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1983년을 돌아보며
남진원
1982년 벽탄 국민 핚교에 근무하면서 문학에 대한 열망은 더 커졌다. 대학을 편입하여 국문학에 대한 공부도 더 하고 싶었다. 그러나 1982년에는 방송통신대학에 국문학과가 없었다. 하는수 없이 행정학과에 편입학하였다. 그러나 행정학과에 편입한 일은 잘 했다고 여겨졌다. 맛스 웨버의 관료제와 프랑스 실증주의 철학자 꽅트의 사상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학회 회장을 두루 거칠 수 있었던 것도 방송통신개학에서 행정학을 공부 한 것이 큰 도움이 된 것이 사실이다. 그 후 관동대학교에서는 교육대학원에서 국어교육과를 전공하여 석사 학위를 받았던 것이다. 관동대학교 4층 강의실을 밤에 오르내리는 것이 참 힘들었다. 그 당시도 위장 수술 후의 부작용이 계속 있었기 때문이었다.
1982년 정선읍 소재지 학교에 있었기에 부근에 있는 문인들과 자주 만남을 가지기도 하였다.
1982년 10월부터는 바빴다. 신춘문예 작품 응모작을 써야 하기 때문이었다. 학교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펜을 들고 앉았다. 갑자기 책 하 권이 내 앞으로 날아들었다. 집사람이 던진 것이었다. 아내는 내가 한심해 보였던 것이다. 방구석에 들어오면 맨 날 책이나 붙들고 안았다고 화가 났던 것이다. 드디어 그 분노가 폭발하였던 것이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차를 끓여주지는 못해도 이런 짓을 하다니 … .’
나도 화가 났다.
“당선되면 안 데리고 갈 거야!”
그 말에 어내는 정말 어이가 없어 보였다. ‘맨날 글 씁네 하고 용돈이나 뜯어가고 하는 데 무슨 당선이란 말인가’ 이런 표정이었다. 기가 찬다는 듯이 말하였다.
“ 흥, 데리고 가려고 안달해도 안 간다!”
숫제 반말이었다.
“그래, 좋아. 따라 붙는다고 해 봐라!”
나도 엄포를 놓았다. 사실 나도 그렇게 당선이 되리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지난 연초에 제1회 계몽어린이문학상 공모를 하였다. 그리고 3, 4월 쯤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발신인이 계몽사였다. 나는 당선 통지가 온 걸 알고 기쁨에 들 떠 뜯어보았다. 읽어가다 보니 떨어진 걸 알았다. 응모해주어서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다만 이번 신춘문예 공모에도 그냥 시간을 보내면 너무 허무하였기에 준비를 하고자 했던 것이다.
신춘문예 응모를 한 후에 정선의 문인 동료들이 한곳에 모였다. 정선아라리문학회 회원들이었다. 후에 ‘대설주의보’를 써서 유명해진 최승호 시인도 있었다. 당시는 사북 국민 학교에 근무하고 있었다.
나는 회원들이 모인 곳에서 신춤문예에 공모한 일을 자랑처럼 이야기했다. 그리고 본명을 밝히면 안 뽑아줄 것 같아 필명인 ‘청파’로 보냈다고 하였다. 그 필명 이야기를 듣던 전태규 시인은 크게 웃어젖혔다.
“남선생, 그럼 틀렸어. 필명으로 하면 안돼!” 하고 단호하게 말씀을 하였다. 나는 호기롭게 된다고 장담을 하였다. 어디서 그런 황당한 기운이 났는지를 모르겠다.
그해 12월 나는 서울에 문학회 모임이 있어 갔다. 그리고 김원석씨 도움으로 첫 동시집도 출간되어서 몇 권을 가지고 내려왔던 것이다.
1982년인 그 해 나는 문예진흥원으로부터 우수 문학 창작집 발간 지원금을 받았다. 첫 동시집 『싸리울』을 발간할 수 있었다. 운이 좋았던 것이다. 최준식 화백이 초가집 내용의 그림을 표지 그림으로 그려주셨는데 너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동시집을 전해주려고 강원일보사에 들렸다. 김시중 문화부장이 반가이 맞아주셨다. 책을 드리고나오려는데 김부장님이 물었다.
“남선생, 그 학교에 청파라고 있어?”
하고 물었다.
“왜 그러지시오?”
“ 방금 서울에서 전화가 왔어. 신춘문예 시 당선자가 청파라는 분이야.”
나는 그 말을 듣고 기절할 듯이 놀랐다. 그 ‘청파’는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전태규 선생이 필명인 줄 알면 뽑지 않는다고 하던 말이 문득 생각났다. 그러니 그 말도 틀린 말이었던 것이다.
“제가 청파입니다. 신춘문예 응모작에 필명으로 보냈습니다. ”
“ 아, 그래? 축하해요. 온 김에 당선 소감까지 쓰고 가요.”
하고 말하셨다.
그때의 강원일보사 문화부는 한 층을 넓게 쓰고 있었다. 유리창 밖으로 람박눈이 마구 내리고 있었다. 내 당선을 하늘에서도 축하해주는 듯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나는 1983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공모에 당선하였던 것이다. 당선 작품은 시 ‘봄빛’ 이었다. 심사위원은 이성교 선생님과 민영 두 분이 하신 걸 나중에 알았다.
나는 집에 가서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 나, 신춘문예 먹었어!”
그 소리에 아내도 기뻐하였다. 그런 모습을 보고 “나, 혼자 갈 거야!” 하고 말했다.
“내가 안 가면 안 되지! 따라 갈 거야.” 하고 생떼를 썼다. 책을 내던질 때는 생각도 안 하는 모양이었다.
신춘문예는 그렇게 당선하였다.
