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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자료>
코닉세그를 방문한 것은 작년 12월 초 핀란드에 비즈니스 때문에 갈 일이 생겨 들러게 되었다. 사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이미 크리스티안
본 코닉세그와 이메일로 연락해서 이런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이메일에서 상당히 겸손한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도착할
즈음엔 그는 두바이 모터쇼에 참가 하는 것 때문에 함께 할 수 없을 거라고 미안함을 이메일에 함께 담았었다.
핀란드에서 코닉세그로 떠나기 전에 코닉세그 마켓팅 팀장 패트릭과 연락해서 최종적인 도착일정을 정하고 몇 칠이 지나 새벽에 헬싱키
를 출발해 스톡홀롬을 거쳐 코닉세그가 있는 안겔로이홈에 공항에 도착을 했다. 이 공항의 크기는 진주 사천공항보다도 더 작았다. 패트
릭과 사전에 이야기를 주고 받았기 때문에 누군가가 나를 마중 나와 있을 거라고 판단하고 공항에 들어 서자 마자 주위를 두리번거렸지
만, 내 이름이 적힌 카드는 볼 수가 없었다. 바빠서 못 나왔으려니 하고 출구를 나가려고 하는데 입구에서 누군가 급하게 공항 안으로 들
어가는 모습을 보자마자, 누굴까 하는 정답을 찾는 내 직감이 훨씬 더 예리는 해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그냥 택시를 잡고 코닉세그로 가자고 했다. 택시 드라이브는 아니나 다를까 코닉세그의 화재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소방차가 몇 대가 오고 제법 큰 화재였다고 했다. 다 알고 있는 이야기였지만, 코닉세그의 세계로 미리 빠져 들기 위해 그의 말을 끊지 않
았다.
5분이 지나 벌써 어떤 공원에 도착해 있었다. 오는 길은 농촌의 스산한 겨울 풍경이었다. 몇 마리의 젖소가 안개로 습한 들녁에 풀을 먹고
있었다. 공원입구엔 어떤 단지처럼 공원내의 건물들의 위치를 알려주는 간판이 있었다. 택시 드라이브는 한 번 내려서 보더니 찾아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간쯤 들어 갔을 땐 헤메기 시작했다. 결국 한 바퀴 더 돈 뒤에 공군비행장의 모습을 찾을 수가 있었다.
택시에서 내리자 주변에는 BMW 한 두 대가 있었고 탁 트인 공군비행장이 눈앞에 들어왔다. 이 곳을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아까 언급
했다시피 화재가 나서 여기로 옮기게 되었고, 이 비행장은 스웨덴의 남부 영공을 지키던 전투비행대대 Squadron의 비행장이고 JAS 39
Gripen fighter가 주 기종이었고, 코닉공장은 그 전투기를 서비스하던 곳이었다. 정치적인 이유로 이곳을 3-4년 전에 페세하였다
고 했다. Squadron 비행대대을 상징하는 그림이 있는데 아래 그림과 같이 고스트이다. 이것은 코닉세그 CC의 사징이 되기도 한다. 코
닉세그 문에서 서승이고 있으니 본 코닉세그의 부인 도라가 그의 아들과 함께 문을 여러 주고 나를 반가이 맞이했다. 아이 이름이 생각 나
지 않치만 상당히 수줍음이 많았던 것 같다.
도라는 패트릭이 마중을 나갔다고 얘기했다, 그래서 난 서로 엇갈린거 같다고 얘기하고 나서 바로 패트릭이 들어 왔다. 우리는 화재에 대
크리스티안 본 코닉세그에 의하면 화재 이후에 양산을 빨리 하기 위해 급히 모든 장비를 재정비 해야 했는데, 그것은 미국시장을 위한 미
국차량승인을 맞추는데,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의도했던 대로 많은 작업을 해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원래 모습과
같기를 바랬지만, 결국 다른 모습으로 변해 버린 것이였다.
그리고 새로 등장한 강자 부가티 베이론과 부가티 베이론에 대해 고든 머레이가 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등등 패트릭과많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머리속에 남은 건 코닉세그가 무게당 마력비가 톤당 700hp으로 부가티 베이론의 톤당 531hp 보다 낫다는 것이
다. 즉 이 말은 가속력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그리고 2004년 2월 28일 멕라렌 F1의 세계기록을 가져 갈 당시의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
러면서 사무실 내부를 구경 시켜 주었다.
내가 간 시기가 크리스마스가 얼마 안 남아서 였기 때문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주방을 은은하게 했다.
