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들으면서 오 명 성 나는 TV를 잘 보는 편은 아니다. 그러나 역사에 관한 드라마는 열심히 본다. 그 이유는 내가 학창 시절에 배울 때 생각했던 역사의식, 성장하면서 읽은 역사 소설에서 얻은 역사적 판단, 그리고 지금 방영되고 있는 역사드라마의 전개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경험했던 많은 부분들에서 잠재적 성숙이 좀 더 인간적인 판단을 하게 됨으로써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기쁨 때문인 것 같다.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가 조선 초 세종·조 시대의 신숙주를 생각하게 된다. 그분의 인간적 고뇌는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표현한 이상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속으로 숙연해진다. 그런 생각은 인간의 진정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하나 더 생겼다. 그것이 작년부터 올해까지 모 방송국에서 기획·방영하고 있는 ‘내일은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이다. 우리나라 트롯은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지금까지 민초 즉 백성들의 삶이 투영된 것이다. 그 시대엔 유행하던 노래의 가사가 바로 그들의 삶의 표현이었다. 따라서 우리가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들이 막걸리 한잔에 불렀던 그 노래는 부모님들의 삶이었고, 안주였고 위안이었다. 우리도 이를 답습하여 고달픈 삶에 노래 한 곡 들으면서 위로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젊은이들이 그 시대의 그 노래들을 그때의 그 감정을 살려내어 부르는 것을 보면서 어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노래에는 그 젊은이들이 지금 그 자리에 오기까지 겪었던 수없는 좌절과 절망 그리고 질곡이 담겨있다. 노래에는 바로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시대성과 삶과 희로애락이 녹아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가장 한국적인 트롯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이 추구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인간성이다. 인간성은 순수성과 진정성을 바탕으로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함께하는 마음은 나와 생각이 달라도 그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마음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를 보면 너무나도 안타깝다. 이념이 다르면 모든 것을 거부하는 모습은 정치가 아니다. 정치는 협상과 타협을 통해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국민이 안심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지금의 정치는 민주주의를 지향하기보다는 집단이기주의적 사고에 함몰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지금 많은 사람은 이런 정치의 흐름에 대한 불편한 생각으로 걱정을 하고 있다. 이런 불편한 생각이 나를 괴롭힐 때, 음악은 참 좋은 친구가 된다. 마음이 복잡하고 특히 화나는 일들이 있으면 나는 슈만의 ‘어린이 정경 작품 15’를 들으며 마음에 위안을 얻는다. 느린 피아노의 멜로디가 어린 시절 꾸밈없이 놀던 순수했던 때로 돌아가게 한다. 그대로 멍하니 앉아 들으면서 지나온 세월을 다시 한 번 반추해본다. 그리고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모음곡-13번 백조‘의 첼로 연주로 이어진다. 첼로의 아래 음에서 고음 쪽으로 옮겨질 때는 마치 백조가 고고하고 유연하게 물 위를 헤엄치며 노는 모습이 떠오른다. 다음으로 슈베르트의 ’백조의 노래-4번, 세레나데‘를 기타연주로 들으면 커피 한잔이 생각이 난다. 기타연주가 서로 대화를 나누듯이 전개되는 느낌 때문에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고 느껴진다. 이제 비제의 ’아를르의 여인 모음곡 2번-3번, 미뉴에트‘를 플롯연주로 들으면서 인간의 순수성과 진정성을 생각해본다. 음악이 우리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고마운 친구라는 생각이 절실하다. 특히, 지금처럼 거짓, 증오 그리고 끊임없이 남의 탓을 하는 세상에서는 그들이 범접할 수 없는 음악 속에서 지내는 것이 또 하나의 길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지막으로 타이스의 ’명상곡‘을 들으면서 내 마음을 다스려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