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물이 마시고 싶어 편의점에 들어간다. 물이 진열되어 있는 곳에서 물병 하나를 고른다. 계산을 하고 한 모금 마신다. 그리고 이내 절망한다. 당연히 물인 줄 알았던 그것은 투명한 탄산 음료였다. 비문해자의 사소한 서글픔이다. 우리나라에는 의무 교육의 때를 놓치고 긴 세월을 살아온 비문해자들이 많다. 그들의 아픔을 헤아리고 더 나은 생활을 돕기 위해 경상북도 칠곡군이 팔을 걷어붙였다. 칠곡군과 영남대학교 국어문화원이 지혜를 모아 전문 강사를 양성하고 마을의 어르신들을 찾아 글을 읽고 쓰는 기쁨을 나누는 '찾아가는 성인 문해 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영남대학교 국어문화원 이미향 국어생활상담연구센터 소장을 찾아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추측으로 살아온 비문해자들의 삶 글자를 읽지 못한다는 것, 어떤 고통일까요?
노안老眼을 소재로 한 광고를 본 적이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목이 말라 냉장고 문을 열어 우유를 꺼내 마셨는데 섬유 유연제였다던…… 비문해자는 그렇게 평생을 살아온 거예요. 늘 추측으로 살아온 거죠. 옛날 우리 사회는 구술 사회라서 아버지의 역할을 아들이 곁에서 보고, 듣고, 해 보면서 충분히 배울 수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정보를 취득하는 시대예요. 사회가 도서관이나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제공하고 그 정보를 많이 취득하고 활용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요. 비문해자들에게는 굉장히 불리하죠. '정보의 바다'라 일컫는 인터넷도 그분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 사회를 살아가기 힘든 낙오자와도 같은 현실이죠.
우리나라 비문해 성인 인구와 연령대 분포는 어떻게 되나요?
2008년, 국립국어원에서 19세 이상의 성인을 대상으로 기초 문해력 조사를 해 본 결과 '글자를 읽을 수 없거나 글자를 읽어도 그 뜻을 이해할 수 없는 성인'이 260만 명에 달했어요. 2000년에 이르기까지는 6•25 전쟁으로 인해 의무 교육 시기를 놓친 노인층에 주로 분포되어 있다고 여겨졌는데, 결국은 더 많은 세대에 생각보다 더 많은 비문해자 인구가 분포되어 있었죠. 요즘에는 노인층뿐만 아니라 결혼 이주 여성, 중도 입국 자녀 등으로 비문해자의 개념도 바뀌고,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고령 농촌 사회에 비문해자의 비율이 높은 편이기는 합니다. 참고로 현재 칠곡군 교육문화회관과 영남대학교 국어생활상담연구센터가 함께 운영 중인 '성인 문해 교육' 프로그램의 강사들이 말하는 수강생의 체감 연령은 평균 78세 정도라고 해요.
'문해'란 무엇일까요?
사전적 정의로는 '글을 읽고 이해한다'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글을 읽기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글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문해에 대한 해석은 시대에 따라 달라져 왔습니다. 고대에는 1%의 지식인들을, 중세 이후에는 라틴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을, 종교 개혁 이후에는 자신의 모국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을 문해자라고 했어요. 그러다 인쇄술이 개발•보급된 15~16세기 이후에 문해의 개념이 보편화되죠. 1964년 유네스코가 3R읽기, 쓰기, 셈하기이라는 기능 문해라는 개념을 도입했고, 21세기에 들어 유엔UN이 문해 10개년 계획2003~2012을 통해 기능 문해와 더불어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복합적 문해 능력비판 문해, 문화 문해, 가족 문해, 정보 문해, 금융 문해을 문해라고 정의했어요. 현재로 올수록 복합 문해 능력으로 흐르고 있지만 지금 나와 있는 문해 전문 교재가 아직까지는 기초 문해, 기능 문해에 머물러 있어서 개발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어르신들의 세상을 밝히다
찾아가는 한글 교실
'칠곡군 교육문화회관'이하 칠곡군과 '영남대학교 국어생활상담연구센터'이하 센터가 함께 운영 중인 '성인 문해 교육' 사업은 언제부터 실시된 어떤 규모의 사업인가요?
