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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2일 토요일, 도담마을의 석축 돌담 사이로 조선영산홍 '석암'을 심는다. 게으른 우리들 두번째 울력이다. 철쭉이든 영산홍이든 또 다른 무슨 이름을 붙이든 모두 '꽃은 꽃이다'를 벗어날 수는 없지만 '석암이 뭘까' 하는 마을의 의문을 위해 몇 자 옮겨본다.
영 산 홍 - 서정주 -
영산홍 꽃잎에는 산이 어리고
산자락에 낮잠 든 슬픈 소실댁(小室宅)
소실댁 툇마루에 놓인 놋요강
산 너머 바다는 보름살이 때
소금발이 쓰려서 우는 갈매기
영산홍映山紅은 글자 그대로 '산그림자 어린 꽃'이다. 산골은 해가 일찍 기운다. 첫 장면에서 산그늘이 다가오며 뜰 안에 피어있는 영산홍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영산홍'은 철쭉과에 속하며 5~6월에 피는 통꽃이다. 색깔이나 많은 꽃송이가 다닥다닥 달린 모양이 화려해 보인다. 그러나 그 선연한 빛깔과 얇은 꽃잎의 모양새 등이 오히려 서러운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꽃이다. 영산홍映山紅은 소실댁의 이미지를 반영하며 이 시의 발화점이기도 하다. 우리가 흔히 ‘첩’이라고 일컫는 소실댁은 논밭에서 일하지 않고 몸치장이나 하며 숨어서 ‘남의 서방’이나 기다리는 색기 도는 농염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 시에서의 소실댁은 ‘山자락에 낮잠 든 슬푼 소실댁小室宅'이다. 무슨 대단한 남자의 여자라기보다는 불가피한 사연으로 어쩔 수 없이 보통사람의 소실로 살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어쩌면 배를 타며 겨우 한 달에 한 두 번 들리거나 아니면 읍내 면사무소 주사나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그런 남자를 ’서방‘으로 둔 호사한 번 누리지 못한 소실댁인 듯하다. 할 일 없이 산자락에 낮잠이 들었다가 서방의 자전거소리라도 나면 부스스 일어날 것 같은 그런 소실댁말이다.
‘小室宅 툇마루에/놓인 놋요강’ , 이 대목은 이 시의 백미라 할 수 있겠다. 아마도 소실댁은 짚새기 같은 것으로 놋요강을 잘 닦아 툇마루에 올려놓았을 것이다. '놋요강'이 툇마루에 놓여 햇살에 종일 반짝이다가 이제는 산그늘 속에 놓이게 된다. 종일 적막 속에서 하염없이 남자를 기다렸을 소실댁과 툇마루에 놓인 놋요강의 모습이 맞아 떨어진다 .
구조면에서 본다면 이 작품은 1, 2, 3연은 ‘영산홍 - 소실댁 - 놋요강’으로 이미지가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4, 5연에 가면‘/바다 - 소금 발-갈매기’로 화자의 시선이 갑자기 공간이동을 하면서 시적 전환을 불러오며 의미의 폭을 확장시킨다. 서정주의 시편 중 많은 작품에서 ‘바다’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작품에서도 바다는 이 시의 배후에서 시적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보름살이 때'는 물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가 멀리 쓸려 나가는 사리 때이다. 바다는 '산 너머'는 소실댁이 사는 산자락과 동떨어진 공간이다. 여기에서 소실댁의 외로움은 극점에 이르게 된다. 달이 차오르는 이미지는 서정주의 다른 시에서 자주 보이는 원시적이고 육감적인 이미지와도 관계되며 성적 기호와도 연결이 된다. 보름달의 이미지는 유사한 모양의 놋요강을 환기시킨다. 또한 ‘소금발에 쓰려서 우는 갈매기’와 ‘소실댁’의 이미지를 연결 해 놓아 두 소재가 같은 존재임을 나타내고 있다. 소금 발이 쓰리지만 ‘갈매기’가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 존재이듯 이 여자도 소실댁이란 자기존재에서 벗어나려고 애써보지만 ‘남의 서방’을 떠날 수 없는 맵고 쓰라린 신세임을 자포자기 하는 상태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마지막 연에서는 한껏 애절한 정서를 만들어 내고 있다.