모든 에너지를 한 곳에 쏟을 수 있게 하기 위해 거실, 각 엔지니어들의 룸과 미팅 룸의 색상을 아주 온하하게 잘 처리했다.
이 곳은 코닉세그 기술의 심장부를 맡고 있는 엔지니어의 방이다. New Ford GT개발에도 핵심인물이였다.
제가 언급을 하지 않고 지나 간 것이 있는데 아래 사지에 보면 검은 셔처를 입은 사람이 보인다.
이 사람이 로리스 비코치(Loris Bicocchi)이다. 코닉세그CCR을 가지고 신기록을 수립한 사람이다. 이 드라이브는 상당히 인지도가 있는
테스트 드라이브 중에 한명이다.
그의 케리어를 보면 그 시작을 람보르기니와 함께 했다. 그 때 포지션은 실험실의 기능공이였고 그 후에 차량 테스팅으로 옮긴다. 그 후에
부가티에 합류를 하고 EB110과 EB112의 제작 당시 테스트 드라이브 팀장을 맡은바 있고 부가티 스포츠 컴페티션에 모나코 레이싱
팀으로 레이싱을 펼치기도 했고 미셀린과도 밀접하게 일을 했다.
코닉세그의 효율적인 디자인과 컴팩트함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즉 군더더가 없고 높은 성능과 속도를 위해 진정 필요한 것을 잘 다듬은
차량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코닉세그에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는 직원들의 개개인 사진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공장 내부로 향했다. 공장의 내부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코닉세그을 간략히 알아 보면 1994년 Koenigsegg
Automotive AB를 현 CEO인 Christian Von Koenigsegg가 설립했다. 그 당시 나이는 22살이였다. 패트릭에 의하면 그는 19살의 나
이에 치킨사업을 해서 많은 돈을 벌었다고 했다. 그는 20대 초반부터 머리가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눈섭엔 문신이 그려져 있다고 하는
데..왜 이야기가 이렇게 삼천포로..
1995년 첫 프로토타입이 만들어 지고 코닉세그 CC8S 는 2000년 파리 모터쇼에 등장한다. 그 이후 세계 최초로 2002년 9월 국내에
CC8S가 상륙하다. 그 당시로선 국내시장에 10억원대의 슈퍼카가 들어 온다는 것은 센세이션럴 한 이벤트였다. 하지만 국내에 들여오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그리고 좀 더 파워풀한 CCR 버전은 2004년 제네바 모터쇼에 런칭된다. 2002년에 CC8S의 거의 가까운
버전을 시작으로 해서 실질적인 판매를 개시 했는데 내가 갔던 2005년 12월까지 25대가 만들어 져 거의 다 고객의 손에 넘어갔다. 미
국기준을 통과한 상태이고 월드 탑 스피드 기록을 깨었으니 오더는 앞으로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탑기어에 CCX 미국버전이 소개되면서 메인스트림에서 변화를 가져온다. 미국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 많은 부분이 업그레이드 되었
다. 탑기어 촬영 도중 드라이브 Stig가 CCX를 몰 다가 코너에서 트렉을 벗어나는 사고를 낳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리어윙의 부족이 적절
한 다운포스의 발생시키지 못하게 됨으로써 코너에서 슬립을 가져온 것이였다. 하지만 곧바로 영국에서 코닉공장의 보내져 앞 범퍼를 갈
고 나머지부분도 수리하고 리어윙을 장착시킨 채 2주 후에 복귀 후 좋은 랩 타임을 기록한다. CCX는 Competition Coupe X를 나타낸
다. 이것은 코닉세그 10주년과 첫 프로토 타입 테스트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고 코닉세는 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참고로 Konigsegg는 스웨덴 말로 우리말로 해석하면 "칼 날"을 뜻한다.
아래 사진은 공장에 있는 프로토타입 이전의 엔진이 없는 Mock Up이다. 주로 통풍실험과 쇼카로 활용된 케이스이다. 아래 목업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상당히 바디자체의 흐름이 유연하다. 그 얘긴 공기저항 cd가 상당히 좋다는 얘기다. 포르세나 페라리 람보르기니 보다 낫
다.
현재 CCX의 엔진은 슈퍼차져 4.7리터 V8인데 포드가 일부 터치 했다기 보단 코닉세그에 의해 완벽하게 탄생된 새로운엔진이다. 미국판
매를 목표로 했기 때문에 91옥탄 가솔린용이고 806마력을 뽑아낸다. 만일 유럽 가솔린기준이라면 860까지 올라간다고 크리스 본 코닉
세그는 말한다.
