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매일 기획특집
이재창 시인, 남도문학 현장을 가다 (1) - 송수권 시인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젊은 날의 방황과 좌절…현대시사에 남은 주옥같은 작품으로
육화된 恨과 그리움…竹․뻘․황토의 정신으로
섬진강과 지리산에서 새로운 페르몬의 시적모습으로
어떤 소재도 그의 손에 잡히면 한국의 가락으로
2002. 11.27(수) 00:00
송수권 시인은 늘상 시의 페르몬 냄새를 찾아 나선다.
이 페르몬 냄새는 그의 시적 경향에서 드러난다. 그의 시는 시기별로, 그가 머물렀던 곳에 따라서 다양한 작품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다양한 작품은 하나의 맥에 닿아 있다. 그것은 한국현대시사에 한 획을 긋는 큰 비중과 역할을 해온 바로 김소월, 서정주, 박재삼, 송수권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한(恨)과 그리움의 시이다.
하지만 송수권의 한(恨)은 그와는 좀더 다른 진보적인 한이다. 자신의 시 작업을 그 자체에 함몰하는 것이 아니라 한의 밑바닥에서 솟는 힘을 육화(肉化)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방황에 방황을 거듭하면서 눈 먼 장승처럼 떠돌던 세월들이 눈에 훤하다. 그 시적 페르몬 냄새를 맡으며 고흥과 순천, 초도, 서울, 구례, 금당도, 광주, 서귀포, 변산, 광양을 떠돌며 그는 현대시사에 사라지지 않을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겨놓고 있다.
그의 등단과정은 어느 시인들보다도 순탄하지 못했다. 그것이 바로 35세라는 늦은 나이의 등단과 함께 그의 수식어로 따라 다니는 ‘휴지통에서 나온 시인’이었다.
교직에 사표를 던지고 무작정 선암사 화엄사 쌍계사 등 절을 찾아 방황하면서 머리를 깎을 각오도 하기도 했으나 곧바로 서울로 올라가 몇 개월을 여관에 전전하면서 떠돌아 다니기도 했다. 그 때가 1974년경이었다. 그 때 그가 원고지도 아닌 백지장에 작품을 휘갈겨 문학사상에 투고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작품은 원고지에 쓰여지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로 편집장의 휴지통으로 처박히고 말았다. 그때 투고 작품들이 심사위원들의 마음에 썩 들지 않았는지 편집실을 지나던 이어령 주간이 휴지통을 뒤져 「산문에 기대어」라는 시를 찾아낸 것이다. 문학사상사에서 당선작을 뽑아 놓고도 1년여를 수소문해 송수권 시인의 거처를 찾아내 그 이듬해에야 발표가 될 수 있었다. 문단 등단의 재미있는 일화이기도 하다.
필자가 찾은 송수권 시인의 생가는 이미 빈집으로 어느 시골집과도 같은 폐가로 변해 있었다. 온 마당을 수북히 덮은 잡초들만 무성히 자라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청소년기까지 시심을 키우고 살았던 그 집터는 곧바로 시인을 탄생을 예고하는 하나의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그게 바로 마루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니 5백여미터 전면에 문필봉이 우뚝 서 있는게 아닌가. 나는 속으로 역시 송수권은 시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게로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다. 그 문필봉은 한국의 지조론을 낳은 조지훈 시인의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실마을에 위치한 호은종택에서 바라본 문필봉과 흡사했다.
누이야/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지금도 살아서 보는가/정정(淨淨)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그 눈물 끝을 따라가면/즈믄 밤의 강(江)이 일어서던 것을/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苦惱)의 말씀들/돌로 살아서 반짝여 오던 것을/더러는 물속에서 튀는 물고기 같이/살아오던 것을/그리고 산다(山茶)화 한 가지 꺾어 스스럼없이/건네이던 것을//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그 눈썹 두어 낱을 기러기가/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 두고/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그렇게 만나는 것을//누이야 아는가/가을산 그리매에 빠져 떠돌던 /눈썹 두어 낱이/지금 이 못물 속에 비쳐 옴을
위 작품은 송수권의 문단 데뷔작인 「산문에 기대어」의 전문이다. 70년대 후반 필자는 이 작품에 한동안 매료돼 암기를 하면서 문학공부를 하던 적이 있었다. 이 작품이 계기가 되어 25년이라는 긴 세월을 송시인과 교류를 해 왔다.
1975년문학사상첫 신인상 당선작과 사진을 보고 젊은 문학청년들은 꼭 촌놈같이 생겼는데 시 하나는 대단하다는 일치된 견해 속에 송시인이 교편을 잡고 있던 구례중학교를 찾아가 그 날 밤새 술을 마시던 생각이 떠오르곤 한다.