서정주의 시편들은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또한 끊임없는 재해석을 유도해 낸다. 이 시도 읽어내기에 비교적 쉬운 시 같지만 짧은 시행들 안에 많은 서사를 상상하게 만들고 있다. 운율과 여백이 살아있고 시어 하나하나가 살아 유기적으로 작용하기에 그의 아주 노련한 작품 중 하나라 하겠다. 행간 사이사이에서 내밀한 떨림이 울려나와 속살과 보드라운 결이 만져지고 느껴지기에 충분한 작품이라 하겠다. [박수현]
장성 야은재(野隱齊) 안채에 있는 영산홍. 수령이 400년 이상인 영산홍들이 있다. [참고자료 1] 왜철쭉의 유래에 관해서 1681년 일본의 원로 원예가 수야원승(水野元勝)의 저서 화단강목(花壇講目)에서 철쭉류 147종의 품종명을 소개함으로 왜철쭉의 분류를 시작하였고, 1692년에 발행된 금수패(錦繡敗)에서는 철쭉과 사쓰끼를 분류하고 재배방법을 기록함으로 1890년대까지 일본에서 왜철쭉 재배의 지침서로 활용되었다. 오늘날엔 전국적으로 조직된 협회와 지방에 분산된 수백곳의 지부별로 연중 3회(花期,녹음기,단풍기)이상의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왜철쭉 재배 농민과 전문가의 부단한 노력으로 재배기술을 발전시키고 신품종을 개발하여 국내수요는 물론 우리나라와 유럽등지에 많은 양을 수출하여 수입증대에 기여함도 상당하다. 2) 한국 왜철쭉의 유래 사쓰끼 철쭉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시기는 1910년 한일합방이후 한반도의 남쪽지방(부산, 목포)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참고자료 2] 왜철쭉으로 오해 받는 두드러지게 맑고 깨끗한 붉은 빛 꽃 영산홍(映山紅) 진달래와 철쭉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 영산홍도 진달래과에 속하는 만큼 철쭉과 구별하기도 매우 어렵고 헷갈린다. 정원수를 전문으로 파는 농원이나 꽃집에서도 영산홍을 왜철쭉 또는 일본철쭉이라 부르기도 하니 말이다. 그래서 ‘영산홍’하면 모두 일본에서 들여온 것으로 생각하게 되며 실제 일본에서는 철쭉과 함께 많은 품종의영산홍이 개발되어 여러 나라에 수출하고 있고 우리나라에도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영산홍이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에 있던 꽃나무라는 것을 여러 군데서 찾아볼 수 있다. ● 이미 고려시대의 문헌에 영산홍이란 이름이 있고, ● 조선 중기 문인이었던 사암(思菴) 박순(朴淳)과 청련(靑蓮) 이후백(李後白)이 대구(對句)로 지은 시 구절 영산홍이 나온다 (박 순) 暎山紅暎斜陽裏(영산홍영사양리) (이후백) 生地黃生細雨中(생지황생세우중) 영산홍이 석양빛을 받아 아름답게 비치는데 생지황이 보슬비 내리는 가운데 돋아 났구려. ● 또 영산홍이란 기생이 영산홍 꽃을 두고 읊은 시에「映山紅對映山紅(영산홍대영산홍)」이란 구절도 있다. ● 조선시대에 외간남자의 출입은 물론이고 자유로운 외출이 허용되지 않는 안방마님이나 별당아씨가 거처하는 안채나 별당의 뒤뜰 경사진 면에 계단식으로 다듬은 화계(花階)의 가장 아래쪽에 어김없이 영산홍을 심었다는 기록을 보면 영산홍은 우리 선조들이 가까이 심어두고 감상하던 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산홍은 꽃의 색깔과 몇 가지 특징에 따라 다섯 가지로 나눈다. ● 고려영산홍: 반 낙엽성이며 가지, 잎, 꽃잎, 꽃받침 등에 전체적으로 보송보송한 털이 나 있고, 잎 끝이 뾰족하다. 