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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상 당선자 스크랩 [수필과비평 2014년 8월호, 제154호 신인상 수상작] 채송화와 살피꽃밭 - 김흥순
Shina wow 추천 0 조회 288 14.08.01 17:06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하루살이 꽃 채송화를 보며, 영원으로 이어지는 오늘의 소중함을 새삼 되새긴다. 불편한 삶이 오히려 좋다. 자연과 인간이 함께하는 마당이 좋다. 꽃을 사랑하는 고운 마음들이, 활짝 핀 살피꽃밭이 있어 행복하다."

 

 

 

 

 

 


 채송화와 살피꽃밭        김흥순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도회에서도 나는 마당이 있는 집이 좋다. 농촌에서 태어나 자란 탓일까. 흙을 밟으며 작은 정원과 꽃밭을 가꿀 수 있는 그런 집이 좋다.
   외지에서 교편생활을 하는 남편의 귀향을 준비하여 사 놓았던 도회 변두리 자연녹지가 개발 흐름을 타고 주택이 들어서면서 길도 생겨나면서 집을 지을 만한 환경이 되었다.
   단독주택을 짓는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가까운 친지들이 “사서 고생하지 말고 편안한 아파트로 가라.”는 권유를 하기도 했으나 남편은 흔들리지 않았다. “어머님께서 힘드시지 않겠느냐.”며 걱정스런 눈빛을 보내던 며느리들도 시부모의 뜻을 잘 헤아려 주었다.
   인생이란 자신이 마음속에 그리는 하나의 집을 짓는 일이라고 했던가. 오래 소망해 오던 마당 있는 새 집으로 이사 오던 날, 나의 온몸에 알 수 없는 희열이 솟구쳤다.
   남편은 퇴직 후에도 일이 많아 아침 일찍 나가는 날이 잦았다. 마당을 가꾸는 일은 나의 몫이 되었다. 흙과 돌을 날라다 과실수, 소나무 너 댓 그루 심어진 곳에 정원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집 뒤편 산 어귀에서 흙을 옮겨와 봉곳한 화단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았다. 양동이로 흙을 담아 나르다가 손목을 다쳐 병원 신세까지 졌다. 어떻게 알았는지 큰 애 내외가 손수레를 사 보내오는 바람에 일이 수월해졌다. 크고 작은 돌도 필요했다. 인근 공사장 한쪽에 쌓인 돌무더기에 눈독을 들이고 있자니 뜻밖에 현장 소장이 ‘필요하면 가져가라.’고 인심을 썼다. 그쪽에서는 치워야 할 돌이었나 보았다.
   마당으로 옮겨 온 돌은 여러모로 쓸모가 있었다. 조그마한 조약돌은 화분 위에 펴 놓았더니 수분 증발을 막아 주었다. 매끄럽고 큼직한 돌로는 동그란 손바닥 화단을 만드는 데 요긴했다. 정원 옆으로 네댓 개의 동그라미 화단과 대문 밖으로 담장을 따라 길게 살피꽃밭을 만들었다.
   정원에 무궁화, 라일락, 색색의 영산홍, 백합, 나리꽃 그리고 문 밖 살피꽃밭에는 채송화를 많이 심었다. 이사 온 다음 해, 제일 먼저 오방색 영산홍이 기척을 했다. 백합과 나리꽃도 화사했다. 올해는 가지가 휘어지도록 살구가 달렸다.
   세상일 참으로 묘하다. 대문 밖 담장 옆의 자투리땅에 띠를 두르듯 만든 살피꽃밭이, 생각지도 않게 집 안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전령사 역할을 해 주었다. 흐드러지게 핀 채송화가 미인 도우미들이었다.
   첫해에 심었던 홀씨와 달리 이듬해 심은 개량종 겹채송화는 대박이 났다. 하양, 노랑, 주황, 빨강, 분홍빛의 작은 요정들로 변하여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꽃향기에 취한 낯선 행인들이 열린 대문을 기웃거리다가 슬그머니 마당 안으로 빨려 들어오게 했다. 가끔 주말이면 내려오는 아이들도 무척 좋아했다. 꽃밭에는 별로 관심이 없던 남편도 채송화에 푹 빠지면서 나를 바라보는 눈빛조차 달라졌다. 땅집에 사는 재미가 솔솔 났다.
   나태주의 “오래 보아야 예쁘다, 자세히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란 시가 바로 채송화를 노래한 시였던가. 살피꽃밭에만 서면 저절로 시심에 젖고 만다.
   채송화는 아침 햇살에 방긋 웃으며 피기 시작하여 저녁에 떨어지며 씨앗을 맺는다. 여문 씨주머니는 바로 따지 않으면 터지고 만다. 예쁜 색상들만 미리 골라 무명실로 살짝 묶는 정성스런 손길에 새봄의 꿈이 오롯이 묻어났다.
   경로당 화단과 동네 골목의 빈 터에도 직접 모종을 해 심었다. 꽃을 좋아하는 마음엔 나이가 없다. 여리고 야들야들한 겹채송화를 보고 경로당 어르신들도 좋아하셨다. 꽃씨를 달라는 이들도 의외로 많았다. 즐거운 마음으로 넉넉하게 나누어 주었다. 두어 봉지 씨를 받아가던 통장 아저씨가 “이러다가 우리 동네가 채송화 꽃밭이 되겠네요.” 했다. 생각지도 않게 내가 채송화 마니아가 되어 버린 셈이다.
   조그마한 유기농 텃밭도 생겨났다. 집 옆에 잡초만 무성한 시 소유지인 나대지, 40평쯤 되는 땅에 푸성귀를 심어 가꿀 수 있는 행운이 찾아왔다. 채송화, 살피꽃밭으로 좋은 일을 좀 한 덕분일까. 돌을 주워 내느라 힘은 들었지만 짭짤한 수확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하루살이 꽃 채송화를 보며, 영원으로 이어지는 오늘의 소중함을 새삼 되새긴다. 불편한 삶이 오히려 좋다. 자연과 인간이 함께하는 마당이 좋다. 꽃을 사랑하는 고운 마음들이, 활짝 핀 살피꽃밭이 있어 행복하다.