4월 무렵 도 다시 우편물 하나를 받았다. 발신자를 보니 계몽사였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 아, 또 그 작품이 떨어져서 위로의 말을 전하려고 보냈구나.’ 하며 실망감에 버릴까 하다가 뜯어 보았다. 그런데 읽어가는 도중에 이상하였다. 눈을 씻고 다시 보았다. 분명히 당선이란 글씨가 선명하게 써 있었던 것이다.
계몽사 제2회 어린이문학상 동요 동시 부문에 당선이 되었던 것이다. 제1회는 문삼석 선생이 당선되었다. 내가 제2회로 당선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해 제 3회는 오순택 선생이 당선된 걸로 알고 있다.
나는 속으로 ‘이게 웬 떡이냐!’하는 즐거움에 잠겼다.
이렇게 하여 1983년 제2회 계몽어린이문학상에 당선되었다. 시상식은 5월이었다.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 작품
⁑당선 작품 - 봄빛
남진원
새벽으로 가는 안개들의
푸른 길 옆에
산의 손 시린 물소리
마을로 마을로 오고 있다.
들판은
번쩍이는 햇살과
귀가 아픈 새떼 속에
일어서고
우리들의 삶 한가운데
희디 흰 소금으로 남아
짭짤하게 등허리를 절이고 있는
풀 뿌리 밑에서
아침은 깨끗한 피부를 드러낸다.
벌써 몇 광주리 씩 푸른 바람을
이고
대문을 나서는
아주머니들
땀과 거름으로
기름진 잎들이
그림자를 드리운 채
빛 속에서 누군가와 만나고 있다.
‣뽑고 나서
예선을 거쳐 선자들에게 넘어온 응모작은 총 44편이었다. 이중에서 엄선을 거듭 정진경의 ‘촛불’, 한성희의 ‘산가에서’, 남진원의 ‘봄빛’, 전향규의 ‘휴전선의 꿈’ 등이 물망에 올랐다.
‘촛불’은 언어를 다듬는 깔끔한 솜씨가 돋보였으나 주제가 평범하다. ‘산가에서’는 서경을 노래한 작품으로 가끔식 보이는 빛나는 구절이 작품을 살리고 있지만 신인다운 패기가 부족하다. 나머지 두 사람의 것에서 우열을 가리기에는 꽤 시간이 걸렸다. ‘휴전선의 꿈’은 선명한 주제의식과 도입부의 순탄한 전개에 호감이 갔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시의 내용이 지리멸렬해진 아쉬움이 있었다. ‘봄빛’은 시가 비교적 깨끗하게 잘 짜여져 있고 주제도 알맞고 시어의 선택도 잘 되어 경쾌한 느낌을 준다. 특히 제2편 이후의 시적 전개가 뛰어나 무리가 없다. 금년도의 당선작으로 뽑는 이유이다.
이성교(시인)
민 영(시인)
‣뽑히고 나서
너무 기쁘고 즐거워서 당선소감을 무엇이라 써야될지 모르겠다. 시가 아직 무엇인지 모르면서 지난 5년 동안 쓰고 지우고 또 쓰고 지우고 하면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아다니던 일이 이제 조그만 열매로 맺혀지고 있나보다.
전 兄 !
며칠 전 정선 달구지 식당에서 10개 중에 다섯 개가 된다고 객기를 부린 일이 생각납니다. 이름이 틀렸다고 안 된다고 하시며 우린 내기를 걸었지요.
전 형에게 얻어먹을 술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취해오는 군요.
전 형!
당선 통보를 받던 날 창밖에는 주먹 같은 함박눈이 내렸읍니다. 큰 눈송이도 나를 위해서 내리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더군요. 당선 소감을 빨리 써내고 우연히 만난 안효선 형과 막걸리 집에 가서 술을 한잔 했지요. 그동안 앞에서 지켜봐 주신 모든 분들과 이 기쁨을 함께 하겠읍니다.
(한국아동문학회, 여울, 정선아라리문학회 동인. ‘전 형은’ 전태규 시인을 말함 )
* 5월엔 ‘봄빛 3장’ ‘바다’, ‘오월’, ‘어머니’ ‘빨래터’ 등의 작품이 계몽아동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봄빛 3장
손 시린 산 물소리
마을로 오고 있다.
들판은 귀가 아픈
새떼 속에 일어서고
희디흰 아지랑이에
뿌리 젖는 나무들
미루나무 잎새들이
부풀어 오른 한낮
따뜻한 것에 닿아
살 섞이는 풀과 흙
어머닌 몇 광주리
바람이고 나섰다.
보릿대궁 입에 물고
하늘 동동 나는 새떼
꽃잎 파란 숨결도
햇빛 속에 날려가고
아이들 눈썹까지 말간
풀피리도 뜨고 있다.
빨래터
산 싣고 졸졸졸
흥겨운 시냇가에
어머닌 소매 가득
한 다발 햇살 감아
실 고운 아지랑이를
방망이로 떠올린다.
바다
졸음 겨운 고동소리
넘나드는 수평 너머
흰 물결 갈아엎으며
봄을 푸는 돛단배
갈매기 두서너 마리
그림처럼 나부껴요.
오월
초록 물든 봄바람
보리밭에 뒹굴고
산마다 꽃붕대
감아놓은 오월은
목청도 파란 하늘 속
종다리로 떠 간다.
어머니
1. 설거지
어둠 속 새벽을 깨워
물소리로 틀어놓고
그릇마다 고인 땟국
푸름으로 헹구는 손
지난 밤 굼도 수정빛
소매 깃에 묻어나고
2. 조반
늘 젖은 손자국에
매운 맛만 살아나도
아침은 보글보글
토장국에 익어가고
짭짤한 웃음을 얹어
간 맞추는 나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