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가 선을 거리면 컴퍼스와 곱자에 부합했고
그의 손가락은 사물에 따라 변할 뿐 마음으로 헤아리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의 영대는 하나로 통일되어 있지만
막혀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무아지경은 멋있지만 삶의 일부로 훈련의 결과이고)
우리가 발을 잊는 것은 신발에 딱 맞는 것이고
허리를 잊은 것은 허리띠에 딱 맞은 것이다
앎에서 옳고 그름을 잊은 것은 마음에 딱 맞은 것이고
(온전함, 편안함 좋치만 한 순간이고)
내면의 변화도 없고, 외부 사람의 말을 따르지 않는 것은
마주친 사태에 딱 맞은 것이다 (온전함은 상상의 용인 희망사항이고)
처음으로 딱 맞았지만 일찍이 딱 맞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고 느끼는 것은 딱 맞음의 잊음에 딱 맞은 것이다(달생)
망각이 없다면(온전한 망각이면)행복도, 명랑함도, 희망도, 자부심도,
현재도 있을 수 없다. 이런 저지 장치가 파손되거나
기능이 멈춘 인간은 소화불량 환자에 비교될 수 있다 ...
이런 망각이 필요한 동물에게 망각이란 하나의 힘
건강한 건강의 한 형식을 나타내지만
이 동물은 이제 그 반대 능력, 즉(...)
망각을 제거하는 기억을 길렀던 것이다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
이 이야기를 인생의 궁극적 정답은 무엇이고,
나는 누구이며, 온전한 참음 무엇인가라는
궁극적인 질문에 답을 찾아 철학은
분별의 쳇바퀴을 끝임없이 돌리므로
문화와 문명을 발전과 발달시키는 철학서 등을 만들고
불교는 싯달타 등이 부처나 불법이 정답이라고
불경 등을 만들고, 유교는 공자 맹자 등이
도덕천의 인이 정답이라고 사서삼경 등을 만들고,
도교는 노자 등이 유무상생의 도가 정답이라고
도덕경 등을 만들고, 기독교는 모세와 바울 등이
야훼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가 정답이라고
성경을 만든 것처럼
장자를 대단한 선생이나 정답으로
이미 결론을 내어놓고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말들로 분별하여
장자를 도구로 스스로 대단한 선생이 되는
무례한 오지랖을 펼치고 있지만
이 이야기의 본질은 무아지경이나 온전함이나
망각에 대한 유불리를 세상의 가치 기준을 따라
분별하려는 것이 아니라 무아지경이나 온전함이나
망각의 온전한 분별이나 정답이 없다란 넉두리로 바로 알 때
참이 없고 모든 것이 헛된 이 세상에서
세상의 가치 기준을 따라 원인이나 이유나
결과 등의 유불리를 분별하여 연합이나 야합하여
상생이나 공생하려고 정답처럼 철학서나 종교의
경전 등을 만들어 스스로를 속이는 삶이나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수행하는 삶은
바른 정답의 삶이 아닐 뿐 아니라 우리란 이념을
진짜 나로 착각하여 내가 원하는 너로 변화시켜
정복하여 다스리려는 감탄고토의 연기인
무례한 오지랖이 된다
따라서 온전한 지혜는 무분별 지혜이고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기쁨과 평안과 자유가
온전한 조화를 이룬 행복을 소유하여 누리는
사랑으로 혼자서는 불가능하고 또 너와 내가 아닌
스스로 거듭난 온전한 우리만 가능한 것으로
그 실상은 부모나 보호자가 없이 가능한 어린 아이의 삶이나
야훼 하나님 없이 가능한 에덴동산 아담과 하와의 삶으로
결국 스스로 만든 나만의 에덴동산에서만 온전한 행복을
소유하여 누리는 무주상의 삶인 진짜 사랑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