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대신동에 집이 있는데 니가 근무하는 부대에서 갈려면 좀 멀긴 하다만 용돈 벌어쓸 수 있어서 안 좋나?' 집에서는 또 하나의 일거리를 마련해 놓고 있었다. 낮에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빈둥거리는 시간이 많아지고, 어느 정도 부대 생활에 적응했다고 보신 어머니는 가까운 친구의 소개로 중학생을 가르칠 일을 받아두었는데 생각이 없느냐고 물어오셨다.
찾아간 집은 비교적 아담했다. 바깥 어른이 부두 세관에 근무하는 공무원으로 직급이 꽤 높다고 들었는데, 정원이 조그맣게 딸리고, 관상수도 몇 그루 심어놓은 주변에서 보아도 잘 사는 집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찾기도 쉬웠을 뿐더러 학생의 어머니도 사근사근하게 말씀하시는 분으로 찾아간 나를 마치 친동생처럼 다정하게 대해주셨다. 그 날 저녁 아이를 불러놓고 간단한 테스트를 실시한 나는 한 번 가르쳐볼 요량으로 저녁 늦게까지 남았다가 귀가하시는 학생의 아버님을 만나 뵈었다.
'미안하네, 이렇게 기다리는 줄 모르고 약주를 좀 하느라고 늦었네. 그래 가르칠만 할거야. 애가 그렇게 머리가 나쁘지는 않거든. 앞으로 힘 좀 써주게. 참, 듣기로, 지금 군 생활 중이라며. 아무튼 장하이. 이런 말하기 뭐하지만 자네를 보니 막내 동생이 생각나서, 힘 좀 써주게. 잘 부탁하네.'
자그마한 키에 세월의 때가 묻어서 그런지 살이 불어 작은 덩치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난 자신있게 대답을 해드렸다. 난 아직껏 남을 가르쳐 본 적이 없었던 것이고, 더구나 내 힘으로 돈을 벌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신나는 일임에 틀림이 없었고 그 날 이후로 정지했던 것 같은 시간의 족쇄가 스르르 풀리는 것 같았다.
오래 기다려 본 사람은 기다림에 탄력이 붙는 날이 있음을 안다. 기다림이란 원래 사람을 한없이 지치게 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지만 그 안에 뭔가 담겨져 올 때는 기다림은 이제 원래의 기다림이 아닌 설레임으로, 시간의 개념이 역전되듯 완전히 바뀌게 된다.
귀가 후의 소일거리가 생긴 것은 부대 안에서도 금방 드러났다. 귀가 시간이 되면 나도 모르게 괜히 얼쩡거렸던 습관이 일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점호 시간이 즐거워지고 시간을 지체하는 일에 짜증을 부리지 않게 되었으며, 오히려 느긋한 기분으로 줄을 맞추어 위병소를 향해 걸어갈 때면 고래고래 군가를 불러댔다. 그것뿐인가. 위병소를 나서자마자 대신동으로 가는 버스를 잡아타기 위해 서둘러 내빼듯 뛰는 나를 향해 모두들 부러운 눈길을 보냈던 것이다.
일이란, 그 중에서도 소일거리란 참으로 중요함을 그때에 깨달았다. 평소 잘 지내던 내가 왜 간간이 주변에 대해 불만을 갖고, 남들은 하찮게 여기는 불필요한 일에 과민반응을 보였는지 복잡한 퇴근 시간에 시내를 빠져나가는 버스 안에서 깨달았다. 그리고 비록 적은 실력이나마 남을 가르치는 일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거웠다.
아이는 머리가 그다지 나쁜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영리해 조금만 가르쳐도 금방 따라붙어 가르치기가 나날이 수월해져 갔다. 그뿐인가. 아이의 엄마는 불편한 것이 없는지 수시로 보러 들어왔고, 그때마다 맛있는 간식거리로 날 즐겁게 했다. 중학교 교과 과정은 배운 지가 꽤 오래 되었지만 그렇다고 따로 시간을 내어 공부를 해놓을 필요가 없었다. 난 그날그날 몇 가지 유형의 문제를 공책에 옮겨 시험을 치루었고, 틀린 문제 안에서 그 애의 실력을 가늠해 모자라는 부분을 보충해주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어떤 때는 보충해 주지도 못한 채 내가 없는 시간을 활용해 집중적으로 공부하라고 살짝 엄포만 놓아도 아이는 움찔하며 해놓았던 것이다.
