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뿡뿡! 냠냠!
앗, 큰일 났다! 아기 고구마 냠냠이 늦잠을 자고 말았어요. 냠냠은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고양이 세수하듯 눈곱만 떼고는 밖으로 뛰어나갔어요.
토실토실 냠냠은 맛나 별나라에 살아요. 맛나 별나라는 지구에 있는 모든 채소와 과일의 맛을 간직한 별나라예요. 아기 채소들과 아기 과일들이 사는 별나라죠. 냠냠은 달콤한 고구마 맛을 간직하고 있어요. 긴장하거나 흥분하면 방귀를 뿡뿡 뀌는 방귀쟁이예요.
오늘은 맛 친구들이 가야 할 집을 결정하는 날이에요. 늦잠을 잔 냠냠은 뿡뿡! 방귀를 뀌며 맛나 할머니에게 달려갔어요. 맛나 할머니는 여러 가지 맛을 지구별로 보내주는 일을 했어요. 상큼한 사과 맛, 시큼한 오렌지 맛, 밍밍한 오이 맛, 알싸한 고추 맛, 시원한 수박 맛, 달콤한 고구마 맛 등 아주 다양한 맛을 지구에 보냈어요. 냠냠이 헐레벌떡 달려와 숨을 고르고는 맛나 할머니에게 물었어요.
“저는 누구네 집으로 가요?”
맛나 할머니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어요.
“고민할 필요도 없겠구나.”
“왜요?”
“네가 너무 늦게 오는 바람에 딱 한 집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둘레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어요. 다른 친구들은 이미 다 누구네 집으로 갈지 결정한 모양이에요. 순간 냠냠은 걱정됐어요. 모두가 가기 싫어하는 집만 남은 것 같았거든요. 작은 소리로 물었어요.
“누구 집인데요?”
맛나 할머니가 텔레비전을 켜자, 채비네 집이 보였어요. 채비는 엄마와 함께 할아버지 집에서 살았어요. 앗! 큰일 났어요. 채비 할아버지네 고구마밭에는 굼벵이가 많았거든요. 채비 할아버지는 밭에 굼벵이 농약을 뿌리지 않나 봐요. 냠냠은 굼벵이가 징그럽고 무서웠어요.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어요.
“채비네 집엔 갈 수 없어요.”
맛나 할머니가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왜지?”
“저는 굼벵이가 정말 싫거든요. 너무 무서워요.”
“하지만 어쩔 수 없어. 네가 너무 늦게 왔으니까 말이야.”
실망한 냠냠은 두 손을 모으고 말했어요.
“제발 저를 다른 집으로 보내주세요.”
“그럴 수는 없어. 채비네 집이 마지막이니까.”
냠냠은 시무룩했어요.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하고 고민했죠. 그러다가 맛나 할머니에게 이렇게 물었어요.
“내년에 다른 집으로 가면 안 될까요?”
“그러면 채비네 식구가 매우 실망할 거야.”
“왜요?”
“밭에 심은 고구마가 맛이 없을 테니까 그렇지.”
냠냠이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어요. 울먹이며 말했어요.
“하지만 굼벵이가 저를 야금야금 다 파먹을 텐데요.”
“그럴지도 모르지만 어쩔 수 없어.”
맛나 할머니는 또 냠냠이 때문에 채비가 슬퍼하면 안 된다고 말했어요. 지구에서 맛을 지키는 일이 맛나 별나라에 사는 맛 친구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도 했어요. 결국, 냠냠이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어요. 맛나 할머니가 우는 냠냠이 등을 토닥이며 말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 다 잘될 거니까.”
맛나 할머니가 다 잘될 거라고 말했으나 냠냠은 자꾸만 눈물이 났어요. 맛나 할머니가 또 말했어요.
“채비는 정말 재밌고 착한 아이야. 너랑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채비는 안타깝게도 아빠가 일찍 돌아가셨어요. 아빠는 지금 하늘나라에 있어요. 그래도 채비는 언제나 명랑했죠. 또 재잘재잘 말이 많고 잘 웃었어요. 냠냠은 채비가 좋았어요. 맛나 할머니 말씀대로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았죠. 하지만 꾸물거리는 굼벵이는 정말 싫었어요.
맛나 할머니가 냠냠에게 내일 아침에 다시 오라고 했어요. 내일 아침에 채비네 집으로 가야 한다고 했죠. 냠냠은 훌쩍거리며 집으로 돌아왔어요.
냠냠은 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다른 친구들은 지구별에 간다며 마음이 들떠 있었지만, 냠냠은 슬프고 무섭기만 했어요. 밤이 됐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죠. 고민하던 냠냠은 창고에 꼭꼭 숨었어요. 숨어 있다가 내년에 다른 집으로 갈 생각이었죠. 그러다가 깜박 잠들었어요. 그때 꿈속에서 하늘나라에 사는 채비 아빠가 찾아왔어요. 채비 아빠가 냠냠에게 부탁했어요.
