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곤증 (koami2013-04)
하늘땅한의원 원장 장동민
‘봄’하면 떠올리는 모습 중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여기저기서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다. 사실 졸음을 견디다 못해 조는 것은 어느 계절이건 마찬가지일 텐데, 특별히 봄에는 ‘춘곤증(春困症)’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만큼 봄철에 대표적으로 많이 나타나는 증상이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이렇게 특정 계절이 병 이름 앞에 붙는 것은 흔치 않기 때문에, 춘곤증의 원인과 기전에 봄이라는 계절이 포함되는 것은 당연한 얘기다. 뿐만 아니라, 치료를 함에 있어서도 계절적인 특성을 분명히 고려해야만 치료가 잘 이루어진다. 오늘은 춘곤증에 대해 알아보자.
잠은 충전이다.
원래 잠은 매우 중요한 생리현상이다. 낮 시간의 활동으로 인해 누적된 피로를 풀고, 다시 사용할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과정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이후 이로 인해 인체에 미치는 악영향이 매우 크다. 즉 제대로 피로를 회복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만사가 힘들고 괴로울 뿐만 아니라 각종 질병이 발생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일전에 화병으로 인해 심각한 불면증에 빠진 환자분이 온 적이 있었다. 어찌나 정도가 심했던지, 진료실에 들어 올 때도 거의 넋이 나간 표정으로 들어왔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진료실에 오기 전까지 3주간을 한 잠도 못 잤다고 했다. 오죽하면 유서까지 쓰고 스스로 삶을 끊으려고 했었다고 하니, 그 정도가 매우 심하다고 할 수 있었다. 사실 진료실에 앉아 있으면서도, 눈이 풀어진 상태로 멍하니 딴 곳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 취하고 있는 행동의 전부였다. 그래서 무려 한 시간 정도의 집요한 설득 끝에, 일단 한약을 한번 먹어 보기로 했다. 필자가‘먹고 죽은 귀신 때깔도 좋다더라.’면서, 이왕 죽을 거 한약 한번만이라도 먹고 죽자고 설득을 했던 것이 주효했던 것 같다. 어쨌든 이후 환자가 2주간 한약을 복용하고 난 다음에 다시 내원하였는데, 정말 확연한 변화가 일어났다. 싱글벙글 웃으며 문을 열고 들어오기에,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냐고 물어보았더니, 하루에 세 시간씩 잠을 자서 기분이 너무 좋다고 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하루에 3시간 밖에 못 자서 잠이 부족하다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환자분은 3주 동안 한잠도 잔 적이 없기 때문에, 이 정도의 짧은 수면만 취하게 되었는데도, 스스로는 너무나 큰 만족을 했던 것이다.
이렇게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면, 삶의 질이 형편없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사망에까지도 이를 수 있는 것이다. 낮에 꾸벅꾸벅 졸게 되는 것도, 당연히 충분한 수면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절대수면시간이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고, 수면시간은 충분하지만 잠의 질이 좋지 않을 때도 생길 수 있다. 요 근래처럼 낮과 밤이 바뀌어 생활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되는데, 아무리 오랜 시간을 잔다고 해도 충분한 숙면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어설프게 충전된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밤을 충분히 자지 못해 수면시간이 부족하거나, 잠의 질이 형편없어 자주 깨서 잠을 설치게 되면, 충분한 충전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낮 시간에 꾸벅꾸벅 졸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밤에 잠을 푹 자게 해주는 것이 치료의 비결이기도 하다.
왜 봄에 그런 것일까?
그런데 사실 밤에 잠을 잘 못 이루는 것은 여름이 더 심하다. 여름철 뉴스를 보면, 더위를 못 이겨 한강 둔치에 나가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 하는 경우가 흔하다. 소위 ‘열대야 현상’이라고 해서, 밤에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더위로 인한 불면증을 호소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밤에 잠을 잘 못 잔 것으로만 생각하면, 춘곤증이 아니라 ‘하곤증(夏困症)’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여름이 아니라 봄이다. 왜 봄일까?