 

 

김흥순  -------------------------------------------------
   청주 출생, 청주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교실 수료. 우암수필 문학회 회원.

 

 

당선소감

 
   집 앞 느티나무 우듬지에 앉아 짖어대는 까치 소리와 함께 전화벨 소리가 들렸습니다. 부족한 제 작품이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선망의 대상이었던 ≪수필과비평≫의 등용문에 들어서게 되어 참으로 기뻤습니다.
   삼십 년쯤 전인가요. 남편에게 간곡히 말하여 세계문학전집을 사들여 놓았지만, 막상 읽으려니 생각처럼 읽히지 않았습니다. 서너 권 읽다가 그만 손을 놓은 채 평범한 전업 주부로 지내왔습니다.
   글쓰기에 눈을 뜬 것은 마당이 있는 집을 짓고 나서부터입니다. 정원과 꽃밭을 가꾸다 보니 가슴 깊이 숨어있던 ‘문학’이란 두 글자가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자연과 함께하는 마당이 있는 집에서 꽃을 가꾸며, 고운 마음을 모아가는 일상을 진솔하게 담아내고 싶습니다.
   지도교수님, 우암수필 문우님들 그리고 심사위원님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의 오늘이 있기까지 묵묵히 북돋아준 남편과 아이들이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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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8.01 21:31

    첫댓글 채송화 꽃밭에 담긴 김흥순 선생님의 꽃같은 마음을 읽을 수 있어 좋습니다.
    글밭도 살피꽃밭처럼 환하게, 아름답게 가꾸어 가시길 바랍니다.
    신인상 축하드리고, 건필하시길 빕니다.

  • 14.08.02 15:01

    우선 신인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청주 분이라 더욱 반갑습니다.
    살피꽃밭에 앙증맞게 피었을 키작은 채송화가 그려집니다.
    좋은 작품 많이 쓰시고 시상식이 있는 천안서 뵙겠습니다.

    이 게시물에 유독 조회수가 많은 것은 다음의 에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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