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생의 가로등을 끄는 시간]
요즘 갓생을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갓생(God+生)은 모범적이고 훌륭한 삶을 말합니다. 신의 축복을 받은 것 같은 흠 잡을 곳 없이 완벽한 삶이죠. 그런데 실제로는 거창한 성공보다 일상에서 스스로 정한 작은 목표와 루틴을 꾸준히 실천하며 매우 성실하게 살아가는 삶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남들 다 자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외국어 강의를 듣기, 점심시간에 짬을 내 헬스장에 가기, 매일 퇴근 후 책 쓰기처럼 자기관리를 열심히 하면서 성취를 눈에 보이는 행동으로 쌓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뿐인 인생, 마음 깊숙한 곳을 성공 마인드맵으로 채우고 열심히 위를 올려다보면서 쉬지 않고 달려 나가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하면서요.
저도 그렇습니다. 늘 깜박이는 커서는 어서 빨리 키보드를 두드리라고 아우성치고, 모니터 옆에는 오늘 해야 할 일들이 새빨갛게 적힌 포스트잇이 빈틈없게 다닥다닥 붙어있습니다. 책상 모서리에는 읽어야 할 책들이 피사의 사탑처럼 우뚝 솟아있고, 고개를 살짝만 돌리면 푸쉬업 바가 눈 닿는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남들에게 제 인생은 무언가 충만하고, 행복하고, 성취감으로 가득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실상은 조금 다릅니다. 모든 순간이 ‘해야 할 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몸은 쉬어도 정신은 쉴 틈이 없습니다. 마치 어린 왕자가 방문했던 소행성의 점등수처럼요. 끊임없이 가로등을 껐다 켰다 하면서 제발 한 번만이라도 푹 쉬어보는 게 소원이라고 내 귓속에 속삭이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나는 더 나은 나를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일종의 성취 강박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하게 되면 응당 죄책감이 생깁니다. 자신의 기대와 어긋난 행동이니까요. 문제는 이 성취의 기준이 계속 높아지고 루틴의 종류가 계속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읽어야 하는 책은 끊임없이 늘어만 납니다. 글을 쓰는 지금 9월에 벌써 올해 목표였던 독서 100권을 초과 달성했는데도 여전히 읽어야 하는 책이 산더미입니다. 그렇게 혹시라도 못하는 게 생기면 자기 비난으로 이어집니다. 나는 왜 게으를까. 할 수 있는 건데 왜 안 하는 걸까.
어느 날 문득, 나의 삶 전부가 오로지 ‘해치워야 할 과업’의 영수증처럼 길어만 지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죽는 날까지 가로등을 켜고 꺼야만 하는 점등수가 되어 ‘성취’라는 짧은 쾌락과 ‘불안’이라는 긴 터널 사이를 헐떡이면서 메말라 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습니다. 난 늘 내 삶을 증명하느라 정작 삶을 살아가고는 있지 못했던 겁니다.
정작 중요한 건 무엇일까요.
지금까지는 열심히, 성실하게 사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과업의 쳇바퀴 위에서는 미소 짓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나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갓생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수단이지, 더 나은 삶을 증명하기 위한 시험이 아닐 텐데요. 지금과 같은 갓생의 종착역은 번아웃이 분명합니다.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그 무너짐의 순간까지 버티지 말고,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개선하지 않는 영역을 남겨두기로 했습니다. 나에게 쉼을 주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는 이제, 나를 덜 고쳐 쓰기로 했습니다. 내 삶의 한 곳에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개선하지 않는 빈칸’을 남겨두려고 합니다. 해야 할 일을 그만 쌓고, 가로등을 완전히 끈 채로 두어 보는 것. 빛 공해가 차단되어야 저 멀리 은하수도 살펴볼 수 있고, 옆에 앉은 사랑하는 이의 눈이 반짝인다는 것도 알아챌 수 있을 테니까요.
나아가는 나도 나고, 쉬어가는 나도 나입니다. 허나 나아가기만 하는 나는 오래가지도, 멀리 가지도 못할 겁니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고, 웃을 시간도 적을 테니까요. 이제는 나의 뇌에게도 성취의 도파민 대신 오늘 하루 나를 스쳐 간 바람의 냄새와 가족과 함께 바라 본 노을의 색채를 음미할 시간을 줄 겁니다.
나를 몰아세우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나라는 사실을, 비로소 그 텅 빈 공간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첫댓글 작가님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