가르치는 일이 놀라운 경험으로 자리잡는 것은 아이의 성적이 저번 달에 비해 월등히 성적이 오른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하며 새겨지는 조그만 확신에서였다. 이것은 부대 생활을 하기 시작한 이후로 처음 느껴보는 변화였다. 내 방식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무지막지할 때도 더러 있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서로 마주보며 웃을 수 있게 되자 정체불명의 어둠이 거둬지며 결실이라는 고집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덧붙여서 말한다면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를테면 한 번이라도 제 손으로 물을 길어보지 않은 사람이 집에 물은 떨어졌고, 마침 아무도 물을 길러갈 사람이 없을 때 그래서 결국 자신이 물을 길어와야 했을 때 느끼는 심경이랄까 그런 것과 비슷했다.
우물 안에 있을 때는 항상 그 우물이 전부가 된다. 한 번도 바깥 세상을 보지 못한 사람은 우물에서 보이는 만큼의 하늘만 알고, 주변도 또한 그렇게 인식하게 된다는 뜻으로 제 아무리 식견을 가진 자라 할지라도 우물 밖으로 나가보지 않은 자는 세상을 논할 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 하겠다. 즉, 세상을 아직 다 보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그깟 과외를 좀 했다고 세상을 다 본 것은 될 수 없겠지만, 오로지 물질만능만 추구하는 요즘 세상의 끝간데 없는 탐욕을 안다면 돈을 모르고서는, 제 손으로 벌어보지 않고서는 세상을 감히 안다고 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또한 부모님으로부터 아쉽게 손을 벌리며 돈을 타내지 않게 된다는 사실도 당시의 내겐 중요한 것이었다. 그것은 부대 안에서 일 계급 진급을 하여 보기에도 빛나는 상병 계급장을 다는 것과 같은 것이며, 다소 건방진 이야기가 되겠지만 이제 나도 한 사람의 몫을 당당하게 한다는 자부심을 내세워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일이란 것이 보람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어서 앞에 말한 것처럼 월말에 등수가 올라간 성적표를 받게 되었을 때는 마치 내가 공부를 잘해 성적이 올라간 것처럼 우쭐해지는 것이었다. 보람은 얼굴에 드러나는 법이다. 부대 생활에 찌든 채 새까맣게 끝간데 없이 내려앉던 얼굴이 과외를 맡고부터 점차 밝아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퇴근 후면 즉시 돌아가야 하는 집 말고 피곤하지만 갈 데가 또 있다는 것이 즐겁게 했다.
젊다는 것은 갈 곳이 없어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갈만한 곳을 찾고, 찾아갈 곳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지도 모른다. 그것은 해서 성취감이 느껴지고, 보람도 아울러 따라오는 일을 많이 가지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부대 안에서 이렇다 할 보람을 찾지 못해 떠도는 당시의 부대원들에게는 어쩌면 그 시간은 최악이었다.
그 누구도 그러한 조직에 합류하게 되면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왜소해지고 나락에 빠진 채 축 늘어진 몰골에서 자유로워질 수는 없을 터였다. 도무지 구심점이라고는 어서 빨리 근무 일수를 채우고 부대를 빠져나가는 일만 손꼽아 기다리는 그들에게서 시간은 지옥일 수밖에 없었고, 또 그렇게 생각하는 만큼 시간은 그들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 법이다. 그래도 국방부의 시계는 돌아간다는 말이 그렇게 해서 나오게 되었다. 그것은 현역이든 방위병이든 마찬가지였다.
가을이 느릿느릿 지나간 반면 겨울은 빨리 왔고 빨리 지나갔다. 과외를 맡으면서 연말을 맞았고 연초를 맞았다. 그럭저럭 시간의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던 나는 새롭게 맞이하게 해가 예사롭지 않았다. 앞으로 오 개월 후면 이 지옥과 같은 부대를 벗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봄이 되면 언 땅을 뚫고 솟아 올라오는 파란 새싹들처럼 세상을 향해 달려갈 준마로서 펄펄 뛰는 심장의 박동소리가 요란했던 것이다. 자신감이 새록새록 솟으며 맞이하게 된 새해는 그래서 대망의 해가 되었다.
세상의 각종 굴레와 시간의 울타리에서 벗어 나오려고 발버둥쳐 보지 않은 사람은 아침이 되어 온 세상이 밝은 이유를 모르는 법이다. 찬란한 봄의 온갖 꽃들이 꽃을 화려하게 피울 때에는 보이지 않는 땅 밑의 뿌리에서부터 꽃망울을 물고 있는 꽃대까지 엄청난 괴력으로 생기를 밀어 올린다는 사실도 말이다. 해는 그냥 솟지 않는다. 저녁에 지평선으로 붉은 노을과 같이 다시는 떠오를 것 같지 않은 비장함으로 함몰해간 해를 세상의 온갖 만물이 생동하는 아침에 동편 산 위로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밤새 보이지 않게 애를 쓴 생명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는 것을 미처 몰랐던 사람들이라면 알아야 한다.
