의무 등이 그것이 아닐까.
시대의 변화와 흐름에 몸을 그대로 맡길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거센 격류의 와중에 있는 종회宗會를 구하고 종사宗事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종인宗人의 참종권을 포기하지 말고 종인의 의무 또한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 서흥김씨는 종인수(28,313명, 통계청 2000년 성씨별인구조사)는 많지 않고 여력도 풍족하지 않지만 지난 20년 동안 종원들의 열정과 봉사로 대종회를 여느 종친회보다 우량하게 지켜왔고 육성 발전시키는 일에 진력해 왔다. 지난 두 차례에 걸쳐 열린 뿌리교육 그리고 도동서원이 지난해부터 교육기관으로 거듭 태어난데 이어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는 소식은 서울김문瑞興金門의 서광을 비추는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뿐만아니라 문경공 한훤당 김굉필(文敬公 寒暄堂 金宏弼·1454∼1504)선생의 학문에 대한 학술연구가 매년 열리고 있고 지난해에는 「도학道學·사우師友·추숭양상追崇樣相」에 관한 학계의 연구 발표가 이어지면서 조선도학의 창시자 선현先賢의 학문과 발자취가 이제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다. 달성의 현풍체육공원에는 선생의 흉상도 세워졌고 달성 도동서원은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우뚝 설날이 멀지 않았다. 서흥 문중의 현조顯祖이신 한훤당 선현先賢께서 우리에게 성큼 다가오고 계시는 것만 같다. 그리고 오늘을 사는 우리 후손들에게 『한빙계寒氷戒』의 가르침을 거듭 일깨워 주시고 있다.
『한빙계』 「지경존성(持敬存誠, 공경하는 마음을 지니고 성실함을 지켜라.)」의 가르침 중에 『소학小學』에 대해 언급한 구절이 있다. 《인의예지仁義禮智가 공경하지 않음이 없고 효제충신孝悌忠信이 정성스럽지 않음이 없나니, 정성을 다하고 공경하는 것은 곧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핵심이다.(중략) 【『소학』의 「가언嘉言」, 「선행善行」】을 참고하여 밤으로 외며 낮으로 보아서 간단間斷할 때가 없이 부지런히 노력하여, 거기에 이욕利慾의 한 근원根源을 끊는다면 배움이 만 배나 늘어날 것이다.》
『소학小學』 「가언嘉言」편에는 자식들에게 ‘음덕陰德을 베풀라’는 가르침이 있다. 음수사원飮水思源 보본반시報本反始, 새해 새아침 서흥인의 또 하나의 다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아버지가 가난 했을 때 너희 어머니와 함께 부모를 봉양했는데, 너희 어머니는 몸소 불을 때어 밥을 지었으나 부모에게 올릴 달고 맛있는 음식이 충분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넉넉한 봉급을 받기에 부모님을 잘 모시고 싶으나 부모님은 살아 계시지 않는다. 너희 어머니도 일찍 세상을 떠났으니 내게는 가장 한스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니 어찌 차마 너희들에게 부귀의 즐거움을 누리게 할 수 있겠느냐!
오현吳縣에는 우리 친척들이 매우 많이 있는데, 내게 친근한 이도 있으며 소원한 이도 있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이 보신다면 모두 같은 자손일 뿐, 친근하고 소원한 차이가 없을 것이다. 정말로 조상의 뜻이 친근한 이와 소원한 이에 대한 구별을 두지 않는다면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이들을 어찌 구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상 때부터 덕을 쌓은 지 백여 년 만에 그 보답이 내게서 나타나 높은 관직을 얻게 되었다. 만약 혼자 부귀영화를 누리고 친척들을 돌보지 않으면 훗날 어떻게 지하에서 조상들을 만나보며, 지금 무슨 면목으로 집안의 사당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
첫댓글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