“채비에게 가 줘. 간곡히 부탁할게.”
“하지만 저는 꾸물꾸물 굼벵이가 진짜 싫어요.”
“좀 징그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괜찮을 거야.”
“저는 괜찮지 않아요. 저를 파먹는 굼벵이를 상상만 해도 너무 끔찍하단 말이에요. 엄청 무섭다고요.”
채비 아빠가 눈물을 흘리며 부탁했어요.
“제발 부탁이야. 채비가 방긋 웃을 수 있게 도와줘.”
채비는 고구마를 정말 좋아했어요. 고구마를 너무 좋아해서 거의 날마다 고구마를 먹었죠. 채비 아빠가 다시 부탁했어요.
“지금은 너밖에 없어. 채비를 도와줄 수 있는 게 말이야.”
채비 아빠가 눈물을 흘리자 냠냠은 마음이 약해졌어요. 결국, 고개를 끄덕였죠. 채비에게 가기로 채비 아빠와 약속했어요. 손가락을 걸고 꼭꼭 약속했죠.
이튿날 아침 냠냠은 퉁퉁 부은 얼굴로 맛나 할머니를 찾아갔어요. 걱정을 너무 많이 해서 얼굴이 부은 거예요. 그러자 맛나 할머니가 냠냠을 토닥토닥 토닥이며 말했죠.
“너무 걱정하지 마. 다 괜찮을 테니까.”
“아니에요. 아마도 저는 굼벵이를 보자마자 기절하고 말 거예요. 그러면 굼벵이가 저를 야금야금 파먹을 거예요.”
“아닐 거야.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거야.”
냠냠은 맛나 할머니를 쳐다봤어요. 맛나 할머니는 분명히 좋은 일이 생길 거라며 빙그레 웃었어요.
“무슨 좋은 일요?”
“그거야 가보면 알 수 있겠지.”
맛나 할머니는 냠냠을 채비네 집으로 보냈어요. 냠냠이 도착했을 때 채비와 할아버지가 텃밭에서 고구마 순을 심고 있었어요. 채비 표정이 무척 행복해 보였어요. 좋아하는 채비를 보자 오지 않으려고 창고에 숨었던 일이 미안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굼벵이는 싫었어요. 굼벵이를 어떻게 피해야 할지 막막했어요.
냠냠은 고구마 순에 달라붙었어요. 달콤한 고구마 맛을 고구마 순에 넣었죠. 고구마 순 하나하나에 달라붙어 고구마 맛을 넣은 거예요. 그럴 때마다 냠냠은 점점 작아졌어요. 그러다가 개미 알 만큼 작아졌죠. 냠냠은 마지막 하나 남은 고구마 순에 달라붙어 코코 잠들었어요.
채비는 날마다 고구마밭에서 병아리들과 놀았어요.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여러 날이 지나자, 개미 알 만큼 작아졌던 냠냠은 무럭무럭 자랐어요. 병아리들도 무럭무럭 자랐죠. 여름이 되자 냠냠은 어른 주먹만큼 자랐고 병아리도 어엿한 꼬꼬댁 닭이 됐어요.
그러던 어느 날 굼벵이가 꿈틀꿈틀 기어 왔어요. 그것도 다섯 마리나 됐어요. 결국, 걱정했던 일이 벌어진 거예요. 으악! 냠냠은 비명을 질렀어요. 굼벵이들이 야금야금 파먹는 상상을 하자 몸이 오들오들 떨렸어요. 그 마음도 모르고 굼벵이들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어요.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어요. 굼벵이 한 마리가 크크 웃으며 이렇게 말했죠.
“이 고구마는 아주 맛있겠는걸.”
냠냠은 너무 끔찍해서 두 눈을 질끈 감았어요.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했던 맛나 할머니가 원망스러웠어요. 차라리 기절하는 게 좋을 것 같았죠. 바로 그때였어요. 아주 가까이에서 꼬꼬 소리가 들려왔어요. 꼬꼬댁 꼬꼬! 꼬꼬댁 꼬꼬!
냠냠이 눈을 뜨자 닭들이 두 발로 땅을 헤집었어요. 그러더니 굼벵이를 콕콕 쪼아 맛있게 먹어버렸어요. 꿈틀거리던 굼벵이들이 순식간에 사라진 거예요. 냠냠은 무척 기뻤어요. 닭들에게 고맙다고, 고맙다고 말했죠.
그날 이후 굼벵이들이 나타날 때마다 어디선가 닭들이 불쑥 나타났어요. 꼬꼬댁 꼬꼬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놓였어요. 냠냠은 이제 아무 걱정이 없었죠. 맛나 할머니 말씀대로 좋은 일이 생긴 거예요.
