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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이후 경제학의 現상황 혹은 감히 진단하는 미래
R. S. Goldfarb & T. C. Leonard
경제학은 예측에 대한 회의적 입장
미래는 감히 예측을 해보려 할 정도로 무모한 자들이나 그런 일로 높은 보상을 받은 자들에게는 가혹할 것이라고 역사는 가르치고 있다. 지난 세기 중 가장 출중했던 미국 경제학자인 어빙 피셔Irving Fisher는 1929년 10월 “주식시장 하락의 종말은 … 길어도 며칠 뒤에 올 것이다”라고 예측했었다. 1943년 IBM 회장 왓슨Thomas Watson은 “약 다섯 대의 컴퓨터를 위한 시장은 존재한다”고 추정하였다.
미국 특허청의 듀엘Charles Duell은 1899년 “발명될 수 있는 것은 다 발명되었다”라고 주장하였다. 1894년 물리학자 마이클슨A. A. Michelson은 물리학의 황금시대의 정점에서 “물리학의 보다 중요한 근본적인 법칙과 사실들은 모두 발견되었다”라고 결론지었다.
경제학은 또한 예측에 대한 회의주의懷疑主義, skepticism를 가르치고 있다. 즉 어떤 실질가치에 대한 예측이 오랫동안 쓸모있는 것으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없음을 가르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의 미래에 대해 억측해 보고 싶다는 호기심은 저항하기 어려운데, 그 이유는 미래에 대한 어떤 추측도 현재와 우리를 여기에 데려다 준 역사에서 시작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바이너Jacob Viner는 한때, 다소는 농담조로, “경제학은 경제학자들이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오늘날 경제학자들은 많은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이런 다양성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新팰그레이브 경제학 사전New Palgrave Dictionary of Economics』에는 약 2,000개의 에세이만한 길이의 항목들이 들어있다. 경제학자들이 경제학을 ‘어떤 방식으로’ 연구하느냐는 더 단조로운 상태로 남아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사전의 저자 중 그 누구도 대표적인 경제학자가 못 된다. 응용수학기법과 그 정신ethos을 채택하고 있는 이 학문에서, 우리들은 우리들의 주장은 대부분 산문으로 쓰고 있다. 더욱이 우리 연구의 관심사에는 경제학의 역사와 철학, 즉 오늘날에는 이 학문의 주변을 점하고 있는 분야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견해는 대표적일 수가 없다.
이런 편차를 부분적으로 보상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견해와 다른 것을 제시하고자 한다. 또한 이렇게 하는 것은, 수량적 예측과의 유사성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예측의 질을 개선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개별적 예측자들의 예측을 평균한 것인 컨센서스 예측은 그것의 구성요소를 이루는 많은 예측들보다 더 정확하다는 점은 이미 밝혀져 있다. 이름 있는 경제학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1990년 이후 이 학문의 現상황 또는 미래를 감히 진단해보려 하였다.
이런 시도에는 『Economic Journal』誌의 100주년 기념호에 들어 있는 22개의 논문, 『다이달로스Daedalus』(1997년 겨울)誌에 실린 솔로우Solow와 크렙스Kreps의 논문 및 립시Lipsey의 글(『Journal of Economic Methodo-logy』, 2001년 6월), 컬랜더Colander의 글 (『Journal of the History of Economic Thought』, 2000년 6월), 그리고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2000년 겨울)에 실려 있는 심포지엄 논문들이 포함된다. 나머지 또 하나의 편차는 개인, 기업 및 산업에 관해서 연구하는 미시경제학microeconomics의 전문화에서 생긴다. 즉 생산량, 인플레 및 통화와 같은 경제 전반에 걸친 현상에 관한 연구인 거시경제학은 본 연구에서는 간단히 취급될 것이다.
여기서 주가, 물가지수 같은 특정 변수의 변동의 크기나 방향을 예측하는 좁은 의미에서의 예측은 이용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들은 우리들과, 특히 우리가 인용하는 학자들이 우리 전공 내에서 중요한 경향이라고 보는 것을 찾아내고 이런 경향들 중에서 어떤 것이 강화될 수 있는지를 추측하고자 한다. 그것들의 광범위하고 애매한 성격 덕분에, “경제학이 어디로 가고 있느냐”에 관한 우리의 추측은 어빙 피셔Irving Fisher와 그의 고객인 예일Yale 대학교 재단이 범했던 것보다는 위험이 작을 것임이 분명하다.
