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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2021. 10. 12.~14.(화~목) - 음력(9. 7.~9.), 일출 06:33~일몰 17:54
●산행지: 도솔지맥 1구간(돌산령-배후령)
●산행코스: 돌산령-도솔산-1,304m봉-용늪삼거리-대암산-용늪삼거리-1,218m봉-용늪-1,140m봉-1,057.6m봉-904m봉-광치령-902.4m봉 헬기장-개골령-915.2m봉 부대앞-675.9m봉-두무동고개-580m봉-565m봉-607.5m봉-봉화산-764m봉-공리고개-592.3m봉-635m봉-684.8m봉-806m봉-월북현-1,031m봉-사명산-문바위봉-817m봉-운수현-죽엽산-600m봉-추곡령-783m봉-임도삼거리/건천령-부용산-백치고개-오봉산-배후령
●먹거리: 생수3리터, 빵3(소보루스틱, 밤만쥬, 호떡), 자유시간, 양갱2, 단백질초크바3, 사탕15, 알마겔2 외....
●준비물: 1인용텐트, 춘추잠바, 경량우모, 스틱, 헤드랜턴, 구급약, 피부연고, 부직반창고, 마스크3, 충전지2, 충전짹, 손수건2, 면수건, 장갑, 버프, 휴지, 물티슈, 스패츠, 말방울, 세라컵, 비닐우의, 매트, 안대, 은박매트, 귀마개, 양말, 여분의류, 띠지25
●거리: 약 74.5Km
●소요시간: 59.38h
●누구랑: 나홀로
●경비: ITX8,300, 식사7,500, 직행6,200, 여관30,000, 아침8,000, 편의점9,120, 택시36,000, 택시16,700, 편의점14,450 뒤풀이68,000, ITX8,300
●날씨: 10~22(마지막 날만 개스있고 흐림)
●산행경과:
* 10. 12.(화) : 28.6km
- 06:48 : 돌산령
- 07:24 : 도솔산(1,148m)
- 08:58 : 1,304m봉/ 삼면봉(양구군 동면, 해안면 → 인제군 서화면)/ 대암산 통신중계탑봉/ 1등삼각점
- 09:43 : 대암산통제소/ 용늪/ 삼면경계면(양구군 동면, 인제군 서화면 → 북면)
- 10:00 : 1,024m봉
- 10:19 : 1,218m봉/ 삼면봉(양구군 동면, 인제군 북면 → 인제읍)
- 11:32~11:53 : 1,240m봉
- 11:35 : 1,103m/ 삼면경계면(인제군 인제읍, 양구군 동면 → 국토정중앙면)/ 폐헬기장
- 11:39 : 솔봉(1,179m)/ 면계(양구군 동면-국토정중앙면)
- 15:00 : 광치산(1,058.1m)
- 14:04 : 광치령
- 16:40 : 개골령
- 17:02 : 909.2m봉/ 삼면봉
- 17:29 : 군통신부대(915.2m)
- 18:03 : 군계(인제군 → 양구군)
- 18:53 : 두무치/ 비박/ 편의점 보급(택시 배달)
* 10. 13.(수) : 28.4km
- 03:25 : 두무치
- 05:18 : 양구터널 임도
- 06:18~32 : 국토정중앙봉(606.5m)
- 08:06 : 구암리삼거리
- 08:35~43 : 봉화산(874.4m)
- 09:13 : 심포리갈림길삼거리
- 10:10 : 내심포임도
- 11:21 : 공리고개
- 12:17 : 592.3m봉
- 13:41 : 갈탄리고개
- 14:30 : 청량현/ 안대리임도
- 15:35 : 월북현
- 15:55 : 웅진리갈림길
- 17:08 : 1,182.9m봉/ 군계(양구군-화천군)
- 17:14~20 : 사명산(1,198.6m)
- 18:45~55 : 문바위봉
- 19:24 : 815m봉/ 삼군봉(화천군 간동면, 양구군 양구읍 → 춘천시 북산면)
- 20:49 : 운수현/ 비박
* 10. 14.(목) : 17.5km
- 08:35 : 운수현/ 편의점 보급
- 09:28 : 옛 운수현
- 10:36 : 죽엽산(859.3m)
- 12:19 : 추곡고개
- 13:23 : 783m봉/ 종류산갈림봉
- 14:08 : 건천령삼거리
- 15:06~28 : 여기를 종류산갈림봉으로 착각하고 종류산 다녀온다고 알바
- 15:52 : 부용산(880.3m)/ 헬기장
- 16:35 : 백치고개
- 17:10 : 청평사갈림길
- 17:33 : 오봉산제4봉
- 18:09 : 오봉산제1봉/ 삼면경계면/ (화천군 간동면, 춘천시 북산면 → 신북읍)
- 18:11 : 경운산갈림길
- 18:22 : 배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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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솔지맥 세부 구간거리
돌산령-0.8km-도솔산-2.87km-1,304m봉-1.9km-용늪삼거리-1.2km-대암산-1.26km-용늪삼거리-1.4km-1,218m봉-1.4km-용늪 5.9km지점-1.5km-1,140m봉-2.8km-1,057.6m봉-1.15km-904봉-1.85km-광치령-2.5km-902.4m봉 헬기장-2.7km-개골령-1.9km-915.2m봉 부대앞-2.1km-675.9m봉-1.6km-두무동고개-1.6km-580m봉-1.8km-565m봉-1.8km-607.5m봉-2.35km-봉화산-1.3km-764m봉-3.5km-공리고개-1.4km-592.3m봉-1.85km-635m봉-1.15km-684.8m봉-1.7km-806m봉-0.7km-월북현-1.7km-1,031m봉-1.2km-사명산-2.26km-문바위봉-1.5km-817봉-2.2km-운수현-2.97km-죽엽산-1.38km-600m봉-1.26km-추곡령-1.8km-783m봉-1.56km-임도삼거리-2.45km-부용산-1.3km-백치고개-1km-오봉산-2.04km-배후령
* 구간거리
- 돌산령~공리고개 42.4km
-. 돌산령~광치령 18.3km
-. 광치령~공리고개 24.1km
-. 광치령~양구터널임도 15.6km
- 공리고개~배후령 31.4km
-. 공리고개~운수현 15.6km
-. 사명산~운수현 6.1km
- 운수현~배후령 15.8km
-. 운수현~추곡령 4.3km
-. 추곡령~백치고개 8km
-. 추곡령~배후령 11.4km
* 식수 공급지 및 산행 정보
- 양구~돌산령 택시: 36,000
- 용늪: 샘
- 국토정중앙봉: 데크전망대
- 공리고개: 인가 물 보충 가능
- 월북현 직전: 샘터
- 문바위봉 아래 절터: 석간수
- 운수현~46번국도: 약 3km
- 추곡약수터: 여인숙, 공중화장실, 주차장
- 종류산: 0.2km, 10분 왕복
- 청평사갈림길~청평사: 편도 2.2km
- 배후령~간척삼거리: 약 5.1km
* 서울에서 돌산령 가는 방법
- 동서울~양구: 07시, 08:20,~17:30, 18:15, 19:20, 1.50h, 13,900~18,100
- ITX청량리~남춘천: 18:15, 19:17, 19:48, 20:18, 20:51, 21:36, 22:21, 0.56h, 8,300
- 동서울~춘천: 18:10, 18:25, 18:45, 19:05, 19:25, 19:45, 20:05, 8,300
- 춘천~양구: 19:20, 20:10, 21시, 0.50h, 6,200
- 양구~해안 버스: 06:40, 10시, 14:40, 19시,
- 양구~돌산령: 양구콜택시(033-482-7788), 010-5368-4458
* 운수현에서 서울 올라오는 방법
- 왼쪽으로 내려서 삼거리에서 왼쪽, 약 3km
- 46번국도 오른쪽 시내버스정류장, 왼쪽으로 10분 걸어 추곡약수터삼거리 북산치안센터앞 직행버스
* 양구에서 서울 올라오는 길
- 양구~동서울: 16시, 17:40, 19:10, 2h, 18,100
- 양구~춘천: 17:45, 18:20, 19:20, 21시, 6,200
- 춘천~동서울: 20시, 20:20, 20:35, 20:40, 21시, 21:30, 22:10, 1.30h, 7,700
- ITX남춘천~청량리: 19:04, 19:38, 20:34, 21:19, 21:52, 22:17, 1h, 8,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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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지맥을 2구간으로 준비하는데 7:3으로 하자니 공리고개에서 비박을 치고 백치고개나 배후령까지 가야 합니다. 첫날은 심야산행을 불사하고 밤늦게까지 걸어야 하고, 둘째날도 빡시게 걸어야 합니다.
5:5로 자르니 1구간은 운수현까지 가면 되겠고, 첫날 비박은 국토정중앙봉 목조데크에서 하면 되겠습니다.
그러면 다음날 봉화산에서 일출을 감상하고 사명산도 날이 밝아서 지나게 되겠군요.
2구간은 운수현에서 출발하여 배후령에서 비박하면 될것 같습니다. 결론은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같은 2구간인데 하나는 힘이 덜드는 2구간이고 하나는 힘든 2구간입니다.^^
다만, 운수현에서 끊을 때는 진출입하는 교통편이 불편합니다. 북산치안센터까지 약 3.1km입니다.
어느 지맥이나 젤 중요한건 물과 보급의 문제입니다.
도솔지맥에서 물의 무게를 절반 줄일 수 있다면 힘도 절반 줄어듭니다.
앞으로 도솔지맥 하시는 분들에게 아래 지점에서 정확하게 물보충 할 수 있는 장소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두무치: 첫번째 두무치 컨테이너 농막 뒤쪽에서 물소리가 대단했습니다만 절개지라 어떻게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공리고개: 공리고개는 확실하게 물을 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옆에 인가에 수도꼭지와 음식점이 있습니다.
월북현: 사명산 오름길에도 월북현 직전 좌측 임도 100m 아래 웅진리쪽에서 올라오는 지점에 샘터가 있다고 합니다. 주변을 자세하게 살필 시간이 없었습니다.
건천령: 마지막으로 건천령은 하늘 건(乾) 내천(川)자입니다. 임도에서 가까운 건천령 좌측 계곡으로 맑은 물이 풍부하게 내려옵니다.
그외 공리고개 직전, 범바위 이후 만나는 외딴집도 물을 구할 수 있는 대상에 들지만 공리고개가 1km 이내입니다.
심포리 갈림길삼거리에서 급하게 내려선 마지막 임도와 만나는 잡목구간 좌측으로도 물소리가 들렸습니다.
가볍게 침낭과 텐트를 갖추니 배낭 무게가 14kg 되더군요. 14kg을 메고 1구간 배후령까지는 불가능 했습니다. 가능하다 한들 허리가 남아나질 않았겠구요. 그래서 양구택시에게 두무치로 텐트와 침낭 그리고 편의점 소모품을 심부름 시켰으며(요금 16,700), 그곳 두무치에 대포시킨 이후 친구가 되가져왔습니다. 친구가 운수현에서 기다렸다가 추곡약수터로 가서 비박했고, 마지막날 배후령에서 기다려 함께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춘천지맥에 이어 친구가 이번에도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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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솔지맥(兜率枝脈)이란?
도솔지맥은 백두대간이 추가령을 지나 금강산 비로봉(1,639m)에서 남진하여 20.4km를 내려와 매자봉(1,144m)에서 우측으로 한 줄기를 떨구고, 좌측으로 크게 휘어 동해안쪽으로 내달리며 무산(1,319.7m)을 지나고, 남한 땅으로 넘어와 향로봉(1,287.4m)을 일구고 설악산에 이른다. 백두대간 매자봉(1,144m)에서 우측으로 가지친 한 줄기는 남진하며 매봉(1,290.6m), 가칠봉(1,242.2m), 대우산(1,178.5m), 도솔산(1,147.8m), 대암산(-1.3km, 1,304m) 등 1,000m급 이상의 산들을 일구고 남진하던 산줄기가 광치령을 지나면서 서남쪽으로 방향을 돌려 봉화산(874.9m)에 이르고,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사명산(1,198.6m), 죽엽산(859.2m), 부용산(882m), 오봉산(779m)을 일구고, 배후령을 지난 764m봉에서 떨어뜨린 산줄기 하나는 용화산을 걸쳐 가일리에서 북한강에 잦아들고 본줄기는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수리봉(656m)을 올린 후, 새밀고개 전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에서 남쪽으로 산줄기를 떨어뜨려 소양강이 북한강에 합류하는 우두산(133m)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124.1km의 산줄기이다. 그러나 돌산령 북쪽의 36km는 비무장 지대 이북이라 휴전선이 가로 막아 갈 수 없고 남한에서 산행할 수 있는 도솔지맥의 거리는 돌산령에서 북한강과 소양강이 만나는 합수점까지 약 88.1km의 산줄기이다. 양구군, 인제군, 화천군, 춘천시 등 4개 시.군을 지난다.
우리나라 최전방에 위치한 도솔지맥 서쪽으로 흐르는 물은 양구서천, 수입천이 북한강 본류로 합류되어 흐르고, 동쪽으로 흐르는 물은 인북천이 소양강에 합류된다. 이 두 물줄기는 도솔지맥의 맥이 다하는 춘천시 사우동에서 다시 만나 흘러가다 양평의 양수리에서 다시 남한강과 만나 한강으로 흘러간다. 도솔지맥(兜率枝脈)의 명칭은 도솔산(1,147.8m)에서 따온 것이지만, 도솔산보다 높은 산이 네개나 되는데도 분기봉도 최고봉도 아니어서 쪼금 어중쭝하나, 강호에서 도솔지맥으로 명명한 이유는 산행이 가능한 실질적인 지맥의 시작점이 도솔산이고 일반인에게 친숙한 도솔(兜率)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는것 같다. 일부 물줄기를 주장하며 신산경표 명칭에 혼란을 야기하는 분들에 의해서는 소양강의 북쪽 울타리와 화천천의 남쪽 물막이 역할을 하는 강을 기준으로 소양북기맥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 도솔지맥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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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솔지맥이 지나는 동네
* 양구군
양구란 버드나무가 많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또 금강산으로 가는 입구라 해서 만들어진 이름이라고도 전한다. 양구는 백두대간에 의지한 고장이다. 금강산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으며, 파로호와 소양호를 양팔로 잡고 있다. 양구군은 고구려때부터 독립된 고을이였다. 그 이름은 한 번도 바뀐 때가 없었다. 양구는 조선 초기에 이르도록 현령을 두지 않았다 한다. 양구군은 화천호와 소양호, 그리고 높디높은 산으로 애워싸인 고을이다. 양구에는 함춘역과 수인역 두개의 큰 역원(驛院)이 있었다. 강원도 양구(楊口) 상당수의 대한민국 남성에게 ‘군대’와 함께 연상되는 지역이다. 한때 양구는 강원도청이 있는 춘천에서 울퉁불퉁 비포장도로를 천천히 달려도 40분 정도면 넉넉히 가 닿을 수 있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 소양호가 생기면서 춘천과 양구를 잇는 길이 온통 수몰되고 말았다. 그러잖아도 많지 않던 인구가 더 줄어들었다. 현재 양구군의 인구는 2만 5천명을 상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양구는 춘천에서 꼬박 2시간 반이 걸리는 먼 곳으로 물러났었다. 그래서 소양강댐이 생기면서 ‘육지 속 섬’이란 이름을 하나 더 얻게 되었다. 옛 46번 국도를 달리던 기억도 새롭다. 소양댐이 생기면서 댐둑을 따라 꾸불꾸불 이어지며 양구를 찾아가던 옛 국도는 배후령터널을 위시하여 추곡터널, 수인터널, 웅진터널, 웅진1터널, 웅진2터널, 공리터널이 뚫리면서 직선화되어 춘천과 양구는 1시간 남짓 거리로 가까워지고 1912년 춘천의 북쪽 산자락을 아찔하게 넘어야 했던 배후령 고갯길에 전장 8.8km짜리 터널이 뚫리면서 춘천과 양구는 20분 거리로 짧아졌다. 서울 춘천간에는 고속도로가 놓였으니 수도권에서 양구는 더 가까워졌다. 비무장지대(DMZ)에 인접한 양구에는 디딜 수 없는 땅, 건널 수 없는 강, 오를 수 없는 산들과 미확인 지뢰지대, 출입통제 군 작전지역으로 간간이 총소리, 대포소리가 들리는 군사격장이 있다. 양구의 대표적인 명산은 사명산(四明山, 1198m)이다. 북쪽으로는 금강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파로호에 물을 넘긴다. 봉화산(烽火山, 875m)은 양구읍과 남면 일대에 자리하고 있으며 양구읍에서 정남향에 위치해 있다. 봉화산 북사면은 군사격장이 있다. 2002년 이후 우리나라 국토 정중앙지점이다. 비봉산은 양구 동쪽하늘을 밝히는 양구의 진산이다. 정상에 서면 양구의 전망대다. 양구 서천은 파로호를 향해 굽이치며 산을 감싸며 흐른다. 정상에는 팔각정이 있고 봉화산, 사명산, 배암산, 백석산, 가칠봉, 대우산, 도솔산을 조망할 수 있다. 매년 해맞이 행사를 하고 있다. 삼한시대엔 둘레 892척 높이 8척의 비봉산성이 비봉산에 있었다 전한다.