냠냠은 튼실하게 자라 단단한 고구마가 됐어요. 하지만 굼벵이보다 훨씬 더 무섭고 끔찍한 괴물이 나타났어요. 어느 날 밤 갑자기 땅이 두두두두 흔들렸어요. 잠자던 냠냠은 깜짝 놀라 깼어요.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거든요.
그때 저쪽에서 누군가가 두두두두 다가왔어요. 곧바로 눈앞에 나타나더니 커다란 이빨을 드러냈죠. 언젠가 감자 맛 친구가 말했던 두더지였어요. 냠냠은 너무 무서워서 몸이 부들부들 떨렸어요. 밤이라서 그런지 꼬꼬댁 닭도 오지 않았어요. 이제 꼼짝없이 파 먹히게 생겼어요.
두더지가 커다란 이빨로 냠냠을 와락 깨물려고 할 때였어요. 냠냠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방귀를 뿡뿡! 뀌었어요. 연달아 뿡뿡! 뿡뿡! 뀌었죠. 그러자 녹말 방귀가 펑펑 튀어나왔어요.
녹말 방귀 냄새는 아주 지독했어요. 두더지는 숨이 막히는지 캑캑! 기침했어요. 또 콧물과 침을 질질 흘렸어요. 비틀비틀 쓰러지는 것 같더니 허겁지겁 도망가며 말했어요.
“아휴! 정말 지독해. 이 아이를 깨물었다가는 내가 숨 막혀 죽을 거야.”
냠냠은 신났어요. 다시 방귀를 뿡뿡 뀌었죠. 그러자 두더지가 ‘걸음아 나 살려라!’ 쏜살같이 도망쳤어요.
냠냠은 굼벵이도 두더지도 두렵지 않았어요. 굼벵이는 꼬꼬댁 꼬꼬! 닭이 쫓아버렸고, 두더지는 뿡뿡! 방귀로 쫓아버렸어요. 냠냠은 아무 걱정 없이 포동포동 곰 모양으로 자랐죠. 또 냠냠이 방귀를 뀔 때마다 밭에 있는 고구마들은 냠냠이 방귀 냄새를 쓰읍쓰읍 마셨어요. 그러자 점점 더 맛난 고구마가 됐죠.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자 닭들은 이제 알을 낳는 어미 닭이 되었어요. 밭 여기저기에 알을 낳으면 채비가 저녁마다 찾아갔죠. 마치 술래잡기를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채비는 알을 찾을 때마다 빙그레 웃었어요. 냠냠도 빙그레 따라 웃었어요.
어느 날 밭에 있는 감나무 나뭇잎이 울긋불긋 단풍 들었어요. 그러자 채비와 할아버지가 고구마를 캤어요. 호미를 손에 든 채비는 고구마가 다칠까 봐 조심조심 캤어요. 그러다가 냠냠을 발견하고는 벌떡 일어났어요.
“할아버지! 이 아이 좀 봐요. 곰처럼 포동포동하게 생겼어요.”
“정말 그렇구나. 우리 채비처럼 너무 귀엽구나.”
“엄마가 퇴근하시면 보여줄 거예요.”
채비도 할아버지도 무척 행복해 보였어요. 그제야 냠냠은 채비네 집에 온 것을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죠.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났어요. 맛나 할머니의 말씀처럼 진짜 좋은 일이 생긴 거예요. 저녁에 엄마가 퇴근하자 할아버지는 고구마를 삶아서 함께 먹었어요. 엄마도 채비도 할아버지도 정말 맛있게 먹었어요. 그 모습을 보자 냠냠도 엄청 행복했어요. 자기가 좋은 일을 한 것만 같아 기분 좋았어요.
냠냠은 채비가 잠들자 다시 맛나 별나라로 돌아왔어요. 냠냠은 곧바로 맛나 할머니에게 달려갔어요. 맛나 할머니가 수고했다고 하자 냠냠은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어요.
“맛나 할머니! 내년에도 채비네 집으로 갈 거예요. 꼭 기억해 주세요.”
“왜 마음이 바뀌었지?”
냠냠은 방긋 웃으며 말했어요.
“채비네 밭에선 농약 냄새가 나지 않아 정말 행복했거든요.”
“뭔가 신나는 일이 있었나 보지?”
“맞아요.”
냠냠은 그동안 채비네 밭에서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이야기했어요. 그날 밤 냠냠이 꿈속에 채비 아빠가 다시 찾아왔어요. 정말 정말 고맙다고 했죠. 냠냠은 가슴이 뿌듯했어요. 자면서도 방귀를 뿡뿡! 뀌었죠.
첫댓글 난 밤고구마보다는 속이 노란 호박고구마를 좋아하는데 고구마 먹은지가 오래 됐네요. 수고하셨어요
저는 물고구마를 좋아하는데
냠냠이 귀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