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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보이]의 마지막 장면. 최면술사는 주인공 대수에게 기억을 없애기 위한 최면을 건다. <출처: 네이버 영화>
하루 일과가 끝나면 술 한잔 하면서 떠들기 좋아하는 평범한 시민 오대수는 아내와 딸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다가 의문의 납치를 당하고 사설감옥에 갇힌다. 15년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풀려난 그는 자신을 감금한 사람을 찾아 복수하고자 한다. 마침내 찾아낸 범인은 고등학교 동창 우진이었고, 오대수로 인해 벌어진 비극적 사건 때문에 복수하려는 것이었다. 그 복수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대수와 사랑에 빠진 젊은 여인, 미도에 대한 충격적인 진실이었다.
오대수는 충격에 빠져 스스로 혀를 뽑아 말을 할 수 없게 만들지만 기억을 지울 수는 없었다. 대수는 최면술사를 찾아갔고 최면술사는 “아무리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도 살 권리는 있는 거 아닌가요?”라는 대수의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면서 그에게 최면을 건다.
“준비가 되셨으면 나무 하나를 응시하세요. 나무가 서서히 콘크리트 기둥으로 변할 겁니다. (……) 이제 내가 종을 울리는 순간, 당신은 두 사람으로 나뉩니다. 비밀을 모르는 당신의 이름은, 오대수. 비밀을 아는 당신은 몬스터. 종이 또 한 번 울리면, 몬스터가 뒤돌아 걷기 시작합니다. 한 걸음에 1년씩 늙어가는 거예요. 결국 몬스터는 일흔 살에 죽게 됩니다. 걱정할 것 없어요. 매우 편안한 죽음이니까요. 행운을 빕니다.”
대수가 정신을 차리고 난 후 미도가 다가와 안으며 “사랑해요, 아저씨”라고 하자, 대수는 과거의 모든 기억이 사라진 듯 편안한 웃음을 짓는 듯하다가, 다시 울상을 짓는 묘한 표정을 보이면서 영화는 끝난다. 바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다.
이처럼 영화나 소설, 드라마에서 최면요법은 인상적인 기법으로 활용되는데, 정말 최면요법은 단 한 번의 시도만으로 과거의 모든 기억을 깡그리 지우고 원하는 부분만 남겨놓을 수 있을까. 우리는 오래전부터 기억을 재조작하고 암시를 통해 몸과 마음의 반응을 변화시키고 억제되어 있던 기억을 살려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 최면이라고 생각해 왔다. 또 아직까지 최면에 걸리는 이유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밝혀내지 못했지만, 일부 영역에서 최면요법은 적용대상을 분명히 하고, 기대하는 부분을 한정지었을 때에는 그 어떤 약물요법이나 상담요법보다도 짧은 시간 안에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최면요법은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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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리스 신화의 반인반마 케이론(Cheiron) <출처: www.theoi.com> 2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Asklepios) <ⓒ K. A. Baumeister> |
최면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말이나 동작 등의 신호를 통하여 반응을 유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부터 최면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것은 아니나, 개념적으로 최면술에 가까운 행위는 기원전 10세기경부터 발견된다.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의 조각에는 아마도 최면을 유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 여럿 관찰된다. 의술에 뛰어났던 반인반마(半人半馬) 케이론(Cheiron)이 제자이자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Asklepios)를 최면 상태로 유도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또 기원전 376년 이집트에서 ‘치차 엠 앙크’라는 사람이 최면술을 행했다는 파피루스 문서 기록이 남아 있다.