* 인제군
강원도 중북부에 있는 군으로 국내 행정구역 중 군 단위에서는 가장 넓은 군이다. 백두대간의 서쪽에 자리잡은 산간지방으로, 강원도 내 800m 이상 되는 높은 산 가운데 약 1/5이 분포해 있다. 군의 북쪽은 휴전선과 맞닿아 군사분계선이 지나고 있으며, 동쪽은 향로봉(1,296m)·설악산(1,708m)·점봉산(1,424m), 서쪽은 대암산(1,304m), 남쪽은 방대산(1,444m)·구룡덕봉(1,388m) 등이 솟아 있다. 이러한 높고 험준한 지세는 이곳에 많은 고갯길을 발달시켜 일찍이 진부령(530m)·미시령(826m)·한계령(1,004m) 등이 동서교통로로 이용되어왔다. 홍천군 내면 명개리 만월봉 남쪽 계곡에서 발원한 소양강이 군 중앙을 흐르며, 동쪽에는 북천·한계천, 남쪽에는 방대천, 북쪽에는 서화천 등이 소양강에 합류하여 소양호를 이룬다. 인공호인 소양호가 군 남서쪽에서 북면 원통리까지 이르러 소양호 선착장에서 인제읍 남북리 군축교에 이르는 60㎞의 뱃길이 내설악으로 가는 중요한 수상교통로이나, 유량이 풍부한 하절기에만 이용이 가능하다. 6·25전쟁 후 격전지였던 인제군은 넓은 면적에 비해 인구밀도가 가장 낮다. 지형상 높고 험준한 고개가 많아 교통이 불편한 편이다. 인제읍 느티나무와 상남면 은행나무는 수령 500년이 넘는 보호수이다. 내설악을 비롯하여 소양호·백담사 등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삼국시대에 고구려의 오사회현(烏斯回縣) 또는 저족현(猪足縣)인데, 통일신라시대의 지방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희제현(狶蹄縣)으로 이름을 바꾸고 양록군(楊麓郡, 양구)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초인 940년(태조 23)에 인제현으로 개칭했으며, 1018년(현종 9)에 춘주, 후에 회양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1389년(공양왕 1)에 감무를 둠으로써 독립했다. 조선초 군현제 개편 때 인제현이 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별호(別號)는 영소(靈昭)였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에 춘천부 인제군, 1896년에 강원도 인제군이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에 의해 춘천과 강릉 일부를 편입하면서 면적이 확대되었다. 1914년의 군면 폐합으로 군내면·동면이 군내면으로, 내면일리면·내면이리면이 내면으로 통합되었으며, 1916년에 군내면이 인제면으로 개칭되었다. 1945년 8·15해방 후 북면과 서화면 일원, 인제면·기린면의 일부가 북한에 편입되고 나머지 지역은 홍천군에 편입되었다. 6·25전쟁 후 격전지였던 이곳의 대부분 지역이 수복됨에 따라 홍천군에 편입되었던 지역 중 내면을 제외한 인제면·기린면·남면이 다시 인제군에 이관되었으며, 1954년 휴전협정이 성립되면서 수복지구 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미군정으로부터 행정권을 되찾았다. 이때 양구군 해안면이 인제군으로 편입되었고, 홍천군 신남면을 남면으로 개칭하여 인제군으로 복구시켰다. 1963년 해안면과 서화면을 통합했다. 이듬해 1964년 인제읍 귀둔리, 남면 갑둔리, 기린면 상남리, 서화면 해안에 출장소를 개설했다. 1973년에는 춘성군 북산면 수산리, 양구군 남면 상수내리·하수내리가 인제군 남면으로 통합했고, 홍천군 내면 미산1리·미산2리를 기린면으로 편입되었다. 또한 인제군 남면 두무리를 양구군 남면으로, 서화면의 현리·오유리·만대리·후리·월산리·니현리 등을 양구군 동면으로 이속시켰다. 1979년에 인제면이 인제읍으로 승격했다. 1983년 기린면의 상남출장소가 상남면으로 승격되어 상남리·하남리·미산리와 남면 김부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포탈에서 발췌정리]
* 화천군
군의 대부분 지역이 산지로 되어 있다. 동쪽에는 적근지맥과 도솔지맥이 뻗어 있어 일산(日山, 1,150m)·재안산(在安山, 1,060m)·사명산(四明山, 1,198m)·수리봉(922m) 등이 솟아 있다. 서쪽에는 경기도 포천시와의 경계에 광덕산(廣德山, 1,046m)·백운산(白雲山, 904m)이 있다. 남쪽에는 오봉산(五峰山, 779m)·용화산(龍華山, 878m)·화악산(華岳山, 1,468m)·매봉(1,436m) 등이 있다. 북쪽에는 대성산(大成山, 1,175m)·적근산(赤根山, 1,073m)·백암산(白巖山, 1,179m) 등을 연결하는 한북정맥이 연봉을 이루고 있다. 그리하여 대체로 북동쪽은 높고 남서쪽으로 갈수록 점차 낮아진다. 하천으로는 군의 동부지역을 남류하여 흐르는 북한강이 있다. 그 지류인 마현천(馬峴川)은 적근산 부근에서 발원하여 동남류하면서 마현리·산양리·신읍리를 지나 상리에 이른다. 대성산과 복계산(福桂山, 1,057m)의 동쪽 수피령(水皮嶺)에서 발원한 봉오천(峰吾川)이 동류하면서 상리에서 마현천과 합쳐져 하리에서 북한강으로 흘러든다. 북한강에 건설된 화천댐으로 형성된 파로호(破虜湖)에 의해 많은 지역이 수몰되어 평야는 거의 없다. 마현천·봉오천이 중남부에 약간의 곡저(谷低) 지대를 이룬다. 남서부의 사내면과 간동면에 작은 산간분지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간동면의 간척리·오음리·용호리 일대의 산록 완사면 지형은 중요한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다. 구석기시대의 유물이나 유적이 발견된 적은 없으나 인접한 홍천군의 홍천강유역에서 5만∼10만 년 전의 중기 구석기시대 유물이 출토된 점으로 보아 이 지역에서도 일찍부터 인류가 거주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고려 초에도 낭천군이라 불렸으며, 춘주(春州)의 속군(屬郡)으로 되었다가 1106년(예종 1)에 비로소 감무(監務)가 파견되기 시작하였다. 세조의 왕위찬탈이 있은 뒤에는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金時習)이 세조의 그릇된 처사에 분개하여 사내면 삼일리에 내려와 정자를 짓고 지냈다. 1644년(인조 22)에 폐현(廢縣)되어 김화현(金化縣)에 합쳐졌으며, 1653년(효종 4)에 다시 낭천현으로 복구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춘천부(春川府)의 관할로 되었다가 이듬해 다시 강원도에 소속되면서 화천군으로 개칭되었다. 1910년 3월에는 동면(東面)과 간척면(看尺面)이 병합되어 간동면으로 되고, 남면(南面)과 하동면이 병합되어 하남면(下南面)이 되었다. 1945년 광복과 더불어 공산치하에 들게 되었다가 6·25전쟁 때 국군의 북진으로 수복되었다. 1951년 5월에 있었던 중공군의 제2차 공세로 소양강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소양강전투는 특히 치열한 것이었다. 이 때 중공군이 2개 군단 병력을 투입하여 대공세를 취해왔으나, 결사적으로 항전하여 화천수력발전소를 탈환하였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전선에 와서 장병들을 격려하고 친필로 써준 ‘破虜湖(파로호)’라는 제자(題字)가 간동면 구만리의 기념비에 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후 수복되어 군정(軍政)이 실시되었다. 1954년 10월 21일에는 춘성군 사내면이 편입되었고 면 사이에 일부 관할구역 개편이 있었다. 1964년 화천면의 동촌출장소와 간동면 구만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79년 5월 1일 화천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1981년 5월 1일에 화천읍 동촌출장소가 없어지고 하남면 강남출장소가 개소되었다. 1998년 강남출장소와 구만출장소가 폐지되었다. 교통은 산간내륙지방이지만 화천읍을 중심으로 국도와 지방도 및 군도 등이 연결되고 있어 편리한 편이다. 즉 5번 국도가 상서면에서 화천읍∼춘천으로 이어지고, 56번 국도가 철원에서 상서·사내·사북면을 지나 춘천∼홍천으로 이어진다. 46번 국도가 춘천∼간동∼양구로 이어져 있다. 지방도로는 407번이 춘천∼화천읍, 460번이 화천∼평화의 댐∼양구, 461번이 화천∼양구 등을 연결한다. 시·군도는 15개 노선이 있어 각 읍·면지역과의 교통이 이루어진다. [포탈에서 발췌정리]
* 춘천시
대한민국 강원도 중서부에 있는 시로 1949년 시로 승격했으며 1995년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춘천군과 합쳐 도농통합시를 이루었다. 강원도 도청소재지로, 강원도의 행정·경제·교육·문화의 중심지이며 교통의 요지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호반도시이다. 백두대간의 지맥이 북북동-남남서 방향으로 뻗어내려 대부분 산지를 이루고 있으며, 소규모 산간곡저평야를 제외하면 평야가 거의 없다. 그러나 중심시가지인 춘천분지에는 후평천과 소양강이 합류하는 후평동·신동·우두동 일대에 충적평야가 발달했다. 시의 동부에는 가리산(加里山, 1,051m)·매봉(800m)·바위산(858m)·계명산(763m)·죽엽산(竹葉山, 859m) 등이 있으며, 북서부에는 촛대봉[燭臺峰, 1,125m]·화악산(華岳山, 1,468m)의 연봉인 응봉(鷹峰, 1,436m)·가덕산(加德山, 858m)·북배산(北培山, 867m)·토보산(589m) 등 비교적 높은 산들이 솟아 있다. 남쪽으로는 대룡산(大龍山, 899m)·수리봉(水利峰, 645m)·구절산(九節山, 750m)·금병산(錦屛山, 652m)·꼬깔봉(421m)·좌방산(座防山, 502m) 등이 솟아 있으며, 남서쪽으로 지세가 낮아지면서 경기도와 만난다. 인제군에서 시의 북동쪽으로 흘러들어온 소양강이 중심시가지에서 화천군에서 흘러들어온 북한강과 합류하여 시를 남서방향으로 흐른다. 또한 홍천강은 홍천군과의 경계를 이루며 시의 남동부를 서류하고 있다. 시 전체에 걸친 풍부한 수계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이루어진 경인지방의 산업발전을 위해 신북읍 용산리에 춘천 댐, 천전리에 소양강 댐, 신동면 의암리에 의암댐이 건설되면서 크게 변모했다. 특히 북산면의 경우는 경지면적의 절반 이상이 수몰되었고, 높은 산들은 저수지 가운데의 섬이 되기도 했다. 의암호 가운데에는 중도가 있다. 응봉(應峰, 759m)과 금병산에서 발원한 공지천이 북서쪽으로 흘러 의암호에 유입하며, 대룡산에서 발원한 후평천도 북서류하여 소양강에 흘러든다. 삼국시대에는 먼저 고구려의 영역에 들었다가 뒤에 신라의 세력권에 들었다. 신라는 637년(선덕여왕 6)에 우수주 또는 우두주를 두고 군주를 파견했다. 통일신라시대인 673년(문무왕 13)에 수약주 또는 오근내·수차약으로 개칭했으며, 757년(경덕왕 16)에 삭주로 바꾸었다가 뒤에 다시 광해주로 고쳤다. 고려초인 940년(태조 23)에 춘주로 개칭되었으며, 995년(성종 14)에는 단련사가 설치되고 안변부에 예속되었다. 1018년에 춘주군이 되어 가평군 등 2개군을 속군으로, 기린현 등 9개현을 속현으로 관할했다. 안변부로 통하는 길이 험난하다 하여 1203년(신종 6)에 안양도호부로 승격되었다가 뒤에 춘주군으로 바뀌었다. 조선초의 군현제 개편에 의해 1413년(태종 13)에 춘천군으로 개칭되었다가 1415년(태종 15)에 춘천도호부로 승격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춘천의 별호(別號)는 수춘·봉산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에 춘천부 춘천군이 되었다. 1896년에는 13도제 실시로 강원도에 속하게 되었으며, 원주에 있던 강원도 관찰부가 춘천으로 이전되어 이후 강원도의 행정중심지가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20개면이 12개면으로 통합되었다. 이때 부내면·동내면이 통합된 부내면이 1917년에 춘천면으로 개칭되고, 1931년에 춘천면이 읍으로 승격했으며, 1946년에 춘천읍이 춘천부로 승격되었다가 1949년에 시로 승격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농촌지역이던 춘천군과 중심도시기능을 담당해왔던 춘천시가 하나로 통합되어 도농통합시라는 새로운 형태의 춘천시를 이루었다. 1998년 상걸·덕두원·용산·조교출장소가 폐지되었다. 춘천시는 전국 최대의 수력발전지역으로 춘천·의암·소양강 수력발전소가 있다. 경춘선과 경춘국도로 알려진 서울-인제를 잇는 국도를 통해 서울과의 통행이 원활하다. 그밖에 화천-원주, 철원-홍천을 잇는 국도가 지나고, 중앙고속도로가 건설중에 있어 교통이 더욱 편리해질 것으로 보인다. 소양호·춘천호·의암호 등 3개의 인공호수가 생기면서 내륙수운이 활기를 띠고 있다. 특히 소양강 댐에서 양구를 거쳐 인제까지 이르는 소양강 수운은 청평사와 동면의 품안리, 북산면의 여러 내륙지역을 연결했다. [포탈에서 발췌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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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지맥은 양구의 고지전에서부터 출발해 보겠습니다.
고지전이란 고지를 두고 공격과 방어가 반복되는 공방전을 말하며 1951년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공산군과 UN군의 대규모 공세는 멈추었지만 이미 1.4후퇴와 중공군의 춘계대공세를 거치면서, 양측 모두 상대를 근본적으로 궤멸시킬 힘은 부족하다는 것은 알게 되었고, 전선을 유지한 채 휴전을 하기로 암묵적인 동의가 이루어졌지만 전선을 유지한다고 양측의 교전이 멈춘 것은 아니었고, 자신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형지물을 확보하기 위한 전투가 지속되었다. 이 지형지물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고지였으며 그 중에서도 강원도 부근 특히 양구쪽에서는 1951년 한국전쟁 최대의 고지전이 벌어졌다. 6.25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고지쟁탈전'은 한 치의 땅이라도 지켜내려 했던 수많은 이들의 '희생'이다. 양구군 해안면 펀치볼 일대는 6·25전쟁 당시 수많은 전사자를 남긴 격전지 중 격전지다. 적군 1만여 명, 아군 2000여 명이 이 산악분지에서 목숨을 잃었다. 마을의 평균 고도는 400∼500m, 면적은 여의도의 6배가 넘는다. 군부대의 통제에 따라야만 접근이 가능한 을지전망대에 서면 해안면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을지전망대에서 반대쪽으로 서면 첩첩산중의 북한땅이 손에 잡힐 듯 펼쳐져 있다. 금강산 봉우리도 육안으로 보인다. 6·25전쟁 당시 양구군에서 9차례의 큰 전투가 벌어졌으며 이 가운데 4번의 전투 현장이 펀치볼이다. 우리나라 해병이 ‘무적해병’ 별칭을 달게 된 ‘도솔산전투’와 40일 동안 주인이 6번이나 바뀌었다는 ‘가칠봉전투’의 무대이기도 하다. 동면 월운리 국도변에 펀치볼 전적비가 세워져 있다. 펀치볼은 한국전쟁의 군사 요충지였다. 펀치볼을 적에게 내주면 춘천까지 위험하고 춘천을 빼앗기면 곧장 서울이 노출될 수 있어 수많은 군인이 목숨을 바쳐 지켜야 하는 곳이었다.
♤ 도솔산지구전투(1951. 6. 4.~6. 19.)
양구지구 전투의 첫 시작을 알리는 전투는 양구와 인제 사이에 위치한 해발 1,000m 이상의 봉우리가 즐비했던 도솔산에서 벌어졌다. 1951년 6·25전쟁 당시 한국해병대 제1연대가 북한 공산군 제5군단 예하의 제12사단 및 제32사단이 점령 중이었던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칠정리의 도솔산(1,148m)을 혈전 끝에 탈환한 전투로 전투기간은 1951년 6월 4일부터 19일까지이다. 이 전투지구는 38선 이북의 강원도 양구와 인제 사이에 있는 태백산맥의 험준한 산악지역이며, 특히 도솔산을 중심으로 한 이 일대는 높이 1,000m를 오르내리는 높은 봉우리가 연이어 있으며, 기암절벽과 험하고 깊은 골짜기로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좌우로 양구와 인제에서 북상하는 도로를 끼고 있으므로 만약 이 지역을 확보하지 못하면 좌우편에서 북상중인 한국군의 전선부대가 한 걸음도 진격하지 못하게 되므로 전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그러므로 북한 공산군은 이러한 전술적인 이점과 천연적인 지세를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견고한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당시 양구는 지금과 달리 중공과 북한의 손에 넘어가 있었고 험준한 산맥을 중심으로 강력한 방어선이 구축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고지를 잇는 방어선 때문에 여의도 6배에 달하는 분지가 적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고 중요한 교통로를 장악당한 형태였다. 또한 경기도 부근 전선은 휴전회담이 직접 진행중이어서 영토확장이 어려웠지만 강원도는 휴전회담 진행중에도 계속해서 전투가 가능했다. 도솔산은 특히 양구, 인제를 관통하는 도로를 끼고 있었기 때문에 꼭 점령해야한다고 판단한 UN군은 공격을 시작한다. 처음엔 미 해병대 1사단5연대가 공격을 했지만 많은 손실만 입고 탈환하지 못하자, 한국해병대 1연대(연대장 대령 김대식)가 공격임무를 인수하여 6. 4일 첫 공격을 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미군은 강력한 포병지원과 포격을 바탕으로 공격을 하였지만 험준한 산에 벙커를 지어놓은 북한군에게 많은 피해를 줄 수가 없었고 실패하였다. 이에 착안한 한국 해병대는 낮에 포격지원을 바탕으로한 점령전을 야간 기습공격으로 바꾸어 공격하게 된다. 북한 공산군은 약 4,200명의 병력으로 무수히 많은 지뢰를 매설하고 수류탄과 자동화기를 퍼부으며 완강히 저항했으므로 한국 해병대는 한 걸음도 진격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국 해병대는 치열한 육박전과 강력한 야간 기습공격을 감행하여 24개 고지를 하나하나 점령하면서 전진하였다.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면 적의 공격을 받아 다시 빼앗기고, 또 빼앗는 가운데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었던 24개 목표 고지를 6월 19일 완전 탈환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고립된 적3개 대대를 번갈아 공격하는 식으로 적의 물자를 바닥내고 피로도를 극대화하는 전략에 북한은 결국 고지를 포기하고 도솔산에서 후퇴를 하게 된다. 이 전투는 해병대 5대 전투로 기록에 남게 되었고 미군이 해내지 못한 일을 우리 국군이 해냄으로써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였다. 도솔산을 점령하여 북한의 방어선은 약 10km 후방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해병대 1연대는 123명의 전사를 포함한 700여명의 사상자를 냈지만 북한군 2,263명을 사살하였고 44명을 생포했으며 개인 및 공용화기 등 198점을 빼앗는 큰 전과를 올렸다. 이 전투로 한국 해병대 제1연대는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으로부터 부대 표창을 받았다. 그 뒤 해병대에서는 「도솔산의 노래」라는 군가를 제정하여 그날의 용전의 기백을 후배 해병들에게 알리고 있다.
♤ 대우산전투(1951. 7. 15.~7. 31.)
도솔산을 탈환한 해병대는 계속되는 공방으로 피해가 일어나자 미군과의 교대를 요청하게 된다. 그러나 교대를 1주일 앞두고 대우산 점령을 위한 작전이 시행되고 1연대가 모두 육탄전을 펼친 끝에 중간지점을 점령하였다. 임무를 마친 해병대는 곧 미군2사단, 네덜란드 대대와 임무를 교대하였다. 그리고 잠깐의 평화중 중공군이 휴전회담을 거부하자 유엔군은 중공군을 회담장으로 끌어오기 위해 다시 공격을 시작한다. UN군은 100톤이 넘는 폭탄을 퍼부었지만 숨어버린 북한군은 폭격을 버텨낸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UN군은 폭격을 더 하였고 결국 북한군을 물리치고 대우산을 점령하게 된다. 이 작전으로 UN군은 적 3690명을 사살하였고 55명을 포로로 붙잡았으나 전사,실종 205명을 포함한 946명의 피해를 보았다.