한 가지 끝에 1-2개의 꽃눈이 달리고 각 꽃눈은 5Cm 정도 크기의 3-4개 꽃송이를 피운다. 꽃은 선명한 주홍색이고 잎보다 먼저 핀다. 안쪽에 자주색 반점이 있고 길게 나온 수술 끝의 꽃밥도 자주색이다. ● 궁중영산홍: 반상록성이며 꽃은 고려영산홍과 비슷하지만 조금 작고, 한가지에 한 개의 꽃눈에 2-3개의 꽃송이를 피운다. ● 조선영산홍: 고려 및 궁중영산홍이 주홍색인데 비해 짙은 분홍색이다. ● 자산홍: 자산홍은 잎 끝이 둥글고 꽃이 자주색이다., ● 다닥영산홍: 한 가지 끝에 꽃송이가 많이 달린다. 특히 아홉 개의 꽃이 매달리는 것은 구봉화(九 花)라는 예쁜 이름을 얻었다. 또 영산홍 중에는 밤에 형광을 내는 것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나라에 영산홍의 종류도 많고 가꿔지고 있는 수량도 많지만 불행하게도 자생하는 곳은 물론 언제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는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일본의 원예학계에서도 영산홍이라 불리는 품종에 대한 논란이 있고, 중국에서도 일본 영산홍과는 다른 종을 영산홍이라 부르고 있어 영산홍에 대한 혼란은 마찬가지다. 식물학 기반이 잡힌 오늘날도 이런 혼란이 있고 보면 그렇지 못한 옛날의 기록으로 영산홍의 뿌리를 찾기는 더욱 더 어려운 일이라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자라는 십여 종의 진달래속 식물, 일본의 몇 가지 철쭉 품종, 유럽의 품종들을 모아 형태적인 특성과 화학적 성분을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에 오래 전부터 길러 오던 영산홍은 우리나라 산철쭉에 가장 가깝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학술논문도 발표된 바도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길러온 영산홍은 자생하는 산철쭉 가운데 색이 두드러지게 선명한 것을 집 가까이 심어 기른 것이 전국으로 퍼져나간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
첫댓글 영산홍의 종류도 많군요 오늘 날씨가 넘 좋아 꽃들이 더욱 화려해 보입니다.
많이 개량돼서 이름만 어수선해요. 영산홍은 그 붉음이 화려하다 못해 '녹아 내린다' 싶습니다. 얼마나 깊은 정분이기에 저토록 뜨거운가 싶기도 하곰...^^
산그림자 어린 꽃...
영산홍이 그런 뜻인지 이제 알았네요.
영산강...영산호... 계속 그런 쪽으로만 연상이 됐는데...
어릴때부터 왠지 진달래는 순수하고 착해보이는데
영산홍은 색이 쌔뜩한 게 여자로 말하면 상업미인 같은 느낌?
아무 잘못 없는 영산홍을 두고 저 혼자 이러쿵 저러쿵 값을 매기고 있었던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드네요.
쏘리 영산홍^.~
문득 전날에 내 창가를 노닐던 늘씬한 영산홍 하나 그립습니다. 이파리 한장 걸치지 않고 붉디붉은 꽃으로만 그늘을 뿌리던 그 영산홍 아가씨(흑, 몇 년 나와 눈을 다퉜는데 어느날 죽어버렸어요)... 오, 그러고보니 화순으로 가는 새 뜰에 그 추억을 사다 심어야겠군요.^^ 국장님 고마워요... 글을 다루는 편집국장님이시라 '산그림자 어린 꽃'에 꽂히셨군요. 수수하고 말금한 산철쭉이나 진달래에서 바라보면 영산홍은 '쌔뜩한' 저자의 분냄새가 확실합니다. 나도 쏘리 영산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