경제학이 이론 對 증거에 대해 주어야 할 가중치
아마도 경제학에서 있었던 가장 오래된 방법론적 토론은 경제학이 이론 對 증거에 대해 주어야 할 가중치에 관한 것이다. 이론 그 자체는 때때로 정책학policy science이 되고자 했던 이 학문(경제학)에게는 공허하고 제한된 가치밖에 없는 것이나, 이론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험(통계)적 조사는 장님처럼 될 가능성이 높다. 1백년 이상 동안 그리고 여러 가지 탈을 쓰고, 경제학은 이론과 증거에 어떤 가중치를 주느냐의 문제를 본의 아니게도 여러 번 토론했었다. 오늘날 서로 다른 부류의 (대학교) 경제학자들이 행하고 있는 것은 그 가중치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한 서로 다른 견해를 반영하는 것이다.
우리는 경제학자라는 속屬, genus을 다섯 가지의 종種, species으로 분류하기로 한다. 분류학적 정확성을 위해서는 너무 많이 중복되지만, 유용하게도 서로 다른 종은 이론과 증거에서 서로 다른 자세를 대표하고 있다.
“순수 이론가pure theorists”들은 일단의 행동적 公理behavioral axiom를 근본적인 것으로 보는 것(『Economic Journal』(1991, 47)에 나타난 한Hahn의 견해)의 함의를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일을 하고 있다. 즉 정신적으로는 유클리드적이라고 서술할 수 있는 사업(『다이달로스Daedalus』 (1997, 42)에 있어서 솔로우Solow의 경우)을 하고 있다.
순수 이론가들은 定理theorem와 명제lemma를 증명한다. 게임이론의 대부분은 순수이론형에 속한다. 순수이론과 경제 사이에는 연결 관계가 엷거나 아주 없다. 가장 추상적이고 가장 원형적인 것(예컨대 드브러Gerard Debreu의 1959년도 노벨상 수상논문)에서, 순수이론은 경험적 결과를 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순수이론가 루빈스타인Ariel Rubinstein이 말한 바와 같이(1998년의 그의 저서 『Modelling Bounded Rationality』), 순수이론은 “예측하거나, 권고하거나 … 하는 체 하지도 않는다. … 이것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개념을 明晳하게 하는 것이다.”(194)
두 번째 種인 “응용이론가applied theorist”는 현실세계의 현상을 설명하거나 예측할 수 있도록 순수이론을 개조한다. 서튼Sutton에 의해 인용된, 그런 성공적인 예(그의 2000년도 저서, 『Marshall’s Tendencies: What Can Economists Know?』)는 옵션option이라는 상품에 가격을 매기는 것이다. 옵션은 주식과 같은 자산을 미래의 어떤 시점에서 지정된 가격으로 사거나 팔 수 있는 계약상의 권리이다. 응용이론가들은 현재의 주식가격, 만기까지의 시간, 할인율, 주식가격의 변동성에 관한 추정치와 같은 지정된 가격들이 주어진 상태에서, 옵션의 가치를 예측하는 방법을 고안하였다. 머튼Robert Merton과 숄즈Myron Sholes는 옵션의 가치를 측정하는 방법에 대한 기여로 노벨상을 받았다.
서튼이 인용한 또다른 성공적인 예는 경매방법인데, 이것은 非협력적non-cooperative 게임이론의 한 지류인 경매이론을 이용하고 있다. 이런 예들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응용이론은 상당히 “통제되어 있는” 경험적 환경, 즉 이론적 가정이 실현되어 있을 가능성이 더 높은 곳에서 제일 잘 작동한다. 이론의 성공적 적용은 또한 상당량의 초보적 경제학을 요구할 때가 종종 있다. 클렘퍼러Klemperer(『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2002년 겨울호)는 “경매디자인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어떤 산업의 규제당국도 중요한 관심사로 인정하는 문제들, 즉 공모共謀, 시장참여 방해 및 약탈적 행위 등을 억제하는 것이다. 요컨대 좋은 경매디자인은 대부분 좋은 부분의 기초경제학과 관련이 있다”라고 주장하였다(169∼170).
우리의 세 번째 種은 순수한 통계이론 위에서 작업을 한다. 이런 “이론적 계량경제학자들theoretical econometricians”은 계량경제학에서 제기되고 있는 특별한 이론적 문제들에 의해 동기부여가 된 통계이론을 발전시키고 있다. 경제학자의 네 번째 종은 경험적 연구를 위주로 하는 사람들이다. 그 중의 한 아종亞種인 “응용계량경제학자들applied econometricians”은 통계자료를 분석하기 위해서 고도의 계량경제학적 기법을 활용하는데, 이 기법은 경제학적 적용을 목적으로 개발된 통계적 기법이다. 그들은 통계자료를 가지고 일하지만, 그들의 관심사는 대부분 “도구에 이끌리는tool-driven” 것이다.
