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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새재사랑산악회 원문보기 글쓴이: 호산아
☆ [새재사랑산악회] ♣ 제135차(11/17) 월악산국립공원 <북바위산>(772m)
* [산행코스] 송계계곡 물레방아휴게소→ 북바위전망대→ 북바위산 정상(772m)→ 사시리고개→ 715고지→ 773고지(→박쥐봉, 782m)→남동능선→ 674고지→ 만수휴게소(12.0km)
* [산(山)으로 가는 길] — 아름다운 충주호반(忠州湖畔)을 따라가는
☆… 오전 7시 45분, 서울의 군자역을 출발했다. 아침 날씨는 찬바람이 불고, 하늘이 개운치 않아서 비교적 음산한 느낌을 주었다. 오늘은 21명의 대원이 참석했다. 집안의 시향제(時享祭)와 결혼식이 겹치기도 하고 또 김장철이 되어서 나오지 못한 산우들이 많았다. 전평국 사장, 하회탈 부회장, 화영 대장을 비롯하여 도우 부회장, 수정 감사, 김동순과 그 벗들, 보름달, 성일 씨, 옥이와 진주 등 늘 보이던 산우들이 나오지 않아 참 아쉬웠다. 우리의 전용버스인 선진항공은 새 기사님이 새 버스를 가지고 나왔다. 그 동안 3년 동안 함께 했던 김태수 기사님이 개인 사정으로, 당신 대신 고향의 친구인 박종윤(010-5233-7364) 기사님을 소개하여, 최신형버스를 몰고 나온 것이다. 오늘 김태수 기사님도 동행을 했다. 우리의 버스는 중부-영동-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충주휴게소에 잠시 휴식을 한 뒤, 괴산I.C에서 국도로 내려갔다. 19번 도로를 경유하여 3번 국도에 들어서 살미삼거리에서 36번 국도를 이용하여 송계계곡을 들어갔다. 36번 도로는 충주 살미삼거리에서 단양에 이르는 국도로서 충주호반을 따라가는 절경의 드라이브 코스이다.
* [북바위산의 매력] — 노송과 기암절벽의 산수화(山水畵)
☆… 오전 10시 20분, 송계계곡의 중간지점인 물레방아휴게소에서 등산에 돌입했다. 북바위산은 월악산 줄기와 마주 보는 송계계곡의 서쪽에 위치해 있다. 지평 민창우 대장의 설명에 의하면 북바위산은 ‘지릅재의 북쪽에 위치한 바위산’이라고 하여 그렇게 부르기도 하고, ‘이 산자락에 큰 북[鼓]을 닮은 거대한 기암절벽이 있어 붙여진 것’이라고도 한다. 이 산의 특징은 송계계곡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온통 바위 암반으로 슬랩을 형성하고 있으며, 아름드리 장대한 적송들이 암릉의 등산로에 어우러져 있어 그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 [북바위산의 노송] — 일제 수탈이 남긴 민족의 아픈 상흔(傷痕)
☆… 바람결이 싸늘하지만, 11월의 눈부신 햇살이 내려앉는다. 산길은 완만한 능선을 따라 오르는 길이다.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지나는 길목마다 낙엽이 수북수북 쌓여서 발아래서 부서진다. 간밤 비바람이 몰아치고 지금은 찬바람이 스친다. 원색의 등산복을 차려입은 대원들의 행렬이 알록달록 산길을 수(繡) 놓는다. 갈잎을 떨어뜨린 낙엽수는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그 나목들 사이에 시퍼런 소나무들이 군계일학(群鷄一鶴)처럼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이 당당하다. 얼마간 그렇게 호젓한 오름길이 이어진다. … 그런데 우리가 지나는 길목에 아름드리 장대한 소나무마다 톱질과 칼질을 한 아픈 상처가 아직 그대로 남아있어 눈길을 끈다. 일제(日帝)가 송진을 채취하기 위하여 건강한 소나무 둥치에 V자 모양의 홈을 판 흔적이다. 그런데 그것이 반(半) 세기가 넘는 세월을 지나서도 아직 깊은 상흔으로 남아 있다. 저들의 악랄한 수탈이 어디 소나무뿐인가. 아직도 90노파의 주름진 얼굴에 진한 눈물을 흘리게 한, 소위 정신대 할머니의 지울 수 없는 상처가 그렇지 않은가. 저들은 부자비한 침략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사람이든 물자든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착취한 것이었다. 우리는 지금도 그 역사적 상처를 그대로 안고 있다. 그렇게 주변의 국가나 민족에게 통한의 아픔을 안겨준 일본이 그 잘못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일본의 수상을 비롯한 정치가들이 침략을 주도한 전범을 안치한 야스쿠니 신사에 몰려가 참배하고 큰 소리 친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참 비열한 소인배의 근성이다. 일본, 일본인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야비한 집단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다. 산길에서 이런 소나무 상처를 볼 때마다 피가 거꾸로 서는 아픔과 함께 통렬한 자각을 한다.
