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시 비정규직 실태조사 스케치
박희정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사무국장
기나긴 마라톤 코스를 완주하고 멀리 보이는 피니쉬 라인을 향해가는 선수의 마음은 어떨까?
시화노동정책연구소가 2014년부터 제기했던 ‘시흥시 비정규직 실태조사’사업이 2년의 우여곡절을 겪고 오는 9월8일 설문조사 마감, 11월 말 연구용역 최종마감을 앞두고 있다.
장시간 레이스의 마무리를 앞두고, 연구소를 후원해주시는 소중한 분들과 다난했던 시간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빼앗겼던 주민참여예산을 다시 찾아오기까지
1986년 반월특수지역으로 선정된 후 조성되기 시작한 시화공단이 그 모양새를 갖추고 가동되기 시작한지 15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업체분포, 종사자 수 등에 해당하는 수치자료 외에 공단에 일터를 두고 있는 사업자, 노동자에 대한 조사는 그 어떠한 것도 없었다.
2001년 공단 옆 정왕동에 터를 잡은 시화노동정책연구소는, 대한민국 최대중소영세 업체 밀집지역인 시화공단 내 사업체,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실태조사와 정책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방정부와 지역사회의 역할을 끊임없이 요구하며 활동해왔다,
시흥 스마트 허브(현 시화 MTV, 개별입지 제외) 면적 16,588㎡ 업체수 11,705개, 127,547명(한국 산단공, 6월 기준)의 종사자에 대한 연구는 실질적인 예산과 인력의 투여 없이는 신뢰도 높은 연구결과를 얻기 어려운 일이다. 그간 연구소는 통계청, 고용노동부 통계발표를 바탕으로 ‘시흥시 임금노동자 및 비정규직 현황’에 연구조사를 지속적으로 해오긴 했으나 ‘노동하는 사람’ ‘당사자’의 목소리를 담는 데는 한계가 분명히 있었다.
시흥시 39만 8천의 인구, 최근 조성된 시화MTV까지 합치면 131,225명(한국 산단공. 6월 준)의 종사자가 포함된 임금종사자 18만여명, 시흥시민이자 노동자인 이들의 일터에서의 삶, 노동조건을 ‘국가사무’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방정부가 나서서 해결할일이 많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지난날들이 많았다.
그 결과, 드디어 2013년 주민참여예산 공모에서 주민들의 투표로 선정된 ‘시흥시 비정규직 실태조사’사업. 그러나 2014년, 이 사업은 ‘시흥시 노동자지원센터’가 설립되면 사업예산으로 편입시킬 것이란 통보를 받는다.
뭐, 이런 경우가? 황망한 심정을 가다듬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심정으로 사업준비를 하고 있던 차에, 더욱 기가 막힌 소식이 날아들었다. 시흥시 의회에서 ‘노동자 지원센터’설립이 부결되고 만 것이다.
시민이 결정한 ‘비정규 실태조사’사업을 의회에서 부결시킨 모양새, 공단도시의 특성을 무시한 노동자 지원센터의 부결이라는 지적과 비판이 잇따랐다.
우여곡절 끝에 2015년 주민참여예산 한마당을 통해 또 다시 주민들의 투표에 힘입어, 이 사업은 예산편성에 성공하게 되고, 드디어 본 궤도에 오르게 된다.
“오늘 갑작스레 숨 막히는 찜통 더위였습니다.
전국적으로 최고기온은 39.8도, 시흥이었습니다”
본격 조사에 착수한 7월 초 어느 날, 그야말로 ‘한증막’이었다. 오늘부터 더위 시작인가 했더니, 시흥은 전국 최고기온을 기록했다.
조사원 6명, 700여개 사업장 조사, 1100여명 국내 및 외국인노동자 설문조사. 업종별, 규모별, 종사상 지위별 구분까지 갖춰야 했으니,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하필 유사 이래 최고 더위를 기록한다는 올해 여름, 7월~9월 초까지 이 미션은 완성되어야 했다.
5000여평 안에서 이글거리는 공단열기를 온 몸으로 받으며 그렇게 한걸음 시작됐다.
첫발부터 녹록치 않았다. 7월은 통계청 경제총조사 기간으로, 시흥시비정규 실태조사 기간과 맞물린 것이다.
“어~ 우리 조사 끝났는데요” “아~바뻐 죽겠는데 귀찮게 또 무슨 조사를 해요”
사업장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날라 오는 멘트들이다.
“아~ 그게 아니구요. 저희는 시흥시에서......”
“그거 하고 이거하고 뭐가 달라요?”