♤ 피의능선 전투(1951. 8. 18.~9. 7.)
중공군은 결국 회담장으로 나오지 않았고 장마가 끝나자 다시 치열한 전투는 재개되었다. 연합군은 983-940-773고지로 이루어진, 후에 피의 능선으로 명명되는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공격을 시작하였다. 먼저 국군 5사단 36연대가 선제공격을 시작했지만 북한의 지뢰밭에 전진이 힘들어 작전에 실패하였고 지뢰밭 제거를 위해 미 제2사단이 지뢰밭에 포격을 가했지만 수많은 지뢰로 여전히 남아있는 지뢰에 다시 작전은 실패하게 된다. 결국 국군은 정면공격을 포기하고 983고지를 우회하여 940, 773고지를 기습공격하게 된다. 지뢰밭만 믿고 있던 북한군은 순식간에 밀리며 고지를 내주게 되었다. 그러나 국군의 피해도 심각하였고 북한이 다시 재정비후 공격할 것을 예상한 연대장은 미군과 교대를 요청하였지만 미군은 거부하였고 북한의 재공격에 포위당하고 다시 983고지를 내주게 된다. 이후 포병전력을 강화한 5사단 36연대는 포격을 바탕으로 미군과 합동공격을 하여 983고지를 재점령하며 전투는 막을 내리게 된다. 이 전투로 국군은 1,000여명, 미군은 2,7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북한군은 15,0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전투중에 화력지원을 한 미2사단은 하루 평균 3만발의 105mm, 155mm포를 발사하였고 미군 지휘관은 '한국전 발발 후 가장 많은 포를 쏘았다'라고 했으며 능선이 피로 붉게 물들었다고 하여 종군기자들은 이를 '피의능선'이라 이름을 붙였다. 참고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나오는 마지막 장동건과 원빈이 만나는 전투가 바로 이 피의능선 전투이다.
♤ 펀치볼전투(1951. 8. 30.~9. 20.)
휴전회담이 드디어 재개되자 이번에는 조금이라도 영토를 더 차지하기 위한 고지전이 펼쳐지게 되었다. UN군은 펀치볼이라 불리는 해안분지(亥安盆地)를 확보하기 위해 공격명령을 내렸고, 이로써 펀치볼 전투, 서화리-가칠봉 전투, 피의능선 전투, 단장의 능선 전투, 1211고지-무명고지 일대에서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개시되어 펀치볼 일대를 완전히 장악하기 위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펀치볼 일대에서 가장 먼저 전투를 시작한 것은 국군 해병대와 미군 해병대였다. 비록 불리한 지형과 적의 지뢰, 탄막공격 등에 피해를 입었지만 포병 화력, 항공지원에 힘입어 효과적으로 적을 격퇴하였고, 한국군 제3·제5사단, 해병 제1연대와 미군은 인민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적 1사단을 격멸하여 펀치볼과 주변 고지를 점령하였다. 이 전투로 적 2,799명을 사살, 포로 557명의 성과를 냈으며 한국군 및 미군 전사자 428명, 부상 1,062, 실종 3명의 피해를 입었다.
♤ 가칠봉전투(1951. 9. 4.~10. 14.)
금강산 마지막 봉우리인 가칠봉에서 펼쳐진 가칠봉 전투는 펀치볼 전투와 비슷한 시기에 개시되었다. 국군 5사단 2연대를 전력으로 1,122m의 김일성고지를 중심으로한 가칠봉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었지만 피아간 전선거리가 너무 가까워 대포병, 항공지원이 불가능한 상태로 개시되었다. 북한군은 견고한 진지와 고도의 이점을 이용해 고지를 지켰지만 육탄전을 불사한 공격에 결국 고지를 내주었다. 그러나 곧바로 야습으로 고지를 내주게 된 국군은 이후에도 육탄전을 반복하며 여섯차례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혈전끝에 고지를 사수하며 전투에서 승리하게 된다. 북한군 1,102명이 사살되고 250명의 포로가 잡혔지만 아군도 692명 전사, 437명 실종의 큰 피해를 입었다.
♤ 단장의 능선전투(1951. 9. 13.~10. 13.)
피의능선 전투에 승리한 미2사단은 다음 공격목표인 양구 북방 수입면 문등리의 994, 931, 851고지로 이루어진 능선을 공격하였다. 처음에는 미2사단의 정면 공격으로 시작되었지만 박훈 6사단의 강력한 저항에 막혀 많은 사상자를 내고 후퇴하였다. 그러나 이후 공격 루트를 바꾸고 기갑전력의 30만발에 달하는 포격지원과 항공지원을 바탕으로 반격하여 1개월간의 사투 끝에 931고지를 점령하며 전투를 끝내게 된다. 이 전투를 보도한 종군기자가 부상병이 "심장이 끊어지는것 같다"라고 한 말을 인용하며 Heart Break Ridgeline이라는호칭을 붙였다. 이 전투로 미군, 프랑스군, 네덜란드군의 UN군은 3,700명에 이르는 사상자를 냈고 북한군은 25,000명에 달하는 피해를 보았다. 후일 23연대 휘하로 참여했던 프랑스대대의 대원이 자신의 유골을 전우가 죽은 단장의 능선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기었고 2007년 육군은 유언대로 장례식을 치르도록 하였다.
♤ 백석산 전투(1951. 9. 24.~10. 1.)
현 평화의댐 동쪽 산악지대인 백석산 일대를 수복하고자 단장의 능선, 가칠봉 일대의 전투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이후 어은산에 대한 공략을 목적으로 전개되었다. 최초 국군 7사단이 32사단을 상대로 작전을 전개하여 1,142(백석산)고지를 탈환하였지만 곧 반격을 받게되어 4일만에 다시 후퇴하였고 8사단이 뒤를 이어 공격을 개시하여 2일만에 고지를 탈환하게 된다. 전투 결과 아군은 전사 244명, 실종 14명을 포함 1,423명의 피해를 입었고, 북한군 1,561명 사살, 포로 획득의 피해를 입혔다. 이후 중공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전지 강화에 힘을 썼지만 곧 휴전회담이 진척을 보이며 전선은 안정화 되면서 양구 일대의 주요 고지전은 이 전투를 마지막으로 끝나게 되었다.
♤ 크리스마스 고지전투(1951. 12. 25.~28.)
195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방심하던 때를 틈타 중공군 204사단이 1,090고지에 주둔중이던 국군 제7사단에 포격을 가하며 전투가 시작되었다. 휴전을 틈탄 휴전 회담 중 군사분계선 잠정 합의를 무시한 중공군의 공격이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지만 7사단은 효과적으로 고지를 방어하며 1951년 양구의 마지막 고지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다. 이 전투로 중공군 172명을 사살하고 5명을 포로로 잡았고 국군은 22명 전사 21명 실종의 피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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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춘천에서 막차로 양구에 도착해 모텔에서 유하고, 아침일찍 택시를 이용 돌산령에 도착했습니다. 바람이 장난아니게 춥습니다. 금새 덜덜 떨리네요. 서둘러 출발하여 해병대도솔산전적비 윤형철조망을 통과하다 엄지손을 뜨끔 한방 쏘였네요. 피가 제법 나던데 파상풍이 염려되는 순간이었습니다. ㅋ
♤ 돌산령(1,050m, 돌산-嶺)
양구 동면 팔랑리와 민통선 북방인 해안면 만대리를 잇는 험준한 고개이다. 453번 도로를 따라 한참을 올라선다. 2009년 돌산령터널이 뚫렸다. 돌산령 주변은 최전방 군사시설보호구역이다. 한문으로 표기된 돌산령을 찾질 못했다. 아마도 펀치볼 경계를 이루는 돌산령 좌우편, 전쟁을 치르느라 포화에 엄청 두드려 맞았을 도솔산, 대암산, 대우산, 가칠봉의 바위 때문에 돌산령이 되지 않았을까 짐작될 뿐이다.
도솔산전투위령비에서 철문 옆으로 올라서면 성골지맥 마루금을 먼저 만나고 5분 정도 오르면 도솔산입니다. 우로 양구군 동면과 대우산 가칠봉의 도솔지맥 라인 그리고 좌측으로 해안면 펀치볼이 보이고 그 뒤쪽으로 향로봉으로 향하는 백두대간이 조망됩니다.
♤ 도솔산(兜率山, 1,147.9m)
도솔산 정상 부근은 암릉구간이다. 좌측 스테인레스 안전가드 쪽으로 내려서서 가야할 1,304m봉 군부대 통신탑을 보면서 암릉구간을 이어간다. 조망처가 나오며 가지 못하는 이북의 도솔지맥 능선을 살펴볼 기회를 가질수 있다. 대우산, 가칠봉, 을지전망대... 어은지맥, 옥발지맥....
♤ 성골지맥(城谷枝脈)이란?
성골지맥은 도솔지맥 도솔산(1,148m)에서 북서쪽으로 분기하여 수입천(水入川)과 양구 서천의 경계를 이루며 비둑고개. 두밀령(788.3m), 항령, UN봉(756.5m), 성골령. 오미령. 성주봉(626.1m)을 지나 북한강(파로호)과 서천의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0.5km되는 산줄기로, 최전방 군부대 근처라서 일부 구간은 때로는 제약을 받을 수도 있다. 지맥 이름이 산이름이 아니고 고개 이름에서 따온 점이 좀 색다르다.
- 돌산령으로 오르는길 정상 2.7km 지점, 도솔산에서 내려와 도로에서 성골지맥 연결지점인 철문에 군부대에서 철조망으로 막아놓았다. 민간인출입통제구역으로 철문 넘어 들어가면 군형법으로 고발당해 벌금 단단히 내야 한다. 고로 앞으론 성골지맥을 군부대인 비둑고개를 우회하여 두밀리, 월운리, 도고터널 쯤에서 시작해야 할것 같다.
♤ 성골지맥 개념도
♤ 양구군 동면 팔랑리(八郞里)
팔랑리라는 마을 이름에는 팔랑(八郞) 즉 여덟 팔(八)과 사내 랑(郞)의 유래에 얽힌 묘한 설화 한편이 전해내려 오고 있다. 조선조 중엽 무렵, 함경도에 살던 유명한 도사(都事) 이학장(李學長)이라는 분이 산 좋고, 물 맑고, 인심 좋은 신천지를 찾아서 남으로 남으로 팔랑팔랑 내려오고 있었다. 그렇게 남으로 정처없이 내려오다 문득 수려한 풍광이 눈에 들어와 발길을 머물게 하니 그곳이 바로 도솔산 남쪽 기슭에 있는 지금의 팔랑리라는 마을이었다. 이학장이 이곳에서 며칠을 묵다보니 경치도 좋고 산세가 수려하므로 이만하면 이 한몸 의탁해도 좋겠다는 생각에 아예 괴나리봇짐을 풀고 머물기로 작정했다. 화전을 일구어 농사를 지으며 그렇게 몇년을 유유자적 홀로 살아가는 이학장을 보고 딱하게 여긴 이웃사람들은 혼기가 찬 마을처녀 하나를 중매하며 장가들기를 권하는 것이었다. 이학장이 넌즈시 넘겨다 보니 처녀는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도 후덕하게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는 그 처녀에게 마음이 끌려 서둘러 혼사날짜를 잡았다. 이윽고 장가가는 첫날밤이 되었다. 신방에 든 이학장은 아리따운 신부의 손을 덥썩 잡더니 매우 조급한듯 가슴으로 보듬어 당기며 서둘러 촛불을 끄는 것이었다. 신부의 저고리를 벗긴 후 떨리는 가슴을 누르며 응큼하게 신부의 젖가슴을 더듬던 이학장은 자기도 모르게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연히 두 개여야 할 젖가슴이 한쪽에 두 개씩 모두 네개나 있는게 아닌가. 이학장은 너무나 괴이쩍고 기가 막힌 일이라 이 일을 도데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렇지만 새색시의 마음씨가 워낙 곱고 착한지라 행여라도 마음 상할까 두려워 모르는 체 눈 딱 감고 백년해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지 얼마 되지않아 아내는 드디어 임신을 했다. 이학장은 태어날 자식을 생각하면 너무나 즐거워 끼니를 넘겨도 배고픈 줄을 모르고 힘든 농사일을 억척같이 해 냈다. 출산 일이 점점 가까이 되자 아내의 배는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엄청나게 불러오는 것이었다. 아직 경험이 없던 이학장은 임산부의 배는 응당 그러려니 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아내의 해산일이 됐다. 출산준비로 정신없이 돌아다니던 이학장은 문득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기쁜 마음에 살며시 방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그는 다시 한번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내 곁에 누워있는 아이는 모두 넷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전부 아들로만 네 쌍둥이가 한꺼번에 태어난 것이었다. 당시로선 대단히 쇼킹한 사건이었다. 온 동리의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네 쌍둥이는 아무 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물론 열심히 노력한 보람으로 재산도 점점 불어났다. 그리고 몇 년 뒤 아내는 또 한번 임신을 했다. 그는 삼신할미께 "이번에는 귀여운 딸을 점지해 주십시오" 하고 열심히 빌었다. 그러나 그의 바람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을 뿐만아니라 이번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네 아들 쌍둥이가 태어난 것이었다. 이학장은 그제서야 무릎을 치며 아내의 젖가슴이 둘이 아니고 넷씩이나 되는 연유를 깨달았다. 그리고 이것이 모두 하늘의 뜻이라는 것도 잘 알 수 있었다. 이학장과 부인은 여덟 아들을 모두 정성껏 키웠으며, 여덟 아들들은 하나 같이 영특하고 훤칠하게 잘 자라났다. 세월이 흘러 훗날 이들은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낭관<郞官: 조선조 때 육조의 5~6품인 정랑(正郞), 좌랑(佐郞) 자리에 있던 사람을 이르는 말> 벼슬을 지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이 마을을 가리켜 8명의 아들이 태어나 모두 낭관 벼슬을 하였다 하여 여덟 팔(八)자와 사내 랑(郞)자를 써서 팔랑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ASF울타리를 열고 내려가 군위병소에 자진 신고를 합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겁니까? 등등 여러가지를 물어보네요. 전라도 말로 알아서 갈랑께 싸게싸게 보내드라고~ 일케 싸가지 없이 얘기하면 안됩니다. 최대한 굽신굽신 굽신모드로... 다시 내려가라는 지시?에 아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하고는 코너를 돌어서자 말자 잽싸게 지맥으로 올라쳤습니다.
♤ 대암산 통신중계탑봉(1,304m)/ 삼면봉(양구군 동면, 해안면 → 인제군 서화면)/ 도솔지맥 최고봉
도솔지맥 전구간중 최고봉이지만 군통신부대가 자리하고 있다. 통신탑 끝에서 우틀해 나가면 바로 앞에 위병소가 있다. 지맥마루금은 직진이지만 이후로 더이상 능선길을 따르지 못하고 군부대 지시대로 초소앞 군작전포장임도로 내려가야 한다. 눈치껏 도로를 약 5분 정도 따르다 임도가 우측으로 휘어지는 지점에서 좌측 능선길에 올라 다시 지맥에 접속하여 희미한 등로를 따른다. 직진하여 임도로 내려서서 용늪가는 임도를 따르면 편안하고 우틀해 원지맥길을 고수한다면 여름에는 잡목으로 진행이 힘들다. 멀리 가야할 대암산이 바라보인다.
♤ 대암산통제소/ 삼면 경계면(양구군 동면, 인제군 서화면 → 북면)
용늪은 300m이고 대암산까지는 왕복 3km이다. 도솔지맥에서 벗어나 있는 대암산, 그리고 람사르슾지인 용늪은 가야할 길이 바쁘다보니 몇 년전 산악회를 따라 다녀온 것으로 갈음하기로 한다.
- 통제소 문을 좌측 철망으로 통과하여 광치령까지 이어지는 양회임도를 따라 10분 정도 진행하면 전망데크가 나옵니다. 통제구간을 벗어난 지점이다.
♤ 용늪
대암산은 식물 생태학적인 면에서 특이한 경관을 이루고 있다. 산정 부근에 큰 용늪과 작은 용늪이라 불리는 고층습원이 있는데, 1997년 7월 국내 최초로 람사르협약(Ramsar Convention)에 따른 람사르 보호습지구역으로 지정되었다.(우리나라에서 두번째 등록된 곳이 우포늪이다.) 이는 고산의 한랭한 기후와 보수력이 큰 지질적·지형적 조건 때문에 물이끼류가 주로 번식하여서 형성된 것이다. 습원의 크기는 동서 약 150m, 남북 약 100m 내외이며, 서북에서 동남 방향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1966년 DMZ 학술조사단에 의해 용담·칼잎용담·끈끈이주걱·통발 등 163종의 식물과 참밀드리메뚜기·애소금쟁이 등의 희귀곤충이 서식하고 있어, 인근의 대우산(大愚山)과 함께 천연기념물 제246호 대암산. 대우산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특히 대암산의 용늪은 1997년 7월 28일 국내 처음으로 람사르협약 적용지역으로 지정되었다. 람사르협약(Ramsar Convention)은 세계적으로 중요한 습지를 보호하기 위하여 1971년 채택된 습지보전 국제협약을 일컬으며, 여기에 국내 최초로 등재되었다(cf 우포늪은 국내 2번째로 지정.) 이후 1989년 정밀 조사된 바에 따르면 용늪의 식물종 수는 191종에 이른다.
대암산까지 거리가 편도 1.5km 입니다. 시간관계상 몇해 전 산악회에서 다녀온 것으로 갈음합니다.
♤ 대암산(擡巖山, 1,304m)
대암산은 강원도 양구군 동면, 해안면, 국토정중앙면과 인제군 인제읍, 서화면, 북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경상남도 양산의 신불산, 취서산과 천성산의 고층습원과 함께 고층습원(高層濕原)으로 잘 알려진 명산으로, 토심이 두꺼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유독 산정상부에 거대한 암릉(巖稜)과 암괴(巖塊)가 솟아 있다. 대암산의 동남쪽으로 미시령·한계령 능선 등 외설악 준령이, 동북으로는 도솔산·가칠봉이, 서쪽엔 사명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6·25 때의 격전지로 유명한 이 산은 펀치볼이라 불리는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산 가운데 하나이다. 1759년(영조 35)에 쓰여진 『기묘장적(己卯帳籍)』에 대암산(擡巖山)이라는 기록이 있다. 과거에는 일반인들의 출입이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생태식물원을 연계한 등산로 3곳이 개설됐다. 생태식물원을 들머리로 산을 오르다 보면 수령이 100∼200년쯤 된 소나무와 갈참나무·박달나무 등이 즐비하다. 정상에 서면 설악산에서 금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때문에 대암산을 찾으면 마루금의 빼어난 조망과 고층습원인 ‘용늪’의 신비함에 두 번 넋을 잃게 된다. 협곡이나 기암괴석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등 산세가 비교적 단조롭긴 하지만 ‘대암’이란 이름처럼 땅속에 묻힌 암반이 거대한 산을 이뤄 장엄한 풍모를 갖췄다. 이곳은 등산로 외에는 지뢰밭. ‘미확인 지뢰’라는 경고문구가 여기저기다. 정상에 도착하면 그동안의 미끄러운 흙길과는 달리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큰 바위 몇 개가 켜켜이 쌓여있는 모습. 미끄럽고, 바람이 강해 위험하니 주의해야 한다. 대암산 생태 탐방로는 훼손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를 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며 운이 좋으면 사향노루와 산양을 만날 수도 있다.