즉 그들은 확립된 경험적 분석영역에 새로운 계량경제학적인 기법을 적용하는 것이다. 경험적 경제학자 중 두 번째 아종은 통계자료에 더 이끌리고 있다. 그들은 새로운 (또는 확장된) 경험적 통계자료의 집합을 분석하기 위해서 확립된 계량경제학적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경험적 경제학자들 중 세 번째 아종은, 경제학 안에서도 특이한 것으로 아직 남아 있지만, 여러 가지 행태적 명제들을 테스트하기 위해서 실험적 방법, 특히 실험실에서 쓰는 게임을 사용하고 있다.
다섯 번째 種인 “응용경제학applied economics”은 완전히 다른 종이 아니다. 이들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을 어떻게 연구하느냐보다는 무엇을 연구하느냐에 의해 더 구별된다. 방법론적으로는 절충적이지만, 그들은 그들의 관심사항 예컨대 노동경제학, 경제사, 또는 도시경제학 등에서의 문제들을 분석하기 위해서 응용이론과 경험적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이 응용경제학자라는 종류 속에서 그 위치가 매겨질 수 있다.
정말로 응용계량경제학자들이나 응용이론가들은, 그들의 조사 초점이 바뀜에 따라, 응용경제학 종류에 더 어울릴 때가 많다. 우리의 이 조잡한 분류학taxonomy에서, 서로 다른 종들은 경제학에서의 이론과 증거의 적절한 혼합에 대한 서로 다른 태도를 대표하는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보는 바와 같이, 이론과 증거를 비교하는 문제는 우리가 개관할 유명한 경제학자들에게는 중심적인 과제이다.
경제 모델은 경험적인 것을 주로 다룬다
문외한들이 현대 경제학을 단순하다고 판단할 때, 특히 비슷한 학문과 비교해서 그렇게 판단할 때, 그들은 경제학적 방법론 즉 경제학을 어떻게 연구하느냐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경제학자들이 하고 있는 것은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노벨상 수상자이며 가장 유능한 전도사 중의 한 사람인 솔로우는 말하고 있다. “요즘의 주류경제학은 거의 이런 과정의 예들로 구성되어 있다.”(『다이달로스Daedalus』(1997, 43)에서의 솔로우의 언급) 대표적인 경제학 논문에서 소개의 말 바로 뒤에 따라오는 장은 예외 없이 “모델”이라고 제목이 붙어 있다.
모델이라는 것은 “훨씬 더 복잡한 현상을 고의로 단순화하여 수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렇게 하는 아이디어는 모든 다른 것들을 제외시키고 하나 또는 두 개의 원인 또는 조건을 제공하는 변수들에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한 것이며, 이를 통해 현실 속의 이런 측면들이 어떻게 효과를 미치고 그리고 상호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앞의 글)
이 결의에 찬 역사가는 현대 경제학에서 뜻밖으로 고색창연古色蒼然하고 수량적인, 그리고 수학적이면서 통계학적인 선구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예컨대 1660년대의 「Political Arithmetick」 및 꾸르노Augustin Cournot의 독점과 복점複占, duopoly1)에 관한, 앞을 내다보는 듯한 고도의 수학적 처리가 그것이다. 그러나 제2차 대전 이전에 있었던 경제학 전문잡지는 초보적인 수학적 기호도 거의 없었다. 오늘날의 전문지에서는, 보몰Baumol2)의 표현을 빌리면, 한 페이지 건너마다 “대수학algebra으로 점철되어 있다.”(『Economic Journal』 1991)
경제학이 지나치게 형식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잘못
그러나 수학은 확실히 경제적 모델을 구축하는 데 유용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형식적인 고찰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순수이론가들은 모델에 괘념치 않는다. 왜냐하면 모델은 관측 가능한 경험적 현상들을 고립시키고 그것에 관해 언급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모델은 또한 자주 특별한 케이스를 위해 고안되며, 비교적 기초적인 수학을 이용하고, 그래서 순수이론가에게는 일반적이지도 못하고 또 충분히 기발하지도 않다.