겨울로 접어들며 움츠러들었던 대지의 기운이 훈훈하게 그래서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아침 저녁의 점호에 힘차게 정열적인 모습으로 참여하는 내 모습을 중대원들은 의아스럽게 보기 시작했으며 같이 들뜨기 시작하는 아이들처럼 은은하게 중대 전체로 퍼져나갔다.
침체된 분위기에서 도저히 소생할 것 같지 않던 군기가 살아나오면 우리는 이것을 기적이라고 부른다. 흔히 보는 닭싸움에서 제일의 무기는 싸우기도 전에 상대를 압도하는 날카로운 눈빛이다. 이런 기운은 다시 점화되기는 어려워도 한 번 점화되기만 하면 사방으로 불붙기란 누워서 떡먹기 인 법이다. 이것은 사람 사는 곳이면 의당 있음직한 이야기지만 군대는 사사로운 정으로만 얽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방팔방으로 그물이 펼쳐져 있듯 보이지 않는 감시의 눈이 있는 것처럼 서서히 죄어들어와 마침내는 꼼짝도 못하게 만들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은 될 수 없었다.
그리고 동병상련의 입장으로 어느새 하나가 되어버린 중대원들로서는 그러한 불씨가 전 중대를 따뜻하게 겨울을 나게 할 수 있는 동력으로 자라갈 수 있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마주치는 눈빛 하나에서부터 지나가는 말투까지에도 정감이 느껴지도록 행동해 주었다. 고맙고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삶은 때때로 희한한 것이다. 술에 쩔은 밤을 보내고 쓴 담배 한 가치를 입에 문 채 길을 가다가 문득 자신을 돌아보고 인생의 항로를 바꾸는 계기가 되는 것처럼 가끔 우리 인생에는 영 예상치도 않은 곳에서 기회나 변화가 찾아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게 통째로 바뀐 것을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가을이 가고 겨울이 접어들면서 덤으로 일자리가 하나 생긴 것뿐인데, 단지 그것뿐인데 그 동안 단조롭고 한편으로 불만 투성이기도 하던 생활이 선명하게 정리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작년이라는 시간과 올 해 전역이 끼어있다는 분명한 시각 차에서 막혀있던 웅덩이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는 의미라고 파악할 수도 있겠다.
이 참에 난 생활을 대폭 정리하였다. 어차피 전역은 다가오는 기정 사실이 되어 시간은 현재로 선명하게 다가오는 터에 매사가 꿈처럼 흐릿해서는 안될 것이었다. 그것은 과연 그랬다. 작년은 어떻게든 부대 내에 적응하고 인내하며 버티어야 된다는 압박감으로 다른 것들을 배제하며 지내왔다면, 새로운 한 해를, 그것도 곧 정문을 빠져 사회로 돌아가 자유롭게 되는 시간들이 약속되어지는 해를 맞이하게 되자 꿈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정신이 서서히 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모든 사물은 제자리를 잡고서는 새로운 평가를 기다리며 다가서고 있었다. 각자가 지닌 현상과 약점이랄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한편으로는 동정과 측은함을 아울러 지닌 채 사물이나 그 현상이 지닌 이면을 들여다보는 눈을 갖추기 시작했다. 빛은 어둠이 있기 때문에 더욱 밝은 빛을 비출 수 있게 된다는 논리를 음미하듯 체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우리 인간들의 보편적인 약점인지도 모른다. 언뜻 보아서는 그 동안 지녀왔던, 지녀왔던 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 지조와 관점을 매몰차게 버리고 돈 많은 서방을 찾아 몸을 함부로 던지는 창부같이 새해가 들어섬에 따라 처한 환경이 달라지면서 삽시간에 움츠렸던 몸을 풀 듯 시각을 바꾸어 버렸으니 말이다.
처음 입대해서 열악한 환경에 분노를 금할 수 없으면서도 적응했던 것은 인간들이 가진 몸과 마음과 영혼의 미덕일까. 한계일까. 깊이와 폭은 달라도 중대원이나 부대 안에 몸을 담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해도 다른 점은 찾아진다. 굳이 변명을 하려든다면 찾아지는 것이다. 우리 방위병들은 아직 우물 밖을 나올 기회가 없어 선택의 여지가 있는 반면에 기존에 부대 안에서 몸을 담고 살아온 사람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우물 밖을 나와서 넓은 세상을 보았고, 하늘은 우물 밑에서 바라본 만큼의 원형이 아니라 무한대에 가까운 거의 헤아림이 불가능한 세계라는 것, 그래서 그들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타성에 젖은 채 기존의 다소 좁고 불편은 하겠지만, 그래도 구관이 명관이라는 심정으로 우물 안으로 다시 기어 들어온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런 관점의 연장선상에서 우리는 이제 그들이 이전에 보았던 우물 밖의 세계를 한 번 보게 될 기회의 시간이 서서히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흥분이 되지 않을 수 있겠으며, 우물 밖을 나가는 순간 눈이 멀게 된다할 지라도 그 말이 두려워서 나가서 볼 수 있는 인생의 절호의 찬스를 어리석게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청춘이 누리는 특권이 아니겠는가.
