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가 제대로 정립되지 못하고 있는 문제점을 딱히 식민사관이나 중화사관 등에만 둘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역사에 대한 인식의 문제점도 크게 가지고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역사를 학문적 관점으로 다뤄야 역사 적립이 제대로 되는 것이라는 시각에서 비롯된 폐단이다. 역사는 그 나라의 총체적인 개념을 다룬 정보다.
역사가 실증학적인 부분 즉 가나다라로 정리될 수 있는 부분만이 역사인가.
우리는 예전부터 이러한 부조화의 기반 아래에서 무수히 많은 역사적 사실들이 매도되고 왜곡되고 삭제되어 사장된 역사적 개념들이 너무도 많다.
한가지 단편적인 예를 들어보면 아직도 역사학자들은 무당에 대한 역사는 정식 역사로 인정하지 않는다. 고고학에 입각하여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유물들도 무와 연관된 역사는 구색맞추기에 불과하다. 하늘에 제를 올리던 일을 중대사로 여겨온 우리 민족의 역사가 왜 제천을 해야했고 어떤 방식으로 누가 해왔는지 그리고 오늘날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등의 연구는 전무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제천에 대한 역사야 말로 우리의 뿌리를 인식하고 정립할 수 있는 첫번째 단계이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개념을 빼먹고 걷돌고 있으니 제대로 된 역사 적립이 될 턱이 있겠는가. 국가의 기본 뼈대 중의 중요한 요소인 역사 적립이 부조화를 이루니 사회현상 역시 부조화로 만연할 수 밖에...
그 나라의 역사는 그 나라의 역사를 적립해야 한다. 아주 당연한 이야기를 말이라고 하고 있냐고 하겠다. 자기 나라 역사를 자기 나라 역사로 하지, 다른 나라 역사를 자기 나라 역사로 하는 바보가 어디있냐고 하겠지만, 지금 우리나라 역사 정립이 그 꼴이다.
민족얼이 살아있는 역사 정립은 뒷전이고 사관에 젖은 역사학이 판을 치고 있다. 중화사관에서 식민사관, 이제는 자본주의에 입각된 서양사관의 시각으로 역사 정립이 되다보니 사람 중심의 역사적 개념은 온데간데 없다.
결론적으로 글의 초입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문화에 대한 앎의 결핍으로 인하여 자존감 저하에서 온 문화적 노예근성이라 하겠다.
그것은 알게하면 불식된다. 그래서 제대로된 역사적립이 필요하고 제대로 된 정보 전달이 필요한 것인데, 지금 우리나라 역사 적립은 다람쥐 책바퀴 돌듯이 악순환이 되고 있다.
여기서 제대로 된 역사 정보라고 하면 고고학에 입각된 수입 역사정립 방식이 아닌 인간 중심의 홍익철학이 살아있는 역사 정립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배달전서에 마치 오늘날 우리의 이런 모습이 얼마나 그릇된 행보인지 일침을 가하는 부루단군의 말씀이 있어 실어 올려 본다.
옛조선 2세 부루(扶婁)단군 재위 삼십팔년에 나함연이 단군께 아뢰기를 "신이 지난 해에 남녀지에 건너가서 범경빈(바라문교도)을 만나 교리를 듣고 신중히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니 진실한 공부인 것 같았습니다. 남녀지에 성인이 있어 이치를 밝혀 놓은 듯하오니 사신을 남녀지에 보내어 그 도덕과 정치를 살펴서 좋은 점을 본받아 백성에게 전하면 문명발전에 좋은 기회가 될까 하나이다."
부루천황께서 말씀하시기를 "인간의 도리에 진리는 하나요, 양 점 사이에 직선도 하나라. 나라와 겨레는 서로 다르나 치국평찬하의 정도는 오직 하나이니 짐이 일찍이 선황부터 전해 듣기를 '유정은 오직 하나인고로 그것을 중심 삼음은 바른 것을 잃지 아니함이라' 하시었거늘 하필이면 다른 나라의 도덕과 정치를 살펴서 보태거나 뺄 수가 있으랴. 새와 짐승은 육지에 살고 물고기는 물에서 사는 것을 바꾸어 살게 하면 그 형세가 오래가지 못하는지라. 우리나라로 하여금 다른 나라의 본을 받도록 하면 반드시 오래가지 못하게 될것이니라." 하시니 모든 신하들이 감히 다시 말하지 못하더라.