♤ 1,218m봉/ 삼면봉(양구군 동면, 인제군 북면 → 인제읍)
통제소 문을 통과하여 만나는 데크전망대에서 3분정도 진행하면 도로가 좌측으로 꺽이는 지점에서 우측으로 올라붙는다. 임도를 따르다 잠깐 올라섰다가 다시 양회임도로 내려서는데 대암산통제소에서 맥길을 따라 올라서는 방법도 있다.
♤ 삼면경계면(1,103m, 인제군 인제읍, 양구군 동면 → 양구군 국토정중앙면)/ 폐헬기장
임도에서 다시 119구조안내판 제6지점에서 산길로 올라서며 폐헬기장에서 마루금은 좌틀하여 1,140m봉으로 가야하지만 우측 양구군 동면과 국토정중앙면 경계에 있는 솔봉을 다녀온다. 편도 약 350m 거리이다.
♤ 양구군(楊口郡) 국토정중앙면/ 남면(南面)
양구군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소재지는 용하리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동면의 청동·용하·야촌·적동과 춘천군 북산외면의 수산리 일부를 병합하였다. 1973년상수내리와 하수내리를 인제군에 이속시키고, 인제군 국토정중앙면 두무리를 편입하였다. 2019년까지 양구군 남면이었으나 한반도의 지리상 정중앙에 위치하여 2021년 1월 명칭이 '국토정중앙면'으로 개칭되었다. 북동쪽 인제읍과의 경계에 광치령(廣峙嶺), 동쪽에 개골령, 남부에 봉화산이 솟아 있다. 면의 서부를 남류하는 서천이 서쪽의 양구읍으로 흐르고 있다. 이 하천 연안의 야촌리·용하리·황강리·송우리 및 창리 일대에 비교적 넓은 충적평야가, 봉화산 북쪽의 심포리·구암리·도촌리 일대와 적리·야촌리·용하리 일대에는 대규모의 산록완사면이 발달하였다. 곡저평야와 산록완사면에는 농경지와 취락이 분포해 주민의 생활무대로 이용되고 있다. 특산물로는 더덕·도라지·고비·고사리·싸리버섯·느타리버섯·송이버섯 등이 광치령·가리봉·봉화산 일대에서 많이 채취된다. 교통은 국도 31번과 46번이 용하리에서 갈라져서 인제읍과 인제군 신남에서 44번 국도와 연결되고, 시·군도 2·3·4번이 사방으로 이어져서 편리하다. 원리와 청리를 연결하는 양구터널이 있다. 문화유적은 봉화산 정상에 봉수대, 송우리와 죽리에 지석묘, 가오작리에 비봉산성지, 심포리에 필리핀군의 6·25참전전적비, 적리에 전기필(全箕弼)불망비, 안동권씨효열비, 용하리에 초대 양구군수 백기수(白冀洙)불망비, 옥천전씨열부비각, 용하리선돌, 구암리에 김익하(金翼河)선덕비 등이 있다. 청리에는 파평윤씨와 문화류씨, 구암리에는 용인이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용하(龍下)·적(笛)·가오작(佳伍作)·야촌(野村)·청(晴)·송우(松隅)·황강(黃崗)·창(蒼)·도촌(桃村)·구암(九巖)·죽(竹)·심포(深浦)·원(院)·두무(斗武), 주민미거주지역인 명곶(明串) 등 15개 리가 있다.
♤ 대암산 솔봉(1,129m)/ 면계(양구군 동면-국토정중앙면)/ 2층 정자
대암산 솔봉은 산불예방 기간이 아니면 언제나 오를 수 있는 대암산 서남쪽의 산이다. 솔봉은 양구군 동면 원당리와 국토정중앙면 적리의 경계에 위치한 봉우리로, 아름드리 소나무와 참나무가 많고 봉우리의 모양이 솔방울처럼 생겨 솔봉이라 불리어지고 있고, 수려한 경관으로 양구군에서 60여 년만에 솔봉을 경유하는 인근의 대암산 생태탐방로 코스가 2009년 개설되어 찾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광치자연휴양림을 기점으로 할 경우 광치계곡으로 솔봉을 오르게 되고 하산은 후곡약수로 잡곤한다. 전체적인 산세는 능선이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있으며, 북동쪽으로 대암산과 이어져 있다. 조망은 무척 우수하여 북동쪽으로 대암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남동쪽으로 설악산이 웅장하게 다가오며, 서쪽으로 양구군 동면이 평화롭게 내려다보이는 등 사방으로 막힘이 없다. 남서쪽 기슭으로 철분과 불소, 탄산가스가 풍부한 후곡약수가 있으며, 남쪽 기슭 광치계곡에는 약 4~5m높이의 옹녀폭포와 강쇠바위 등 다양한 바위와 암반이 있으며, 그 하류에는 휴양림이 조성되어 있는 심산유곡이다.
- 가지 못하는 대암산을 바라보았던 솔봉을 대암산이라고 불렀던 적이 있다.
삼면봉인 폐헬기장에서 솔봉을 다녀와 마루금을 따른다. 임도에 내려 잠깐 커브를 돌아 진행하면 우측에 삼각표시 헬기장에서 우측 산으로 올라선다.
♤ 광치산(廣峙山, 1,058.1m)
광치산은 강원도 양구군 국토정중앙면 적리에 소재한 산으로 솔봉처럼 국립지리원발행 지도상 모두 무명봉이다. 대암산 출입이 통제되던 때 대암산을 대신해 안내산악회들이 산이름을 붙여 상품으로 내놓으면서 알려진 도솔지맥상의 산이다. 임도삼거리에서 900m, 폐헬기장에서 600m정도 진행한다. 잡목으로 조망은 없다.
♤ 956.1m(작은 광치산)봉
광치산에서 1.1km 거리이다. 벙커 시멘트 굴뚝이 있는 904m봉을 지난다.
- 등로 우측으로 인제읍 가아리 용수골의 모습이 내려다보인다.
♤ 799.6m봉
작은 광치산에서 약 1.5km 지점으로 광치령으로 내려서는 마지막 봉우리이다.
31번 도로가 지나는 휴게소까지는 약 1km 거리로 20분 정도 소요되네요. 군용 다찌차(5/4t)가 한대 서있는데 미군 험비차량과 외관이 비슷하네요. 운전병이 혼자 앉아있는데 말을 붙여도 문을 열지 않습니다. 교육이 잘 되어 있더군요.^^ 헬기장 쪽으로 조금 진행하자 장교 3명과 부사관 한명이 저 아래 보이는 광치령휴게소에서 직접 올라오는 훈련코스를 살펴보고 있더군요. 저는 아는 만큼만 대답했습니다. 우리 산꾼들은 임도를 따라가다가 300m 내려 광치령휴게소로 간다고요.
♤ 광치령(廣峙嶺, 800m)/ 통신탑
강원도 양구군 국토정중앙면 가오작리에서 인제군 인제읍 원통리로 넘어가는 가아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고개마루가 크고 작은 능선으로 사면이 둘러싸여 첩첩산중을 이루고 있는데 평탄하고 광활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양구군과 인제군을 가르는 분수령으로 예전에는 험한 고갯길이었으나 6.25 직전 북한군의 남침 전략에 따른 김일성의 지시로 길이 넓혀졌고, 지금은 고개 아래에 인제와 원통으로 이어지는 31번 국도가 지나가는 터널이 개통되어 교통이 편리하다.
- 광치령삼거리에서 통신시설을 우측에 두고 좌측 임도 차단기쪽 임도를 따르면 대형 군용헬기장이 나오고 좌측에 산불감시초소도 지난다. 우측 임도는 31번 국도 청정양구농특산물휴게소방향으로 탈출하는 진출입 방향으로 임도를 약 750m 따르다 300m 내려서면 휴게소가 나온다.
♤ 광치령부근 전투(1951. 4. 22.~27)
광치령 부근 전투는 적 12사단과 국군 5사단이 치열한 공방전을 실시하여 아군이 승리함으로써 전술적 요충지인 인제(원봉)을 피탈 및 재탈환하는데 결정적 여건을 조성한 전투현장이다. 당시 적 12사단이 양구~원통선에서 선제공격을 개시하였지만, 국군 5사단이 이를 광치령 부근에서 효과적으로 방어하여 부대를 재편성 후 공격함으로써 인제를 탈환하였으며 이후 전과를 확대하여 51년 6월에는 명당산과 신캔자스선인 펀치볼 남단~향로봉을 연결하는 선을 확보하였다.
♤ 902.4m봉
광치령에서 군작전도로인 임도를 따라 약 2.7km 진행하였고 임도를 따라 고도를 높이다 임도에서 우측으로 올라서서 군용벙커 세개를 지나 오르면 넓은 정상이다. 헬기장을 지나 다시 임도에 내려선다. 이후 군부대 울타리를 만날 때까지 임도변 좌우의 봉우리를 다녀오기도 하고 임도를 따라 진행한다.
807.5m봉에서 4분 정도 내려서면 유해발굴작업이 이뤄지는 개골령으로 남향하던 도솔지맥이 서남향으로 방향을 바꾸는 곳입니다.
♤ 개골령(806m)
인제군 인제읍 남북리 갯골에서 양구군 국토정중앙면 야촌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예전에 민초들이 걸었던 길인데 지맥의 좌측은 희미하고 우측은 최근 유해발굴 작업 이동로로 쓰였는지 길이 뚜렸하다. 양구 개골령 일대는 1951년 중공군 4월 공세 당시 국군 5사단이 북한군과 중공군에 맞서 치열한 고지전을 벌인 곳으로 개골령 일대 무명 909고지와 904고지 등은 전투 중 양측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던 장소이다. 전사 기록을 보았을 때 이곳 개골령에는 아직도 미수습된 유해와 유품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예측된다니 여전히 마음 한편이 무겁고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이곳에서 격전을 펼쳤을 국군을 생각하면 마음이 뭉클해진다.
- 여영님 산패가 개골령임을 알려주고 희미하게 옛고개 흔적만 남아있다.
유해발굴지역과 암릉지대를 지나 정상에 올라섭니다.
♤ 909.2m봉/ 삼면봉(양구군 국토정중앙면, 인제군 인제읍 → 인제군 남면)/ 헬기장
지맥의 좌측이 인제읍에서 남면으로 바뀌는 삼면봉이다. 좌측은 인제읍 소양강변 아미산으로 진행하는 도솔아미단맥의 작은 산줄기이다. 도솔지맥마루금은 직우틀하여 진행한다. 진행방향 앞쪽으로 조망이 탁 트이고 소양강 너머 좌측 홍천방향으로 백암산-쇠뿔산에서 우측 뾰쪽한 가리산의 춘천지맥 줄기가 일자로 펼쳐져 보인다. 가야할 전면으로는 통신부대 안테나와 봉화산, 사명산 그 가운데 죽엽산까지 멀리 조망된다.
- 정상은 넓은 헬기장이다. 신선님 산패가 있다.
♤ 도솔아미단맥이란
도솔지맥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면서 31번국도 광치령에서 양구군 4번군도 두무동고개로 가면서 두무동고개 약4.5km 전방 909.2m봉에서 인제읍과 남면의 경계를 따라 등고선상 770m분지-아미산(725.2m)-606.6m봉-인제터널 44,46번 구국도-군축령(가넷고개, 310m)-493.2m봉을 지나 인제읍 남북리 소양강변(170m)에서 끝이 나는 약 12.1km의 산줄기를 말한다.
해가 저물어 서둘러서 그런지 선답자 띠지를 확인하며 부대 울타리를 돌아나오는데 20분이 걸렸습니다.
♤ 915.2m봉/ 군부대철책
915.2m봉에는 군부대가 자리잡고 있어 철책을 따라 좌측편 계곡으로 힘들게 내려서서 300m도 안되는 거리를 부대 철책을 따라 약 30분에 걸쳐 정문으로 우회하여야 한다. 우측으로 울타리를 잡고 우회하는게 더 힘들다.
- 군부대 안에 삼각점이 있다. 삼면봉(909.2m)에서 1km정도 거리이다.
군부대 정문에서 군용작전도로인 임도를 따라 추모비까지 50분 정도 걸어 내려갑니다. 눈누난나~
♤ 인제군-양구군경계면/ 군계
군부대 정문에서 임도를 따라 나오다 821m봉을 지나 반사경이 설치된 우측으로 커브도는 지점에서 인제군 남면과의 경계는 임도 좌측의 능선으로 내려보내고 지맥은 온전하게 양구군 국토정중앙면으로 들어선다.
해는 넘어간 상태이고 택시는 두무치에 기다리고 있다고 투덜대고, 허겁지겁 서둘르다 675m봉에는 오르지 못했습니다.
♤ 675.1m봉 / 준.희님푯말, 군삼각점
임도 우측 야트막한 봉우리이고 판독이 불가한 軍삼각점과 준희선생님 산패가 있다.
♤ 김대훈중사 추모비
육군 백두산부대 정보통신대대 다중무선 전송조장으로 2008년 5월 23일 사단에서 실시한 통신망 구성 훈련간 원활한 무선통신 임무를 위해 3개소를 이동하며 통신이 양호한 지점을 찾으려 했으나 산악이 발달하고 골짜기가 많은 지형의 특성상 무선통신이 잘 잡히지 않자 위험을 무릅쓰고 해발 900m가 넘는 고지로 올라가 임무를 완수하였다. 복귀하는 과정에서 급경사에서 차량 제동장치의 이상을 인지하고 3차례에 걸쳐 벽면 충돌로 속도를 줄이려고 하였으나, 여의치 않자 동승한 4명의 병사들의 안전과 대형사고의 방지를 위해 자신의 방향으로 핸들을 돌려 본인은 순직하고 4명의 전우를 구하게 되었다.
- 임도를 따라 걷다가 임도가 우측으로 돌아가는 지점이다. 지맥길은 이곳에서 임도를 버리고 김대훈중사 추모비 좌측 뒤쪽 산길로 약 300m(약 10분) 진행하여 두무동으로 내려선다. 반사경으로 진입하면 띠지가 보인다.
96년 강릉 안인진리 잠수함 침투사건 당시 소양강을 헤엄쳐 도주하던 무장간첩이 싸리작업 하던 2사단 표일병을 해친 곳이 바로 이곳 두무치고개 인근 군부대라고 합니다.
♤ 두무리(斗武里)고개/ 두무동고개
좌측은 양구군 국토정중앙면 두무리에서 우측은 양구군 국토정중앙면 창리와 관대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본래 인제군 남면에 속해 있었으나 1973년 7. 1.일부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양구군 국토정중앙면으로 편입된 지역으로서 두무동이라고도 부르며 46번 국도가 지나갔었으나 광치령 도로이설로 지방도로 변경된 지역이다.
- 내려서는 쪽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걸려있고 도로 건너편에 두무리 표지석이 있다. 두무리표지석 좌측 임도 입구로 들어서면 임도차단기가 있고 차단기 직전 좌측 산길로 오른다. 임도는 양구터널 위 도라지고개까지 이어진다.
양구 택시기사에게 아침에 맡겨둔 짐보따리를 두무치고개로 배달시켰습니다. 물론 그 중에 팩소주 하나 클라우드 대짜 하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안주를 깜박해 양갱으로 먹었네요. 농막컨테이너옆 바리케이드 앞에 텐트를 틀었는데 가로등이 조명을 밝게 비추고, ASF울타리가 든든했습니다. 다시 두무치고개에 올라 도로 좌측 ASF철조망 울타리를 열고 들어가면 좌측으로 통나무계단 들머리가 보이고 그닥 힘들지 않는 꾸준한 오름길이 시작됩니다.
♤ 580.1m봉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있는 578.2m봉에서 직좌틀로 내려서고, 580.1m봉에서 우틀하여 편안한 안부 능선을 걷는다.
- 여영님 산패가 있다.
출입문이 없는 산불감시초소 안에 들어가 잠시 쉬고자 창문을 닫고 앉았는데 출입문쪽 창문에 매달린 벌집을 보고 그만 기겁을 하고 (빛의 속도로) 뛰쳐나왔습니다. 한밤중이라 여기에서 전망은 놓쳤지만 그 덕분에 벌에 쏘이지 않았는지도 모르겠군요. 물론 후답자를 위해 막대기로 털어내고 줄행랑을 놓았지요. 지맥은 헬기장에서 우측 허름한 산불감시초소 앞으로 진행하며, 잠시 뒤 또 우틀로 내려서야 합니다.
♤ 602m봉/ 헬기장/ 산불감시초소
낡은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조망이 넓게 트이는 넓은 헬기장이다. 사명산 우측으로 양구군 국토정중앙면도 보이고 지나온 도솔지맥이 한눈에 가늠된다. 대암산과 그 옆 설악산까지 빙둘러 조망을 감상한다. 여기서 보는 소양강 건너편은 양구대교로 연결된 인제군 남면(상수내리, 하수내리, 부평리, 신남리, 어론리...)으로 거니고개를 통해 홍천으로 넘나드는 지역이다.
- 지맥은 산불감시초소 앞으로 정면을 지나 약간 우측으로 이어진다. 감시초소 출입문이 떨어져 없다.
대형군헬기장 이르기 10초 전에 벙커가 있습니다. 벙커 위는 잡목이라 직진이 곤란하고 직전에 좌측으로 내려서야 합니다. 판자촌 문이지만 문도 달려있고, 내부를 살펴보니 35명 정도(소대 규모?)는 수용 가능한 넓직한 공간입니다. 기억해 두면 한겨울에는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요긴한 장소가 되겠더군요.
♤ 대형 군헬기장
양구 터널을 360여m 남겨둔 565m봉에서 거의 다 내려선 지점이다. 헬기장 아래에 양구터널 위를 지나는 임도가 내려다 보이고 좌,우측에 46번 국도가 보이는 곳에 대형 군헬기장이 있다. 좌측 인제에서 양구터널로 오르는 46번국도와 멀리 소양호가 보이고, 우측으로 46번 도로가 지나가는 양구읍내와 화천방향으로 파로호가 살짝 보인다.