나가서 깨어지고 피가 터지더라도, 그래서 그곳이 여기보다 더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모순 투성이라 할 지라도 우리는 넘어서야 하는 청춘이 아닌가. 비릿내 물씬 나는 청춘이 아닌가. 아직도 가야할 길이 먼, 어떠한 길도 내달릴 수 있는 젊음 아닌가.
겨울이라 스팀이 안 들어오는 내무반에서 한 시간 정도 조는 점심시간에도 그래서 우리는 웃을 수 있었다. 예전과 달리 애들처럼 장난칠 수 있었다. 초창기 신병시절 조그만 불미스러운 일에도 저잣거리의 건달처럼 살벌하게 싸우던 풍경대신 우리는 이제 고참이 되어 몇 개월 후면 있게 될,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곧이라고 생각했던 전역을 기다리며 웃었다.
또 하나 희한한 것이 있었다면 작년처럼 현역 병장들이 짐승들의 축사 드나들 듯 들어와서는 자고 있던 방위병들을 아무렇게나 발길질을 하던 일들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많은 부분에서 알아버린 군대의 운영체질을 놓고 더 이상 불필요하게 격분하는 일은 없었으며, 기분을 상하게 해도 쉽게 넘기게 되었다. 한편, 이런 점에서 중대는 일사불란했는데, 이제는 중대 내에서 최고참이 되어버린 우리 동기들이 세상물정 알 듯이 부대 생활을 온 몸으로 부딪히며 파악하고 나서 되려 차분하게 가라앉자 모든 중대원들이 까닭없이 착해지는 것이었다.
일과를 마치고 시내로 들어가 술 먹고 싸우거나 그로 인해 그 다음날 부대에 나오지 않아 탈영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죄명을 받아서 쫓겨다니는 우스꽝스러운 촌극이 거의 사라졌다. 대신에 중간중간 들어오는 육개월이라는 우리보다 더 짧은 기간의 방위병들 중에서 우수한 애들이 많이 들어와 중대 분위기를 많이 순화시켰다는 것도 큰 힘이 되었다. 그것은 결코 이대로 질 수 없다는 자신감이었는데, 대개 대학 출신들이었고, 매사에 눈에 띄게 행동을 해줘 중대원들 자신의 잃어버린 모습을 찾는데 많은 기여를 했던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여기서 좀 더 분발하는 것이다. 꿈을 꾸듯 사는 사람은 꿈을 꾸는 동안만큼만 행복하다. 꿈도 때로는 비축할 줄도 알아야 선잠에서 깨어나 어리둥절한 채 삶을 영위하는 것보다는 나은 삶을 얻게 되는 것이다. 흔히 꿈이 바닥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뿌리채 부실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꿈은 잘 가꾸게 되면 깊은 샘물에서 맑은 물이 계속 우러나오듯이 끝이 없는 법이다. 훌륭한 꿈은 그만큼 생활을 기름지게 하고 인생이라는 수레바퀴 자체를 그냥 굴러갈 수 있도록, 어떤 막힘도 없이, 한다.
방위병 근무 기간이 12개월에서 육개월 연장된 뒤로 처음 입대한 우리 동기들이 주축이 되어 중대 내무반을 이끌어가게 된 것은 새해 들어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었다. 새로 들어오는 신병들은, 똘똘한 신병들은 말 할 것도 없고, 처음 들어왔을 때의 분위기에 십중팔구 사로잡히게 된다. 우리들은 바로 위선까지의 선배 일병들을 전역시키고 중대를 이끌어 가는 방법을 달리하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다. 만약, 그들이 떠나가고 한 달 정도 내에서 전역을 할 입장이었다면 애써 그렇게 할 엄두를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과 우리 사이에는 육개월이라는 현역 최고참도 누리기 힘든 시간적인 공백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더 이상 어리버한 것은 용납하지 않았다. 퇴근 후 각 소대별 기합을 주어서라도 그 날 안으로 회복시킬 것은 회복시키고 다짐받을 것은 다짐받도록 하는 공감대를 이어갔다.
