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반(金槃)은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사일(士逸), 호는 허주자(虛舟子). 아버지는 김장생(金長生)이고, 어머니는 창녕조씨로 부사 조대건(曺大乾)의 딸이며, 김집(金集)의 아우이다.
송익필(宋翼弼)의 문인으로, 세거지는 충청도 연산(連山)이다. 1605년(선조 38)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의 거재유생(居齋儒生)이 되었다. 1613년(광해군 5)에 계축옥사가 일어나자 낙향하여 10여년 동안 초야에 은거하며 학문을 탐구하였다.
김익겸(1614년-1636년)
조선의 정치가. 자는 여남(汝南), 시호는 충정(忠正). 본관은 광산(光山). 1636년 후금(後 金 )의 태종(太宗)이 국호를 청(淸 으로 고쳤을 때 이를 축하하기 위해 파견된 사신 이확(李 廓 )이 청나라 사신 용골대 (龍骨大)와 함께 귀국했을 때, 성균관의 유생들과 함께 명나라와의 의리를 위해서라도 청나라를 인정함은 잘못이며 오랑캐 조정에 가서 축하하여 국위를 손상한 이확과 사신 용골대를 주살(誅殺)해야 한다고 상소, 그해 겨울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 청병(淸兵)에게 남한산성이 포위되자 강화(江華)로 가서 성을 사수(死守)하다가 함락되기 직전에 김상용(金尙容)을 따라 남문(南門)에 올라가 분신(焚身) 자결했다. 뒤에 영의정에 추증(追贈)되고, 광원 부원군(光源府院君)에 추봉(追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