2008년 칠곡군과 센터가 성인 문해 교육 사업에 대한 협약을 맺고 2008년부터 2009년까지 강사 양성 과정을 열었어요. 한국어 교원 양성 과정 120시간과 성인 문해 강사 과정 40시간의 총 160시간 과정을 운영했는데 칠곡군에 거주하는 사람이 신청했을 경우에는 백만 원 상당의 교육비를 칠곡군에서 지원해 주었어요. 일자리 창출의 의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지역 문해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죠. 이 과정을 통해 양성된 강사들이 2008년 12월에 칠곡군 교육문화회관과 8개 마을의 마을회관에서 첫 수업을 열었어요. 학생 수는 100명에서 130명 사이이고, 주로 강사들이 어르신들 계시는 마을로 파견을 나가서 교육을 진행합니다. 어떤 마을은 25가구 중 19분이 참여하시는 마을도 있어요. 사실 '지방 기초 단체 – 거주민 – 국어문화원'이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는 곳이 많지 않은데 칠곡군은 상당이 밀착되어 있는 편이에요. 예를 들면 8월 31일에 칠곡군에서 실시한 '청소년 토론 배틀' 대회에 강사들의 자녀들이 출전하고 저는 심사를 하러 갑니다.웃음 이렇게 지방 기초 단체와 국어문화원이 잘 연계되면 연령을 초월해서 국어 사용 및 언어 인식에 대한 진보된 정책을 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교과 과정으로 수업이 진행되나요?
국가에서 2011년부터 실시한 학력 인정 프로그램 기준으로 3단계의 과정이 마련되어 있어요. 1단계가 초등학교 1~2학년, 2단계가 3~4학년, 3단계가 5~6학년에 해당되고 이 단계를 이수하면 초등 학력이 인정됩니다. 교재는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서 개발한 성인 문해 교과서 《소망의 나무》1단계, 4권, 《배움의 나무》2단계, 4권, 《지혜의 나무》3단계, 4권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수업은 문해 전문화에 치우치기보다 여러 분야에 걸친 폭넓은 강좌를 통해 어르신들에게 다양한 체험의 기회를 마련해 드리고 있어요. 단계가 높아지면 산수, 춤, 요가 등 색다른 수업을 받으실 수 있죠. 무척 좋아하세요. 새로운 경험이기도 하고 그분들에게는 도전이기도 하니까요.
칠곡군에서 매년 '성인 문해 백일장'이 개최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행사인가요?
성인 문해 교육을 받고 있는 어르신들, 결혼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2010년부터 백일장을 개최하고 있어요. 매년 한 가지 주제로 글을 쓰고, 그 글 중에 좋은 글을 뽑아 시상을 해요. 그리고 백일장에 참가한 글들을 모아 책으로 엮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총 3권의 책이 만들어졌어요. 어르신들이 늘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이 있잖아요. '내 얘기를 책으로 쓰면 열두 권도 넘는다'는 말이요. 정말 그 기회를 드리게 된 것뿐이에요. 첫해 백일장의 주제는 '전쟁'이었는데 또박또박 적어 내려간 글씨 속에 들어 있는 이야기는 한 편의 드라마를 방불케 하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글로 풀어내고, 작은 상이라도 수상을 하고, 손자 손녀까지 모두 모여서 시상식장에 함께 가고, 자신이 쓴 글이 책에 실리고……. 그분들에게는 정말 새로운 삶인 거죠. 자신의 이야기를 그렇게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은 자신을 성찰하고 후세에 남긴다는 자기만족도 있지만 결국 그분들이 살아온 삶은 우리의 역사이기도 하기 때문에 의미 있는 사업이라고 할 수 있죠.
누군가만의 문제가 아닌
내 가족과 나의 문제이자
내 나라의 미래
어르신들에게 '성인 문해 교육'은 어떤 의미일까요?
