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주 > 주제1 > 강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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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그림 중 대표작인 <쾌락의 동산>(도2)은 플랑드르 전통의 세 폭 제단화입니다. 그림은 흑백의 그리자이유로 그린 우주의 창조로부터 시작합니다(도1). 그리고 양쪽 패널을 열면 <쾌락의 동산>(도2)이 펼쳐집니다. 닫았을 때의 태초의 모습은 안쪽의 왼쪽 날개인 낙원으로 이동하며, 낙원은 인간의 갖가지 탐욕이 그려진 가운데 패널을 지나 오른쪽의 지옥으로 이어집니다. 아담과 이브의 창조는 질서 있고 평화로운데 비해 탐욕과 지옥의 세계는 무질서하고 기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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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1 히에로니무스 보쉬 <쾌락의 동산> 제단화를 닫았을 때 모습 |
1505-10년경, 220×194㎝, 패널에 유채 |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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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2 히에로니무스 보쉬 <쾌락의 동산> 펼쳤을 때 모습 |
1505-10년경, 패널에 유채,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가운데 패널, 220×195㎝, 양쪽 날개 패널 각각 220×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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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생애 말년에 그린 <네 사도들>(도18)은 여러 가지 면에서 그의 결산 같습니다. 좁고 긴 두 폭의 화면은 두 사도의 긴 옷이 가득 차지하고, 나머지 두 사도는 거의 얼굴만 그려졌습니다. 단색의 옷은 거대하고 단순하며, 명암처리에 의해 입체감이 풍부합니다. 옷은 이렇게 이탈리아 르네상스전통의 화법으로 그려졌으나 얼굴의 사실적인 묘사는 미화시키지 않고 현실을 그대로 묘사하는 북구의 전통을 따르고 있습니다. 왼쪽부터 붉은 옷의 요한과 열쇠를 들고있는 베드로, 복음사가 마르코, 그리고 칼을 들고 있는 바오로입니다. 그러니까 그림은 요한과 바오로를 중심으로 그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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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18 알브레히트 뒤러, <네 사도> |
1526년, 나무패널에 유채, 각각 215×76㎝ |
뮌헨, 알타 피나코테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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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러한 네 명의 구성은 종래의 종교화에서는 거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더구나 이 그림은 교회를 위해 그린 것이 아니고, 그가 주문 없이 스스로 제작하여 뉴렘베르그의 시청 위원회에 선물한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독일지역이 루터의 종교개혁에 휩싸였고, 뉴렘베르그시는 막 루터주의를 인정하였음을 생각하면 이러한 분위기와 관계된 것은 아닐지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뒤러는 루터를 '참으로 큰 고뇌에서 자신을 구해 준 크리스챤'이라고 존경해 왔으며 프로테스탄트가 거론한 성상 숭배의 금지에 대해서도 마음속 검토하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루터가 가장 좋아하는 사도이며, 용감한 바오로는 프로테스탄트의 영적인 아버지임을 고려하면 루터주의적인 주제의 선택이며, 이를 시청에 선물하였음은 시와 루터교의 평화로운 해결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 일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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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겔의 출생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그에 대한 초기의 연구에서는 농촌의 삶을 많이 그린 점에서 그도 농부출신일 것으로 짐작했습니다. 그러나 위 세 작품의 설명에서 본 바와 같이 그는 농부들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민에 대한 슬프기까지 한 이러한 성찰은 높은 지성을 필요로 합니다. 그는 아마 당시 지성인들과 교류한 도시 출생의 화가일 것이라는 요즘의 학설이 더 타당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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