그러나 위 시에 대해서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산문에 기대어」는 송시인에게는 아주 특별한 작품이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단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이 군대에서 제대를 하고 와 느닷없이 고향 선산 밑에서 자살을 해버린 것이다. 여기서 그는 마음 한 구석에 응어리진 시를 쓰겠다는 생각을 하게된 것 같다. 또한 이 울화병을 끄기 위해 초도라는 섬에서 6년여를 어린 중학생들과 더불어 보내기도 했다.
동생은 중학교를 나와 가끔 어질병으로 시력이 약화되어 고등학교에도 진학하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와 무척 고생을 하면서 송시인의 뒷바라지를 해줬다는 점도 송시인이 시에 길들여진 원인이 되기도 한다. 동생이 7살 때 어머니를 잃었고, 태어났을 때는 어머니가 병중이어서 젖도 못빨고 자란 아이었다 한다. 그 후 송시인은 어렵게 커오면서 고향마을 언덕배기에서 대숲 바람소리를 들으며 시심을 키워왔다
이러한 배경이 원인이 되어 그의 등단작 「산문에 기대어」는 세상에 나오게 된다. 이 작품은 누이에 대한 추모가 즉 엘리지로서 그 누이의 눈썹이 가을산 그림자에 묻혀 떠돌고 있는 이미지로 부각된 것이다. 이 눈썹은 곧 인간이 이승에서 못다 풀고 간 한의 끈적끈적한 덩어리나 다름없다. 죽은 누이의 혼은 신선한 물방울로 만나지고 더러는 물 속에서 튀는 물고기 같이 또는 물 속에서 반짝여 오는 돌의 모습으로 부활되어 생명을 얻는 것이다. “정정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이 덧없는 죽음 위에 돌을 눌러서라도 복수를 하고 싶은 부활의지, 그 부활 끝에 누이는 이제 산다화 한 가지 꺾어 나에게 스스럼없이 건네주는 생명의 인과법칙과 윤회 속에 사는 것이다.
말없이 꿈꾸는 두 개의/섬은 즐거워라//내 어린 날은 한 소녀가 지나다니던 길목에/그 소녀가 흘러내리던 눈웃음결 때문에/길섶의 잔풀꽃들도 모두 걸어나와/길을 밝히더니//그 눈웃음결에 밀리어 나는 끝내 눈병이 올라/콩알만한 다래끼를 달고 외눈끔적이로도/길바닥의 돌멩이 하나도 차지 않고/잘도 지내왔더니//말없이 꿈꾸는 두 개의/섬은 슬퍼라// 우리 둘이 지나다니던 그 길목/쬐그만 돌 밑에/다래끼에 젖은 눈썹 둘, 빼어 눌러놓고/그 소녀의 발부리에 돌이 채여/그 눈구멍에도 다래끼가 들기를 바랐더니//이승에선 누가 그 몹쓸 돌멩이를/차고 갔는지/눈썹 둘은 비바람에 휘몰려/두 개의 섬으로 앉았으니//말없이 꿈꾸는 저 두 개의/섬은 즐거워라.
위 작품 「꿈꾸는 섬」은 중학시절 한 소녀를 짝사랑하는 것은 묘사한 작품으로 보인다. 그의 많은 작품들이 그가 살았던 고향에서 유년의 까마득한 일이나 기억들이 갑자기 눈앞에 현실로 살아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여기서 두 개의 섬은 시인 자신과 하나의 대상인 어느 여중생이었을 것이다. 송시인은 언젠가 이 시에 대한 비밀을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그가 고흥중학교에 다니던 3년간 매일 고흥 두원면 지서 앞에서 통학버스를 기다리며 마주치며 홀로 좋아했던 소녀였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그 소녀의 자세한 소식을 알 길이 없지만 그들이 중학을 졸업하고 순천사범을 같이 입학했으나 어느땐가 학교에서 보이질 않았다고 한다. 그후 그녀는 서울에 있는 어느 간호학교를 졸업한 뒤 간호장교로 복무, 그 후에 미국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다. 정말 이렇게 애틋하고 순수한 사랑을 두 개의 섬으로 비유 할 수 있을까.
