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옥근 / 2023《한강문학》신년호(30호)신인상 당선작 시 부문 / 울금꽃이 웃는 날 외2편
울금꽃이 웃는 날
황 옥 근
짙푸른 잎들이
바람에 흔들려 춤을 춘다
어머니의 따뜻한 품속에
반짝이는 사랑을 끌어 안고
해맑게 웃는 너
새 각시 수줍은 연분홍
고운 웃음 짓는 너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구나
몸을 부드럽게 해주고
마음을 안정되게 풀어주니
너를 천사로 부르리라
짙은 황금빛
광주리에 한 아름 담아내어
가을 햇살에 펼쳐놓으니
너의 향기가
진도 들녘에 가득하더라.
세방의 노을
신들의 벌판이다
청자 빛깔을 하늘에 풀어 놓고
회색 구름으로 반죽하여
은구슬을 바다에 던져 놓는다
산과 섬들 사이로
바람이 가는 데로 빛을 밝히니
내 그곳에 거문고를 던져 놓고
수억 년의 시간을 퉁겨보고 싶다
경이로운 음률이
오로라의 흩어짐과 만남을 그리듯
내 짧은 생의 노래를
어찌 다 그려 낼 수 있을까
바람이 구름을 모아
오늘을 잠재울 때
바다는 또 내일을 꿈꾼다.
해당화 다방
작은 꽃밭이 있는 길목
간판마저 흔들리는 그곳
허름한 소파에 기댄
뭇 사내들의 향수를 달래는 곳
목마름의 허세가
찻잔 속에 녹아내리고
어둠을 삼킨 흐릿한 불빛 사이로
담배 연기가 피어오른다
화장으로 가려진 얼굴에는
슬픔 같은 웃음이 하루의
고단함으로 번져가고
오늘을 깎아 내일을 만들어 가는
시간 속에서
설렐 것도 없는 만남과 헤어짐이
부초처럼 떠다니고 있다.
《한강문학》신년호 (30호) 시부문 신인상 당선 황옥근 심사평
넓은 시야와 사고의 깊이가 드러나는 시
황옥근의 응모작 중에서 〈울금꽃이 웃는 날〉, 〈세방의 노을〉, 〈해당화 다방〉을 당선작으로 선정한다.
〈울금꽃이 웃는 날〉에서 울금꽃의 꽃말은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이다. 춤도 추고 사랑도 안다. 선녀로도 천사로도 보인다. 많은 관찰은 꽃 속에 감춰진 미소와 향기를 맡는 예민한 감각을 키웠다. 신축성 있는 운율에서 피어나는 습작의 각고가 비친다.
〈세방의 노을〉에서 진도 동석산 산행에서 만난 노을은 거문고 노래로 그려지는 그림이다. 풍부한 어휘력에다 탁월한 시어를 선택하는 맛이 만만치 않다. 이 지역과 맺은 정은 섣불리 뗄 수 없는 인연으로 내일을 꿈꾸게 하는 선명한 이미지의 시가 되었다.
〈해당화 다방〉에서 한 연마다 매달려 있는 기억들이 마음을 움직인다. 그 시절로 데려다 놓은 것만 같다. 누군들 그런 사연 없으련만 꼭 읽는 이만 그런 것 같이 쑥스럽다. 넓은 시야와 사고의 깊이가 드러나는 시다. 적지 않은 연륜을 지닌 필력에 박수를 보낸다.
매체로 삼은 ‘울금꽃’이나 ‘세방 노을’, 그리고 ‘해당화 다방’은 화자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고 있다. 비유를 통하여 주제를 살며시 감추고 독자들에게 스무고개를 풀게 한다. 짜임새 있는 형상화는 공감대를 높이고 감동을 주는데 성공하고 있다.
신인상 당선을 축하하며 꾸준한 노력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갖는 시인으로 성공을 빈다.
《한강문학》 신인상 심사 상임고문 김 중 위 《한강문학》 신인상 시부문 심사평 윤 제 철 《한강문학》 신인상 추천위원 한진회장 김 영 승 |
《한강문학》신년호 (30호) 시부문 신인상 수상소감-황옥근
반가움에 앞서, 세상에 벗겨진 듯한 두려움
추운 겨울을 견디기 위해 나무들이 옷을 벗는, 바람이 몹시도 차가운 어느 날, 해질 무렵 쯤 02로 시작되는 모르는 전화 한통이 걸려와 받아보니 서울 한강문학사에서 걸려온 신인상 당선 소식이었습니다.
그 순간 반가움에 앞서, 세상에 벗겨진 듯한 두려움이 가슴을 울렸습니다. 앞으로 내가 과연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두려움 이었습니다.
수필집을 끝으로 펜을 놓고 살아 온 지가 어언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정신없이 살아 온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다보니 시를 한번 창작하고 싶었던 차에 한강문학에 응모한 작품이 이렇게 당선 되었나 봅니다. 그러나 이제 첫발을 내 딛었으니 후회 없는 이 길을 가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이미 떠오른 이야기들은 소중히 간직할 것이며 아직 떠오르지 못한 날들은 아름답고 진솔한 시어들로 한마디, 한마디 채워가는 늦깍이 시인이 되어 보겠습니다. 어리고 서툰 글을 심사해 주시고 부끄러운 글을 아름답게 평설 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또한 저를 이 자리에 오게 해 주신 (사)한국문인협회 진도지부 김영승 지부장님과 한강문학 권녕하 이사장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끝으로 시인이자 문단 선배인 제 아내와 이 설레임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황옥근
부여 출생(53), 진도 귀농, 녹색원 영농조합 대표(현재), 당산문학회 회원, (사)한국문인협회 진도지부 회원, 수필집 : 《태양이 머무는 DMZ》(2001, 수서원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