이것은 항상 있는 수요일의 전투 체육의 날에 진가가 그대로 드러났다. 1월 들어 찬바람이 제법 쌀쌀했지만 부산의 오후 햇빛은 남쪽 지방 특유의 따스함을 한껏 나타내 오히려 햇빛이 쨍쨍한 더운 여름보다 공차기에는 더할 나위 없었다. 나를 비롯하여 중대 대표로 뽑힌 축구 선수들은 벌써 연병장에서 곧 있을 경기에 대비해 이리저리 발을 맞추고 있었다. 부대 전 관계자들이 열람석으로 모이고 각 중대들도 맞은편 허연 잡초만 남은 잔디밭에 정열해서 앉기 시작했다.
난데없이 꽹과리 소리가 들려오면서 열기에 찬 응원이 각종 전통악기와 더불어 질서정연하게 들려왔다. 고깔이며 울긋불긋한 복장도 어디서 구했는지 제법 차려입었는데 앞에서 힘차게 응원하는 응원단에 맞춰 움직이는 몸 동작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았다. 여파는 사열석에 앉은 장교단에서 제일 먼저 감지되었다. 갑작스런 그런 움직임에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는 장교가 있는가 하면, 제법이라는 듯 현역 중대와 비교하며 인상을 쓰는 장교 등 다양했다.
변화가 거의 없는 부대 내에서는 조금만 변화가 감지되어도 그 여파는 일파만파로 번진다. 당장 응원전에서부터 흐트러지기 시작한 현역 중대들은 그 날 시합에서 우리에게 모두 커다란 점수 차이로 패배하는 수모를 당했다. 잠시 빼놓았지만 최근 들어오는 신병들은 하나같이 선수만 불러모은 듯 축구를 잘 한 것도 그 이유가 되었다.
장장 한 달 이상을 계속 이런 분위기로 몰아간 우리는 수요일마다 출전한 네 개 중대에서 우승을 하는 개가를 올렸다. 그것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이유야 어떻게 되었던 한 번 침체된 분위기를 최상으로 이끌어 올리기란, 그것도 군대 안에서는 여간 힘드는 게 아니다. 특히 말 많은 우리 중대로서는 여건상 여러 악조건으로 모두의 사기를 한 곳으로 모아 수직 상승시키기란 불가능했다.
물론 우리 동기들이 여러모로 나서서 움직였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전적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매주 수요일 날 벌어지는 전투 체육의 날 행사가 가장 큰 역할을 했음을 밝힌다. 왜냐하면 모든 관계는 계급 조직으로 인해서 결국 절대적이긴 하지만 그 외에 일을 처리해 나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마련인 상대적인 변수로 인해 모든 처우는 급격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밖에서의 일은 일단 잊어버리게 하고 부대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전부인양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모두가 직간접으로 공인하는 힘 겨루기인 축구시합에서 당당하게 일 등을 차지한 것은, 그것도 한 달 내내, 대단한 일임에 틀림없었고 새로운 한 해를 기분 좋게 출발시키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이런 근본적이고도 실질적인 변화가 내 주변에서 일어나면서 부대 밖의 생활과 향후 앞날에 대한 사고방식에 새로운 모색을 하게 되었다. 일단 무엇이든 한 번이라도 이기고 나면 사람은 행태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것도 오랫동안 감정의 응어리로 남아 있게 하던 것이 한 번 이김으로서 시원하게 해소된다면 더 말 할 나위도 없다.
자신감은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왠지 불안했던 어두운 요소들을 내 주변에서 서서히 거둬냈다. 표정은 군입대 전과 같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원래 주눅이 잘 들지도 않는 기질이지만 그래도 환경에서 미치는 여파는 무시 못하는 것이라 그 동안 알게 모르게 묻어온 중대 전체의 무기력한 분위기로 인해 나도 어느새 그들과 같이 무기력해졌고, 가끔은 뭐가 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불안에 시달린 나머지 형성되었던 어두움이었던 것이다.
서서히 웃기 시작한 것이었다. 우리들은 모두 그 동안 약속이나 한 듯 참아온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겨울은 그런 우리 앞에 더 이상 맹위를 떨치지 못했다.