♤ 양구터널위 임도/ 작은도라지고개
양구군 국토정중앙면 도촌리 되레지고개 아래에 있는 작은 고개이다. 이곳부터 봉화산 일반등산로가 시작되며 봉화산 생태 등산로 안내도 뒤쪽이 봉화산 들머리 입구이다. 봉화산 정상까지 오름길 위주로 대여섯 번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힘들게 이어진다.
- 이곳 아래로 양구터널이 지나고 주차장이 있으며 탱크 방호벽도 보인다. 좌측 임도로 양구군 국토정중앙면 원리 양구터널이 보이는 46번 국도변으로 내려선다.(10분 소요)
♤ 양구터널/ 국토정중앙면 원리
춘천에서 내평을 거쳐 양구로 가는 46번 도로는 1973년 소양댐이 완공되면서 부터 소양호에 서서히 잠겨 버리고 말았다. 그 대항마로 건설된 46번 도로는 배후령 오름 길과 소양호숫가를 따라 열두 구비를 돌고도는 비포장 길에 완전 협곡이라 목숨 내놓고 위험천만한 곡예운전을 해야 했다. 배후령 넘는 길에서의 교통사고는 연중 내내 끊이질 않았고, 그에 따라 양구-신남-홍천-춘천 길이 개설되었는데 그때 양구터널과 양구대교가 1974년에 건설되었다. 홍천을 경유하여 춘천으로 오게 되어 한참을 돌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음리길을 피한 이유는 다시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될 것이다. 지금이야 경춘고속도로가 생기고 춘천-양구간 터널 직선화공사가 진행되어 서울↔양구가 1시간 30분 정도 걸리지만, 그땐 6~7시간이 소요되었으니 어느 누가 양구를 고립의 도시라고 하지 않았겠는가? 양구터널! 비록 좁고, 어둡고 볼품 없지만 그 시절 양구로 면회를 오거나 휴가를 떠나던 외지 먼 곳 사는 이들에겐 아주 고마운 존재였다.
도라지고개 직전 시멘트 말뚝이 박혀있는 518m봉에서 도라지 고개를 전후하여 지맥의 우측이 국토정중앙면 청리에서 창리로 다시 도촌리로 바뀌게 됩니다.
♤ 도라지고개(桃村峴)/ 되레지고개
원래는 되레지고개라 불리었는데 도라지고개로 변하였다. 도라지 고개에는 좌우로 희미한 하산길인 옛고개 흔적이 있다. 되레지 고개는 되레지(도라지 고개) 또는 도리곶(桃里串)이라 하였는데 옛날에 이곳에 복숭아가 많이 생산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 준.희선생님 산패가 있다.
♤ 국토정중앙봉(606.5m)/ 정상석/ 전망데크
한반도의 정중앙(한반도의 광화문을 중심으로 북으로는 중강진,동으로는 정동진,남으로는 정남진=전남 장흥군 관산읍 신동리,정중앙은 양구군 남면 도촌리), 현 위치에서 400m 아래인 양구군 국토정중앙면 도촌리 산48번지가 우리나라 한반도의 4극점을 기준으로 중앙경선과 중앙위선의 교차점의 좌표라는 국토정중앙점 안내판이 서있고 국토지리정보원지도에는 606.5m봉으로 표시된 봉우리인데 새로 만들어 설치해 놓은 정상 표지석에는 높이가 590m로 표시가 되어 있다. 전망데크가 있으나 잡목으로 조망은 좋지 못하다. 나무 사이로 사명산과 봉화산이 조망된다. 봉화산 정상까지 계속해서 오르락내리락 빨래판 능선이 이어진다.
- 정상석과 삼각점 2개, 준.희선생님 산패가 있다. 도라지고개에서 20여분 힘겹게 올라선다.
♤ 구암리 갈림길 삼거리
강원도 양구군 국토정중앙면 구암리 2사단 32연대 주둔지가 잠시 폐업 상태를 이루다가 다시 재입주하게 되었다. 32연대와 함께 나머지 다른 연대들도 인근 사단으로 편입돼 해체되면서 그 여파가 이곳에서 8km쯤 떨어진 양구읍까지 미치기도 하였으나 다른 훈련장을 물색하지 못하고 다시 군부대가 주둔한 상태이다. 양구군이 쇠락의 길로 들어선 것은 국방부가 ‘국방개혁 2.0’의 일환으로 ‘2사단 해체’를 발표하면서 부터다. 중동부 전선에 있는 양구는 2사단과 21사단의 주둔지로, ‘민관군’의 상생으로 지역경제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갑작스럽고 보완책 없는 2사단 해체로 양구군 지역경제와 주민들의 생업은 직격탄을 맞게 됐다. 2사단 예하 3개 보병연대는 해체되고 일부는 인근 21사단과 12사단으로 통합됐다.
- 양구10년장생길안내판과 정상 0.66km, 구암리 1.88km 이정표, 군경고판이 있다. 정상까지 급경사가 이어지며 로프구간을 3단에 걸쳐 올라서며 암봉이 있는 정상부위에 올라서면 시야가 트인다.
♤ 850m봉/ 암봉
봉화산의 전위봉으로 지맥의 좌측은 원리에서 명곶리로 바뀌고, 우측은 구암리에서 죽리로 바뀌는 지점이다.
- 전망이 좋다.
봉화산이 가까워 오자 우측 아래에서 사이렌소리가 들리더니(동네 이장이 방송하는지 알았음) 경고방송이 나옵니다. 잠시 후에 펑~ 펑! 아고 깜딱!! 군부대에서 포사격훈련을 하는 모양입니다.
모형봉수대가 비박터로 어떨까 하고 내부를 살펴보니 누워서 다리 펼 공간은 되는데 하늘이 뻥 뚫렸습니다. ㅋㅋ^^
♤ 봉화산(烽火山, 874.4m)/ 모형봉수대/ 안내판
봉화산은 사명산과 함께 소양호 북단을 에워싸고 있다. 지역을 좁혀 설명하면 양구읍 남쪽 국토정중앙면에 속한다. 현재의 양구팔경은 두타연, 펀치볼, 사명산, 광치계곡, 파서탕, 파로호, 후곡약수, 생태식물원으로 정해져 있지만, 6.25전쟁 전 양구를 대표하는 풍광으로는 양남팔경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봉화낙월이다. 양구에서 볼 때 서산에 지는 일몰경과 함께 양구 남쪽으로 보이는 봉화산에서 뜨고 지는 달 풍경이 한 폭 그림과 같다는 뜻이다. 봉화산이라는 이름은 이 산 정상에 조선 선조 37년(1604년)에 봉화대가 설치된 데서 유래되었다. 6.25전쟁 이후로 군부대 훈련장(공용화기 사격장)이 자리해 일반인 출입이 쉽지 않았던 이 산이 2002년 이후 양구군이 설정한 우리나라 국토 정중앙 지점이 생기면서 부분적으로 등산로가 개설되었다. 최근에는 춘천 소양댐 선착장에서 공기부양선인 쾌룡호를 타고 양구선착장에 하선하자마자 시작하는 등산로도 선보였다. 봉화산 정상 풍광이 일품이다. 정상을 중심으로 서릉으로 약 500m, 북동릉으로 약 200m 구간에는 시원한 초원이 펼쳐진다. 발 아래로 막힘없이 펼쳐지는 소양호반 조망을 즐기며 산행을 즐길 수 있다. 봉화산을 군사지역인 만큼 평일에는 사격장에서 훈련이 계속된다. 이 때문에 양구군과 관할부대에서는 평일에는 등산을 삼가고, 훈련이 없는 주말이나 공휴일에 등산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 정상에는 모형봉수대, 봉수대안내판, 조망안내판이 있다. 봉화를 지핀 봉화산답게 사방팔방으로 일망무제의 전망이 펼쳐진다. 사명산과 그 우측으로 양구읍, 지나온 도솔지맥 도솔산과 대암산이 보이고, 소양강 너머로 는 춘천지맥의 삼군봉(홍천, 인제, 춘천)과 제일 가까운 지점이다.
♤ 874.3m봉
봉화산 건너편 봉우리로 헬기장을 두개 연거푸 지난 특징없는 무명봉이며 지맥의 우측이 죽리에서 심포리로 바뀐다. 통나무계단으로 약 450m 내려서면 심포리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보인다.
전방이라 산봉우리마다 헬기장이 많기도 하네요. 자랑스러운 일은 우리 국방력이 이제 북한만 상대하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 성난 노도부대의 추억....
심포리에 노도부대 과학화훈련단(KCTC)이 있었다. 도솔지맥에 나오는 지명 심포리, 석현리, 학조리, 안대리, 월명리 등등은 양구에 주둔했던 국군 제2사단 예하부대와 관련 있는 지명이다. 2사단은 3군단 예하로 전방을 담당한 12사단과 21사단의 예비사단이었다. 지금은 해체된 춘천 102보충대에서 양구로 배치받는 병사들은 소양강선착장에서 LST라는 수송선을 타고 석현리 양구선착장에 내려 60트럭으로 사단 신교대에 배달되었다. 이후 도로망이 확대되어 홍천 신남에서 양구터널로 이동하기도 하고, 배후령터널이 뚫리고는 46번국도로 이동하기도 했다. 군부대가 있으면 훈련 소음때문에 민원을 넣고, 군부대가 해체된다니 양구 경제에 타격이 심하다고 민원을 넣고,, 하지만 군인은 국가 방위가 먼저지 지역경제가 먼저가 아니다. 덕분에 악명높은 양구는 유령도시가 되어간다는 푸념이었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개발에서 소외된 양구는 청정지역으로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양구에 주둔했던 2사단은 국방개혁 2.0에 따라 2018년 해체되어 양평 모처에서 제2작사 제7기동군단 제2신속대응사단으로 재창설되었다. 악명높은 양구에서 군생활 하신 분들에게는 도솔지맥은 남다른 추억의 길이다. 노도부대라고도 했고, 심벌은 수레바퀴 형상의 당구공 마크였다.
석현리 방향으로 더 진행하다가 임도를 따라 우틀해도 되건만 갈길이 바쁜지 대각선으로 질러가는 노선을 택하는 곳입니다. 개골령에서 줄곧 서남향하던 지맥이 방향을 V자로 꺾어올려 서북향으로 사명산을 향하는 지점입니다.
♤ 심포리갈림길 삼거리/ 성황당 안부
석현리 선착장방향(정면)으로 약 4분(200m) 직진하여 764m봉 올라서기 전 갈림길삼거리에서 직진방향 좋은 길을 버리고 직우틀하여 희미한 등로를 따라 급경사로 내려선다. 희미하고 가파른 길을 30분 정도 내려서서 잡목숲을 통과해 임도에 접속하고 우틀로 진행하면 내심포삼거리에 도착한다. 알바주의 구간...
- 이정표와 양구10년장생길안내도와 군경고판이 서있다. 나무 아래 서낭당터 돌탑 흔적도 보인다.
자동화기 사격한다고 내심포고개 삼거리에 헌병 두명이 지켜서 있습니다. 99년생이라네요. 애구 귀여버라~주머니에 사탕이라도 꺼내주고 싶더라는... 한편으론 듬직하고, 세우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A텐트를 펼치는 피끓는 청춘들인데...... 공리고개로 향하는 낮은 산줄기를 진행하는 동안 드륵 드르르륵~ 자동화기 소리가 뒤를 쫒아왔습니다.
♤ 내심포고개/ 양구군 국토정중앙면 심포리 108-2
임도로 달라붙어 우틀해 나가면 좌측 석현리로 가는 내심포리와 우측 심포리를 이어주는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갯길 삼거리이다.
- 넓은 고갯길 삼거리에 도착해 전면 우측으로 고개를 살짝 내밀면 들머리를 알리는 띠지가 잔뜩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부터 공리고개까지 야트막한 능선을 가로질르는 구간이죠. 들머리 들어서니 한입거리 똘배나무가 있네요.
♤ 377.4m봉/ 양구군 국토정중앙면 → 양구읍/ 면계
범바위(377.4m) 암봉을 우측으로 우회하여 내려서고 외딴 인가 직전에 만나는 좌곡각 임도에서 가파르게 올라선 능선부터가 양구군 국토정중앙면과 양구읍의 경계이다. 이제 지맥길은 면계를 잠깐 따르다 양구읍 공리와 석현리로 들어선다. 범바위봉을 넘어서고, 면계에 접어들어 우측의 민가 한채를 내려다보며 전면으로 가파르게 오른다. 외딴집 위 능선에서 좌측 뚜렷한 능선길이 아닌 우틀하여야 하며, 또한 50m쯤 진행하다 좌틀로 내려서야 항일의병전적비에 이른다.
공리고개에서 양구읍내가 제일 가깝네요. 춘천↔양구간 학조리버스정류장에서 공리고개는 도보로 약 1.5km거리입니다. 우측에 있는 인가에 들어가 물인심이나 알아볼렸는데 주인은 없고 마당에 수도꼭지는 확인하였습니다. ASF울타리를 열고 들어가 임도를 따라 진행하다 좌틀하여 계속 산으로 달라붙습니다.
♤ 공리(恭里)고개/ 실학고개
구(舊)46번 국도가 지난다. 양구읍 석현리와 공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좌측이 양구선착장으로 가는 석현리 방향이고 우측이 양구읍으로 나가는 공리방향이다. 공리고개는 옛날에 곰이 살았다하여 곰골이라 하던 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공골로 변음이 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병합에 따라 거렛말, 구렁말, 돌방울을 병합하여 공리라 표기하였다. 46번 국도 직선화 구간 양구 지역에는 수인터널, 웅진터널, 공리터널이 있다.
항일의병전적비 앞으로 나와 계단을 내려서면 주차장이 있는 공리고개이고, 도로건너 시멘트포장 임도가 들머리이다. 철문으로 들어서서 처음 만나는 임도삼거리에서 50m 진행하다 비포장임도로 좌틀한다.
♤ 항일의병전적비
양구읍 공리와 석현리 경계지점의 실학고개 정상에 있는 항일의병 전적비는 팔도창의대장 유인석(柳麟錫)을 비롯하여 이강년(李康秊), 최도환(崔道煥) 등의 의병장들이 이곳 군민과 더불어 일본군을 무찌른 장소를 나타내어 이를 기념하기 위해 강원도지사가 1978년 11월에 건립한 것이다. 유인석은 1841년 강원도 춘천 출신으로 1884년 제천으로 이거한 유가의 명문으로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을 토벌하다가 의병해산의 칙명을 거역할 수 없어 1897년 만주로 망명하여 재기를 꾀하였다. 이곳은 의암이 망명도중 적이 앞을 가로막자 죽기로 맹세하고 이를 격파하여 승리를 거두었던 전승지이다. 이강년은 1858년 경북 문경 출신이다. 1869년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켜 의암과 함께 적을 토벌하다가 만주로 망명하였으며 1907년 광무황제가 강제로 양위를 당하자 국내에 돌아와 다시 대대적인 의병을 일으켜 민긍호와 함께 강원.충청 지방에서 일병을 토벌하였으며 13도 의병연합부대의 호서창의대장(湖西倡義大將)으로 선임되여 서울진공을 꽤하기도 하였다. 서울 공락에 실패한 후 단양, 가평 등지에서 계속 적과 교전하다가 1908년 7월 사막치(寺幕峙) 전투에서 적의 총탄을 맞고 체포되어 1908년 9월 19일 사형순국하였다. 최도환은 강원도 양구 출신으로 1906년 거의하여 강원도와 경기도 지방에서 일군을 무찔렀다. 한때는 민긍호(閔肯鎬)의진의 부장(副將)으로 활약하였으며 대세가 기울어지자 간도로 망명하여 의병을 규합하던 중 신병을 얻어, 고향에 은신하여 치료하다가 일본 관헌에게 체포되었으며 1911년 춘천감옥에서 옥사하였다. 비의 높이 3.11m, 두께 0.3m, 부지 39,669.6㎡에 건립된 전적비는 비문에서 "유인석선생은 1896년 7월 방산에 의진(義陳)을 치고 그 달 24일에는 조백룡을 선봉장으로 삼아 양구면 전투에서 대첩을 거둠으로써 전국에 항일의 세를 떨쳤고, 이 고장 출신 최도환선생은 1906년 이후 강원, 경기지방 곳곳에서 일제 침략군을 격파하여 용맹을 떨쳤으며, 특히 방산과 양구, 양구와 춘천, 그리고 양구와 문등으로 연결된 교통로는 혈전의 길목이었다"고 적고 있다.
♤ 592.3m봉/ 공리-웅진리
공리고개를 출발하여 삼거리 능선에 올라서면서 도솔지맥은 웅진리와 만나 이후 지맥의 좌측은 문바위봉까지 계속 웅진리의 경계를 따르며 지맥의 우측이 공리, 학조리, 이리, 안대리, 월명리 순으로 바뀐다. 이정표가 있고 좌측으로 약 20m 떨어져 있는 591.4m봉을 다녀와 우측 학조리 방향으로 급 내려선다. 웅진 3터널이 지나가는 지점이며 웅진리 선착장으로 들어서는 소양호를 조망할 수 있다.
- 준.희선생님 산패와 판독이 불가한 삼각점이 있다.
♤ 양구군 양구읍 웅진리(雄津里)
웅진리는 본래 서면의 지역으로서 소양강 모퉁이 상류에 위치하고 있어서 수나루, 수모루라고 불리었다. 1914년 참나무정, 쇳골, 석장골을 병합하여 웅진리라 하여 군내면(양구)에 편입하여 오늘에 이르는 마을이다. 저고리골은 웅진리마을 전체를 말한다. 용수암 쪽 계곡이 제일 크니 거기를 저고리골 상류로 본다. 옛날부터 이 동네에 대대로 전해 온 얘긴데, 산세가 펼쳐놓은 저고리를 닮았다는 얘기가 있고, 또 하나는 호랑이가 사람을 해(害)하고, 그 해한 사람 저고리를 나뭇가지에 걸어놨다는 데서 생긴 지명이다. 저고리골 8부 능선에 범의골이라고 있는데 옛날 마을주민이 약초 캐러갔다가 우연하게 보게 된 호랑이 새끼를 강아지인 줄 알고 집에 들고 왔다. 그런데 매일 밖에서 호랑이가 으르렁거려 새끼를 밖에 내놨더니 호랑이가 새끼를 데리고 범의골로 되돌아갔다는 전설이 있다. 광치령수목원에서 솔봉오르는 곳에도 이와 유사한 내력의 저고리골이 있다고 한다.
♤ 구현(鳩峴)/ 비득재
동쪽 송정리로는 넓은 길이 서쪽 석장골로는 좁은 길이 갈라지는 희미하게 고개 흔적이 남아있는 십자로 안부이다. 구현을 지나 둔덕에 올라서면 드디어 사명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후 잔펀치들을 계속 오르며 사명산으로 고도를 높여간다.
