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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진 오신대학 부교수 국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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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초, 중국 윈난의 석림에서 열린 ‘아시마 국제학술회의’에 참가하고 돌아왔다. 이 학술대회는 한·중·미·일의 4개국에서 200여명이 참가하여 꽤 성황리에 개최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다섯 분의 교수가 참가했다. ‘아시마(阿詩瑪)’란 중국 내 소수민족인 이족(彛族)의 비극적 설화에 등장하는 총명하고 아름다운 처녀 이름이고, 그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장편서사시의 제목이기도 하다.
학회에 참가해 아시마와 춘향전의 비교연구를 발표했던 필자는 한 편의 작은 서사시를 가지고 이처럼 성대한 학술대회를 진행하는 것을 보고 한편으로 의아하고 한편으로 당황스럽기도 했다. 특히 필자는 최근 중국의 고구려 역사 왜곡 문제와 맞물려 이번 회의에 참가하면서 느끼고 생각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우리의 고구려 관련 문화유산 중엔 건국신화로서 ‘동명왕 신화’가 있는데, 고려시대의 이규보는 장편 서사시 ‘동명왕’으로 그것을 재현했었다. 이규보가 ‘동명왕’을 쓴 이유는 고려인들에게 고려왕조의 고구려 계승의식과 고구려의 웅혼한 대륙지배 사실을 환기시키기 위함이었다. 나아가 몽골 원제국의 지배 침탈 아래 신음하던 백성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다.
불행히도 이 위대한 작품이 우리의 국어 수업시간에는 잘 읽히지 않는다. 입시 위주 교육이어서, 정작 작품은 읽지 않고 작가와 제목·줄거리만 대충 알고 지나친다. 그래서 작품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거나, 그 맛을 음미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동명왕’은 중국의 ‘아시마’ 정도와 비견될 수 있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동명왕’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디세이’나 세계 어느 나라의 건국신화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웅건하고, 화려하며, 드라마틱한 신화이다. 하늘과 땅·물 속을 넘나드는 무한한 시공의 배경과 주몽의 영웅적 기상과 웅혼함이 거대한 파노라마를 연출하는 신화다. 동명왕의 파란만장한 삶과 건국 과정에는 인생의 도리와 삶의 역정이 격정적이며, 진솔하게 드러나 있다.
고구려 건국신화를 우리 문인이 우리 인식으로 썼다는 것만으로도 고구려 역사의 정당성은 이미 입증된다. 필자는 지금이라도 초등학교 수업부터 우리 작품을 직접 읽고, 우리 문화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우리 역사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가르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게임이나 만화작가들은 동명왕 신화를 비롯한 한국의 유수한 작품들을 소재로 이용할 수 있고, 문화예술인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새로운 해석과 창조가 가능할 것이다. 특히 이런 작품들은 애니메이션을 통해 더 많은 청소년이 우리 문화와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해 줄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될 것이다.
작고 사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해석을 통해 국제화해 가는 중국 학계를 보면서, 우리 학계는 물론, 문화예술계와 교육계, 나아가 정부까지도 고구려 건국신화인 ‘동명왕’에 주목해 볼 것을 권유한다.
첫댓글 제목을 "한국의 동명왕과 중국의 아시마"로 해서 보냈는데 좀 촌스럽게 바뀌었네요. 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