초겨울 엄습했던 추위가 한풀 꺽이던 1월 중순이었다. 아침부터 입에서 뿜어나오는 입김으로 서로를 녹이며 연병장을 달리던 우리는 난데없이 멈추어야 했다. 아침 구보가 막 끝날 즈음이었다. 맨 선두에 나서서 달리던 창장이 갑자기 맥없이 쓰러지면서 급히 당번병이 전용차를 몰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대오가 멈추어지면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대오의 후미에서 달리던 우리들은 맨 앞줄에서 벌어진 상황을 알 까닭이 없었다. 아침 구보는 부대 생활 중 재미있는 것이었지만 어떤 날은 한 발자국도 떼어놓기 싫었다. 그런 날은 대개 전날 누군가와 어울려 술을 과하게 마셨고, 이제 부대 안에서 그렇게 눈치를 보지 않고도 그럭저럭 생활해 나갈 수 있었던 나는 그런 날은 일조 점호를 마친 뒤 전역병 교육대 내무반으로 기어 들어가 입에서 알코올 냄새가 사라질 때까지 모포를 깔아놓고 누워 자곤 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는 운동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아침 구보를 빠뜨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우리는 갑자기 대오가 멈춰지면서 어린애들과 같은 심정으로 장난을 치고 있었는데, 그런 우리들 틈으로 인사계가 급히 뛰어오더니 우리 행열 바로 옆에 선 중대장에게 창장의 죽음을 알렸다. 사람이란 참 이상한 것이다. 죽음이라는 말이 나오자, 그것도 우리와 늘 같이 생활하면서 주변에 큰 바위같이 머물던, 때로는 두렵기도 하고 미처 파악되지 않는 감정의 파고로 꼴도 보기 싫을 정도로 미움의 대상이기도 하던 창장의 갑작스런 죽음 소식이 들려오자 모두는 한순간에 넋이 빠진 사람들처럼 멍해지는 것이었다.
창장을 실은 차가 초라한 의무실이 있는 방향으로 급히 달려가고 나서 구보는 계속 이어졌는데, 창장이 빠지자 아침 구보는 삽시간에 엉망이 되었다. 군무원들은 하나같이 그의 죽음을 놓고 구보가 끝나 연병장으로 모일 때까지 궁시렁거렸고, 비록 입을 꾹 다물고는 있었지만 장교들과 기간병들의 시선은 모두 의무실로 모아지고 있었다. 과연 진짜 죽었는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창장의 갑작스런 죽음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긴 시간 사육 받듯이 길들여질 수가 있고 또한 급작스럽게 벗어날 줄도 아는 기민한 동물이었다. 턱주변으로 새파랗게 면도한 자욱을 늘 늠름하게 보인 채 제법 튀어나온 배를 앞으로 쭈욱 내밀어 다니기를 좋아했던 창장은 오케스트라 지휘관처럼 굵고 짧은 봉을 오른 손에 쥔 채 수시로 본관 안의 여러 사무실들을 오가며 근무 상황을 파악하곤 했다. 그런 그에 대해서 살아있을 때는 모두 싫어하고 피해 다니기가 일쑤였다.
그는 부대 안에서는 살아있는 왕이었던 셈이라 그의 지시 하나로 되지 않는 것은 실로 아무 것도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아침 구보만 해도 그가 그 날 아침 기분이 언찮은 나머지 기간병들은 사병식당 앞의 조그만 연병장에서 아침 체조를 하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최근 들어 파견 나온 늘씬한 여하사관들의 몸매도 구경할 수가 없고 각 정렬된 줄의 후미에 대개 서 있는 여군무원들과 눈을 마주치거나 가벼운 장난을 칠 수도 없게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창장의 단 한마디면 족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굳이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아도 간단하고도 미묘한 이런 감정의 기복과 차단으로 인해 오는 고통이 더 큰 것을 잃거나 얻지 못해 오는 고통보다도 오히려 더 크게 느껴지는 법이다.
창장은 몸매를 보아서는 꽤 둔한 사람으로 여겨지지만 통통한 아랫배와 면도를 하고 난 후면 빤질빤질하게 광택이 나는 얼굴의 두터운 피부만큼이나 교활하고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오랜 세월 거쳐온 군 생활을 통해 조직과 조직원의 생리를 부대 안에서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그는 그런 것을 십분 활용,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철저히 처신했던 것이다.
그런 처신에는 연약한 여자라고 해서 봐주는 법이 결코 없었다. 오히려 그는 그런 여자의 약점을 잘 아는 베테랑처럼 너무도 약삭빠르게 이용해 여군무원들의 미움을 사기도 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사무실의 배수국씨를 통해 이미 여러 번 들은 터였다.
나 또한 그런 그의 저급하고도 비열한 행태에 대해 간혹 직접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것은 주로 사무실 뒷 칸에 조그맣게 마련된 칸막이로 가려진 휴게실에서였다.
'보급품 창고 지역의 물건들이 또 모자란다.'
라고 누군가 낮은 소리로 속삭이면,
'밤에 누군가 들고 나갔구만.'