개인참호와 하늘기둥님 산패가 붙어있는 635m봉에서 내려서면 갈탄리 고개입니다. 갈탄리고갠가 싶으면 더 가야 되고, 제법 진행해야 만나보게 됩니다.
♤ 갈탄리고개/ 가래타니고개
좌측으로는 임도처럼 넓은 길이 사면에 나있고 우측은 동쪽 죽리로 길이 갈라져 내려간다. 좌우로 희미하게 묵정길이 보인다는데 잡목이 없는 겨울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 686.8m봉
능선 우측으로 청량현의 군 시설을 보면서 올라가면 684.8m봉이다. 684.8m봉에선 북동쪽으로 양구읍이 빤히 내려다 보인다. 양구읍 뒤로는 대우산(1,179m)-돌산령-대암산 능선이 보인다. 능선 뒤가 펀치볼(해안분지)이고 대암산 우측으로 설악산이 보인다.
- 준.희선생님 산패와 4등삼각점(양구 463/ 2007 복구)이 있다.
♤ 안대리임도/ 청량현
남쪽 쇳골(웅진리)에서 북쪽 청량리골(안대리)로 넓은 길이 넘어간다. 양구읍 안대리에서 구불구불 올라오는 최근 확장한 넓은 임도이다. 안대리에 노도부대가 있는지... 오래 전엔 청량현에도 군부대가 주둔했다고 한다.
♤ 806.1m봉/ 헬기장
청량현 안부에서 동릉을 타고 30분 거리에 이르면 정면으로 사명산 정상이 보이는 헬기장(806.1m봉)으로 들어서고, 20분 더 가면 웅진리에서 월명리로 이어지는 임도 고갯마루 월북현에 닿는다.
- 준희선생님 산패가 있고 지면에 번호가 매겨진 군용헬기장이다.
♤ 월북현으로 오르기 직전 임도에 있는 샘터
임도 고개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은 두 코스가 있다. 식수를 준비하려면 왼쪽 임도를 따라 10분 거리인 샘터(사명산 2.5km→ 푯말)를 경유하면 된다. 샘터 왼쪽(남쪽) 길은 웅진리 금강사 방면 길이다. 오른쪽 사면으로 약 100m 오르면 다시 동릉 상의 월북현(긴급구조 현위치 번호 2번·←웅진리 3.5km, ↓안대리 6.5km, ↑사명산 2.4km 푯말)이다. 임도 고개에서 계속 능선을 타려면 임도 건너 절개지를 지나 10분 거리인 쉼터(821m봉)를 경유해 5분 내려가면 월북현에 닿는다.
시간이 없어 확인은 하지 못했지만 후답자가 참고하도록 적어 놓습니다.
- 웅진리 무량사에서 가파른 계곡길은 돌계단으로 이어지다가 15분 가량 오르면 임도(↓웅진리 3.4km, 사명산 2.5km→ 푯말)로 올라선다. 임도 오른쪽으로 15m 거리에 샘터(↑사명산 2.5km 푯말)가 있다. 이후 샘터 왼쪽 급경사 길로 약 100m 올라 월북현(긴급구조 현위치 2번 푯말)에 닿은 다음 동릉을 타고 정상으로 향한다.
♤ 월북현(越北峴)/ 임도
좌측으로 소양호를 내려다보며 옛날 월북현을 지나고, 예전 월명리와 웅진리를 이어주던 월북현을 이제 이 임도가 대신한다. 곧 포장을 하려는지 잔돌이 깔려있다. 건너편에 삼돌이님 산패가 있고 좌측 돌계단으로 올라선다. 안대리 6.0km, 사명산 3.0km 이정표가 서있다.
- 월북현에서 동릉을 타고 30분 오르면 헬기장(긴급구조 현위치 3번)이 나오고, 고만고만한 거리마다 긴급구조 현위치 번호를 매긴 푯말을 비롯하여 산과 자연에 관한 안내판과 의자들을 설치한 휴식장소들이 계속 나타난다.
♤ 양구읍 월명리(月明里)
본래 북면의 지역으로서 박달봉 밑이 되므로 박다리 또는 월명이라 하였는데 동쪽에는 양구읍과 동수리 서쪽에는 화천군 북쪽에는 상무룡리와 공수리를 접하고 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어구말, 도일, 당골, 안말, 샛골, 청량젓골을 병합하여 월명리라 하고 1962년에 양구면(읍)에 편입되었다. 양구읍내에서 월명리와 상무룡2리를 가려면 경사와 굴곡이 심한 월명고개를 이용해 왔으나, 이 구간은 겨울에는 빙판길 사고 위험이 높고 평상시에도 굴곡이 심해 교통사고 위험이 높은 구간이었다. 2019년 10월 21일 지방도 403호선 총연장 940m 월명터널이 개통되었다.
공리에서 제법 올라왔는데, 이 지점에서부터도 정상까지 크게 가파르지는 않는데 계속 꾸준하게 올라칩니다. 사명산 제법 빡십니다. ㅋ~ 힘은 드는데 시간이 없어 쉬지는 못하겠고....
♤ 웅진리갈림길삼거리
좌측으로 웅진리 선정사/무량사에서 올라오는 등로이며 사명산에 오르는 최단거리 코스이다. 웅진리 3.5㎞표기는 마을입구까지 거리이고 선정사가 위치한 도로까지는 1.5㎞ 정도 내려가면 된다.
- 이정표가 사명산 2.4km, 웅진리 3.5km를 가리키고 있다.
♤ 894.4m봉
H자가 바닥에 선명한 군용 헬리포트이다. 봉우리 지나 곧바로 웅진리 2.02km, 사명산1.8km 이정표를 지난다.
♤ 1,031m봉
부산의 신선님 산패가 있다.
♤ 웅진리갈림길삼거리/ 선정사
스테인레스 이정표 사명산 0.5km/ 웅진리(선정사) 4.7km 지점으로 두번째 웅진리갈림길이다. 웅진리 선정사 용수암에서 올라오는 정규등로이다.
♤ 1182.9m봉/ 양구군-화천군 군계
세번째 웅진리갈림길 삼거리이다. 양구군 양구읍 웅진리와 월명리의 경계를 따르던 지맥은 여기서 화천군 간동면 방천리를 만나 사명산 0.1km 방향으로 좌틀하여 남쪽으로 방향을 전환한다. 화천군과 양구군의 군계를 만나 좌틀하면 바로 사명산이 나오고, 화천군과 양구군의 군계를 따라 우틀하면 월명봉(718.8m)에 이른다.
♤ 화천군(華川郡) 간동면(看東面)
화천군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소재지는 유촌리이다. 본래 화천군의 동쪽이 되므로 동면이라 하여 동촌·태산·본산(本山)·방천의 4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간척면(看尺面)의 오음사(梧音寺)·도송동(都宋洞)·유촌·상간척(上看尺)의 4개 리와 군내면의 대리리가 병합되어 간동면이라 개칭되었고 동촌··태산·방천·오음 등 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41년 화천댐 건설에 의한 수몰로 면 사무소가 구만리에서 유촌리로 이전되었다. 구만리에는 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45년 8·15광복 후 38도선 이북에 위치하여 북한에 속해 있다가 1954년 수복되었다. 북쪽 경계에는 파로호가 있고, 동쪽에 사명산, 남쪽에 죽엽산(859m)·오봉산, 남서쪽에 용화산 등이 있어 대부분이 산간지역이다. 중앙부의 간척리·오음리·용호리 일대에 침식에 의한 대규모의 산록 관사면이 발달하여 경지와 취락이 밀집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콩·옥수수 등이고 특히, 한우·돼지의 사육이 활발하며, 산양사육은 군내 1위이다. 파로호 주변에서는 내수면 어업도 행해지고 있다. 교통은 46번 국도가 면의 남부를 지나면서 춘천∼양구를 연결한다. 461번 지방도가 오음∼하리를 이어준다. 4번 군도가 유촌∼방천으로 통하면서 양구군과 연결되는 등 종전보다 편리해졌다. 문화유적은 유촌리에 성불사지석불입상·성불사지석장승이 있고, 용화산에 맥국성지·용흥사사지 등이 있다. 유촌(楡村)·용호(龍湖)·간척(看尺)·오음(梧陰)·방천(芳川)·도송(都宋)·구만(九萬) 등 7개 리가 있다.
청정 양구에는 국회의원이 안사나 봐요. 국회의원이 서식하면 1,200m라고 박박 우기는건데... ㅋㅋㅋ
♤ 사명산(四明山, 1,198.6m)
사명산은 춘천과 인제를 뱃길로 이어주는 소양호를 끼고 북쪽으로 위치한 산으로서 멀리 양구읍 월명리 월명봉까지 능선으로 종주산행이 가능하다. 행정적으로는 양구군 양구읍, 화천군 간동면, 춘천시 북산면의 3개 군(郡) 3개 면(面) 경계를 이룬다. 사명산이란 이름은 양구, 화천, 춘천, 멀리 인제까지 네개 고을을 조망할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파로호, 소양호와 어우러져 있다. 사명산은 임진왜란 때 이 고장 사람들이 침략해 온 왜군과 대항해 싸운 격전지였다는 설도 전해진다. 6.25전쟁 당시 중공군을 격멸시킨 파로호 전투도 이 산자락 수리봉에서 치러졌다고 전해진다. 남서쪽 산록에는 이름난 추곡약수가 있다. 정상은 넓지는 않지만 삼각점 주위의 전망을 확보하기위해 나무를 쳐서 사방이 잘 보이게 해 두었다. 정상에 서면 북서쪽으로 파로호와 남으로는 소양호가 한꺼번에 보인다. 정상 조망 중 백미는 북서쪽 아래로 보이는 파로호다. 파로호 뒤로는 적근지맥으로 이어지는 일산 재안산 흰바위산 능선들이 넘실거린다. 북쪽 조망은 숲에 가려 안 보인다. 동쪽으로는 동릉인 도솔지맥과 선정사계곡이 조망된다. 동쪽 멀리 설악의 능선이 보인다. 남으로는 문바위봉만 보인다. 서쪽 멀리 용화산 능선 마루금 뒤로 촉대봉 응봉 화악산이 하늘금을 이룬다. 화악산에서 오른쪽으로는 백운산 광덕산 복계산으로 이어지는 한북정맥이 하늘금을 이룬다. 사명산은 전형적인 육산이어서 능선이 아기자기하거나 특별히 시선을 끌거나 하지는 않는다.
- 정상석의 뒷면은 한자이고, 2등삼각점(양구 26/ 1986 재설)과 준희선생님 산패가 있다. 공리에서 약 11km 거리로 5시간 정도 소요된다.
♤ 파로호(破虜湖)
파로호는 강원도 화천군과 양구군에 걸쳐 있는 호수로서 면적 38.9㎢ 이며 저수량은 약 10억톤 이다. 1944년 일제가 대륙 침략을 목적으로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에 북한강 협곡을 막아 축조한 인공호수이다. 댐 높이 77.5m의 낙차를 이용하는 화천 수력 발전소는 출력 10만 8000kW이다. 호반이 일산(해발, 1,190m)과 월명봉(해발, 719m) 등의 높은 산에 둘려 있어 호수의 경관을 한층 아름답게 해준다. 한국전쟁 중이었던 1951년 4월 19일부터 5월 20일까지 한달 동안 파로호에서 국군 6사단과 해병대 1연대 장병들이 UN군의 지원을 받으며 중공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에서 중공군 3만여 명의 병력이 파로호 속으로 수장되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전사(戰史)가 있다. 당시의 이승만 대통령은 직접 이곳을 시찰하고 적을 크게 물리친 호수라는 뜻으로 파로호(破虜湖)라는 휘호를 내렸다. 철원군을 지나온 북한강의 원류와 양구군에서 흘러든 수입천과 서천의 물이 모여 거대한 호수를 이룬 파로호 주변에는 일산(해산), 제안산, 성주봉, 사명산, 죽엽산, 병풍산, 수불무산, 용화산 등의 여러 산이 있다.
- 간동면 구만리의 파로호변 정상에는 높이 12m, 너비 6m의 파로호기념비(破虜湖紀念碑)가 있다.
♤ 1,180m봉/ 헬기장
여영님 산패가 있고, 바로 앞에 헬기장이 있다. 좌측이 웅진리 선정사로 하산하는 네번째 웅진리갈림길이다. 헬기장은 정상과 문바위 사이 남릉에서 조망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동으로는 도솔지맥 너머로 설악산과 점봉산이 시야에 와닿는다. 남동으로는 소양호 건너 계명산, 남으로는 문바위봉이 소양호와 함께 조망된다. 소양호 건너로는 홍천 가리산도 눈에 들어온다. 남서쪽으로는 도솔지맥을 끌고 나가는 죽엽산 종류산 부용산 오봉산이 배후령고개와 함께 펼쳐진다. 오봉산 너머로는 춘천 대룡산 삼악산 등이 조망된다.
- 지맥은 등산안내도의 추곡약수터 방향이다. (문바위봉을 우회하여 추곡약수터로 간다.)
♤ 웅진리갈림길 삼거리
119구조목 현위치 B-8이 서있는, 완만한 1,004.6m봉에서 5분여(130m) 진행하면 나오는 삼거리이다. 문바위봉으로 올라가지 않고 중간 허리에서 갈라지는 이정표(사명산2.5km/ 웅진리주차장3.5km/ 추곡약수터)다. 좌측길 웅진리 하산은 선정사/무량사쪽이 아닌 웅진리 마을회관 주차장 쪽으로 내려서는 하산로이다. 우측길은 출렁다리가 있는 문바위(추곡약수방향)쪽으로 휘어지는 길이다. 우측 추곡약수터 방향을 따른다. 이제 양구군에서 설치한 이정표식이 여기서 마지막이다. 5~6분 경사를 내려와 작은 헬기장이 있는 묘지(海州崔氏墓)를 통과하고 978m봉을 우축 사면으로 우회하면 문바위다. 칠층석탑이 서있다.
문바위는 아래 위 암봉 두개로 이루어져 있는 최고의 조망처라는데 10분만 일찍 도착했더라면 조망과 일몰을 감상할 수 있었건만.... 1,004m봉에서 이미 랜턴을 밝혀야 했습니다. 해주최씨 묘지는 멧돼지가 봉분 위에 구덩이를 만들어 놓았던데 후손이 찾아보는지 보기 흉한 봉분을 손보았더군요.
♤ 칠성탑/ 동쪽바위
칠성탑은 샤만적인 요소가 있는 듯한 느낌이다. 예전엔 두 바위 사이에 출렁다리가 있었다고 한다. 좌측 칠성탑은 남릉 헬기장 다음으로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곳이다. 칠성탑이 있는 바위 오른쪽 아래는 수인리계곡이다. 수인리 협곡이 샅샅이 조망되고, 수인리 입구 건너로는 수인터널에서 웅진터널로 이어지는 46번국도인 수인1교 다리와 함께 소양호가 그림처럼 내려다보인다. 소양호 건너로는 춘천지맥 가리산과 대룡산도 보인다.
♤ 문바위봉/ 서쪽바위
칠성탑에서 다시 능선길로 빠져나와 서쪽(우측) 바위 꼭대기에 올라도 막힘없는 조망을 즐기게 된다. 이 바위에서는 남서쪽으로 도솔지맥을 끌고 나가는 운수현과 죽엽산이 눈에 들어온다. 죽엽산 왼쪽으로는 추곡령, 종류산, 오봉산과 함께 배후령 고갯길이 조망된다. 배후령 고갯길 뒤로는 계관산 북배산 가덕산도 눈에 들어온다. 죽엽산 뒤로는 용화산이 보인다. 서쪽 아래로는 방천리 운수골 협곡이 아찔하게 조망된다. 운수골 건너로는 설안재봉이 멀리 화악산과 함께 한북정맥이 시야에 와닿는다. 발 아래로 수인리 협곡이 내려다보이고, 협곡 위로는 소양호가 계명산, 바위산이 보인다. 바위산 우측으로는 가리산과 대룡산이 멀리보인다.
여기 수인리방향 절터에서 물보충을 하게 된다면 배후령까지는 거뜬합니다만....
칠성탑과 문바위를 둘러보고 양쪽 거대한 바위틈 사이로 난 길을 내려서면 수인리갈림삼거리가 나오는데 좌측 수인리방향은 일반등산로이고, 지맥은 직진 추곡약수터 방향이다. 수인리방향으로 가까운 절터에 샘터가 있다는데.... 절터에는 비닐로 만든 움막 한 채가 있으며 움막 안에는 부처가 모셔져 있다. 움막 오른쪽 느티나무 거목 아래에서는 석간수가 콸콸 쏟아져 내린다.
우측사면으로 우회등산로가 뚜렷한 829m봉과 830m봉을 좌측 사면으로 우회하면 삼군봉에 이릅니다.
♤ 815m봉/ 삼군봉(화천군 간동면, 양구군 양구읍 → 춘천시 북산면)/ 세거리봉 770m 잘못된 산패
문바위에서 20여분 내려오면 작은 봉을 넘어 제법 당찬 봉우리를 하나 오르게 된다. 정상부에 커다란 No41 송전탑이 있다. 송전탑 직전 나무에 '세거리봉 770m' 푯말이 있는데 고도도 엉터리고 삼거리 갈림봉인 삼군봉을 세거리봉이라 작명을 하였다. 춘천시 북산면, 양구군 양구읍, 화천군 간동면의 경계가 되는 삼군봉이다. 이곳 봉우리에서 도솔지맥의 등로가 갈리는데 우측으로 능선을 따르면 운수현으로 해서 죽엽산으로 이어가는 도솔지맥길이고 좌측으로 능선을 치고 내려가면 추곡약수터로 가는 지능선길이다. 여기부터 양구군과 헤어지고 춘천시 북산면을 만나 화천군 간동면과 춘천시 북산면의 군계를 따른다. 지나온 칠성탑과 문바위가 올려다보이고 가야할 방향으로 종류산과 부용산, 오봉산이 보인다.
- 좌측은 추곡약수터방향 하산길이고 지맥은 송전탑 우측으로 내려선다. 지맥이 우틀하는 지점이다. 황소님의 도솔지맥 817m산패는 보이지 않는다.
운수현에 기다리고 있는 친구를 생각해 서두르는데 약수봉 가파른 내리막에서 그만 알바를 잠깐 했습니다. 지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지더군요.
♤ 696.1m봉(개념도상 695m봉)/ 약수봉푯말
번호가 메겨져 있는 군헬기장으로 여기서 10여분 내려서면 운수현이다. 국가기준점 정보 시스템에 나오지 않는 삼각점이다.
- 4등삼각점(양구 457/ 2007 재설)이 있다.