경제모델은 경험적인 것을 주로 다루기 때문에 그리고 모델은 비수학적인 용어로 표현될 수 있기 때문에(비록 간결한 것이 못하지만), 솔로우는 경제학이 지나치게 형식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잘못된 것으로 보고 있다.
모델을 구축하는 사람들은 “통계자료data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다”라고 솔로우는 말하고 있다(1997, 57). 솔로우도 미국경제학이 전후에 산문적 표현에서 대수학적 표현으로 이행한 것은 통계자료가 더 좋아지고 많아진 덕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기법과 모델구축은 통계자료의 이용 가능성이 확대됨과 더불어 온 것이며, 양자는 서로를 강화시키고 있다. 사실은 설명을 요구하고 설명은 새로운 사실을 요구한다”라고 솔로우는 말하고 있다(앞의 글, 47). 실제로 “경제학에 대한 현대적 접근은 대부분 통계자료의 설명에 관한 것이다.”(앞의 글, 53)
우리는 통계자료의 개선이 모델구축의 우세를 설명해준다는 솔로우의 역사적 명제에 시비를 걸 수도 있으나, 경제학에서 현재 지배적인 방법이 “사실에 이끌린 모델구축”이라고 그가 특징짓는 것은 다투어 보아야 소용이 없다. 그래서 블라인더Alan Blinder가 경제학자를 “어떤 것이 실제로 효과가 있음을 보고 그것이 이론 속에서도 효과가 있는지의 여부를 의아해 하는 사람”이라고 심술궂게 묘사하고 있다(『American Economic Review』, 1988년 5월 호, 7). 경제학을 가장 통일시키는 것은 경제학이 어떻게 연구되느냐에 관한 것이다.
컬랜더Colander(『Journal of the History of Economic Thoughts』 2000)도 이에 동의하고 있다. “현대경제학”은 “여러 가지 가정과 내용을 받아들임에 있어 굉장히 관대해졌다.” 그러나 “방법문제에 이르면 그것은 대단히 편협해진다. … 문제에 대해 모델을 구축하려고 접근하는 것은 현대경제학의 중심적 요소이다.”(137)
標準 관념에 의해서 정의되는 경제학
경제모델을 구축하기 위해서 어떤 요소들이 이용되고 있는가? 두 개의 아이디어, 즉 극대화maximization와 균형equilibrium이 모델구조의 핵심을 형성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극대화는 개별적 경제주체가 완전히 구체화되어 있는 목표, 즉 “극대화 목표변수maximand”와 일관되는 최적의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소비자에게는 “효용” 그리고 기업에게는 이윤이 극대화목표변수이다. 균형이론은 이런 개별적 선택의 총체적 결과가 예측을 허용할 정도로 충분히 안정적이고 독특한 균형을 이룬다고 말한다.
우리는, 크렙스를 따라서(『다이달로스Daedalus』 1997), 극대화와 균형을 標準원칙canonical principles이라고 부를 수 있다. 만약 경제주체들이 극대화를 노리는 존재라면, 그들은 목적의식이 있고 적극적forward-looking이어야 할 뿐 아니라, 또한 미래에 대한 자세한 확률적 그림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Kreps 1997, 71). 극대화는 또한 미래의 가능 상황possible states 위에서의 경제주체의 선호選好, preference가 “합리적일 것well-behaved”, 즉 單一的single이고 완전complete하고 轉移的인 순위 매김transitive rank ordering에 부합될 것을 요구한다. 합리성은 각자가 제일 좋아하는 일을 하는 데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선호는 근원적 개념으로 취급되는 것이 보통이다. 즉 평가나 분석이 주어진 상황에서 그리고 그것들을 넘어서서 그렇게 취급되고 있다. 합리적 선택에 관한 경제학자들의 축약된 처리는 종종 “엷은 합리성thin rationality”이라고 불린다. 왜냐하면 “이것은 행동하고 싶은 이유를 형성하는 믿음과 욕망을 검토되지 않은 상태로 남겨두기” 때문이다(John Elster, 『Sour Grapes』, 1985). 더 광범위하게, 경제적 합리성은 경제학에 관한 로빈스Lionel Robbins의 개념에 깊이 묻어있는데, 여기서 근본적인 경제적 문제는 희소성 아래에서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다. 경제학은 과학이며, 이것은 “인간의 행동을 목표와 대안적 용도가 있는 희소자원과의 관계로서 연구하는 것이다”라고 1935년 로빈스는 말했다.