하는 더욱 작으면서 볼멘 소리가 들려나오고, 내가 귀를 모아 들을라치면
'쉿.'
하는 검지손가락으로 입을 급히 막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그것은 대개 창장이 혹시 재수 없게 사무실을 지나가다 들을 수도 있으니 말조심하자는 의미였다.
창고 지역의 재고 조사가 할 때마다 재고량이 달라진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흘러나온 터라 사무실 사람들끼리는 그렇게 조심할 내용은 아니었다. 이미 사무실에서 오랜 시간 근무해 온 나와 영묵에게조차 말이다. 그들은 처음 사무실에 들어선 무렵 바짝 죄어온 외에는 그 뒤 가끔 한 번씩 지나가는 투로 말조심 할 것을 주의 주었을 뿐 그렇게 자주 내비치지는 않아 우리에게도 비밀은 아니었다. 그런 창장은 부대 안의 재물뿐만 아니라 가장 손대기 쉬운 곳에 있는 여군무원들에게까지 손을 뻗쳤는데 그것은 아주 치사한 방법이었다.
그는 부대원들이 보는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반반한 여군무원들의 손을 뒤에서 슬그머니 잡곤 했다. 이러한 버릇은 그 밑의 영관급 장교들에게서도 종종 드러나기도 했는데 어떤 날은 수요일 화창한 오후의 한가한 시간 연병장에서 예사롭게 보여졌다.
여군무원들의 화장이나 입고 온 복장이 조금 눈에 거슬린다 싶으면 그 날은 어김없이 부대 내부에 공식적인 행사가 늦게까지 잡혀 있는 날이었다. 출퇴근버스로 습관이 되어 있는 군무원들의 발목을 잡고, 출입을 통제함으로서 저녁 늦게까지 장교 식당에서 벌어지는 주흥에 몇몇 여군무원들의 참석은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린다.
어느 조직이든 조직의 귀재는, 그것이 비록 엘리트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대개 조직내 적은 비율이긴 하지만, 소속되어 있는 여성들을 얼마나 장악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조직운영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장은 그러한 보이지 않는 조직 운영 룰을 오랜 세월 살아오면 자연적으로 익히게 된 경륜으로 잘 활용해 먹었던 것이다.
창장이 죽고 나자 부대내의 사람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새로운 창장이 보직을 받아옴으로서 변화하게될 자신들의 각각 위상을 염려했고, 주변 여건들이 더욱 나빠지지나 않을까 우려했으며, 새로운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까다로움에 짜증을 내며 종종 다음과 같은 말을 흘렸다.
'과연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틀림없어.'
변화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벌써부터 움츠려들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지켜본 어떤 장교들은 더 이상의 연줄은 없다고 판단한 나머지 일찌감치 보따리를 싸서 밖으로 나가 기반을 닦아놓던지 아니면 보따리는 싸되 부대 내에 기생해서 여러 가지 조그만 일로 수입을 얻어보려는 일로 골머리를 싸안기도 했다.
한 사람의 영향력이 이렇게 여러 사람의 인생을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있는 것을 보게된 것이다. 물론 우리는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기존의 조직 안에서 이렇다하게 부여받은 것이나 혜택이 없다보니 누군가 새로 온 다고 해서 잃을 것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어쩌면 새로운 창장에게서 새로운 것을 얻게될 지도 모른다는 기묘한 기대를 거는 친구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니 새해를 맞아 우리 중대원들의 웃음은 이번 일로 해서 끊어질 이유도 없었을 뿐 더러 누가 새로운 창장으로 오던 상관없는 일로 치부하고 그날 그날의 일에 전에 없던 안도감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찌보면 하부 조직의 유일한, 위안 아닌 위안으로 상위조직이 떠 안아야 할 부담이 이런 경우에 우리에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유일한 것이었다.
난 이러한 움직임이 작년 연말에서 연초로 넘어오며 고스란히 이어지자 전에 없이 부대 일과 일과 후면 바쁘게 가야 하는 과외에 정성을 기울였다.
'형식아, 요즘 아주 살 맛 나는 모양이다.'
'곧 제대할 건데 지금부터 슬슬 준비해야지.'
'월급 받거든 한 잔 사라. 좋은 것은 나눠야 하는 법이다.'
희상이 날마다 일석 점호가 마치기가 무섭게 부대 위병소를 빠져나가는 나를 두고 어느 날 건넨 말이다.
과연 그랬다. 나서면 양볼이 얼얼한 날씨가 연일 이어지는 날이었지만 힘든 줄을 모랐다. 언젠가 책에서 읽은 내용에 의하면 인디언들이 왜 한 해에 전부를 놓고 살았는지, 그래서 한 해가 지나면 까마득히 잊을 수 있었고, 잊으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작년과 올해는 이렇게 다른 것이다. 단순히 달력 한 장을 넘기는 것과 안 넘기고 그냥 두는 차이일 뿐인데 말이다.