그 대답은 봄의 특성에서 찾아보아야 한다. 봄에는 첫째 바람이 많이 분다. 둘째 따뜻하다. 셋째 새싹과 아지랑이가 돋아난다. 넷째 일교차가 심하다. 언뜻 생각해도 이러한 특성들이 있다. 이 중에서 춘곤증과 관련이 있는 특성은 세 번째 것이다. 새싹과 아지랑이가 돋아나는 것은, 기운이 위로 올라가는 계절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봄철은 모든 기운이 올라가는 때인 것이다. 새싹도 파릇파릇 돋아나게 되며 양지바른 곳에서는 아지랑이가 끊임없이 피어오른다. 겨우내 움츠렸던 개구리도 펄쩍 뛰는 때다. 당연히 사람들도 이 때 모든 기운이 상승해야한다.
그런데 이 때 만약 겨우내 저장을 게을리 해서, 다른 사물에 비해 모아 놓은 기운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게 되면, 인체의 기운만 홀로 부족하게 된다. 당연히 그 사람의 기운만 유독 더욱 딸리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래서 춘곤증이라는 말이 생긴 것이다. 다른 모든 생명체들은 그동안 축적해 두었던 에너지를 바탕으로 열심히 상승하는데, 홀로 기운을 못 따라가 주니 꾸벅꾸벅 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때는 인체의 기운을 올려주어야만 치료가 된다. 그래서 춘곤증을 앓거나 무기력한 증상이 생기게 되면, 가까운 한의원을 찾게 되는 것이다.
가끔 아이의 키를 키우게 하려면, 언제 한약을 먹이는 것이 좋은지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필자는 일반적으로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이 되기 전부터 한약을 쓰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한 시기만 골라달라고 하면 역시 봄을 추천한다. 왜냐하면 봄이라는 계절이, 바로 모든 기운이 상승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린 아이들의 키를 크게 해주고 싶다면 모든 기운이 상승하는 계절인, 바로 이 봄철이 가장 적당한 시기인 것이다. 가뜩이나 새 학기가 시작되어 힘들어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기운도 돋우어 주고, 더불어 키도 크게 해주면 가히 일석이조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계절처방을 사용한다
결국 춘곤증은 충분한 수면이 이루어지지 않아 피로가 누적되었거나, 지난겨울에 에너지가 충분히 축적되지 않아 홀로 기운이 상승하지 못해 생기는 질환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치료는 충분한 수면을 취하게 하거나, 양기를 끌어올리는 처방을 이용하게 된다. 더불어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봄이라는 계절에 처방을 쓴다는 점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보약인 보중익기탕(補中益氣湯)이나 사물탕(四物湯)의 경우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 따라 처방 내용이 달라진다.
보중익기탕의 경우, 봄에는 천궁 방풍 형개 시호 소엽 박하 등의 약재를 가감하며, 여름에는 승마 시호의 양을 배로 늘리고 갈근 석고 맥문동 박하 등의 약재를 추가하며, 가을에는 강활 방풍 형개 창출을 가하고, 겨울에는 마황 계지 건강 부자 등의 약재를 추가하여 처방한다. 또 사물탕의 경우에는 봄에는 천궁을, 여름에는 작약을, 가을에는 지황을, 겨울에는 당귀를 두 배로 처방하기고 하고, 봄에는 방풍을, 여름에는 황금을, 가을에는 천문동을, 겨울에는 계지를 각각 추가하여 처방하기도 한다.
따라서 춘곤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숙면부족과 양기부족을 보충해주면서 봄에 맞는 봄처방을 응용하면 좋을 것이다. 물론 한의원에서는 이에 알맞은 처방을 해줄 것이므로, 춘곤증 증상이 나타나면 가까운 한의원을 찾아가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