이후 최면에 대한 기록은 역사의 물밑에 가라앉아 있다가 1700년대부터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고, 오스트리아 의사 프란츠 안톤 메스머(Franz Anton Mesmer, 1734~1815년)에 의해 근대적 개념의 의술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그는 1766년 빈 대학 의대를 졸업하면서 ‘동물 자기술(磁氣術)’로 학위를 받았고, 프랑스 파리로 이주해 클리닉을 열어 큰 성공을 거뒀다. ‘동물 자기술’은 인간의 몸에 있는 자력을 이용해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이론이었다. 그는 최면술로 환자를 반의식 상태로 유도한 후 특수하게 제작된 자석을 환자의 몸에 대고 강한 암시를 줬다. 그의 최면요법은 난치병 환자들의 증상을 단기간에 호전시키면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메스머는 섬망, 복통, 치통과 이통(耳痛), 분노와 짜증, 머리에 피가 몰리는 느낌을 호소하는 프란츨 외스터리네(Franzl Oesterline)라는 27세 여성을 치료한 사례를 발표했다. 그녀의 몸에서 액체가 빠져나가도록 자석을 사용해서 신속히 치료했는데, 자석을 이용해서 결핍된 몸 안의 동물 자기를 보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자석은 하나의 상징적 도구일 뿐이고, 일종의 최면에 의한 비유적 암시를 준 것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반면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이론에 의한 치료법은 주류 의학계의 반발을 샀고, 대중들은 그가 ‘기적’을 행했다고 믿었다. 결국 그는 종교계의 공격 대상이 되어 수세에 몰렸고, 파리의사협회가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하자 그의 치료법은 빠른 속도로 쇠퇴했다. 그러나 최면술을 ‘mesmerism’이라 부를 정도로 그의 영향은 지금도 남아 있다.
영국 의사 제임스 브레이드(James Braid, 1795~1860년)는 메스머의 동물 자기술에는 회의를 품었지만, 최면이 인간의 생리적인 무언가를 자극하여 일어난다고 생각하여 빛을 내는 물건이나 벽의 한 점을 응시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이는 ‘응시법’이라 하고 지금도 최면술의 도입부에서 사용되며, [올드보이]에서 최면술사가 오대수에게 나무의 한 점을 보라고 한 것이 바로 이 기법에 해당된다. 최면술사가 끈이 달린 회중시계를 좌우로 흔들면서 시계를 바라보라고 지시하는 것도 같은 원리다. 브레이드는 한 곳만 뚫어지게 보면 시신경이 피로해지고 최면이 유도된다는 가설을 세웠고, 그리스 신화 속 ‘잠의 신’ 히프노스(hypnos)에서 따와 최면술을 ‘hypnosis’로 명명했으며, 1843년에는 첫 번째 최면요법 책인 『최면신경학(Neurohypnology or rationale of nervous sleep)』을 출간했다. 뚜렷하게 효과적인 마취제가 개발되기 전이었던 당시에 최면술은 가장 효과적인 수술 전 마취법이었다. 1864년 산화질소가 본격적으로 마취제로 도입되면서 최면은 점차 사라졌다.
1 프랑스 의사 장 샤르코 (Jean Martin Charcot). 그는 최면도 히스테리의 일종이라고 주장했다. <출처: wikipedia> 2 장 샤르코는 히스테리의 여성환자에게 최면기법을 적용하는 등, 자신의 진료를 시연하는 것을 즐겼다. <ⓒ André Brouillet> |
이후 프랑스에서는 최면요법의 이론적 토대를 탄탄히 만들어낸 두 개의 흐름이 등장했다. 첫 번째는 장 샤르코(Jean Martin Charcot, 1825~1893년)로 살페트리에르 병원 원장으로 있으면서 여성 히스테리에 관심이 많았다. 샤르코는 평소에도 자신의 진료를 시연하는 등 남들 앞에 서는 것을 즐겨서 ‘신경증의 나폴레옹’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정신적인 병 때문에 마비 상태에 있는 여자 환자를 최면으로 침대에서 일어나게 하는 장면을 동료들에게 보여주면서 유명해졌다. 샤르코는 히스테리와 최면을 연결해서 강경증(catalepsy), 늘어짐(lethargy), 몽유병(somnambulism)의 3가지 단계가 있다는 이론을 만들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암시에 잘 걸리는 히스테리 환자들의 치료에 최면을 시도해서 성공을 거두었고, 이를 통해 최면도 히스테리의 일종이라고 결론 내렸다. 즉, 최면에 걸리는 것도 사실은 히스테리와 같이 신경증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비정상 상태로 본 것이다.