새로운 달력 한 장이 넘어간 사실이 인생의 대전환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난 부대 안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말에 세우지 못 한 한 해 계획을 세우기 위해 여전히 게으름을 부리거나, 혹 세워 놓았다 하더라도 대개 1월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인 지 느긋할 때 난 바빴다.
과외는 보람이 나날이 더해가는 반면 체력을 요하는 문제이기도 했다. 부대에서 대신동까지 가서 바쁘게 차려주는 저녁을 먹고, 한 시간 남짓 휴식도 없이 가르치고 나면 저녁 아홉 시, 집에 도착하면 밤 열 한시는 족히 되었으니 그것도 하루도 걸르지 않고 토요일까지 강행군을 하다보니 웬만한 부대 훈련에 견주어도 만만치 않은 체력을 요구했다.
첫 달은 그럭저럭 성적도 잘 나오고 모든 게 순조로웠는데, 잘 나가던 배가 암초에 걸린 것처럼 다음 달에 예기치 않은 문제가 그 애에게서 일어났다. 성적이 어느 정도 오르게 되자 전에 없던 장난을 치기 시작하며 꾀를 부리는데 처음에는 형이 없이 커다보니 그렇겠거니 했다. 공부도중 난데없이 야구공을 벽에다 던지는가 하면, 불필요한 질문을 자꾸 함으로서 진도 나가는 것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부대에 새로운 창장이 오는 바람에 전에 없던 긴장으로 바짝 신경이 쓰이던 판에 그 애마저 그런 식으로 신경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자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던 성격도 그 도가 지나쳐 나중에는 벽에서 튀어나오던 공이 책을 들여다보며 잠시 생각하고 있던 내 머리에 부딪치게 되자 참지 못하고 말았다.
'너 이 노무 자슥, 한 대 맞을래?'
전에 안 보이던 행동들이었다. 왜 그런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지만 짐작이 전혀 되지 않는 바는 아니었다. 애한테는 누나 하나가 있었는데 올 때마다 방안에만 있는 것 같아 자주 볼 기회가 없었지만 어느 날인가 어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로 그 애 누나에게는 심한 정신적 질환이 있다는 것이었었다. 가족간에 보이지 않던 불만들이 점차 나와 친해지면서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난 방법을 한 번 바꿔보기로 했다.
'이러지 말고 우리 잠시 나갔다 올까?'
'어디로?'
'만화방 가서 만화 좀 보고 올까? 너 만화 좋아하니?'
'안좋아하는데, 선생님이 가자고 하면 따라갈 수도 있지?'
어차피 진도가 나가기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데리고 나가서 어디든 바람을 좀 씌워 보고 나서 생각하기로 했다.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나보다. 그리고 늘 같은 시간에 좋아하지 않는 공부를 한다는 것도, 정규 과정이 아닌데, 어린 아이에게는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집안에 있는 유일한 형제에게서 정서적인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외톨이로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는 것을 그 애는 이미 잘 알고 있었으며, 그것은 어린 나이의 그에게 커다란 무리임이 분명했다. 그것을 난 애를 데리고 밖으로 나와 만화방에서 만화를 보며 깨달았다.
집에서 어지간히 묶어놓고 사는 모양이었다. 또한 방과 후에 어딜 갈 만한 처지도 못되었고 성격도 못되었던 아이는 만화를 보러 나가자는 제의에 입이 빙그레 벌어지더니 만화를 보는 내내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만화 외에 뭐 좋아하는 것은 없니?'
'운동도 좋아해. 야구도 할 줄 아는데 야구 글러브를 사놓기만 하고 한 번도 제대로 써보지 못했어.'
'아빠랑 같이 하면 되잖아. 일요일 같은 날 말이야.'
'일요일이 되면 뭘 해. 아빠는 그 날 하루종일 주무시는 게 일인데. 그리고 살이 쪄서 운동도 못해.'
과외를 제대로 시키기 위해서라도 당분간 밖으로 데리고 다닐 필요가 생겼다. 그리고 애가 좋아할 만한 다른 것을 이 기회에 한 번 찾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집 근처의 서점에 들러 또래에 맞을 책을 사서 먼저 읽어보았다.
내용은 항상 내 기준에 맞추었는데 그만한 나이에 즐겨 읽었던 명작 추리소설을 읽히게 했다. 판단이 과히 틀리지 않는다면 수학을 잘 따라오는 그 애로서는 추리 소설이 내가 선물해줄 수 있는 적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