균형이라는 용어는 극대화하려는 경제주체 중 누구도 그것을 바꿀 수 없다는 의미에서 또는 만약 그들이 바꿀 수 있다고 해도 아무도 그렇게 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의미에서 안정성을 띄는stable 총체적 결과aggregate outcome를 지칭하는 것이 보통이다. 소위 “일반균형”에 관한 설명에서 경제주체들은 보통의 경우 결과를 바꿀 힘이 없는데, 그것은 경제주체들의 숫자는 많고 경제주체들의 크기는 시장에 비해 적기 때문이다. 그런 경제주체들은 “가격순응자price-taker”라고 불린다.
경제주체들이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격결정자price maker”) 게임이론적 환경 속에서는 어떤 (극대화하려는) 경제주체도 그로부터 벗어나기를 원치 않는 균형이, 대체로 말해서 내시Nash 균형이다. 경제학적 방법론은 경제주체들이 균형에 도달할 때 이용하는 균형 밖에서의 과정보다는, 균형 그 자체에 더 관심을 집중시킨다. 만약 균형점이 여러 개 있으면, 실제로도 특히 게임이론적 환경 속에서 그런 경우가 종종 있지만, 그런 경우의 예측은 경제주체들이 어떻게 그 중에 단일한unique 균형적 결과에 안주하게 되는지에 관해 추가적인 이론적 설명이 필요하게 된다. 요약하면, 경제학은 관념의 원천으로서, 그리고 모델을 구축하고 테스트하며 개량하는 사업을 하는 특징적인 방법을 조직화하기 위해서, 극대화 및 균형이라는 표준적 행동원칙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학의 현 상황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실 중심의 모델 구축방법은 얼마나 잘 들어맞고 있는가? 뒤에서 우리는 표준적 원칙의 미래 그리고 경제학의 범위에 관하여 예측하는 문제를 다룰 것이다. 먼저 증거에는 무관심한 순수이론을 보자. 순수이론은 현대 경제학에서 흥미로운 위치를 점하고 있다. 한편으로 이 순수이론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들은 경제학자들 중 가장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대우를 받고, 수학적 능력은 이 전문직에서는 어울리지 않게 칭송도 받고 보상도 받는다.
다른 한편으로는, (『Equilibrium and Macroeco-nomics』에서) 탁월한 경제학자 한Frank Hahn이 말했듯이, 순수한 이론에는 무엇인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것 같은 것이 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일어났거나 앞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상상할 이유가 없는 경제적 상황에 관한 분석을 다듬고 있는 광경에는 무엇인가 불명예스러운 것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라고 한은 말했다(88). 이런 非경험적 방향이, 솔로우가 주장하고 있는 대로(Solow 1997, 43),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순수이론을 존경하고는 있지만, 그에 대해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이다.
솔로우는 수학을 이용하는 평상적인 모델 구축과 순수이론의 형식논리와를 구별하고 싶어 한다. 그의 주장은 경제학이 수학을 이용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는 허례허식도 아니고 어떤 방법론적 반칙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는 대체로 찬성하지만, 두 가지 관련된 문제가 남아있다. 즉 (1) 경제학에서 수학적 표현의 범위가 적정수준을 넘는 바람에 좋은 점이 지나쳐 오히려 진정한 知的 비용이 되고만 지경에 이르렀는가? (2) 사실 추구적 모델구축이라는 경제학적 방법이 과학적인 관점에서도 성공적인가? 립시Richard Lipsey는 (『Journal of Eco-nomic Methodology』 2001, 81) 경제학의 수학화는 몇 가지 逆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즉 (1) “어떤 문제에 대한 해답의 단순성simplicity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일반성generality 그 자체를 위한 일반성을 추구하는” 경향, (2) 몽매주의obscurantism, 즉 “수학이 언어적 분석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에도” 수학을 사용하는 것, (3) 지적 구축행위intellectual crowding out, 즉 “고등수학을 배우는 데 따른 높은 비용이 더 서술적이고 사실적인 자료를 교과과정에서 구축하는 것”, 그리고 (4) 아마도 가장 위험한 것으로, 정당성과 진리를 혼동케 하는 것, 즉 “어떤 결과가 모든 그럴듯한 가정을 포함하고 있는 복잡한 모델에서 도출되었을 때에는 … 그것이 진실임에 틀림없다는 암묵적 가정” 등이 그것이다.
