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牧師)의 단상(斷想)
목사(牧師)의 사전적 의미는 “예배를 인도하며 신도들에게 교의를 가르치는 성직자”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목사(牧師)는 경우에 따라 목사(木絲: 무명실)가 되어 낡고 헤진 신자들의 마음과 영혼을 꿰매고 기워 입혀야 하며, 어떤 때는 성도들의 목사(牧舍; 목장의 외양간)가 되어 저들이 편안히 쉬고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집의 역할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잠27:23)고 하셨습니다. 이는 자신이 소유한 가축을 목동에게만 맡기지 말고 주인인 자신이 직접 나서서 관찰(觀察)하라는 말씀입니다. 가축들을 헤아리며 병든 것은 없이 잘 자라는지 돌아볼 뿐만 아니라 각각의 종류가 어떤 비율로 증가하는지 등에 대해 세심히 주의를 기울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목사는 부지런히 신자들을 이리저리 살피고 돌보아야 할 뿐만 아니라 형편을 따라 심방하여 위로하며 함께 해야 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오면 베드로처럼 바울처럼 순교의 제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목사도 사람인지라 때론 위로와 격려와 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언제 읽어도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말씀을 나 자신과 이 세상의 모든 목사들을 축복하며 묵상합니다.
“11 내가 내 성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 12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레 26:11-12)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와 교제하시겠다는 언약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주시는 위로의 말씀은 어떤 것이 있는가?
먼저, “내 성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피조물이 받아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처소로 언약 백성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으며,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엔 점차 예루살렘 중앙 성소로 발전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찬송케 하려고 우리를 지으셨으며(사 43:21), “성민”이라 하셨고, 만민 중에서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습니다.”(신 7:6)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함께 계시겠다는 이 약속은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최대의 복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벽하게 성취될 것입니다(계 21:1-4).
언약 백성에게 있어 최대의 복은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는 그분과 맺은 언약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일을 가리킵니다. 레위 지파는 분깃이나 기업을 받은 게 없었지만 “여호와가 그의 기업”(신 10:9)이 되셨습니다. “그들에게는 기업이 있으리니 내가 곧 그 기업이라 너희는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그들에게 산업을 주지 말라 내가 그 산업이 됨이라”(겔 44:28)고 하셨고,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4)고 말씀하셨습니다.
“유업(기업)”(κληρονομίαν, 클레로노미안)이란 “상속권”, “세습재산”, “기업”이란 뜻으로,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 나라”(마 25:34; 엡 5:5), “영생”(마 19:29; 막 10:17; 눅 10:25), “구원”(히 1:14), “약속”(히 6:12), “복”(벧전 3:9)이란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유업은 “산 소망”과 연결된 것으로(벧전 1:3절) 거듭난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로서, 우리가 현재에 누리는 게 아니라(롬 8:18; 갈 4:7) 미래에 주어질 것으로, 이때 성령님은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십니다(롬 8:11,18-23; 엡 1:14). 그래서 베드로는 이러한 기업의 완전성을 강조하기 위해, 부정 접두어(ἀ, 아)로 시작하는 세 단어, 즉 “썩지 않고”(ἄφθαρτον, 아프다르톤), “더럽지 않고”(ἀμίαντον, 아미안톤), “쇠하지 아니하는”(ἀμάραντον, 아마란톤)이란 말을 사용하여 설명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소유하게 될 “기업”이 지상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영원히 변하지 않고 손상되지 않는 완전한 것임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싫어하다”(ל, 가알)라는 단어는 “몹시 싫어하다”, “경멸하다”, “질색하다”, “거부하다”, “멀리 집어 던지다”란 뜻으로, 영어성경은 shall-abhor를 사용했습니다. 이는 말하는 사람의 의지를 강조하여 “몹시 싫어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싫어하다”와 “아니하다”가 나란히 사용되어 매우 긍정적인 뜻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어떠한 경우라도 버리지 않고 꼭 껴안아 사랑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뿐만 아니라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거하시겠다는 약속이 보다 심화되고 구체화 된 결정적인 선포로서, 모든 복의 절정이자 마침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분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가 그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구원의 근거가 주께 있고, 끝까지 그 구원을 책임지시겠다는 다른 표현입니다. 목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 그 분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엡 4:16) 성도의 밥입니다.
필 자 / 홍종찬 목사(사랑에빚진자)
서울 은평구 갈현2동 아름다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