이제부터 시작인데..... 불볕 더위를 뚫고 발갛게 익어버린 얼굴로 사업장 방문을 거듭할수록 “시원한 물 한잔 좀.....”하는 멘트는 ‘분위기 파악’을 위해 미리 숨겨두어야 했다. 타는 목에 마른 침을 삼켜가며 해야 하는 설명과 협조요청은 숨막히게 길었던 폭염만큼 그렇게 이어졌다.
조사에 응했던 사업장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시에서 우리한테 해 준 게 뭐가 있는데 자꾸 조사를 해요....”다. 조사원들에게 항변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답답함을 호소하는 이야기이기에 충분히 공감하고 수긍을 한다.
조사가 끝난 후 조사원들은 입을 모았다. “조사가 끝나면 결과물이 공단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몰라서 조사에 응해주지 않을 거라는 답변도 있었어요. 조사가 끝났는데 반응이 없고 개선이 없으면 다음부터는 이런 조사가 다시는 어려울 것 같아요. 바로 개선할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바꾸겠습니다’라는 정도의 캠페인과 홍보가 필요가 꼭 필요할 것 같아요”라고.
“비정규직 없어요” VS “비정규직인데 물병도 비정규직이네....”
조사원들은 팀을 짜 블록별로 움직였다. 2나~4나, 1나~1바~2다~2바, 3다~3바 크게 3팀이다. 4나~4바는 안산시관할구역이니 조사제외다.
“아니 우리한테는 왜 이렇게 어려운 구역을 주셨어요......”3다~바블럭 담당자 불만이었다.
“아~~죄송해요..그쪽이 소공장들이 많아서 힘드시죠...”
“사업체 리스트 보고 찾아간 곳 중 부지기수가 문을 닫거나 간판이 바뀌어 있었어요...”
“시청에서 확보한 리스트이고 1~2년전 자료로 가장 최근 거예요”
“근데 왜 이렇게 달라진 사업장이 많아요? 문 닫는 곳이야 어쩔 수 없어도 이탈하는 것은 좀 막아야 하지 않나요???”
블록을 거의 훓다시피한 조사원들의 눈은 행정보다 정확했다. 11,000여개 사업장 리스트를 보유하고 있는 공공기관이라 할지라도 매해 정확한 현황파악을 하지 않으면 알 수 없었던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일이 있어야 일용직을 쓴다고 얘기들을 해요. 작은 업체들은 실제 일용직들이 몇 명 있기는 한데 물량에 따라 들쑥날쑥하다고 ....” “50인 규모정도 되는 사업장은 실제 쓰는 경우도 있지만 오늘은 일이 없어서 파견직은 없다고 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일정정도 규모가 있는 사업장 분포도가 있는 몇 군데 지역은, 사업장 조사에서 비정규직 사용비율이 낮게 나오는 경향이 많았다. 현장을 스쳐지나 사무실로 들어가는 조사원들의 눈에는, 비정규직으로 짐작되는 노동자들이 보이는데도 말이다.
“귀찮아서 없다고 하는 곳 많았어요. 사내하청에 대한 질문을 하면 소사장제가 있다고 해서 5번 정도를 재방문해서 비정규직 조사를 한 적도 있어요”
“요즘 불법파견에 대한 기관의 점검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인지, 없다고 하는 경우가 다반사죠. 심지어 이야기 하고 있는 관리자 옆을 지나가는 분이 비정규직인 것 같아서 조사 좀 하고 싶다고 했더니..아니라며 없다고 나가라고 하더라구요”
반면, 2015년 한해 동안 파견업체를 이용한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있다’라고 응답한 비중은 높은 편이다. 그렇지만 올해는 일이 없어서 이용을 안한다는 답변이 주류였다. 가동률의 문제인지, 그 어떤 것의 문제인지 더 들여다봐야 알 수 있는 일이다.
“한국사람들은 자존심 때문에 그런지, 비정규직이라고 스스로 답변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 힘들었어요...심지어 파견회사까지 가봤는데 3군데서 문전박대를 당했어요....”
어렵게 식당에서 만난 비정규 노동자에게 감사의 선물을 드렸다. 휴대용물병이라 요긴한 물건이었지만, ‘비정규직 실태조사’ 인쇄문을 보더니 “비정규직도 서러운데, 물병도 비정규직이네....” 조사원이 미안했다. 괜히...
정규직은 점심시간, 휴식시간 등이 잘 지켜지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러나 점심시간에 식사를 마치자마자 허둥지둥 현장으로 다시 들어가는 사람에게 후다닥 달려갔다. 파견직이었다.