♤ 추곡약수
춘천시 북산면 추곡리 사명산 자락에 있는 약수로, 추곡약수는 약 10m 거리를 두고 상탕(上湯)과 하탕(下湯) 두 개가 있다. 윗약수는 김원보라는 사람이 꿈에서 사명산 산신령의 계시를 받아 발견했고, 아랫약수는 김성련이라는 맹인이 지나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곳에서 샘이 솟았다는 전설이 있다. 추곡약수는 약간 붉은색을 띠며 철분, 나트륨, 탄산염, 황산염, 규소, 규리, 칼슘 등의 성분을 함유하고 위장병, 빈혈, 부인병, 신경통 무좀 등에 효험이 있다고 전한다. 물맛은 감초맛이다. 위의 약수는 물맛이 약하게 느껴진다. 아래 약수가 물맛이 한층 더 톡 쏘는 느낌이 강하다. 그러나 오색약수나 필례약수 등에 비하면 물맛이 약한 편이다. 약수 옆으로 시원한 계곡이 흐른다. 고형 물질인 광물성 물질, 방사성 물질 혹은 가스상 물질 등이 함유되어 땅속에서 솟아나는 샘을 광천(鑛泉)이라 한다. 광천 중에서 인체에 유익한 물질이 녹아 있어 마셔서 좋은 물이 솟아나는 곳을 약수터라고 한다. 약수에 녹아 있는 광물로는 칼슘·칼륨·라듐·황산염·규산·나트륨·마그네슘·철분 등이 있다. 약수는 소화불량·위장병 등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진 것이 가장 많고, 다음으로 피부병·신경통·안질·빈혈증·만성부인병 등에 약효가 있다고 알려진 것이 많다.
- 떱떱한 철분성분이다. 추곡약수터 한쪽 경사에는 비문이 적혀있는데 추곡약수터는 김원보란 분이 사명산 신령의 현몽으로 발견했고 후손이 비문을 세운다고 써있다.
배후령까지 가기 위해서는 운수현에서 물보충이 필수적입니다만 추곡약수까지는 거리가 꽤 되네요. 다행히 친구가 기다리고 있어 반갑게 해후하고 추곡약수터로 이동하여 화장실에서 샤워하고, 추곡약수터 바로 아래에 비박을 틀었습니다. 가져온 밥과 반찬 그리고 막걸리와 항정살로 배를 채우고 다음날 아침엔 추곡약수로 밥까지 지어 맛있게 먹었습니다. 추곡약수와 북산치안센터 인근엔 가게가 없어 추곡터널을 지나 간척사거리 gs편의점까지 가서 먹거리를 충전해야 했습니다. 북산면사무소 옆에 마트가 있다던데 어느 만큼 거리인지도 모르겠고....
운수현과 추곡령은 모두 물을 구하기가 어려운 장소입니다.
♤ 운수현(雲水峴)/ 사각정자/ 운수대장군
운수현 절개지 상단에서 좌측으로 전봇대를 보고 내려서면 파로호로 가는 화천 간동면 방천리 운수골과 춘천시 북산면 추곡리를 연결하는 도로가 지나는 운수현이다. 성황당터와 장승이 있다. 화천군 방천리쪽으로 약간 내려서면 들머리 도원정(사각정자)이 있다. 도원정 푯말 뒤쪽 절개지로 오르는 곳이 들머리다.
- 운수현에서 추곡약수터 사거리로 탈출이 가능하다. 좌측으로 내려가 삼거리에서 다시 좌측으로, 약 3km 내려서면 운수골입구인 46번 국도가 나온다. 북산파출소로 10분 걸어가야 양구발 춘천 직행버스 정류장이 있다.
♤ 옛(舊) 운수현
운수현에서 첫 봉우리를 넘어 벌목지 녹색 그물망을 따라 진행하면 우측에 희미한 하산로가 보이는 옛 운수현으로 고개 흔적만 남아 있다. 추곡터널이 생기기 전 운수골 주민들이 운수현 옛 고개를 넘어다녔다. 작은 돌무더기가 있는 성황당터 흔적이 보이고 여기부터 죽엽산까지 고도340m 가량을 급경사로 올라야한다.
♤ 822m봉/ 좌측 조망바위
가야할 783m봉, 부용산, 오봉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783m봉과 부용산 사이로 춘천 봉화산도 보인다. 5분 정도 좀 더 오르면 만나는 삼거리에서 우측 옆으로 죽엽산 정상을 잠깐 다녀와야 한다. 죽엽산 정상 뒤로 계속 진행하면 설안재봉을 지나 화천호로 가는 길이다. 북산면 오항리, 내평리에서 소양호 넘어 춘천시 북산면 조교리와 물노리는 중공군의 도하작전이 전개된 곳이다. 늘목고개, 사오랑치 등 가리산과 가락재 사이로 고개만 뚫으면 홍천에 진입하여 춘천을 우회 함락할 기회가 되기때문에 상대적으로 국군과 미군은 이 지역에서 필사적인 방어전선을 구축해야 했다.
죽엽산에서 우측 아래 오음리를 살펴보고자 했지만 전망이 트이는 곳이 없습니다. 오봉산제4봉 직전에서 오음리를 살피는게 낫겠더군요. 회곡령이 어디지, 어디서부터 오음리가 간척리로 바뀌는 걸까 바짝 신경을 쓰며 내려섰는데, 중간 바위지점 띠지가 많은 곳에서 알바도 했습니다. 우측으로 내려서야 하건만 좌측으로 직진해 가파른 길을 한참 내려갔네요.ㅜㅜ
♤ 죽엽산(竹葉山, 859.3m)
죽엽산은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오음리, 춘천시 북산면 추곡2리에 자리한 오지의 산이다. 죽엽산은 산세가 대나무 잎을 닮아서 죽엽이라고 하는 말이 있으나 신빙성은 없다. 이 산중의 고개인 에네미고개 또한 동네 주민들도 무슨 뜻인지 모른다고 했다. 다만 어감으로 보아 ‘애’나 ‘어미’와 연관된 지명인 듯싶다. 정상에서 펼쳐지는 조망이 일품이다. 서쪽으로는 오음리 분지와 용화산 뒤로 화악산과 응봉이 바라보인다. 화악산 오른쪽으로는 병풍산 뒤로 도마치봉 백운산 광덕산 복주산 등 한북정맥이 펼쳐진다. 복주산에서 오른쪽으로는 수피령 대성산도 보인다. 북으로는 파로호 건너서 휴전선 방면 적근산, 흰바우산(1,179.2m), 일산(1,190m)을 비롯해서 혜산터널이 지나는 재안산(955.4m) 등이 일렁이는 파도처럼 펼쳐진다. 동으로는 사명산 뒤로 양구 북방 휴전선을 이루는 산들이 펼쳐진다. 죽엽산 산행은 오음리를 기점으로 북쪽 에네미고개에 오른 다음, 북서릉을 타고 정상으로 향하는 코스가 잘 알려져 있다. 또는 추곡령에서 남릉을 경유해 정상으로 오르내리는 코스도 아는 이들이 많다. 잡목에 막혀 정상 조망은 없으며 북쪽 방향 나뭇가지 사이로 화천 병풍산이 살짝 보인다.
- 운수현에서 죽엽산까지 약 3km이고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는데 저는 힘이 쳐져서 두시간이 걸렸네요.
♤ 840m봉/ 죽엽산 서봉/ 병풍산 갈림봉/ 삼리봉(춘천시 북산면 추곡리, 화천군 간동면 방천리 → 오음리)
화천군 간동면 방천리와 춘천시 북산면 추곡리의 면계에서 우측이 간동면 오음리로 바뀐다. 삼거리 갈림봉에서 지맥은 좌틀로 급내리막이며 추곡고개로 1시간 정도 내려선다. 우측은 403번 도로를 지나 북서쪽으로 약 5km에 있는 병풍산 가는 방향이다.
♤ 병풍산(屛楓山, 796.7m)
죽엽산에서 북서쪽으로 가지를 친 능선이다. 이 능선 약 5km 거리에 솟은 산이 병풍산이다. 병풍산을 지난 여맥들은 모두 파로호로 가라앉는다. 병풍산은 화천군 간동면 도송리에 자리한 오지의 산이다. 병풍산 들머리는 간동면 도송리의 새마을회관이다.
♤ 화천군 간동면 오음리
병풍산과 죽엽산 아래 분지를 이룬 오음리는 1965년부터 1970년 중반까지 베트남전 파병용사 훈련장으로도 유명해 당시 이곳에서 군생활을 했던 실버세대 등산인들이 옛 추억을 기리기 위해 이곳을 찾기도 한다. 파월용사 훈련장 이전에도 전방 사단의 유격장이었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5년 7월 2일 한국 전투부대 파병이 결정되고, 그해 10월 맹호부대와 해병 청룡부대가 참전했다. 가난했던 그 시절 ‘베트남에 가면 죽어 돌아오든가, 돈 벌어 오든가 두 가지뿐이다’라는 기치 아래 목숨을 국가에 헌납할 각오로 파월된 용사들이 흘린 피와 목숨은 국가 건설에 쓰였다. 당시 파월을 앞둔 장병들의 훈련장으로 그들의 피와 땀이 녹아 있는 오음리 바람베뎅이에 ‘베트남 참전용사 만남의 장’이 2008년 10월 23일 개장됐다. 죽엽산 자락인 바람버뎅이에 13만9,788㎢(약 4만2,300평) 넓이로 조성된 만남의 장은 당시 파월장병들에게 만남의 기회를 제공하고, 나라를 위해 공헌한 것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시킴과 동시에 훈련 당시 향수를 느끼게 한다.
어느 만큼 내려서니 묘지가 보이고 5분여 지나면 회곡령입니다. 그 자리에 개복숭아열매가 농익어 있네요.
♤ 회곡령(527m)/ 횟골고개
된비알을 내려서서 봉우리라고 생각되지 않는 588.4m봉을 지나면 개념도상 서쪽 회곡교와 동쪽 상추곡을 넘어다닌 회곡령 안부로 길은 없어지고 옛고개 흔적만 희미하게 남아있다. 옛날에 이곳에서 석회가 많이 나와 횟골이라 했다고 한다.
회곡령을 지나 600m봉에서 지맥의 우측이 화천군 간동면 오음리에서 간척리로 바뀌며, 소양강 북산면 추곡리 방향에서 추곡령으로 올라오는 46번 도로를 바라보며 내려선다.
♤ 556.2m봉/ sk북산기지국...
sk북산지국 이동통신시설 철탑을 우측으로 진행하면 556.2m봉 kbs 방송송신시설이 나오고, 훤스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눈에 들어온다. 산패 인증하고 우측에 판독이 안되는 4등급삼각점(양구 454/ )을 확인하고 되돌아 나와 통신탑에서 좌측 길로 200m 절개지를 우회하여 추곡령으로 내려선다.
통신탑 울타리 뒷쪽에서 산으로 곧장 달라붙어야 능선길을 편하게 이어갈 수 있습니다. 좌측으로 임도가 한동안 따라오는데 절개지가 절벽수준이라 임도에서 맥길로 달라붙기가 애매하게 보입니다.
♤ 추곡령(楸谷嶺)/ 추곡고개/ 간척령
화천군 간동면 간척리와 춘천시 북산면 추곡리를 잇는 구46번 국도가 지나던 고개이다. 1994년 추곡터널이 뚫리기 전에는 춘천에서 화천 오음리를 걸쳐 양구로 가는 비포장 국도였다. 임도삼거리에 이동 통신시설이 있고, 좌측 임도에는 차단기가 내려져 있다. 고개 아래로 추곡터널이 지난다.
- 좌우측으로 탈출하기가 쉽지않다. 추곡리로 1.2km내려서서 임도가 좌측으로 휘는 지점에서 우측 지능선으로 200m쯤 내려서면 46번 국도이고, 약 800m 도로를 따르면 도로변에 "골짜구니 쉼터"라는 허름한 움막집이 있긴하다. 간척리로 1.8km 추곡터널 입구에 "산골휴게소"가 있다.
♤ 화천군 간동면 간척리(看尺里)
간척리는 예전에는 낭천으로 불리어 오다가 이마을의 사방이 산으로 둘려싸여 마치 돼지우리 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에 바로 지척에 있는 춘천을 이 마을에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구경 한번 못하고 죽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당시 노인들이 볼간(看)자와 자척(尺)자를 따서 간척(看尺)으로 불리우게 되었다고 한다.
♤ 561m봉/ 교통호, 참호
이후 좌우측이 번갈아 간벌을 하여 그늘이 없는 마루금을 줄곧 따른다. 여름에는 그늘이 없어 덥겠지만 마루금을 걷는내내 경관은 장쾌하다. 대여섯개의 만두와 찐빵을 업다운으로 지난다.
전방에 부용산과 오봉산 용화산으로 마루금이 이어지고 우측으로 추곡령 터널에서 빠져나온 46번 국도와 간동면 간척리가 내려다 보입니다. 지루할 정도로 줄곧 한쪽 면을 벌목해 놓은 간벌지를 보며 마루금을 따릅니다.
추곡고개에서 간벌지를 지나 오르는 783m봉에서 직우틀하여 간척령으로 내려서는 곳입니다. 종류산 정상에 서면 소양강이 보일까요? 춘천지맥 벙커고지전투 아시죠. 북산면 오항리나 내평리에서 강건너 접안시설이 있는 곳으로 도하하면 북산면 조교리와 물노리쯤 되겠습니다. 가리산 아래 늘목고개, 사오랑치는 홍천-춘천지구 전투지역입니다. 중공군이 북산면으로 잔뜩 몰려들었다는 계산이 나오네요.
♤ 783m봉/ 종류산 갈림봉
삼거리 갈림봉으로, 직진으로 0.5km 20분 거리에 종류산이 있지만 오가는 사람이 없다. 지맥은 직우틀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 종류산(811.5m)
종류산은 강원 춘천시 북산면과 화천군 간동면에 있는 산이다. 춘천 오봉산입구 배후령을 지나 오음리 삼거리를 지나처 양구가는 길로 접어들다가 북산면사무소 근처 KT북산 기숙사에서 능선을 타고 오르면 만나는 산이다. 국립지리원지도나 동아지도에는 그 이름이 없다. 서울마운틴 클럽에서 부착한 정상 표지판이 있고 누군가 친절하게도 삼각점 방위표시 부분에 종류산 표식을 해 놓았다. 3등급삼각점(양구316)이 있다.
♤ 임도삼거리
추곡령에서 올라온 임도와 만나는 삼거리이다. 좌측으로는 북산면 부귀리로 내려간다. 직진방향으로 임도를 따라 4분(약 150m) 진행하다 우측 능선으로 올라선다.
서두에서 말씀드렸지만 건천령은 요긴한 물보충 장소입니다. 임도따라 300m진행하면 좌곡각지점에서 우틀로 능선에 달라붙기도 하고 그 이전 150m 지점에서 우측으로 달라붙기도 하는데, 물은 300m지점에서 좌측으로 조금 더 진행하면 계곡에서 엄청나게 흘러내립니다. 능선으로 달라붙어 올라가면 좌측 아래 보이는 계곡에서 하얀 물줄기와 요란한 물소리를 확인하게 됩니다.
♤ 건천령(乾川嶺)/ 간척고개
임도삼거리에서 능선에 올라서면 녹색그물망이 다시 보이고 약 5분 정도 진행하면 개념도상 고개 흔적만 남아 있는 안부인 건천령을 지난다. 임도삼거리에서 임도따라 5분 정도 진행하면 임도가 좌측으로 휘어지는 곡각지점을 건천령으로 보기도 한다. 건천령은 춘천시 북산면 부귀리에서 화천군 간동면 간척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화천군 사람들은 간척고개라 부른다.
건천령에서 다 올라선 능선을 저는 종류산갈림길로 착각을 했습니다. 여기서 종류산을 갔다올끼라고 반대편으로 다녀왔네요. ㅠㅠ
주머니에 자료정리한 써머리가 있었건만 깜박 꺼내보지 못해 삼각점을 확인하질 못했네요.ㅜㅜ 직진하다가 되돌아나왔습니다.
♤ 부용산(芙蓉山, 880.3m)
부용산은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과 화천군 간동면 사이에 있는 산이다. 화천 8경중의 하나로 부용산에 뜨는 달이 이쁘다고 한다. 서쪽의 오봉산과 하우고개를 지나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어 종주 등반도 할 수 있다. 산세가 그리 험하지 않고, 산 아래 소양호에서 배를 탈 수도 있어서 다양한 재미를 맛볼 수 있는 산이다. 추곡령에서 6.8km, 백치고개까지는 1.2km 거리이며 정상은 대형 헬기장이다.
- 좌측에 정상 푯말과 우측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있다. 올라온 방향 우측 준.희선생님 산패쪽으로 완만하게 백치고개를 향해 내려선다. 헬기장 가장자리에 3등급삼각점(내평 302)이 있다.
♤ 북산면 봉화산(峰火山, 736m)
봉화산은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에 있는 산이다. 부용산에서 남쪽으로 능선이 뻗어 있는데, 이 능선상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부용산 외에 오봉산과도 능선이 이어져 있어 종주 등반도 가능하다. 산의 북쪽을 제외하고는 소양호로 둘러싸여 있어 정상에서의 조망이 시원하고 아름답다. 북쪽으로 오봉산과 부용산이, 동쪽으로는 바위산(858m)과 매봉(800m)이, 남쪽으로는 소양호 너머로 멀리 대룡산 능선이 보인다.
♤ 소양강 수몰지구
1960년대 소양강댐이 건설되면서 북산면 내평리, 청평리, 추전리, 대곡리, 대동리, 오항리, 조교리, 물로리, 수산리, 추곡리, 부귀리, 동면 상걸리, 품안리, 품걸리, 신이리, 월곡리, 평촌리 17곳의 법정리가 190m 깊이의 차디찬 소양댐 물속에 잠기고 말았다.
텐트 네동은 칠 수 있는 넓은 공간입니다.
♤ 775m봉
부용산에서 백치고개로 내려서는 중간지점의 넓은 공터인 무명봉으로 좌틀후 급경사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 백치고개/ 백치령(白峙嶺)
화천군 간동면 간척리와 춘천시 북산면 청평리 방향을 이어주는 고개로 흰 자갈이 많아 백치고개로 불리웠다. 고개에서 화천쪽으로 넘어가는 길은 구절양장(九折羊腸)이다. 지금은 청평사를 소양댐에서 배를 타고 간단하게 다니지만 예전에는 배후령을 넘어 간척리로 돌아서 다녔다고 한다. 여기서부터 오봉산 일반등산로가 시작되어 배후령까지 등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 오봉산으로 오르는 입구에 이동통신 중계기가 있다.
♤ 청평사갈림길
거북바위 지나 10분 정도 오르면 정상을 50m 앞둔 지점이 청평사 갈림길이다.