낭시 대학의 이폴리트 베른하임(Hippolyte Bernheim, 1840~1919년)은 샤르코의 3단계 이론과 비정상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최면에 걸리는 피암시성은 모든 인간에게 존재하는 정상적인 기질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성별이나, 타고난 기질에 따라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동안 이 두 학파는 서로 대립해 논쟁을 해나갔다. 지금은 베른하임의 이론이 당연시되지만, 1800년대 후반 프로이트가 샤르코에게 배운 최면술을 빈의 다양한 환자들에게 적용하고 초기 정신분석 기법에 응용하면서 여러 저술에 소개한 덕분에 샤르코의 명성이 베른하임보다 더 커지는 반사이익이 생겼고, 이는 두 학파의 대립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이런 대립 속에 20세기를 맞이했고,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병사들 사이에 ‘전쟁 신경증’이 광범위하게 발생하자 다시금 최면이 의학적 관심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이후 최면학회가 창설되어 과학적 연구와 객관적 임상증거들이 수집되면서 ‘쇼’로서의 최면이 아닌 의학적 가치가 있는 치료법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유럽에서 미국으로 최면이 소개되면서 더욱 광범위한 응용과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중에서도 예일 대학의 클라크 헐(Clark Hull, 1884~1952년)이 펴낸 『최면과 피암시성(Hypnosis and suggestibility)』은 그동안의 실험심리의 연구결과를 포함한 최면 연구를 집대성하여 가치를 인정받았다. 특히 헐은 지금까지도 진행 중인 ‘상태/비상태(state/non-state)’ 논쟁의 불씨를 던진 것으로 유명하다. ‘상태(state)’ 이론은 최면으로 인해 멍하고 몽롱한 상태인 트랜스 상태는 의식의 특별한 상태로 일상적으로는 경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비상태(non-state)’ 이론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그런 특별한 상황이란 없으며 모든 최면 현상은 사실 인간의 일상 심리 기제로 설명이 가능한 것이라고 보편화해서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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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일 대학의 의학자 클라크 헐(Clark Hull). 그는 ‘상태/비상태’ 논쟁의 불씨를 던진 것으로 유명하다. <출처: wikipedia> 2 클라크 헐이 펴낸 『최면과 피암시성(Hypnosis and suggesitibility)』 책표지. 그동안의 최면 연구를 집대성한 저서로 인정받는다. <출처: www.amazon.com> |
1955년 영국의학협회, 1958년 미국의학협회는 장기간의 검토와 조사 끝에 최면요법의 유용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했고, 이에 정규 커리큘럼에 포함시킬 가치가 있어 각 전문 분야에서 보조적 치료기법의 하나로 사용할 만큼 충분히 의미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헐이 학술적인 측면에서 최면을 입증하는 데 노력했다면 데이브 엘먼(Dave Elman, 1900~1967년)은 최면요법을 치료기법으로서 체계적으로 정리해 현대화했다. 엘먼은 젊은 시절부터 최면을 배워 적극적으로 시동하여 ‘세계에서 가장 젊고 빠른 최면요법사’로 불렸고, 1964년 펴낸 『최면요법(Hypnotherapy)』은 지금도 고전으로 여겨진다. 엘먼의 기법은 ‘당신은 이제 졸리기 시작합니다’와 같은 작은 주문 하나로도 바로 최면에 의한 트랜스로 들어가게 할 수 있어서 각광받았다. 이때부터 최면은 의학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좀더 넓은 범위로 확장되어 의사가 아닌 사람들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범죄수사에 이용하거나 환자 본인이 직접 배워서 시행하는 ‘자동암시(autosuggestion)’ 같은 기법들도 개발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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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면요법을 치료기법으로서 정리하여 현대화하는데 기여한 데이브 엘먼 (Dave Elman) <출처: www.daveelmaninduction.com/> 2 데이브 엘먼 (Dave Elman)의 저서 『최면요법(Hypnotherapy)』. 최면요법의 고전으로 여겨진다. <출처: 네이버 책> |
한편으로 최면에 대한 공포, 즉 나도 모르는 사이에 최면에 걸려 타인의 꼭두각시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대중들에게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최면을 건다고 해도 반드시 개인의 자발적인 면이 개입해야만 최면 상태가 만들어질 수 있다. 최면에 대한 기대치가 없는 상태에서 자신도 모르게 최면에 걸리는 일은 드물다.