보몰William Baumol은 (『Economic Journal』 1991) 수학적 표현에 관한 지나친 관심집중이 “다른 방면의 [학자적] 공격”을 구축驅逐해 버릴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립시Lipsey의 의견에 동조하였다. “오늘날 상당한 시간을 수학적 도구를 습득하는 데 투입하지 않고 특수 분야로의 전진이 허용되는 학생은 거의 없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이 만들어낸 어떤 글도 대수학적 기호가 풍족하게 깔려있지 않은 경우에는 자동적으로 거부된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이런 현상은 경제학 내에서 지적 자원의 배분을 왜곡하게 된다고 보몰은 말하고 있다. 일반균형이론가 모리시마Michio Morishima는 “수학은 너무 많이 이용되어서 이론가들이 현실에 대해 충분한 관심을 가지지 못하게 만든다”라고 말하고 있다(『Economic Journal』 1991, 73∼74). 똑같은 심포지엄에서 노벨상 수상자 프리드만Milton Friedman은 또한 경제학자들이 수학을 反계몽주의적obscurantist 취미 목적을 위해 이용하고 있다는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그는 현대 경제학자들은 “보상이 없어지는 단계를 넘어서까지 수학과 계량경제학에” 의존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에 따른 비용은 경험적 연구에 대한 과소투자라고 프리드만은 말하고 있다. 프리드만의 설명은 경제적이다. “통계자료를 수집하고… 그들의 신빙성과 정확성을 분석하며… 그런 통계자료가 만들어진 역사적 및 제도적 환경에 대해 완전한 이해를 도출하는 것보다는 定理theorem를 만들어내는 것이 논문 한 개당 비용이 더 적게 든다.”(『Economic Journal』 1991, 37)
이론과 경험적 관측 사이의 밀접한 관계
이론과 증거의 관계로 돌아간 프리드만의 마지막 논점은 우리 표본에 들어있는 여러 학자들에 의해 이런 저런 형태로 되풀이되고 있다. 분석적 수수께끼 풀기를 의미하는 이론은 싸게 들고 통계자료는 비싸게 듦으로, 경제학적 및 통계학적 이론은 그 이론을 증명하기 위한 증거보다 많아지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에 많은 학자들은 동의하고 있다(솔로우 1997, 57). “이론을 전개하는 것과 경험적 관측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없으면, 새로운 이론은 제약을 받지 않는 방법으로만 발전하여, 우연에 의해서만 경험적 타당성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라고 립시는 말하고 있다(2001, 174). 펜커벨Pencavel은 (『Economic Journal』 1991에서) 경제학자들은 이론적 가정과 경험적 증거를 의미 있게 대결시키는 것을 피하는 경우가 종종 있고, 보다 빠르고 확실한 결과를 가져오는 이론 정립만을 좋아한다고 주장하면서, 이에 동의하고 있다.
학자들이 의견을 달리하는 좀더 어려운 문제는 이론이 그것을 증명하기 위한 증거보다 어느 정도로 상위에 있어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현대경제학이 경험적인 측면에서 충분하지 못하다고 보는 비판은 존경을 받을 만한 것이다. 오스왈드Andrew Oswald는 (『Economic Journal』 1991) 두 사람의 노벨상 수상자와 『The Journal of Economic Literature』의 前편집자의 불평을 자기방식대로 인용하고 있다. 즉 “레온티에프Wassily Leontief(1982)는 우리 학문이 응용수학의 2류급 분과로 질이 떨어지고 있는데, 이 2류급 분과에서 연구자들은 비과학적이게도 경험적 조사를 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헤크만James Heckman(1986, 384)은 ‘경제학이 경험적 내용은 거의 없고 그것을 발전시키는 일에도 거의 관심이 없기 때문에 불신을 받고 있는 것으로 광범위하게 인식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펜커벨John Pencavel(1989, 1)은 응용적 연구가 그들의 가정의 부적합성을 노출시키고 이론적 모델로부터 굉장한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는 그들의 능력을 잠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응용적 연구가 완료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Oswald 75)
레온티에프의 비판은 (『Science』 1982) 논문의 50% 이상이 경험적 통계자료는 없이 수학적 주장만을 포함하고 있음을 발견한, 1972년 3월부터 1981년 12월까지의 『The American Economic Review』(AER)의 분석에서 도출된 것이다. 전체적으로는 논문의 약 2/3가 경험적 연구를 전혀 포함하지 않았다. 모건Theodore Morgan(『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1988)은 1982년 3월부터 1986년 12월까지의 『American Economic Review』를 더 검토하는 방법으로 레온티에프의 비판을 업데이트하였다.
그는 경험적 분석이 레온티에프의 분석기간 중의 약 1/3에서 후의 기간 중에는 모든 논문의 1/2까지 증가한 것을 발견하였다.
