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에 대한 상식도 전혀 없었던 나를 주님께서는
불교국가인 스리랑카. 그중에서도 불교성지여서 어떤 선교사도 들어올 수 없는 지역인
폴론나루와로 심으셨다.
그것도 남편이 *** 봉사단원 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외국인도 관광객 이외엔 거주하는 자가 없기에 아주 나를 신기해 했고
금방 원숭이처럼 나의 일거수 일투족이 화제에 올랐고
내가 주일에 교회에 가면 그간 무슨일이 있었는지 성도들이 다 알고 있었다.
처음에 내 방범으로 전도를 했을 때
다음날 중의 손에 내가 전해준 전도지가 전해지고 . ..
전도한 가정에 단속이 시작되고 . . 문제가 제기되자 신변과 신분탄로가 우려되어
방법을 바꿔 현지 사역자를 도와 그들이 하도록 전략을 바꿔갔다.
처음 1년은 스리랑카 현지 사역자를 찾아 함께 동역하며 심방하며 전도하며
그 나라의 문화와 기독교 상황들을 배워갔다.
스리랑카 폴론나루와에서 만난 첫교회가 가두루엘라 교회였다.
사역자와 함께 더 들어간 농촌 시골지역을 심방하던 도중 교회를 짓다 벽만 건축된채 도중에 중단되어
폐허처럼 되어있는 교회터를 맞딱드리게 되었다.
이는 가두루엘라에 함께 와서 예배를 드리지만
2시간 넘게 떨어져 살고있는 농촌교인들이 버스비가 없어 교회를 출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더구나 아이들까지 너무 더운 지역에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님을 목격하고
함께 기도하는 가운데 이 교회 건축을 다시 재건하기 시작하는데
이 지역이 불교세력이 너무 강하며 보이지않게 쉬엄쉬엄 해야한다고 담당 사역자가 귀뜸을 해주신다.
정말로 이 조그마한 교회 하나가 세워지는게 거의 1년이 소비되었고
그 중간에도 여러번의 중들의 공격이 있었지만
어렵게 어렵게 나의 인내를 시험하는듯 한계를 느끼게 하며
그러나 건축을 완공 할 수 있었고 그 교회의 총회장님까지 오셔서 헌당예배를 드리게 되는 영광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농촌지역들을 돌아보던중 그렇게 어렵게 세워진 지역 교회가 얼마나 어처구니 없이
연약하게 허물어지는지 종종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게 믿음이 탁월하게 헌신하고 있는 가정이 갑자기 돌변하여
불상이 그 가정에 떡하니 옯겨져 있지를 않나 . . .
몇십명 잘 모이던 가정교회가 금방 허물어져 해체되지 않나 . . .
세들어 있는 가정교회는 중들이 주인집에 엄포를 놓아 교회를 쫓아내고 . . .
난 선교지에 건물을 남길 생각은 꿈에도 해본적이 없다.
오직 복음! 오직 전도! . .. 에 매진하려 했고
실은 그것밖에 아는 것도 없어 오직 북음증거에만 집중하는 터였으나
스리랑카의 현실이 내 생각을 바꾸게 했다.
적어도 스리랑카에서도 불교 성지인 폴론나루와 지역은
교회가 가시적인 건물로도 존재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함으로 그 부담감이 나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기도하며 그 지역의 사역자들중 리더 몇분을 만나 의논하며
교회건축이 꼭 필요한 곳을 찾아 추진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꼭 그 지역에 교회가 필요한 곳과 사역자를 선별하여
그 지역에서 교회가 훼피되지 않고 , 부흥해 가도록!
그땅에 무수한 우상들과 싸워 이곳에도성령의 불길의 부흥이 타오르길 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교회 건축의 기본 조건들을),
1. 목숨걸고 헌신하는 준비된 사역자가 있을 것.
2. 기도하고 전도하는 성도들이 있을 것.
3. 현재 가정에서라도 예배하는 공동체가 있을 것.
3. 교회를 위해 토지등을 헌신하는 헌신이 있을것,
이런 기본 테두리를 두고 선별하는 과정에서 몇달에 걸쳐 5곳이 추천되어 건축이 시작되었다.
성전건축을 시작하기전 너무도 중요한 과업이 남아있었다.
이 건축으로 성도들에게 복이 되야 하고,
이 건축으로 새새명이 탄생하는 전도의 도화선이 되어야 하는데
내전 30 여년을 지내는 동안 스리랑카는 너무도 받는데 익숙해져 있었다.
우리는 가난하니 너희가 당연히 다 해주어야 한다는 . . . 기대심리이다.
이런 마음가짐으로는 어떤 성령의 역사도 기대할 수 없기에
마음을 먼저 다지기 위해 말씀에서는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전하기위해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사역자들과 교회리더들을 모시고
점심을 대접해가며 며칠간 맥 세미나를 하였다.
결론은 세상에서 복받기 원하는 신앙으로는 이땅에서 믿음을 지키기 어려우니
요한계시록의 결론인 순교를 각오하는 믿음을 준비하자는 외침이었다!
말씀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마음으로 일으키기 원합이 있었는데
주님이 함께 하셔서 그렇게 준비된 리더들의 교회부터 헌신과 기도 모임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순교를 각오하는 마음으로 성전건축이 시작되었다.
처음에 사역자들과 의논하며 시작할때는 크지 않은 사이즈이기에 두달이면 완성된다고
장담하였으나 과정에서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되었다.