* [북바위산 전망(展望)] — 장엄한 월악산 연봉과 송계계곡…
☆… 초입의 흙길과 나무를 가로질러 만든 계단을 오르고 나니 안온한 평지가 나타나 잠시 숨결을 고르고 복장을 정비한다. 바람기는 거의 없지만 체감으로 오는 온도는 차갑다. 다시 오름길, 길목에 크고 작은 바위와 좌우의 절벽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본격적인 암릉(岩稜)이 시작되는 것이다. 고도를 높여감에 따라 나무 사이로 하늘이 훤하고 주변의 산세를 바라볼 수 있는 시공이 열리기 시작했다. 앞서 기술한 대로 월악산국립공원은 어디를 가도 암반과 소나무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준다. 갖가지 형태의 크고 작은 바위들을 타고 오르는 산길이 참 아기자기한 멋이 있다. 10시 50분, 완만하게 경사진 암반이 나타났다. 주변의 소나무가 어우러져 참 아담한 풍경을 보여준다. 고개를 돌려 보니 동쪽으로 월악산 영봉을 중심으로 한 장엄한 산줄기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동남쪽으로는 골 깊은 송계계곡 뒤쪽으로 만수봉과 포암산의 묵직한 산채가 시야에 들어온다. 월악산 일대를 바라볼 수 있는 열린 조망대 바위이다. 몇몇 산우들이 아름다운 배경으로 포즈를 잡는다. 송악(松嶽)을 병풍 삼아서 피어난 ‘사람 꽃’이 화사하다.
* [북바위에 어린 불심] — 산의 이름이 된 암벽
☆… 다시 바윗길을 타고 오른다. 몸의 균형을 잘 잡아서 찬찬히 오르면 참 재미있는 산길이다. 무엇보다 눈길이 닿는 송악의 아름다움이 길목마다 그 형상을 달리하니 도처가 절경이다. 고개를 들면 주변의 열린 경관이 시원하게 시야를 열어주니 더없이 쾌적한 산행이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동산계곡 건너편 용마산의 암봉 세 개가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그렇게 천천히 약 10분 정도 올라가니, ‘북바위’가 나타났다. 차 안에서 민(閔) 대장이 힘주어 소개한 바로 그 바위다. 우리가 걷는 능선 길 건너편 산록에서 돌출한 바위의 한 면을 거대한 톱으로 잘라놓은 듯한 절벽이 바로 그것이다. 아무 것도 없는 직절한 절벽단애인데 문득 마애불이 모셔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형상이 북[鼓]의 한 단면처럼 생겨서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고 했다. 마애불(磨崖佛)이란 ‘절벽(絶壁)에 부조(浮彫)한 부처님’이다. 모든 사물에 부처님이 계신다는 것이 불교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바위 덩어리에 불심을 담으면 불상(佛像)이 되고, 암벽에 불심을 담으면 마애불(磨崖佛)이 된다. 나무에는 목불(木佛)이 살아 있고, 쇠붙이에는 철불(鐵佛)이 살아계신다. 어디 그뿐인가. 사람도 마찬가지다. 중국에 가면 등신불(等身佛)이 있다. 살아서 득도하면 생불(生佛)이 된다. 돈독한 불심을 지니면 누구든 부처가 된다는 것이다. 어린이는 부처님의 한 진면목이다. 동자승(童子僧)의 모습을 보면 불심을 느낀다. 그래서 불자들은 부처가 되기 위해서 고행을 하고, 부처님의 마음에 이르기 위해서 수행 정진한다. 우리가 산을 오르는 것도 그 ‘인간적 수행’의 한 방법이다. 꼭 불자가 아니더라도 정직하게 땀을 흘리며 내 본연에 살아 있는 산(山) 같은 대자대비(大慈大悲)를 부조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이 공자가 말씀하신 인자(仁者) 요산(樂山)이다. … 특이한 북바위를 배경으로 하여 전망 좋은 바위에서 선남자선여인들이 포즈를 잡았다. 멋지다!!