어느 해 봄날이던가, 밖에서는/살구꽃 그림자에 뿌여니 흙바람이 끼고/나는 하루종일 방안에 누워서 고뿔을 앓았다./문을 열면 도진다 하여 손가락에 침을 발라가며/장지문에 구멍을 뚫어/토방 아래 고깔 쓴 여승이 서서 염불을 외는 것을 내다보았다/그 고랑이 깊은 음색, 설움에 진 눈동자, 창백한 얼굴/나는 처음 황홀했던 마음을 무어라 표현할 순 없지만/우리집 처마 끝에 걸린 그 수그린 낮달의 포름한 향내를/아직 잊을 수가 없다/나는 너무 애지고 막막하여서 사립을 벗어나/먼 발치로 바리떼를 든 여승의 뒤를 따라 가며/동구밖까지 나섰다/여승은 네거리 큰 갈림길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뒤돌아보고/우는 듯 웃는 듯 얼굴상을 지었다/(도련님, 소승에겐 너무 과분한 적선입니다. 이젠 바람이 차가운데 그만 들어가 보셔얍지요)/나는 무엇을 잘못하여 들킨 사람처럼 마주서서 합장을 하고/오던 길을 뒤돌아 뛰어오며 열에 흐들히 젖은 얼굴에/마구 흙바람이 일고 있음을 알았다/그 뒤로 나는 여승이 우리들 손이 닿지 못하는 먼 절간 속에/산다는 것을 알았으며 이따금 꿈속에선/지금도 머룻잎 이슬을 털며 산길을 내려오는/여승을 만나곤 한다/나는 아직도 이 세상 모든 사물 앞에서 내 가슴이 그때처럼/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으로 넘쳐흐르기를 기도하며/시를 쓴다 <여승>
이 작품 「여승」은 한 토막의 소설을 엿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느 봄날 한 순간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엮어진 하나의 사설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이야기 시들은 진부하거나 상투적인 묘사로 일관하기 쉬우나, 훌륭한 이야기들은 산문적 진술의 진부함을 뛰어넘는 시적 긴장감을 유지하곤 한다. 이 시도 뒤쫓던 여승이 돌연히 돌아설 때의 심정을 ‘열에 흐들히 젖은 얼굴’로 묘사하면서 긴장의 절정을 유도해 내고 있다.
일상적으로 느낄만한 소재를 그냥 넘기지 않고 휼륭히 재구성, 여승을 신비에 감싸인 존재로 그려내고 있다. 어느 봄날의 시적 시간관념을 맨 처음 도입한 것도 이 시 속의 사건이 실제 있었던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처럼 송수권의 작품은 고향을 생각게하는 시들이 많다.
송수권, 그는 지금 광양 다압면 염창마을 섬진강변에서 어초장(漁樵莊)이라는 집필실을 마련해 시를 쓰고 있다. 강 건너엔 경남 하동의 지리산이 보이고, 마주선 곳은 봄이면 매화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곳이다. 이 곳에 머물며 시심을 일구는 그는 한때 머물렀던 서귀포와 변산반도를 떠나 젊은 날의 협기가 묻어있는 귀거래사를 읊고 있다. 그가 섬진강변을 떠났던 일은 구례중학교에 재직하던 23년 전인 78년의 일이다.
그가 떠나기전 섬진강과 지리산에 대한 애정은 어떠했지는 「지리산 뻐꾹새」를 보면 알 수 있다.
(전략) 지리산하/한 봉우리에 숨은 실제의 뻐꾹새가/한 울음을 토해내면/뒷산 봉우리 받아 넘기고/또 뒷산 봉우리 받아 넘기고/그래서 여러 마리의 뻐꾹새로 울음 우는 것을/알았다//지리산중/저 연연한 산봉우리들이 다 울고 나서/오래 남은 추스림 끝에/비로소 한 소리 없는 강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섬진강 섬진강/그 힘쎈 물줄기가/하동 쪽 남해를 흘러들어/남해군도의 여러 작은 섬을 밀어올리는 것을 보았다(후략)
이 세상에는 많은 소리들이 난무하지만 절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소리는 흔하지 않다. 징소리 울리듯이 한의 울림이 서럽도록 사람들의 가슴속을 파고드는 시 말이다. 뻐꾹새 울음 떼로 지리산을 울리고 그 산봉우리들이 다 울고 나서 강이 열리는 그의 부활의지. 그 힘쎈 물줄기가 하동 쪽 섬들을 밀어 올렸다는 대목에서는 그의 시풍이 얼마나 명징스럽고 강렬한 울림을 가지고 있는가 엿보게 한다.
그는 국토의 3대 정신으로 죽(竹), 황토, 뻘의 정신을 꼽는다. 그의 시에 있어서 섬진강은 죽(竹)의 정신이다. 뻘물과 바지락을 캐며, 수저통에 비치는 저녁노을 등의 작품은 변산반도에 천착했던 뻘의 정신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가 이제까지 완전히 추스르지 못한 대숲과 황토정신은 섬진강과 지리산에서 새로운 페르몬의 시적모습으로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글=이재창 편집부국장
사진=오종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