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하고 2학기 첫수업에서 정창현 교수님께서 이 블로그를 언급하셨습니다. 우연찮게 들어오게 되었는데 " 열심히 공부하자 " 란 이야기는 없고 유급없는 교수님이라 좋다고, 어떻게 하면 대충대충 할 수 있는지만 있다고. 그나마 맹자수업을 따라오면 실력이 늘긴 한다라고 적어 뒀다고.
그 말씀을 듣고 사실 좀 이 블로그에 대해 반성했네요. 이 블로그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Guide> 인데, 대학생활이 이렇다는 기록만 있을 뿐 학습이든 대학생활이든 어떻게 잘 할 수 있는지는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확실히 맹자수업은 열심히 따라오면 실력이 느는 수업입니다. 저는 東西南北(동서남북)을 쓸 줄 모르는 상태로 입학해서 한자실력도 많이 늘었고, 무엇보다 한문실력은 많이 늘어서, 이제 아이폰으로 적당히 모르는 글자만 검색하면, 해석본없이 맹자를 읽고 있습니다. 제가 이정도 실력을 갖추게 된 것은 맹자를 대할 때 올바른 태도를 견지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문을 처음 대하는 학생이 가져야 할 바람직한 태도랄까 이런 이야기를 조금 풀어볼까 합니다. 이 글에서는 이런 태도에 앞서 제가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편하도록 주변부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그냥 (2)로 넘어가셔도 상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맹자집주(孟子集註)란 어떤 책인가?
우리가 사서(四書)라고 일컫는 맹자, 논어, 대학, 중용은 모두 춘추전국시대의 공자와 맹자, 혹은 공자문파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죠. 맹자는 당연히 맹자의 말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 학문자체가 매우 오래된 것이다 보니 춘추와 전국, 진나라의 통일과 분서갱유, 삼국시대의 전쟁 등으로 필사에 의존하는 당시의 책 제작방식의 한계로 인해, 부분적으로 손실되거나 의도적으로 변경된 부분이 많습니다.
그 와중에도 이들의 사상 자체는 통치이념으로써 근근히 명맥을 유지하다가 송나라 때에 성리학이 주희(주자朱子)에 의해 꽃 피우면서 주자는 이 책들을 자신이 보기에 가장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복원하고, 여기에 주석을 달아 자신의 이론을 펼칩니다. 이렇게 주자의 해석을 거쳐서 사서가 정리됩니다. 즉, 사서라는 개념 자체가 주자의 연구성과인 셈입니다. 이렇게 해서 주자가 이전의 학문적성과, 특히 북송 유학자들의 해석과 같은 주석을 모으고, 여기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는 뜻에서 집주라고 이름붙입니다. 이 사서장구집주(四書章句集註) 는 주자의 가장 큰 학문적 성과로 꼽힙니다. 다시말해 맹자집주는 주자가 해석하고 정리한 맹자가 되겠습니다. 마찬가지로 논어집주는 주자가 해석하고 정리한 공자가 됩니다. 이후 이것이 유학의 정통으로 자리잡아, 그냥 일반적으로 맹자라고 일컫는 것이 이 맹자집주를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링크의 글을 참고하세요.
iPhone 3GS | 1/15sec | F/2.8 | 3.9mm
우리가 쓰는 명문당 맹자집주는 이 책에 대한 조선 유학자들의 교과서와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북송 이후에 많은 유학자들이 중국에서 등장하였으니, 이들은 또 주자의 주석에 대한 주석과 해석을 내 놓습니다. 이 책은 이런 것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와 아울러 우리민족이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한국인을 위한 현토나 언해와 같은 것들을 곁들여 만들어진 책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책을 펼쳐 보면 한글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iPhone 3GS | 1/120sec | F/2.8 | 3.9mm
이 한국인을 위한 교과서도 제가 보기엔 여러 버젼이 존재합니다. 퇴계 이황의 후학들이 만든 도산본, 율곡 이이가 언해한 율곡본 등이 존재합니다. 명문당 맹자집주가 정확히 어떤 본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원문이나 주자의 주석 자체는 다르지 않으나 이것의 한국어 해석에서 미묘한 차이를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런 각 판본의 차이는 우리는 일단 관심없죠. 동양철학을 전공하고, 한국의 동양철학을 깊게 파려면 이런 미묘한 차이도 잡아낼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장(章) ? 구(句) ? 권(券) ? 편(篇) ?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동양고전을 대할 때 접하게 되는 단위인 권(券)/장(章)/구(句) 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하겠습니다.
