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알만 한 심장을 부여잡고 연거푸 관세음보살만 외쳐댈 뿐이다.
하필이면 낭떠러지 쪽에 좌석이 배치될게 뭐람?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애써 시선을 길옆
뙈기밭가랑 쪽으로 옮겨 노랗게 빛을 발하고 있는 유채꽃도 보고,
산중턱마다 하얀 벚꽃처럼 핀 나무도 보면서 가끔씩 안도의 숨을 내 뱉기도 하였다.
어쩌다 눈을 아예 감아보기도 하지만 이내 30초도 못 되어 눈꺼풀은 치켜져 올라가
파노라마틱한 계곡의 전경을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마치 무슨 마약에 홀린 듯 그 마력에 흠뻑 빠지기도 하였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미국의 그랜드 캐년 보다도 훨씬 더 매력적일 것이라고
스스로 평가 해보기도 한다.
버스가 가는 길은 영락없이 산 중턱에 나 있어서 산허리를 휘감고 돌고 도는 것이다.
아래쪽만 바라보니 나무도 집도 사람도 짐승도 모두 발아래에서 꿈틀대고 있다.
우연히 고개를 들어 나머지 반쪽의 산위를 보니 또 반대로 나무와 집과 사람과 짐승이
하늘 위에 있으면서 내가 그 밑에서 간을 콩알만 하게 졸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아! 그렇지, 낭떠러지 쪽 아래를 볼게 아니라 저 윗산를 보자 조금 나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땐 이미 버스가 그 코스를 빠져 나와 평평한 평지에 다다를 때였다.
언제나 집들이 길 양옆으로 군데군데 박혀 있는 한뼘의 공간이라도 있는 곳에서는
늘 아이들이 놀고 있다.
올망쫄망 초등생쯤으로 보이는 소년소녀들은 학교로 향하고 그 밑의 동생뻘 되는 아이들은
버스가 지나갈 때 마다 버스 꽁무니를 쫒아오는 모습이 나 어릴 적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계속 이어지는 마을속의 풍경들은 더욱 선명하게 크로즈 업 되어
버스가 지나갈 때마다 새롭게 펼쳐지는 것이다.
기다란 간이 의자에 누워 아침잠을 만끽하는 남자,
수돗가에서 상의를 드러내 놓고 목욕하는 여인,
그 옆에서 빨래하는 사람, 발 씻는 사람,
덕지덕지 붙어 몸을 씻는 모습에서
과거 우리 동네 공동 우물가의 늘 사람들이 북적대는 것과 한 치도 다를 바 없다.
그리고 빠지지 않는 모습이 있었으니
그것은 딸애의 머리에서 뭔가를 잡아내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안타깝게 생각되는 것은 산마을이다 보니 어린이들이 공하나 실컷 차고 놀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급경사에 비탈진 땅덩이에서 그러한 평지가 어찌 나올까마는 그런 땅마저도
한 톨의 곡식이라도 거둬들이겠다는 심산인지 죄다 개간하여 논과 밭을 만들어 버렸다.
저 많은 계단식 논과 밭, 한 치도 어김없이 자기소유의 땅이라고 주장하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미스테리이다.
많고 많은 산등성이를 일군 그곳에서는 곡식이 파릇하게 분명히 자라고 있다.
그런데 도대체 물은 어떻게 해결하나 하는 의문은 조금 후에 말끔히 가신다.
계곡에서 흐르는 물을 논과 밭쪽으로 물코를 만들어 충층히 아래로 아래로 흐르도록
물의 법칙을 철저히 이용하고 있다.
벌써 모내기를 끝낸 논도 있으며 모판을 만들고 있는 모습, 서래질 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버스는 마을마다 다 들려서 사람들을 내려주고 태우고를 반복하며 계속 달리는데
버스 지붕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다르다면 버스 안쪽 사람보다 휠씬 더 회백색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는 것이다.
머리며 얼굴, 속눈썹까지 허옇게 물들어 있다.
도대체 도로가 어떻게 생겼길래 저럴까 하는 의문은 점점 더 깊어만 가고
버스는 줄곧 산 중턱을 벗어나지 않는다.
한쪽은 의례히 낭떠러지다.
세 번의 Permit Checking과 한 번의 짐 검사가 이루어진 후 둔체를 지나간 버스는
있는 힘을 다 쓰며 오르막길을 힘겹게 올라간다.
힘이 달리면 뒷걸음질도 치고 승객을 덜어놓고 오른 뒤, 다시 태워가지고 달린다.
깊은 계곡을 하염없이 달리는 버스!
정해진 시간과 목적지가 없는 것 같다.
협소한 좌석에 장시간의 탑승으로 인한 온몸의 쑤셔댐은 물론 눈, 코, 입안에서조차
먼지모래가 서걱거리며 따가울 뿐이다.
히말라야 설산(雪山)은 아무렇게나 입산을 허용하지도 않으며 만나주지도 않는 것 같다.
충분한 고행의 대가를 치루도록 한 다음, 기진맥진하여 이제 더 이상 내세울 것 없는
진정 자기를 죽이고 죽여 무심(無心)을 만들어 놓고, 버릴 것 다 버리게 한 다음,
무욕(無慾)이 된 자만이 받아 주려는 듯, 그 입산의 과정은 철저하기만 한 것 같다.
이미 해는 서산으로 꼴까닥 넘어간지 꽤 오래되었나 보다.
산속의 해는 더욱 짧기 마련, 날이 어둡자 벌써 이른 초저녁달이 떠오르고 있다.
드문드문 모여 있는 마을에서도 전등불이 하나씩 켜지고 있었다.
그래 갈 때가지 가보자. 길에서 밤이야 세우겠는가!
고행의 인욕으로 흘러가고 있을 무렵,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다는 느낌이 든다.
드디어 Syabrubensi(샤브르밴시)!
Langtang valley Trekking 시발점에 도착되었다.
시계를 보니 딱 12시간 걸린 그야말로 고행의 여행길이었다.
아~이것이 인생길인가!
(계속)
첫댓글 저도 높은곳 공포증이 있는데 .. 보기만 해도 아찔하네요. 구름산 멋지고..역시 히말라야산은 온갖 자만심을 내려놓는자만이 볼수 있는 자격이 있나봐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