'자신감'이고 '자존감' 아닐까요. 한 어르신은 남편에게조차 글을 배우지 못했다고 말하기 창피해서 글을 읽어야 하는 순간마다 '눈이 침침해서', '배가 아파서' 등 신체적인 이유를 대며 평생을 피해 왔다고 해요. 그러다 막상 남편이 사망한 뒤에 은행 업무를 비롯한 모든 행정 업무를 처리할 수 없어서 애가 끓었다고요. 또 손주에게 편지를 쓰면서 자식들 키울 땐 편지 한 장 써 줄 수 없었는데 이제 와 보니 참 미안하다 하시는 어르신도 계셨고요. 그런 분들에게 이 교육은 정말 빛과 같은 존재겠지요.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한 마을의 예를 들면 19명의 학습자 중에 3명이 90대이고, 96세의 부부가 참여하는 곳도 있어요. 거꾸로 생각해 보면 100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싶어요. 평생의 숙원이 아니었을까요? 이 '성인 문해 교육'이 더욱 활성화되어서 말 못할 고통으로 일생을 살아가고 있을 많은 비문해자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성인 문해 교육 사업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까요?
문해 교육은 이제 인간 중심의 문해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어요배천웅, 《성인 문해 교육의 방향》. 문해가 정치적, 경제적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권 차원에서 접근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어떤 개인이나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이자 나의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해요. 그러려면 문해를 인식하는 이분법이 깨져야 합니다. 단순히 글자를 못 읽으면 비문해, 읽으면 문해가 아니라 비판 문해, 문화 문해, 가족 문해, 정보 문해, 금융 문해 등 단계를 더욱 세분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글자는 읽을 수 있지만 금융에 대해 전혀 모르는 분이 이 교육에 참여해도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겠지요. 지금은 더 잘 살기 위해 교육을 받고자 하는 분들이 오히려 소외당하고 기회를 박탈당하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더불어 프로그램의 전문화도 필요합니다. 현재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강사들은 문해 관련 강사임에도 불구하고 요가나 춤 등 교양 프로그램의 수업까지 직접 진행하고 있어요. 그리고 함께 수업을 듣던 어르신 중 한 분이 사망하셨을 때 남겨진 분들이 받는 충격에 대한 심리 치유 상담까지도 직접 진행한다고 합니다. 일차적으로는 강사들에게 부담이 크겠지만 전문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겠죠. 강사들의 재교육과 각 강좌에 적합한 전문 교사가 필요한 실정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사업이 안정적으로 지속되기 위해서는 많은 분들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이 사업은 지방 기초 단체의 의지로 운영되는 사업이다 보니 예산이 확보되지 않으면 사업 중단 위기에 처하기도 합니다. 국가에서 담당자들에게 이 사업에 대한 의지를 심어 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 나라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유지되어야 하는 중요한 사업이니까요.
글을 읽고 쓴다는 것,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어르신들에게는 새로운 세상이다. 80세에 꼭꼭 눌러쓴 짤막한 시 속에는 그간의 한과 새 삶의 기쁨이 한껏 서려있다. 9월 6일부터 9월 12일까지는 대한민국 문해 주간이다. 칠곡군에서는 네 번째 백일장을 준비하고 있다. 이 백일장은 단순히 글을 쓰고 상을 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을별로 곱게 옷을 맞춰 입은 어르신들이 마을의 단합을 뽐내고 오랜 시간 준비한 장기를 선보이는 큰 잔치다. 그곳에 모인 어르신들은 그간의 설움을 나누며 눈물짓다, 비로소 만난 새 삶에 웃음 짓는다. '성인 문해 교육'은 80년을 열심히 살아오신 어르신들에 대한 우리의 작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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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향
영남대학교 국어생활상담연구센터국어문화원, 사회통합프로그램 거점운영기관 소장.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동 대학원 석사,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외국인 대상 한국어 강사와 경북대학교, 포항공과대학교 강사를 거쳐 현재 영남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임 중이다. 경상북도 칠곡군 교육문화회관과 함께 노년층과 결혼 이주 여성의 문해 교육을 위해 힘쓰고 있다.
글_ 최민영 / 사진_ 박단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