- 오봉산 0.05km, 청평사 2.2km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 청평사(淸平寺)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청평리에 청평사(淸平寺)가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新興寺)의 말사이다. 1973년 소양강댐이 생긴 이후에 배를 타고 15분 정도 들어가야 하는 섬에 있는 사찰이다. 청평사는 고려시대인 973년(광종 24)에 영현선사(領賢禪師)가 창건하여 백암선원(白岩禪院)이라 하였다. 그 뒤 폐사가 되었다가 1068년(문종 22) 이의(李顗)가 중건하고 보현원(普賢院)이라 하였으며, 고려시대인 1089년(선종 6) 이의의 아들인 이자현(李資玄 : 고려 중기의 학자)이 젊은 나이인 27세에 벼슬을 버리고 그의 아버지가 지어놓은 경운산(오봉산의 옛 이름) 보현원에 은거하였는데 이자겸의 난과 연관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이곳에 은거하자 도적이 없어지고 범과 이리(虎狼)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이에 산이름을 청평(淸平)이라 하고 절 이름을 문수원(文殊院)이라 한 뒤, 8암자를 짓고 크게 중창하였다. 이자현의 할아버지는 이자연, 사촌은 이자겸이며 고모는 왕비, 고모부는 왕(순종)이었으니 지금 말하면 금수저였다. 1367년에는 나옹(懶翁)이 잠시 머물기도 하였고, 1555년 보우(普雨)가 머무르면서 청평사로 불리게 되었다.
♤ 청평사 원나라 공주와 상사뱀 설화
청평사로 가는 옛길인 환희령에 세워진 삼층석탑을 일명 ‘공주탑’이라 부르는데, 다양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원나라 공주가 뱀이 떨어지지 않는 상사병에 걸렸다. 날이 갈수록 병이 심해지고, 공주에게 붙은 뱀은 떨어지지 않았다. 여러 절을 다니며 불공을 드려도 소용이 없자 공주는 원나라를 떠나 떠돌다가 청평사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공주에게서 떨어지지 않던 뱀이 공주가 청평사에 들어가려 하자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청평사에 와 공주 몸에서 떨어진 뱀
원나라(혹은 당나라) 공주가 뱀이 몸에서 떨어지지 않는 상사병에 걸렸다. 날이 갈수록 병이 심해지고, 공주에게 붙은 뱀은 떨어지지를 않았다. 공주의 아버지는 온 나라 안에 있는 점쟁이들을 불러 성대하게 제(祭)를 올리기도 하고, 뛰어나다는 의원들을 불러 치료해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공주의 병은 점차 깊어지고, 뱀 또한 떨어지지 않았다. 왕은 마지막 방법으로 전국에 있는 사찰을 순례하면서 부처님에게 빌어보라고 했다. 공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전국에 있는 사찰들을 찾아다니며 지극 정성으로 부처님께 빌었다. 그래도 공주의 병은 치료되지 않았다.
공주는 아버지의 체면도 있고 해서 원나라를 떠나기로 하였다. 산 넘고 물을 건너 정처 없이 떠돌다가 도착한 곳이 지금의 청평사였다. 청평사에 도착한 공주는 뱀에게 “여기 있으면 절에 들어가서 밥을 얻어가지고 오겠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공주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던 뱀이 공주의 몸에서 떨어졌다. 공주는 기이하게 여기며, 청평사 안으로 들어가 밥을 얻어 가지고 나왔다. 그런데 그 자리에 뱀이 죽어 있었다. 이상해서 뱀을 만져 보았다. 뱀이 말라 있었다. 공주는 어찌나 기뻤던지 원나라로 돌아갔다. 공주의 아버지는 크게 기뻐하며, 청평사를 크게 짓게 했다.
*연못에 비친 공주의 그림자를 보고 떨어진 뱀
한편, 청평사에는 다른 설화도 전한다. 명나라 공주가 아버지 몰래 한 청년과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에게 발각되어 그만 청년이 죽임을 당하였다. 그 뒤 뱀 한 마리가 나타나 공주의 몸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공주는 청년의 화신(化身)으로 알고, 청년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사찰들을 순례하였다. 그러던 중 조선에 있는 청평사까지 오게 되었다. 공주는 청평사 앞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연못의 물이 얼마나 맑은 지 자신의 몸과 연못에 비친 그림자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 때 뱀이 연못 속에 있는 공주의 그림자를 보고, 공주인줄 착각하고 연못 속으로 뛰어들어 공주의 몸에서 떨어졌다. 그래서 그 연못을 그림자 연못이라는 의미로 영지(影池)라고 하였다.
*청평사의 문을 넘지 못한 뱀
청평사 상사뱀 설화는 다양하다. 공주가 몸에 붙은 뱀을 떨쳐내기 위해 청평사에 들렀다가 스님의 가사(袈裟)를 만들어 주고 뱀이 떨어졌다고도 한다. 또는 공주를 기다리던 뱀이 공주를 찾아 절로 왔으나, 절 문을 넘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래서 사찰 입구에 세워진 불문(佛門)을 ‘회전문’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청평사 상사뱀 설화는 신분 차이에서 오는 일방적인 짝사랑의 결과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가사불사(袈裟佛事) 공덕을 보이고 있다.
♤ 오봉산(五峰山, 779m)/ 영진 지도상 오봉산
오봉산의 원래 이름은 경운산(慶雲山)이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청평산(淸平山)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언제부터인가 봉우리 다섯 개가 줄지어 서 있다고 하여 오봉산으로 부르는데 그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 오봉산 제4봉(777.9m)/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상 오봉산
진혼비는 누가 치웠는지 그 자리인거 같은데 없어지고 보이지를 않는다. 청솔바위를 지나 오봉산 4봉 정상석 옆에 4등삼각점(내평 404/ 2005 복구)이 있다.
♤ 오봉산 제1봉(710m)/ 나한봉/ 삼면경계면(화천군 간동면, 춘천시 북산면 → 신북읍)
여기부터 지맥의 좌측이 북산면 청평리에서 신북읍 유포리로 바뀌어 간동면과 신북읍의 경계를 따른다.
♤ 경운산갈림길
오봉산 3, 2, 1봉을 차례로 지나 1봉 100m 앞쪽으로 배후령 0.36km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곳이다. 오봉산의 옛 이름이 경운산이었다는데 지금은 경운산이 785.6m 높이의 마적산을 가리키고 있다.
- 우틀하여 배후령으로 내려선다.
광복이후 남과 북이 갈라지면서 한국전쟁 전까지는 이곳이 남한과 북한의 경계가 되었던 곳입니다.
♤ 배후령(背後嶺, 600m)
배후령은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유포리와 화천군 간동면 간척리를 잇는 고개다. 국도 제46호선이 통과하였으나 자동차의 사상사고가 잦아 2004년 착공하여 2012년 3월 30일 배후령터널을 개통했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 전까지는 이곳이 남한과 북한의 경계가 되었던 곳으로 "38선 표지석"이 있다. 배후령은 그 너머 간동분지에 과거 월남파병훈련장을 설치했을 만큼 넘나들기가 힘든 고개다. 배후령은 한많은 애환(哀歡)의 고개이기도 하다. 배후령을 벗어나 첫번째로 만나는 곳이 화천군 간척면 오음리였다. 오음리에는 60년 중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파월장병 훈련소가 있던 곳이다. 지금은 베트남이라 불리는 월남에 파병(派兵)된 거의 모든 용사들은 이곳 오음리 훈련소에서 한달간 전장(戰場) 적응훈련을 받았다. 1965년부터 1973년까지 약 32만명의 병사가 이곳 파월훈련소를 거쳐 갔다. 월남전 지원 혹은 차출된 병사들은 물론 군인정신과 조국에 대한 충성심이 우선이었겠지만 대부분 돈 때문이었다. 월남참전 이전에 우리나라 GNP는 북한보다 많이 낮았다. 그런 척박한 삶에서 벗어나 가족을 부자로 만들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던 참전, 훈련소에 입소한 장병들에게는 일년 치의 월급이 주어졌다. 돈 있고 사내 있는 곳에 가난한 여인들이 모여들었다. 그 여인들은 급히 합판으로 만들어진 (춘천옥), (부산옥), (화천옥) 등 200여개 이상의 술집에서 일을 했다. 조그만 산골에 전국에서 모여든 그들이 약 5백명이나 되었다니 참전용사들 만큼 그녀들의 애환도 깊었을 것이다. 춘천역에는 마지막으로 떠나는 파월장병들을 보려고 전국 각지에서 온 면회객들이 300만명이 넘었다는 기록도 있다. 마지막 보게 될지도 모르는 자식.형제.조카.손자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더 보려고 그 많은 사람들이 배후령을 넘었다. 훈련을 마친 파병용사들에게 출발선은 이 배후령이었다. 살아 돌아오길 바라는 염원은 이 배후령을 넘으면서 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배후령을 넘은 그들은 춘천역에서 첫번째로 시민들의 환송을 받고 서울 대전 등지를 거치면서 태극기 깃발 사이로 행여 아는 얼굴이 있을지 몰라 안타까워 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부산에서 배를 타고간 이역만리 타국에서 꽃처럼 산화하거나 월남참전용사로 조국의 땅을 밟았을 것이다.
- 들머리는 날머리 도로 건너편 사자상 입구와 화천군 방향 아래에 '38선 표지석'' 도로 건너편 용화산등산로 임도 입구 두군데이지만 곧 합쳐진다. 배후령에서 구간을 끊고 탈출하려면 간척사거리까지 5.1km이고, 빠른 걸음으로 1시간 소요된다.
♤ 배후령터널(背後嶺터널)
배후령터널은 춘천시 신북읍과 화천군 간동면을 잇는 국도 제46호선 상의 터널로, 배후령과 오봉산을 관통한다. 2004년 착공하여 2012년 3월 30일 개통하였으며, 개통 시부터 2016년 6월 30일 양북1터널 개통 이전까지 국내 최장 도로 터널이었다. 왕복 2차로의 터널 1개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길이는 5,1km에 폭은 11.5m, 높이는 10.2m이다.
첫댓글 장거리 산행 나홀로 도솔지맥 75km 3일 연속 대단 하십니다
예전 우리는 도솔산에 올라 대암산 방향 포기하고 말았네요
요새 더러 가시는 분이 많은데 검문을 하지 않는가 봐요
에전 100대 명산 종주시 검문소에 보초를 잘 지키고 있더미만 이제
군기가 빠졌나요
이제 윗쪽이라 단풍이 제법 익어 가네요
참고로 사진은 100장 까지 이지만 또 하나의 카페를 열어서 사진 올려서
복사해서 붙여 넣으면 사진 무한정 올라 갑니다^0^
와룡산선배님!^^
바로 그거 방법이 있다는데 그걸 쉽게 공유해주는 분이 없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예전엔 솔봉에서부터 시작한 시절이 있었다고요.^^
여러 선배님들 정보를 취합하고, 희망하셨던 바람대로 최대한 지맥길로 진행했습니다. 띠지 도움도 많이 받고 고마웠습니다.^^ 감사합니다.
도솔지맥 1구간 고생하셨습니다~
저는 2구간을 한곳을
1구간으로 종주을 하시니 무름은 괜찬으신지요~
저같으면 무름이 퉁퉁 부엇을 텐데유~
어째든 수고하셨습니다~
퐁라라님의 힘든 산행기에 옛추억 되색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안.줄산을 응원할께유~()()()
법광선배님!
이번엔 장거리임에도 짐이 가벼웠고,
비박을 하며 야밤에 쉴 수 있어 수월한 편이었구요.
추곡약수에서 둘쨋날 비박하는데 친구가 그러더군요. 자면서 낑낑~ 거렸다고...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프니 저도 모르게 앓는 소리가 나왔나봅니다.
하지만 자기 일어나니 속력은 나지 않지만 갈 수 있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도솔지맥을 언제 하셨고, 구체적으로 어떤 추억이 남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퐁라라님 산행기 보면 숨이 턱 막힙니다. 사람마다 각기 재주가 다르다지만 타고난 체력 부럽습니다. 저도 내년4월경 성골지맥 하러 양구에 갈 예정인데 양구시내 저렴한 여관방 및 아침 식사 하는곳 공유 부탁합니다
레드벅선배님!
성골지맥은 이제 돌산령 가는 곳에서 시작해 비득고개를 넘어서지 못할것 같습니다. 도솔산에서 성골지맥 첫 구간 도로에 내린 이후로는 부대에서 철대문을 만들어 시정장치를 해두어 부득이 도로를 따라 내려서야 할듯 합니다.
부대에서 양구시내 택시기사에게 어느 손님을 태워줬느냐고 사진가지고 대조작업까지 한답니다.
원래 비득고개는 DMZ에 해당했는데 북한에서 자꾸 앞으로 당겨 우리도 DMZ를 앞으로 당기는 바람에 민통선이 완화된 지역이라는군요.
성골지맥의 수입천은 잃어버린 동네 양구군 수입면 문등리, 금강산 가는 동네에서 내려오는 모양입니다.^^
양구시내 저는 신라모텔에서 숙박했습니다. 그나마 젤 저렴했습니다. 식당은 양구터미널 앞에 식당이 두군데 있고, 문을 열지 않으면 가까운 GS편의점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이번에도 레드벅선배님 산행기에서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돌산령까지 걸어서 갈 예정이라 숙박업소 불나겠네요. 일단 올라가면서 철대문 옆에 개구멍 없으면 도솔산이나 타고 내려서고, 개구멍 있으면.....
개구멍으로 통과하게 되더라도,,,
비득고개에 군부대 1개 소대가 주둔하는데 그 부대 울타리에 cctv가 있나봅니다.
부대에서 군형법으로 고발하면 벌금이 씨게 나온답니다. ㅋ 아무튼 조심해서 다니십시요.^^
도솔지맥하면 우리는 추곡약수터 화장실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때가 엄청추운 겨울이였는데요.
화장실 근처에서 텐트를치고 저녁을해 먹고 화장실을 갔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텐트를걷어 치우고 화장실바닥에 매트한장 깔고 누우니 호텔이 따로 없더군요.
뜨끈하게 잘자고 나왔습니다.
성골지맥은 우리가 갔다가 마지막으로 걸리고 감시가 엄청 심해졌나봅니다.
조사받고 경찰이와서 지구대로가서 신원조회하고 돌산령에 차가 있다니까 돌산령까지 태워다 줍디다.
다시 학령으로 이동해서 성곡령까지 진행을했습니다.
부뜰이운영자님!
친구가 보초서고 추곡약수터 화장실에 히터 켜두고 샤워했습니다.^^
다 좋은데 부근에 가게가 없어요. 그게 단점이구요.
옆집 동네아줌마가 아침에 청솔 하더군요. 누구 이용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저희는 추곡약수터 바로 아래까지 올라가 다리옆에 텐틀 쳤습니다.
겨울에 운수현에서 끊고,
북산치안센터로 내려갔는데 차가 끊겼다면 숙박업소도 없으니 추곡약수터 장애인화장실이라도 헤헤~^^
운수현에서 추곡약수터까지 걸어서는 가기 힘든 거리였습니다. 고맙습니다.^^
도솔지맥 출발부터 삼일간의 여정이 고스란히 배여있습니다.
74.5km 장도를 주야없이 걷고 걸은 결실입니다.
우리 산하 정말 멋진 곳이죠.
봉화산, 사명산의 조망이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군부대 통제구역도 잘 지나야 하고 용늪도 잘 보입니다.
언젠가 대암산 정상석을 설치하려고 하던 때도 있었는데 아쉽게 무산되었지만~
수고해 주신 멋진 여정담을 즐감합니다.^^
감사합니다. 방장님!
수도권인지 알파산악회인지는 가물가물하지만
그분들과 인제군청에 허가를 내고 해설사를 따라 대암산에 올랐을 때 집채만한 바위 덩어리만 엉겨져 있고 변변한 정상석도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낙남정맥 대암산에는 디따시 큰 정상석이 있던데 말이죠....
그곳에서 펀치볼도 내려다보고, 어떤 분이 서화면 쪽을 가리키며 삼청교육대를 운영했던 군부대라고 말씀하신 기억도 나네요.
KT 마이크로통신탑을 지나 무난하게 1등삼각점 확인하고 뒤돌아서서
ASF울타리를 열고 위병소로 내려가 군부대를 통과했구요.
용늪통제소는 코로나-19로 운영하지 않으니 직원들도 출근을 하지 않는건지 텅 비어 있어서 곧바로 지맥능선으로 올라섰습니다.
전방이라 봉우리마다 모두 벙커가 자리잡았는데 1967년에 공사했다는 벙커위에 나무가 굵더라구요.
가을색이 물드는 도솔지맥 마루금 걷기에 좋았습니다만 시종 비장감이 앞섰습니다. 감사합니다.^^
산냄새가 물씬 묻어나는 산행기네요.
고민 많이 하고 거기에 땀을 흥건하게 쏟은 흔적이 곳곳에 보입니다.
올리신 조망사진 중에 아주 빼어난 컷이 여럿 보입니다.
도솔산 조망처에서 바라보는 북한 지역 능선들,
국토정중앙면에 들어서면서 찍은 은은한 석양 사진,
봉화산에서 바라본 사명산, 뒤돌아보며 찍은 봉화산 사진.....
좋은 사진 구경하면서 내적 힐링이 물밀듯이 몰려오는 걸 느꼈습니다.
훌륭한 친구분을 두셨습니다.
물론 그만큼 친구에게 잘하니까 친구분도 그렇게 하리라 짐작하지만
쉽지 않은 찐한 우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물 보충할 수 있는 장소에 대한 소중한 정보 감사하게 챙겨갑니다.
가슴 속에 산이 살아 숨쉬는 퐁라라님,
가슴에 산을 품기 위해선 피지컬 유지가 우선이니,
늘 건강한 일상을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즐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범산선배님!
한때는 동창회 총무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해봤지만 부질없는 짓이더군요.
그 이후론 사람간의 관계에 크게 공을 들이지 않는 편입니다.
이 친구는 고흥 점암면 저수지 옆이 고향인 고딩친구입니다.
추곡약수터에서 저하고 밤늦게까지 얘기하고 싶었다는데 텐트로 쏙 들어갔다고 서운했답니다.
저는 산줄기를 종주하기 위해 친구를 만난 것이고,
친구는 산줄기가 먼지는 잘 모르고 지원한다는 마음보다는 친구와 추억을 만들고자 하는 맘이 더 강했습니다.^^
물 보충하는 곳 중에 문바위에서 수인리로 내려서는 지점에 옛 절터가 있답니다.
문바위 계단을 내려선 아래 지점에서 지맥은 우측 추곡약수터 방향으로 가고,
수인리로 조금 내려서는 옛 절터에 석간수가 콸콸 나온다는데 확인하질 못했습니다.
한여름에 여기서 보충이 가능하다면 물이 있는 건천령까지 충분히 갈 수 있는 곳입니다.
16, 17일 연속 야근을 하고는 골골 거리다 조카들 불러 쇠주한잔 나누니 기력이 조금 회복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