엔진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해 보자면, 알파로메와 페라리에서 수년간 엔지니어 팀장으로 일했던Carlo Chiti가 만든 12실린더 박스 엔
진에 대해 코닉세그에선 1999년 특허권과 양산에 필요한 툴과 설계도를 확보하게 된다. 이 엔진은 원래 포뮬러 원 차량용이었고 코닉세
그 CC 혈종들을 400km/h까지 확보 하기 위해 계획 된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포드 GT에도 쓰인 포드 머스탱 슈퍼
차저 V8 엔진을 입양 후 다시 개조를 해서 장착 시키게 된다. 하지만 이 엔진은 코닉세그와 같은 슈퍼카에는 어울리지 않는 엔진이다. 슈
퍼카라고 불리기엔 모자란 영국의 값싼 미들급의 스포츠카에 적합한 엔진인것 처럼..
해서 코닉세그에 걸맞지 않은 엔진이란 것을 인지하고 계속 업그레이드 시켜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CCX엔 순수한 혈통을 스스로 찾은
엔진으로 태어난다.
루프 부터 해서 리어까지 바디를 만드는 FRP몰드
아래 사진은 모양에서도 알 수 있다 시피, 윈드 스크린과 대시보드 인스트류먼트 판넬 부분의 프레임이다. 들은 예기에 의하면 본 코닉세
그가 여기에 올라가서 굴려도 끄득없었다고 한다. 코닉세그 새시 모듈은 21겹의 카본파이버 천 덕분에 겨우 62kg 밖에 나가지 않는다.
그 강성은 28,100 Nm/degree인데 포르세 996 터보 컨버트벌과 비교해 보면 11,60Nm/degree. 아시다시피 코닉세그도 부분적으로
컨버트벌이다. 루프를 탈부착 할 수 있는 형대이다.
참고로 포르세 911 터보의 강성은 27,000Nm/degree이며 컨버터벌이 아니다.
과도 안전성( safety 가 아닌 stability)과도 직결된다 . 당연 stability에 있어 더 중요한 것은 패키지다. CC8S의 모노코그와 그외 부품
들의 품질은 볼보의 설비를 이용해 충돌테스트를 거치면서 충분히 검정된 바있다. 충돌테스트 당시 테스트된 차 중에 가장 안전한 차라
는 결과가 나왔다. 카본 파이버는 철보다 4배가 가볍고 3배가 더 강한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무거운 차량보다 더 적은 운동에너지가 들
기 때문에 파워 그자체는 놀랄만하다.
렌 F1처럼 성능이 우수한 스테레오 시스템이라던지 주차거리 제어시스템, 고객의 이름이 운전석에 새겨 지는 것 등의 60%가 고객의 취
향에따라 선택 되어 진다.
실린더 헤드 커버. 지난 번 오토스파이에서도 언급 한 바 있지만 이 부품은 아직 적용이 된 것이 아지만 비지니스측면을(레이싱+그와 관
련된 산업) 보고 코닉세그에서 투자해 만든 것이다. 이 부분을 제작하기 힘든 이유는 레이싱 엔진에서 오는 특수성때문이다. 고열과 기름
등등..카본 파이버는 이런 부분에 아주 민감한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자동차매니아이자 사업 수완이 뛰어난 크리스티안 본 코닉세그로
선 분명 단순한 부품이용적인 면만을 고수 하지 않을 것이다.
연료 통인데 2개로 분리가 되어 있고 모노코크 새시에 통합되어 있다. 우측에 하나 좌측에 하나로써 분리된 형태. 모양에서도 알 수 있다
시피 낮은 정반대의 관성 모메트를 가지고 있고 무게 분배를 신경쓴 디자인이다.
엄청난 포스의 타이어.
19, CC8S는 리어 프론트 둘다 19인치이다.
2005년 5월경에 부가티베이론에 의해 깨어지긴 했지만(400km/h로 공식기록이 나왔도 독일 폭스바겐 트렉 Ehra-Leissen 트렉에서
만들어진 것, 이 트랙은 멕라렌 F1이 기록을 수립한 곳이기도 하다. 특징은 총 21키로 인데 양쪽에 9키로 직선코스와 2키로의 코너로 이
뤄져 있다.), 만일 이곳에서 코닉세그가 달리게 되면 다른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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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흠흠... 공장 내부가 조금 어눌해 보이기도하고..... 생각보다는 규모도 조금 작은듯해요.
이 회사 대주주가 한국사람이라 하던데요. 발전하는 회사가 되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