“점심시간인데 왜 이렇게 빨리 들어가세요..?”
“우리는 점심시간이 30분밖에 안돼요”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시간이 없어서 이 또한 조사가 어려웠으나 맡기고 다시 만날 약속을 정한다.
“설문지 작성하는 분위기를 보니까, 고용불안이나 인격모독에 대한 부분에 대해 답변을 주저하더라구요.....자기에게 불이익이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불안 때문이라고...” 절대 무기명이라고 했지만 또 안타까웠다.
“파견업체 통해서 3개월 일 한 다음에는 정규직 시키준다고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아요..”정규직은 교통문제에 대한 불만이 높은 반면 비정규직은 ‘고용불안’이 대부분이었음이 이를 반증했다.
서는 위치가 다르면 보이는 그림이 다르다
외국인 노동자 비중은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동남아 등지에서 취업비자로 들어온 외국인은 언어와 한글까지 통달하고 들어온다. 인터뷰나 설문조사도 원활할 정도로.
조사 결과 과거, 차별과 인격모독에 대한 불만이 많았던 것에 비하면 2016년 현재 인격모독에 대한 불만은 현저히 줄었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월급 평균도 200만원 정도이다.
인식개선의 발전은 있지만, 여전히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으로 임금을 채워가고 있는 현실이다.
밤낮 안가리고 회사 기숙사에서 숙식하며 월급 대부분을 해외로 송금하는 이들을 보고 외화를 유출시킨다고 보는 시각, 밤낮 안 가리고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불쌍하기 한데, 이들의 ‘콜’싸인이 국내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더 후퇴시킨다는 시각 등도 존재한다.
시화공단에는, 2015년 시흥시 임금노동자 및 비정규직 현황(시화노동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전국 평균임금 273만원보다 적은 238만원, 45.36시간 보다 긴 47.15시간을 근무하는 국내노동자가 있고, 이보다 더 많은 시간에 더 적은 임금을 받아가는 외국인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다.
사업주는 일할 사람을 못 찾겠다고 한다. 그래서 외국인 노동자를 쓴다고 한다.
“워크넷에 올라온 사람도 대부분 구직급여를 타기 위해 형식적인 이력서제출을 한 사람이 대부분이고, 왔다가도 금방간다”고 토로한다.
그러나 국내외 사람 가릴 것 없이 밤낮, 휴일 없이 일을 해야 그나마 200만원을 웃도는 임금을 받는 현실을 누가 얼마나 버텨야 하는지. 역겨운 화장실, 휴게실, 열악한 현장에서 그래도 버텨야 하는지.
서는 위치가 다르면 보이는 그림이 다르다. 어디서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공단 환경 개선은 정말 필요한 것 같아요”
근로자 종합복지관에 헬스같은 편의시설이 있는 것을 아는 공단노동자는 별로 없다고 한다. “그 넓은 공단에서 빡빡한 출퇴근 길에 그 공간을 이용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겠어요” 대신에 휴게실도 마땅치 않은 회사가 많던데, 날씨 좋은 봄가을에는 나와서 햇빛이라도 볼 수 있게끔 벤치나, 동네에 있는 체육 시설 같은 것을 간간히 설치해주면 노동자들에게 좋지 않겠냐는 것이다. 직접 돌아봐야만 알 수 있는 대안들을 척척 내놓는다.
공단까지 오는 교통편에 대한 불만이 많다. 조사원들은 교통만 해결되도 큰 혜택이 생겼다고 좋아할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순환버스가 있지만 안 다니는 곳이 많고, 배차간격도 길다. 뜨거운 볕을 도저히 걸어다닐 수 없어 단시간 렌트카를 이용했다는 조사원의 경우다. 모든 사업장의 교통문제를 만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지만 그래도 조금 노선이 긴 공단 순환버스가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다.
공단버스 홍보도 너무 부족하다. 아파트형 공장에서 한번 서고 안산역, 정왕역. 버스가 텅텅 비어서 다닌다는 것이다. 퇴근시간에도.
블록경이 없어서 위험하다, 방지턱도 없어서 위험하다, 가로수 정비가 안돼서 잡초와 벌레들 너무 무성하더라, 해안가쪽으로 갈수록 편의시설(은행 입출금기 등)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직접 걸어서 입구와 마지막까지 다녀봤던 조사원들에게 공단은 다니기 정말 불편하고 위험한 지역이었단다. 블록별 특성을 잘 잡아서 즐거운 출퇴근길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