모건은 또한 영국의 선도적 잡지 『Economic Journal』을 1972년∼1986년 全기간에 걸쳐 조사하였는데, 여기서 그는 논문들의 약 58%가 지속적으로 경험적 연구와 관련되어 있음을 발견하였다. 모건은 또한 경제학(『American Economic Review』와 『Economic Journal』)을 1982년∼1986년 기간 중 4개의 다른 사회과학 및 자연과학의 표본 즉 정치학, 사회학, 화학 및 물리학 등과 비교해 보았다.
경제학의 변명-통제된 실험적 기법에 의존할 수 없다
경제학은 정치학과 사회학보다 더 수학적이었으며, 정치학과 사회학은 모든 논문의 1% 그리고 오직 18편에서만 엄격하게 수학적인 논문을 만들어냈다. 경제학은 또한 경험적 연구에서도 이들만 못했다. 즉 정치학과 사회학에서는 非경험적 연구가 각각 42%와 22%였으나, 레온티에프와 모건의 서베이에서는 그런 연구가 50∼60%에 달했다. 경험적 연구가 없는 논문은 화학에서는 전혀 없고(0%), 물리학에서는 드물었다(12%). 경제학은 자연과학에 특징적인 통제된 실험적 기법에 의존할 수 없다는 표준적 변명은 이에 대한 비판만큼 오래된 것이다.
예컨대 노벨상 수상자이며 순수이론가인 드브러Gerard Debreu는 경제학이 본질적으로 경험적 측면에서는 불리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순수이론에 대해 상대적으로 더 많은 투자가 요구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충분히 안전한 실험적 기반을 거부당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이론은 논리적 담론을 고수하지 않으면 안 되며, … 쓸모 없게 됨을 (각오하고) … 내부적 非일관성internal inconsistency이라는 편의를 단념해야 한다.”(『American Economic Review』 1991, 3) 실험경제학experimental economics에 대한 개혁이 일어나고 있지만, 경제학에서의 경험적 연구의 대부분은 아직도 통계적 추론, 즉 역사적 관측들에서 법칙과 같은 규칙성을 발견하려는 계량경제학적 시도들로 이루어져 있다.
역사적 관측들로부터의 추론은 여러 가지 위험을 불러온다. 존재론적으로 움직임이 규칙적well-behaved인, 즉 시간(인간적 스케일에서)과 공간을 초월하여 상대적으로 불변하는 물리적 현상과는 다르게, 경제적 현상은 그렇지 못하다. 경제학은 “구체적인 수량적 결과를 예측하는 물리학 이론과 같은 것이 없다”고 립시는 말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역사적 추론의 첫 번째 위험은 너무 많은 것을 가정하는 것이라고 솔로우는 주장하고 있다. 즉 경제학자들이 물리학과 같은 모델구축기법에 의존하는 것은 물리학적 현상과 사회학적 현상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를 가볍게 보게 만들 수 있다. 거기에 “경제학의 법칙을 지구상 어디서나 그리고 영원히 똑같은 물리학적 법칙과 같다고 믿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그러나 역사와 사회적 분위기에서 독립되어 있는 경제학 부분은 적을 뿐만 아니라, 있다면 그런 것은 지루할 것이다”라고 솔로우는 말하고 있다(1997, 36).
두 번째 위험은 너무 조금 가정하는 것이다. 즉 경제학자들은 경험적 변칙성anomaly을 무시할 수 있게 하는 버팀목으로서 사회적 통계자료의 상대적 열등성에 호소할 수 있다. 자연과학에서는 안정적인 수량적 관계에 근거한 “엄밀한 이론”이 있기 때문에, “이론과 새로운 증거 사이의 충돌과 … 변칙성은 … 즉시 명백해진다. 이런 것들은 새로운 증거가 잘못된 것임이 증명되거나 이론이 이것을 수용하도록 수정되거나 할 때까지 조사를 자극하는 것이 보통이다.”
(2001, 172∼173) 이와는 대조적으로 경제학에서는 “변칙성 특히 경제학의 여러 분과에 걸쳐 전반적으로 생기고 여러 수준의 기술적 정밀도에서 연구될 수 있는 변칙성이, 대부분의 자연과학에서는 불가능한 규모로 즉 그런 과학에서는 스캔들로 간주되는 규모로, 용인되고 있다.” 그리고 경제학은 진실로 안정적인 수량적 관계, 즉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는 정밀한 경험적 규칙성이 없기 때문에, 경제학은 이론적 평범함의 주변으로 모이게 된다. 이것은 다시 “서로 다른 수준의 이론적 추상성과 경험적 정밀도에서 연구하고 있는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의견교환이 결여되도록 조장하며, 이것은 이런 변칙성이 많음을 알지 못하게 만들어서 그런 변칙성의 존재가 그것들을 해결하기 위한 조사를 유도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게 만든다”고 립시는 말하고 있다(2001, 173).