권(券)은 아시다시피 여전히 쓰이고 있는 책을 세는 단위인데요, 이 단위는 결국 의미상의 단위라기보다는 물리적인 단위인 셈이죠. 맹자집주는 총 14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데, 이 때의 권의 의미는 송나라때의 제책 단위 기준으로 14권이 된다는 뜻입니다. 너무 두꺼워지지 않고 휴대하기 좋도록 전체 맹자집주를 14권으로 분권하였던 것이죠. 맹자집주 권지일 양혜왕장구(상) 孟子集註 券之一 梁惠王 章句(上) 이라고 일컫는다면, 당시의 제책기준으로 한권이었고, 이 권은 전체 맹자집주 안에서 제 1권이며, 권의 제목은 양혜왕장구 편의 (상)이라는 뜻입니다.
장(章)은 이때의 한 권 안에서 의미상으로 나누어지는 이야기의 형태입니다. 문장(文章)이라고 하는 것은 이 장에서 파생되는 단어라고 보아야 할까요? 하나의 권은 여러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물론 한 권내의 여러장들은 모여서 다른 권과는 차별되는 의미상의 집합을 만들긴 하지만, 각 장별 이야기는 이어지지 않습니다. 즉, 1장과 2장의 등장인물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일한 장 내에서 완결된 이야기가 되는 것이죠.
사실 장은 의미상의 분류이고, 권은 형식상의 분류이므로 권이 장보다 상위개념인 것은 아닙니다. 의미상의 분류인 장의 상위개념은 편(篇)입니다. 즉, 양혜왕장구 梁惠王 章句 라고 하면, 편명이 되고 이 편의 길이에 따라 한권이 되기도 하고, 여러권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편은 요즘엔 잘 쓰지 않네요. 어차피 장 중심으로 공부를 하게 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구절(句節) 는 보통 글귀라고 하는데, 굳이 구분하자면 하나의 이야기(章) 속에서 단락 정도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영어, 한국어 할 것 없이 모든 언어들이 이 구와 절의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문법을 처음배울때 동사구니 명사구니, 관형절이니 하는 공부를 다들 했을 겁니다.
한문에서도 이 구와 절의 기능은 대체로 다른 언어의 구와 절과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고문(古文)이 이런 문법적 요소를 구분하여 기록된 것이 아니므로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서 어디까지가 한 구인지 달라지기도 합니다 대체로 한국에서는 주자의 해석을 따라 구와 절을 구분합니다. 경우에 따라 구와 절을 엄격히 구분하여 부르지 않고 그냥 구절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 때 구절은 보통 절을 가리킵니다.
주자의 주석은 대체로 하나의 의미단위를 이루는 절(혹은 구절)을 기초로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주자가 해석하기에 하나의 절을 이루는 부분에 주석이 달리는 것이죠. 더 자세한 논의는 다음 글을 보시면 됩니다. 주자의 주에 대한 후학의 세주 또한 음주가 아닌 이상 비슷한 형식입니다.
정리하면 맹자 원문의 한 구절을 쓰고, 그 다음에 주자가 주석을 답니다. 위의 사진에는 두개의 (구)절이 보입니다.
그럼, 다음 글에서는 명문당 맹자집주의 형식적 요소를 실제로 살펴보고, 독해를 할 때 반드시 알 필요가 있는 지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언제나 그랬지만, 언제 업데이트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
다음글 작성했습니다. 여기로
가져온곳 : http://tinpest.tistory.com/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