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악산(母岳山) 금산사(金山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전북 김제시 금산면 모악15길 1
1. 사찰 연혁
금산사는 백제 법왕1년(599년)에 나라의 복을 비는 자복사資福寺로 창건된 것으로 전한다. 금산사가 대사찰의 면모를 갖춘 것은 통일신라시대 진표율사가 주석하며 시작되었다. 진표율사는 미륵전을 짓고 미륵장륙상을 조성하였다.
후삼국시대에 금산사는 다시금 역사서에 등장한다. 후백제의 군주 견훤이 아들 신검 등에 의해 금산사에 감금되었다가 탈출하여 왕건에게 투항하였다는 내용이다. 금산사에는 ‘견훤성문’으로 불리는 개화문과 석성 등 견훤과 관련된 유적이 전하고 있다.
법상종(法相宗)은 유식사상(唯識思想)과 미륵신앙을 기반으로 성립된 종파다. 고려시대 11세기 초 법상종은 목종과 현종 이후 왕실과 관련을 맺으면서 크게 융성하였다. 이 시기에 법상종의 대표적인 사찰인 금산사 또한 중흥하였다. 혜덕왕사(1038-1096)가 금산사에 주석하는 동안 금산사는 최대의 전성기를 맞는다.
조선시대 금산사는 임진왜란 때 호남지역 의승군의 중심 사찰이었다. 호남의 의승군을 이끈 처영대사는 금산사에서 출가하였고, 후에 묘향산으로 가서 서산대사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처영대사는 사명대사 유정과 함께 서산대사의 2대 제자로 일컬어진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금산사 가람은 대부분 인조 13년(1635)에 이르러 복원된 것이다.
1935년 3월 큰 화재로 미륵전 본존불이 전소되었다. 공모전으로 일본 동경대에서 수학한 김복진이 당선되어 복원불사가 시행되었다. 김복진은 서양 조각을 공부한 근대 조각가다. 그는 새로운 재료인 석고를 이용하면서도 전통을 계승한 미륵대불을 완성하였다. 1961년에 금산사의 주지로 부임한 태공 월주 스님(1935∼2021)은 미륵전을 비롯하여 많은 불사를 이루었고 여러 스님의 노력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2. 국가지정문화재
미륵전(국보 제62호)
대적광전(보물 제476호였지만 화재로 보물해제), 대장전(보물 제827호), 노주(보물 제22호), 석련대(보물 제23호), 혜덕왕사 진응탑비(보물 제24호), 오층석탑(보물 제25호), 방등계단(보물 제26호), 육각다층석탑(보물 제27호), 당간지주(보물 제28호), 북강3층석탑(보물 제29호), 석등(보물 제828호)
<국보>
- 금산사 미륵전(국보 제62호)
미륵전은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부처님이 불국토 용화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상징화한 법당이다.
미륵전은 신라 경덕왕 21년(762)부터 혜공왕 2년(766) 사이에 진표율사가 가람을 중창하면서 미륵보살에게 계를 받았던 체험 그대로를 가람에 적용하여 세웠다.
안에는 미륵장륙상을 본존으로 모셨으며 남쪽 벽에 미륵보살과 지장보살에게서 계를 받는 광경을 벽화로 조성하였다.
현재의 미륵전 전각은 정유재란 때 불탄 것을 조선 인조 13년(1635)에 수문(守文)대사가 다시 지은 뒤, 네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3층 불전으로 각층 마다 다른 현판이 걸려 있다. 1층에는 ‘대자보전大慈寶殿’, 2층에는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에는 ‘미륵전彌勒殿’의 현판이 걸려 있다. 미륵전의 내부는 3층 전체가 뚫려 있는 통층이다. 중앙에 거대한 미륵삼존불상을 모셨다.
미륵전의 내벽과 외벽에는 사이 사이에 수많은 벽화가 그려져 있다. 보살과 신장 그리고 수도하는 모습 등 다양한 벽화는 건물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한편 오른쪽 벽에는 1890년(고종 27)에 조성한 제석천룡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지금도 남아 있는 불단 아래의 거대한 청동대좌는 정확한 조성 시기를 알 수 없지만 잦은 소실과 복원의 과정에서도 오랜 세월 동안 변함없는 그 자리에 있으면서 여러 불상을 받들고 있다.
미륵불 본존은 높이가 11.82m이고, 협시보살은 8.79m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이다. 통일신라시대 진표율사가 미륵전을 조성할 당시에는 3년간에 걸쳐 완성한 미륵장륙상 한 분만 모셨다. 그 뒤 조선시대에 수문대사가 다시 복원 조성하면서 소조 삼존불로 봉안했다.
그런데 1934년에 실화로 일부가 소실되었다. 1938년 우리나라 근대 조각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김복진(金復鎭, 1901~1940)이 석고에 도금한 불상을 다시 조성해 오늘날의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본존불 양 옆의 협시보살은 왼쪽이 법화림(法花林) 보살이고, 오른쪽이 대묘상(大妙相) 보살이다. 협시보살 좌우에는 언제 봉안하였는지 모르는 또 다른 불상이 있다. 본존의 협시보다 약간 작지만 역시 금을 입힌 소조상이다.
<보물>
- 금산사 노주 (보물 제22호)
대적광전 오른쪽에는 독특한 형태의 노주(露柱)가 있다. 노주란 ‘노반지주(露盤之柱)’의 줄임말로서 처음에는 전각의 정면 귀퉁이에 세우는 두 개의 장대였다가 나중에 탑의 상륜부를 구성하는 부재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는 탑의 일부인 이 노주가 왜 별도의 조성물로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가 없다.
사중 기록에 보면 ‘노주’는 잘못된 명칭이고, ‘광명대(光明臺)’로서 미륵전 앞에서 미륵불에게 광명을 공양하던 석등이었다고 한다. 이 말이 맞다고 한다면 지금의 모습은 불을 밝히는 곳인 화사석(火舍石)이 없어진 상태가 된다. 고려시대의 조성 기법을 간직하고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 보물 제22호로 지정되었다.
- 금산사 방등계단 (보물 제26호)
계단(戒壇)이란, 계(戒)를 수여하는 의식을 행하는 곳이다. 방등(方等)은 위·아래 사방으로 평등하다는 뜻이다. 방등계단은 스님과 재가 신자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수계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계단이다.
한편 방등계단의 성격을 도솔천(兜率天)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즉 미륵신앙의 근본도량인 금산사에는 미륵의 하생처로서 미륵전을 조성하고, 그 위에 도솔천을 구현하여 미륵상생신앙을 나타냈다는 말이다.
<참고>
https://www.geumsans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