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3:1~20 / 막벨라 굴을 산 아브라함
(창 23:16)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따라 에브론이 헷 족속이 듣는 데서 말한 대로 상인이 통용하는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
(창 23:17)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 곧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과 그 밭과 그 주위에 둘린 모든 나무가
(창 23:18) 성문에 들어온 모든 헷 족속이 보는 데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 된지라
(창 23:19) 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 (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창 23:20) 이와 같이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이 헷 족속으로부터 아브라함이 매장할 소유지로 확정되었더라.
사람들은 공짜로 주는 돈을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공짜라면 양잿물이라도 먹는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할 수 있으면 적은 노력으로 많은 대가를 얻기를 원합니다.
편리와 효율성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더욱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대가 없이 얻으려고 합니다. 은혜도 대가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복음적인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대가가 없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대신 대가를 치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받은 우리는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소유를 얻어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적인 것입니다.
(창 23:1) 사라가 127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가 누린 햇수라
(창 23:2)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사라는 65세에 신앙을 출발했다가 127세에 죽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를 사랑했습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을 주로 영접하고 하나님께 하듯이 아브라함의 말에 순종했습니다. 그들의 가정은 하나님 안에서 깊은 사랑과 신뢰로 맺어진 가정이었습니다.
그러한 가정도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두 번이나 거짓말로 아내를 누이로 속여서 빼앗기게 되었을 때 가정이 파탄 나는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라는 아브라함의 연약함을 감당하여 주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사라의 편에 서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첩 하갈을 얻고 하갈이 아들을 잉태한 후 사라를 무시하였습니다. 사라는 하갈로 인한 고통을 아브라함에게 화풀이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모든 권한을 사라에게 위임하자 사라는 하갈을 쫓아냈습니다.
하갈의 소생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할 때도 가정의 위기가 왔습니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자 사라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내라고 하였습니다.
잠시 아브라함은 근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라의 말을 들으라고 하심으로 갈등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결정적일 때 하나님 편에 서고 사라 편에 섰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 편에 서서 도와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이 성장할수록 아브라함의 가정은 은혜가 넘쳤습니다.
사라는 99세에도 아브라함이 오빠라고 부르라는 말에 순종하였습니다.
그 가정에 이삭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자녀 이삭을 양육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은 가정교회의 좋은 모델이 되었습니다.
이제 사랑하는 아내가 죽고 아브라함은 슬퍼하며 애통해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가정은 초기에 좀 싸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성장하면서 예수님 안에서 더욱 신뢰와 사랑이 깊어집니다.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의 가정에 주시는 은혜입니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장례를 준비합니다.
(창 23:3) 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창 23:4)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사람이 죽으면 대체로 고향에 묻힙니다. 사라는 고향 갈데아 우르에 묻혀야 합니다.
사라가 죽은 것은 아브라함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약속의 땅에 거하고자 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에 아내를 묻고자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매장지를 사기 위해서 헷 족속 앞에서 자신을 나그네로 소개합니다. 아브라함은 사실상 부자였습니다. 많은 가축이 있었고 노비가 있고 은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땅을 사지 않고 집을 짓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장막 생활을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분명한 나그네 철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아내 사라가 죽자, 매장지가 필요했습니다. 그는 아내를 약속의 땅에 매장하고자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약속으로 주신 것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을 자기의 고향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자신도 죽으면 이곳에 묻히기를 원하였습니다. 자손 대대로 이곳에 묻히기를 원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내를 매장하기 위해서 땅을 사고자 하였습니다.
우리가 묻혀야 할 내 고향은 내가 태어난 곳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사명을 감당하는 곳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은 이곳이 아니라 우리가 가야 할 하나님 나라입니다.
(창 23:5~6)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했습니다.
(창 23:6) “내 주여, 우리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당신은 우리들의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우리의 땅 중에서 가장 좋은 곳을 골라 돌아가신 분을 장사 지내십시오. 우리의 무덤 중에서 어느 곳이든 마음대로 고르십시오. 돌아가신 분을 장사 지내는 것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삶을 통해서 헷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증언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방백답게 절대적인 믿음으로 살아서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7~9절 아브라함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 땅의 백성인 헷 사람들에게 절하면서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내 죽은 아내를 이 땅에 묻는 일을 정말로 도와주시겠다면,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부탁하여 에브론이 나에게 막벨라 동굴을 팔게 해 주십시오. 그 동굴은 에브론의 밭 끝에 있습니다. 물론 값은 넉넉하게 치르겠습니다. 그 동굴이 당신들 가운데서 내게 속한 매장지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방백이지만 헷 족속을 교만하게 대하지 않고 겸손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공짜로 주겠다는 헷 족속 족장의 말을 거절하고 정당한 대가를 치르겠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공짜를 좋아하다가 약점에 잡히고 사기를 당합니다.
아브라함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함으로 매장지를 가치 있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10~11절 마침 그곳에 막벨라 굴의 주인인 에브론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의 듣는 중에서 아브라함을 내 주님이라고 부르며 모든 동족 앞에서 막벨라 굴을 공짜로 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족장뿐만 아니라 그곳에 있는 대부분 사람들이 아브라함을 마음으로 존경하고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2~16절 아브라함은 겸손히 몸을 굽히고 밭값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에브론은 밭값이 은 400 세겔이지만 받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은 400 세겔을 주고 밭을 삽니다. 아브라함과 에그론의 흥정은 요즘의 흥정과 정반대의 흥정입니다.
요즘은 물건값을 깎고자 합니다. 가능하면 공짜로 얻고자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어찌하든지 제값을 주고 사고자 하였습니다. 충분한 값을 주고자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고집을 부려서 값을 치르고 사려고 한 것은 분명한 자기 소유로 하고자 하여 나중에라도 토지 분쟁이 없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17~20절 드디어 아브라함은 소유 매장지를 사고 그곳에 사라를 장사 지냈습니다.
이후에 아브라함도 이곳에 묻히고 그 후엔 이삭과 리브가도 묻히고 야곱과 그 아내 라헬과 레아도 이곳에 묻혔습니다. 430년 후에 요셉도 묻혔습니다.
이리하여 이곳은 명실공히 아브라함의 자손 이스라엘의 땅이 되었습니다.
조상들이 이렇게 줄줄이 막벨라 굴에 묻힌 것은 신앙적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 땅을 주신다는 약속을 구체화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막벨라 굴을 사서 소유하였기 때문에 이집트에서 430년을 노예살이한 후에도 200만 인구가 가나안 땅을 향하여 나올 수 있었습니다.
열두 족장이 정탐한 땅도 이곳이요. 갈렙이 85세가 되어 믿음으로 정복한 땅도 헤브론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BC722년에 이스라엘이 망한 뒤에도 2800년 후에 다시 이 땅을 찾아서 나라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사시기 위해서 피 값을 지불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고전 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예수님은 우리를 피 값으로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철저히 값을 치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다 갚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의 몸은 죄의 소유에서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를 믿음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몸으로 죄를 짓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기 위해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마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마 13: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마 13: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너무나 값싼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은혜라는 것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은혜는 값없이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값없이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값을 치를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값을 치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온전히 충분히 깂을 치르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알고 우리의 삶에서 복음의 은혜로 값을 치르고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