위 자료를 통해 지금 우리를 보자. 종교를 통해 수입 조상의 역사공부가 만연하고, 나라의 근본 철학이 없어서 역사화되지 못한 수입 역사정립 방식을 따르느라, 다른 나라에는 없는 근본 철학과 문화로 생성된 질 높은 우리의 역사적 정보들은 다 빼먹고, 먹통 역사공부를 시키고 있음에도, 나라를 유지하고 살 수 있다는 것이 기적이라 하겠다. 그만큼 튼튼한 기초철학 위에 기반을 두고 이어온 역사라 몇백년 깽판을 쳐도 유지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한민족의 저력이라 하겠지만 세상 모든 요인들은 유한하다. 지하자원이 아무리 많아도 캐먹다보면 고갈되는 것과 같이 이 또한 마찬가지다.
저력이 고갈되어가고 있다는 것의 신호는 바로 극심한 세대 차이로 본다. 이는 부모가 자녀에게 전달해야 할 정서와 철학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음의 반증이기도 하다. 그 결과가 사회의 정체성 확립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게 되고, 그 구멍은 자살률 상승과 저출산 1위, 행복지수 최저의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해결 방법 역시 우리는 과거에서 찾으면 나온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예전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손자 손녀들은 성장을 했다. 이는 자연스러운 세대간의 소통을 이룰 수 있는 아주 좋은 방식이었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이뤄지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는 문화지만, 우리에게는 지금 필요한 문화라고 하겠다.
그 중 할아버지 할머니, 또는 부모로 부터 우리의 정서를 전달받는 아주 좋은 예가 "단동10훈"이다. 단동십훈은 단군할아버지 때부터 있어온 육아법으로 불아불아(弗亞弗亞), 시상시상(侍上侍上), 도리도리(道理道理), 지암지암(持闇持闇), 건지곤지(乾知坤知), 섬마섬마(西摩西摩), 업비업비(業非業非), 업비업비(業非業非), 아합아합(亞合亞合), 작작궁 작작궁(作作宮 作作宮), 질라아비 훨훨의(秩羅亞備 活活議) 등이다.
그중 몇가지 살펴보면, 불아불아(弗亞弗亞)는 아기의 허리를 잡고 세워서 좌우로 기우뚱 기우뚱 흔들면서 ‘불아불아’ 하는 이 행위는 하늘처럼 맑은 아기가 하늘에서 내려온 귀한 존재라는 뜻이다. 그리고 우리가 한번쯤은 아기에게 해보았을 도리도리(道理道理)는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동작으로 만물의 이치와 사람의 도리를 깨우쳐 도리와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잼잼, 즉 지암지암(持闇持闇)은 두 손의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하는 동작으로 참된 것은 잡아서 실천하고 잘못된 것은 가려서 멀리하라는 뜻이다. 섬마섬마(西摩西摩)는 ‘서다’의 준말로 아기를 어른의 손바닥 위에 세워 놓고 아기의 다리 힘을 기르고 균형 잡기를 통해 독립을 키워주려는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하겠다. 끝으로 작작궁 작작궁(作作宮 作作宮)은 두 손바닥을 마주치며 박수치는 동작이다. 음, 양 에너지가 맞부딪혀 삶의 이치를 깨달았으니 손뼉을 치며 기쁘게 노래하고 춤을 추며 살아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유대관계를 통해 성장되는 아이가 어떻게 성장되리라는 것은 각자가 가늠해 보길 바란다. 아울러 이러한 우리 전통 육아법이 세계인의 관심을 받고 있음은 인간중심적 세대간의 소통이 자연스럽게 묻어나 있는 특성 때문아니겠는가. 우리 문화에서만 찾아볼수 있는 포대기로 아기를 업고 소통되었을 유대감은 그많은 격변을 겪으면서도 버텨온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한다. 이러한 민족적 정서가 깔린 문화가 세계 어디에도 없는 홍익철학에 입각한 우리 개천문화다. 이러한 개천문화가 우리 역사이고 정립되어야 될 핵심 한문화인 것이다.
우리 모두 지금이라도
도리도리 짝짜궁~
도리도리 짝짜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