실제로 최면에 잘 걸리는 성향의 사람이 있는데, 대개 이들은 ‘최면감수성’이 높은 사람들이다. 기억력이나 상상력이 풍부하고, 몰입과 집중력이 좋으며, 최면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지를 묻는 십여 항목의 최면감수성 검사를 통해 최면감수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외에 정면을 응시한 상태에 눈동자만 위로 올려서 얼마나 많이 올라가는지 여부로 보는 ‘eye-roll sign’이나 양손 깍지 끼기 검사와 같은 신체반응 검사가 있는데, 정확히 어떤 메커니즘을 반영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상당히 정확히 최면감수성을 측정한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몇 가지 자기훈련을 통해서 최면감수성을 향상시킬 수도 있다.
1970년대에는 데이비드 스피겔(David Spiegel)이 최면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최면을 외부세계의 인식이 줄어든 상태에서 좁은 영역에 정신집중과 몰입을 강하게 한 상태로 파악했다. 사람은 주변 인식과 초점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이 두 가지는 정도의 차이가 있으나 항상 동시에 존재한다. 그러다가 일시적으로 주의가 한 곳에 집중되면, 즉 초점 인식이 증가하면, 상대적으로 자연히 주변의 일들은 잊혀진다. 그 역시 일상생활에 인간의 기본적 정신상태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의 일시적 변형으로 보았던 것이다.
1980년대 이후 뇌과학과 영상학이 발달하면서 최면현상이 뇌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입증되기 시작했다. 2000년 스탠포드 대학의 연구진은 흑백사진을 보여주면서 “이것은 컬러사진”이라고 암시를 주자 실제로 뇌의 색채를 인식하는 부분이 활성화되는 것을 밝혀 《미국정신의학회지(American Journal of Psychiatry)》에 발표했다. 또한 최면이 특이한 마음의 상태를 만들어내지만, 이는 실제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자연스러운 의식 현상의 일부라는 것도 점점 밝혀지고 있다.
한편으로 의학영역밖에서는 범죄수사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1960년대 미국에서 처음 도입되기 시작해서, 1978년부터 미국연방수사국등에서 요원들에게 최면을 교육해서 실무에 활용했다. 한국에서도 1970년대에 일부 최면을 수사에 활용한 사례가 있고, 1990년대이후 본격적으로 도입해서 현재 전국에 약 50명의 최면수사관이 범죄사건 수사에 최면을 활용하고 있다. 범인의 인상착의를 기억해내 몽타쥬를 작성하거나, 뺑소니 차량의 번호판을 기억해내는 것에 이용을 하는데, 여기서 기억해 낸 것이 비록 정식 증거로 채택되는 것은 아니나 수사방향을 잡는데에는 큰 도움을 준다고 한다.
처음에는 매우 신비스러운 주술이나, 히스테리 환자에게서 보여지는 신경증적 증상이 최면이라고 보는 견해, 또는 암시로 사람을 조정하거나 기억을 지우는 퍼포먼스적인 비기(秘技)로 보는 것, 의학적 보조치료방법의 일종으로 보는 견해들이 다양하게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최면요법의 흐름은 이전에 비해 대중화하고 있으며, 최면요법만 전문으로 하는 전문가들이 늘어나면서 특정한 적응증에 대해서는 매우 효과적이고 빠른 치료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람들은 “레드선!”으로 어떤 행동을 하도록 암시를 주거나, 잊고 있던 무서운 기억을 소환하는 것을 최면술로 인식한다. 그러나, 의학영역에서는 예를 들어 높은 곳을 올라갈 수 없는 고소공포증과 같이 특정한 상황이나 대상에 대한 두려움이 강한 공포증상에 경우, 최면요법으로 공포를 덜 인식하게 암시를 주는 요법이 매우 효과적이다. 또 최면으로 마취를 하고 수술을 하는 사례가 외국에서 보고되기도 했다. 이와 같이 효과가 분명하다고 알려진 몇 가지 적응증에 대해서는 최면술을 가장 효과적이고 먼저 시도해볼 수 있는 치료기법의 하나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