자연과학과 비교하여 사회과학의 경험적 연구가 불리한 위치에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자연과학에서 요구되는 종류의 과학적 성공을 경제학에 대해서는 요구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언제 경제모델이 성공적이라고 판단할 것인가? 솔로우는 통계자료가 보여주는 것을 설명할 때 성공이라고 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그는 “설명”이라는 단어를 경제적 변수간의 관계를 “상당한 정도의 근사성approximation”으로 찾아낸다는 의미에서, 근본적인 것이 아니라 실용적인 뜻으로 쓰고 있다(1997, 49).
이런 성공의 정의는 모델선택model choice의 문제라고 불릴 수 있는 것으로 이어진다. 모든 모델은 대단히 단순화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가장 성공적인 모델조차도 주어진 상황과 관련되어 알려진 모든 사실과 맞지는 않을 것이다. 이상적인 모델은 없으므로, 같은 사실에 똑같이 잘 맞지만, 서로는 상당히 다른,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모델이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통계자료가 서로 경쟁적인 모델 중의 하나를 선택하지 않을 때에는, “이미 자리가 확고해진 모델을 더 개량된 것으로 바꾸는 일은 대단히 어려워질 수 있다.” “총명하고 동기부여가 잘되어 있는 … 사람들은 리Robert E. Lee 장군을 아마추어로 보이게 만들 정도로 후위방어 전투를 싸울 수 있다”고 솔로우는 익살을 부렸다(1997, 50). 그 결과는 “오래된 모델은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것이다(앞의 글).
원칙적으로 통계자료가 많으면 많을수록 모델 선택의 문제는 심각성이 줄어든다. 그렇게 되면 문제는 “단순하게”, 자원의 제약과 학문적 인센티브가 주어진 상황에서, 서로 경쟁적인 모델을 의미 있게 구별하기에 충분히 양질인 통계자료를 얻을 수 있느냐가 된다. 립시(2001)와 다른 학자들에 의해 강조되고 있는 더 깊은 문제는 모델을 구축하는 방법 그 자체에서 나온다. 경제모델의 구축은 사용되고 있는 실제모델과 “진정한” 모델간의 모든 차이를 “교란noise”으로 간주할 것을 요구한다. 즉 모델구축방법은 모든 생략된 설명 (독립) 변수가 설명될 (종속) 변수에 대해 확률적이지 않은non-random 영향력은 없는 것으로 보기를 요구한다.
서튼John Sutton은, 그의 설득력 있는 원고(2000)에서, 이 문제를 마샬Alfred Marshall의 조수潮水, tide의 비유를 이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조수는 두 가지 힘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태양과 달의 인력 그리고 기상학적 요인들이 그것인데, 전자는 정확성을 가지고 모델을 구축할 수 있지만 후자는 예측하기가 어려운 것으로 유명하다. 다행히도 기상학적 요인들은 중요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조수는 인력만을 설명변수로 이용하고 그 지방의 일기는 조수에 대해 조직적인 영향력이 없는 진실로 확률적인 영향력으로 취급하여 예측할 수 있다(Sutton 2000, 4∼5).
이와 마찬가지로 마샬의 비유에 따라 진행되는 경제모델구축은 어떤 생략된 변수는 그 모델의 예측력에 단지 확률적 교란을 일으킬 뿐이라고 가정한다. 복잡한 상황에서 더욱더 통렬해지는 우려는 생략된 변수들이 설명될 변수에 조직적으로 영향을 미치나 그것들이 “관측할 수 없다는unobservable” 문제이다. 즉 우리는 그런 것들을 측정하거나 대용변수를 사용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통제할 수 없다(Sutton 2000, 8). 생략된 변수가 문제가 되지만 측정할 수도 없고 대용변수를 사용할 수도 없고, 통제할 수도 없을 때에는, 마샬의 조수의 비유는 타당하지 않으며, 과학적 성공을 위해서는 아무리 통계자료가 많아도 충분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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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내용
1) 두 회사에 의한 판매시장 독점
2) 미국 南北戰爭에서의 남군 사령관
3) 영국의 慣習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