한국교회는 재료의 기본경비만 부담하고
스리랑카 성도는 토지와 건축 노동력을 제공하여
성전건축이 한국교회 전담이 아닌 함께 헌신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나도 한국에서 모교회 건축시 허리를 졸라매어 정말 헌신에 헌신을 하며
그것도 모잘라 10의 5조를 작정하여 5년간을 헌금하며
아이들 과외 희생은 물론 팬티 한장 사입을 여유도 없이 . .. .
그러나 너무 기쁜마음으로 기꺼이!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동참한 것이다.
그럼에도 주님은 풍요를 더하여 주셨고.
자녀들도 더 탁월하게 인도해 가셨고,
그런 와중에 새생명을 낳는 전도의 결실은 불일듯 더해갔다.
성전을 건축하며 스리랑카에서도 이런 역사가 일어나길 간절히 소원하였던 것이다.
비교적 지붕을 올리기 전까지는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나
지붕을 올릴 때 쯤 되면 중. 경찰, 공무원들의 방해가 이어졌고
급기야는 몇곳 지역에서는 때려부수는 공격들이 있었고,
두 곳은 법으로 건축 중지가 내려져 법적 투쟁을 해야했다.
심지어 한곳은 너무 중들의 공격이 심해 부지부터 마련하는데 너무도 방해가 심했다.
한참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수도인 콜롬보에서 승려들이 이곳까지 와서
건축하지 않는 예배처소까지 챂아 다니며 공격하였고,
"계속 주일에 예배드리면 가족들을 다 죽이겠다"!고 협박하여
여기저기서 이런 상황을 알려주며 기도와 나의 신변 보호를 단속하였고
시골 건축교회에 내 모습을 드러내지도 못하도록 당부당부 하여 주며 나를 보호해주었다.
시골일수록 저격등의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 . .
이런저런 과정 속에서
공격을 받은 교회들은 더 기도와 금식으로 일어났고
할렐루야! 이 와중에 새생명이 탄생되어지는 기쁜 소식들이 들려진다.
여기는 새새명들이 가족단위로 들어오고,
아이들이 많기에 한가족이 많게는 10여명이 되기도 한다.
주님께서는 기도로 이 새 역사를 이루어가고 계셨다.
나무아래에서 예배드리던 곳(나무아래 교회라 별명)의 성전건축은
땅을 기증했던 가족과 그 어머니의 목숨 건 헌신으로 법정 투쟁에서도 놀랍게 승리하여 완공하게 되었다.
이런 방해속에서 내가 스리랑카를 떠나와야 했던 무렵에
3개 교회가 완공되었고,
바까무나 교회는 지붕을 올리지 못한채 법정 투쟁 상태였고,
메디리기리아 교회는 부지 마련도 방해가 심해 고심을 겪고 있었다.
물론 내가 한국에 돌아와서도 계속 진행하기로 약속 하였고
그 다음의 진행은 훌륭하신 동역인 정은범 선교사님께서 도우셔서
2015 년에 지붕을 올리지 못했던 한 교회가 지붕공사 후 완공하였고,
시도도 못했던 메디리기리아 교회는 건축요청이 와서
그 교단과 협력하여 건축하기로 하고
정은범 선교사님이 확인후 건축 진행이 완료되었다.
참으로 기적같은 역사였다.
올해 봄에는 기도하던중
내가 스리랑카에 있을때 너무 공격이 심해서 시도도 못했던 딤불라갈라의 한교회가 자꾸 떠올라
정은범 선교사님께 부탁하여 그 교회의 정황을 자세히 듣게 되고
건축헌금을 보내어 건축하던 중
또 중들의 공격으로 지붕공사를 못하고 중단되었다 기도로 합심하는 가운데
올해 5월에야 드디어 완공되었다.
그 교회는 바로 근처에 신령하게 여기는 큰 절이 있어 더 방해가 심했고
스리랑카에서도 싱할라가 아닌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지역이라 그곳에서 설교할 때는 통역을 두명 세워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교회 였으나
결국은 주님이 멋지게 승리해 가셨다.
선교사로서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던 그 지역에 친히 주님께서 심기워주셨고,
약하디 약한 한 가정을 심으셔서 그 지역을 소동케 하셨다.
심지어 수도 콜롬보 절에서부터 중들이 와서 방해, 핍박을 하였으나
함께 기도하게 하심으로 사단의 공격에서도 여지없이 주님은 친히 승리로 이끌어가셨다.
감사하고도 감사한 일이다.
주님이 그 땅을 소동케 흔들어 놓으셨고
한교회당 300-500만원의 적은 헌금으로 그들과 협력하여 아담하게 예배처소가
첫해 먼저 시공한 교회까지 7개 교회가 건축되어 주께 올려졌고,
지금도 그들은 어떤 외부의 후훤없이 자립하며 진행됨을 보게된다.
자칫 한국교회가 짓고 한국교회가 계속 보조하는 그런 형태를 보게되는데
어렵고 어려운 시골교회들이 헌신하며 자립하며 나가는 아름다운 모습들을 목격하게 하셨다.
주님이 행하셨기에 주님만을 찬양합니다.
꿈같은 일들을 행하시려 주님은 이같이 부족한 여인도 사용하시는 그 은혜를 어찌 다 말로표현할 수 있을 지 . . .
오직 나를 믿어주시고 그곳에 2년동안 심어주시고! 사용해주신!
놀라우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의 손에 붙들려 있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이름만 불러도 감격이 있고, 눈에는 눈물이 돌고, 감사뿐이게 합니다.
주님! 주님이 행하심을 종이 목도하게 해주심을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런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기에 때론 숨을 쉴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참으로 주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