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넘어서
심현숙
KBS TV 방송(11월5일자)에서 ‘아침마당’을 시청하던 중 ‘밀알선교단’의 창시자 이재서총장님(총신대)을 만나게 되었다. 그분은 놀랍게도 소경이시다. 빈농의 가정에 태어나 소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하던 중 15세에 갑자기 시력을 잃게 된다. 빛 한 줄기도 감지할 수 없는 전맹(全盲)이 되어 세상이 온통 암흑으로 변해버린다. 그러나 서울맹아학교는 절망적이었던 그에게 또 다른 꿈을 꾸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곳에서 훌륭한 선생님들을 만나 좋은 말씀을 듣고 교육을 받으며 고3 때 기독교신앙을 받아드린다. 어릴 적 꿈이었던 작가가 되기 위해 대학 국문과에 지망하려고 준비했으나 학비가 없어 포기하고 만다. 고향 순천으로 내려가 2년을 보내면서 다시 도전을 한다. 드디어 신학대학에 합격하여 어렵사리 형님의 도움으로 대학을 마친다. 권익인권운동과 사회복지에 대한 공부를 하기 위해 미국유학을 떠나 10년 후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따 귀국하게 된다. 그 후 총신대에서 사회복지정책과 교수로 25년간을 재직하다 퇴직을 준비하던 중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불과 5개월 전이다. 이총장님을 통해 듣게 된 그분의 인생사는 한 순간도 순탄하지가 않았다. 본인이 실명되지 않았다면 교육의 기회는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씀도 하셨다. 그분이 얼마나 겸손하고 긍정적이며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계신가를 엿볼 수 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무한도전 앞에 늘 길은 열렸고 이분에게 넘지 못할 벽은 없었다. 장애자라는 편견과 가난의 벽을 넘어 자기의 뜻을 성취한 위대한 인물이다. 자기의 삶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인내 그리고 도전이라고 했다. 나는 이렇게 훌륭하고 멋있는 사람과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데 감격스럽다. 장애인인권을 위해 젊음을 바치신 그분,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계 곳곳에서 밀알선교단의 활약이 활발한 걸 보면 얼마나 꾸준히 애정을 갖고 노력한가를 알 수 있다. 현재도 총재직을 맡고 계시다니 참으로 든든하고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많은 벽을 만나게 된다. 그 때 벽 앞에서 주저앉아버리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벽을 뛰어넘는 사람도 있다. 벽을 넘지 못한 사람이나 넘는 사람 모두 벽 앞에서 주저앉고 싶은 마음은 어찌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요즈음 ‘4모녀 자살’ 또는 ‘일가족 자살’등의 끔직한 사건들을 한국 뉴스에서 듣게 된다. 마음이 찹찹하고 아프다. 이런 일은 비단 한국에만 있는 일은 아니다. 20 여 년 전 이곳 밴쿠버에서도 온 가족 자살사건이 발생해 한인사회를 경악하게 한 적이 있었다. 우리 모두의 책임인 것 같아 왠지 미안하다. 얼마나 어둠속에서 출구가 보이지 않았으면 그런 극단의 일을 택했겠는가. 안타깝기 그지없다. 난 얼마 전 지인들과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갔다. 옆에 앉아있던 한 분의 왼쪽 팔에 자주 빛 혈관이 두 개나 길게 솟아있는 걸 보게 되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 순간 그분이 오랜 시간 투석을 했다는 사실이 머리를 스쳤다. ‘투석을 하면 이렇게 되는가?’ 이리 되도록 무심했다는 마음에 죄스러워 그 분을 꼭 껴안았다. 일주일에 3번씩, 5년이 넘게 투석을 하다 보니 연약한 팔에 혈관이 조금씩 부풀어 올라왔지 싶다. 일 년 전 신장이식수술을 받고 지금은 감사한 마음으로 나날을 살고 있다고 한다. <그 동안 좌절하면서 주님을 원망도 해보고, 고통스럽고 아픈 시간을 살아온 삶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러다가도 기도하면 늘 감사해 눈물이 났어요. 내가 뭐 길래 그 고통을 당하시면서 나를 대신해 돌아가셨는가. ‘나 보다 더 힘든 사람도 있을 텐데…’하면 위로가 되었지요. 모든 걸 품고 받아드리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아무도 없는 공원묘지에 가 한없이 울고도 싶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다보니 이런 좋은 일도 있네요.> 힘든 나를 위로해주려고 보낸 문자 중 일부분을 발췌했다. 이 글은 나의 고백, 아니 힘든 모든 이들의 고백이기도 하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아픔과 고통을 반려자처럼 안고 산다. 고인이 되신 어머니는 생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겉으로는 좋아 보이지만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천 석궁은 천 가지 걱정, 만 석궁은 만 가지 걱정을 달고 산다는 말이 있다. 걱정 없는 사람은 없으니 어떤 일에도 좌절해서는 안 된다”라고. 그렇다. 고난 없는 삶이 어디 있겠는가. 어느 날 갑자기 나도 낯선 벽 앞에 서 있었다. 교통사고로 인한 남편의 전신마비라는 캄캄한 벽 앞에 주저앉을 수도, 펑펑 울 수도 없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마음 약해지면 내 가정은 누가 지킬 것이며, 내가 울고 있으면 내 남편은 누가 돌볼 것인가’하는 불안한 마음에 한 시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15년을 살아왔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삶이라면 피하지 말자’라며 받아드리고 그 안에서 행복과 의미를 찾으려 오늘도 노력한다. 우리는 인생의 거대한 벽 앞에서 수 없이 좌절하고 넘어진다 해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설 용기가 있다면 결국은 그 벽을 넘어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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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많은 벽을 만나게 된다
그 때 벽 앞에서 주저앉아버리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벽을 뛰어넘는 사람도...
이 분에 대한 이야기를 방송에서
본 적이 있고 참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다시 그 분의 괘적을 찬찬히 읽어보니 가슴에 촉촉히 젖습니다.
이른 아침 좋은 글을 만나 감성을 충전하는 이 행복~
감사합니다.
마음에 담아 둡니다. 좋은 글, 마음 담긴 고운 이야기.
자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