* [북바위산 암릉 길] — 노송(老松)과 기암절벽(奇巖絶壁)
☆… 여기는 해발 480m, 아직도 북바위산 정상은 2.2km를 더 가야 한다. 다시 산길은 북바위가 있는 산록을 타고 오르는 거대한 슬라브, 비교적 가파른 경사면에 약 30~40m 정도의 직선의 철계단이 시설되어 있었다. 철계단은 안전하게 산행하는데 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여기는 주변의 슬라브와도 잘 어울리는 명품이다. 그 가파른 슬라브 암반 위에는 몇 그루의 푸른 소나무가 자생하고 있어 자연의 생명력이 진하게 다가왔다. 긴 계단을 오르고 나면 559고지에 다다른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암릉 길과 암반 길을 지나면 노송지대 암봉이 있는데, 산부인과바위라는 이름도 있었다. 건너편 용마산 삼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박쥐봉과 연내봉 산줄기가 눈에 들어온다. 그 아래 사시리계곡이 이어지고 그 산비탈에 노랗게 물든 낙엽송 군락이 원색의 고운 자태를 드러낸다. 그렇게 오르다 보니 송림 우거진 암봉에 도착했다. 싸늘한 바람결이 제법 세차게 분다. 다시 보온장갑을 찾아 끼고 윈드자켓 후드를 모자 위에 올렸다. 하늘에는 구름이 드리우고 서쪽에서 넘어오는 바람이 차갑다. 그러나 산행을 하는데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 [신선대] — 조망(眺望)의 아름다움, 송악(松嶽)의 산수화(山水畵)
☆… 오전 11시 40분, 너럭바위를 지났다. 이정표를 보니 앞으로 정상까지는 1.5km를 남겨두고 있다.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니 높은 산봉 2개가 시야에 들어왔다. 앞의 것이 해발 652m의 신선대이고 그 뒤쪽이 772m의 북바위산 정상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산길을 노송과 암봉이 어우러진 절경을 이루고 있으므로, 산행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고 마음의 풍경으로 담을 수 있었다. 북바위산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보석이다. 잔잔하게 안복을 누리는 산길이다. 그러나 바람의 기세가 점점 드세다. 땀에 젖은 몸이 한기를 느낄 정도로 차가운 바람결이다. 그러나 산길을 오르내리는 몸은 적당한 체온을 유지해 나간다. 신선대 못 미쳐 바위 아래 일군의 등산객들이 바람을 피해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시간은 정오를 넘어가고 있었다. 문득 시장기가 느껴졌지만, 우리는 민(閔) 대장의 계획에 따라 정상을 오른 후 안부에 내려가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 노송이 우거진 신선대 너럭바위를 지나서 짧은 철계단을 내려오니 이정표가 선명하다. 현재 위치 해발 600m, 북바위산까지는 꼭 1km를 남겨두고 있다. 능선의 암봉은 변함없이 아기자기 한 멋이 있다. 한참을 가다가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북바위산이 가깝게 다가서고 그 왼쪽으로 내려간 안부(鞍部)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사시리고개이다. 고개의 뒤쪽 멀리에는 백두대간 마패봉에서 연풍면 고사리 쪽으로 뻗어가는 신선봉 줄기가 검푸른 자태로 포진하고 있다. 계속해서 산길을 걷는다. 주변의 경관은 변함없이 절경이다. 한참 가다보니 노송과 절벽 사이에 시설한 가파른 나무계단이 앞을 가로막는다. 이제 정상으로 오르는 마지막 오름길이다.
* [북바위산 정상] — 장대한 노송이 지키고 있는…
☆… 낮 12시 30분, 북바위산(772m)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는 크지 않은 자연석 돌덩이 두 개를 고아서 정상 표지석을 세워놓았다. 검은색 유성매직으로 ‘북바위산 정상, 772.1m / 새솔’이라고 씌어있었다. 초라해 보이긴 하지만 자연석으로 공(功)을 들여 만든 정상석이었다. ‘새솔’이라는 산악회에서 만든 것 같았다. 정상석 부근에도 널따란 바위와 노송이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보여주었다. 정상에 오른 기념으로 한 사람 한 사람 인증샷 포즈를 잡았다.
* [사시리고개의 점심식사] — 자연산 ‘도다리회’
☆… 오후 1시 정각, 해발 520m의 안부(鞍部) ‘사시리고개’에 도착했다. 정상에서 남쪽으로 1km를 내려온 지점이다.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수안보면 뫼악동(0.9km)으로 내려가고 오른쪽 사시리계곡 길을 따라 내려가면 우리가 출발한 송계계곡으로 내려간다. 고갯마루에는 널따란 밭도 있고 콘테이너 하우스도 한 채 있었다. 그 집 앞에 술병이 수북하고 좀 지저분하지만, 집 앞에는 야외식탁도 있고 벤치도 있었다. 평소 농사지으러 올라와서 놀다가 가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영(嶺)을 넘는 북서풍이 아주 세차게 불고 있었다. 우리는 바람이 타지 않는 앞산 발치에 올라가 평평한 풀밭에 자리를 잡았다. 대원들 모두 한 자리에 둘러 앉아 점심식사를 했다. 각자 준비해온 음식을 내어놓고 내것네것 가리지 않고 나누어 먹는다. 늘 특별한 메뉴를 준비해오는 꽁지 문 사장이 오늘은 ‘도다리회’를 푸짐하게 떠 왔다. 자연산이라고 했다. 문 사장이 네 개의 쟁반에 회를 나누어 담아 산우들 앞에 내놓았다. 인정어린 배려가 여간 고맙지 않다. 충청북도 산간 오지에서 싱싱한 생선회를 먹을 수 있다니 쫄깃하고 고소하게 씹히는 맛이 여간 별미가 아니다! 하, 인심 좋은 베토벤이 막걸리 잔을 돌리는구나!
<계 속>
첫댓글 산행기 즐감하고 갑니다 ㅎ
29일 안나푸르나 모임때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