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4월 24일 (토)
제목 : 바울의 호소
오늘의 말씀 : 갈라디아서 3:1-14 찬송가: 542장(구 340장)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중심 단어
예수 그리스도, 성령, 율법의 행위, 믿음, 의로 정하셨다
주제별 목록 작성
믿음
2절: 성령을 받기 위한 요건
5절: 성령으로 능력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일의 근거
6절: 아브라함을 의롭게 한 요인
7절: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방법
8-9절: 이방을 의롭게 하고 그들이 아브라함의 복을 받는 비결
11절: 의인이 사는 유일한 방법
12절: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다
14절: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는 비결
도움말
1. 밝히 보이거늘(1절): ‘앞에 분명하게 기록하다’라는 뜻이다. 게시판에 기록됐다는 뜻으로, 너무 분명해서 결코 부인할 수 없다는 의미다.
2. 속량하셨으니(13절): ‘뭔가를 산다’라는 뜻으로, 돈을 주고 몸값을 지불해서 되찾아 온다는 뜻이다. 십자가를 지심으로 죗값을 지불하고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가리킨다.
말씀묵상
율법의 행위
갈라디아서 2장에 기초해 볼 때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율법의 행위의 문제란 곧 내면화되지 않은 신앙의 문제요, 성품화되지 않은 성결의 문제입니다(2절).
결국 바울이 갈라디아서 3-4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당시 유대인들이 할례와 식사법을 준수하는 행위에 집착했던 것처럼, 내면화되지 않은 신앙과 성결로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10절). 바울은 만일 우리가 이런 피상적인 신앙 행위에 의지해서 구원을 받고자 한다면 결국 저주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믿음은 무엇입니까? 바울이 본문에서 믿음의 표본으로 제시하고 있는 아브라함의 믿음에 관한 내용은 창세기 15장에 기록돼 있습니다. 당시 아브라함은 롯과 그의 가족들을 구출하기 위해 네 개의 연합국과 교전을 벌이고 돌아와 그들의 반격을 염려하며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창 15:1). 하나님은 바로 이때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고, 그에게 자녀에 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두렵고 불안한 주변 상황과 자신의 노쇠한 육체를 볼 때 전혀 현실성이 없어 보이는 약속이었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전적으로 신뢰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상황을 초월하는 믿음이었고,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믿음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믿음을 소유한 사람에게 성령님께서 역사하시고, 능력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이 나타납니다.
도움질문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믿음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을 자는 누구입니까(9절)?
3. 본문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깊은 묵상
1. 여러분의 신앙생활에서 행위에 의존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2. 여러분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3. 오늘 여러분에게 주시는 특별한 말씀(깨달은 점, 느낀 점, 적용점 등)은 무엇입니까?
제공:프리셉트
<오늘의 묵상>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갈라디아 교회를 향한 바울의 답답함이 느껴진다.
‘1:6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여러분을 부르셨는데, 여러분이 다른 복음을 믿는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쉬운성경)
참된 복음을 전했지만, 너무 쉽게 다른 복음을 받아들인 교인들을 향해 바울은 한숨이 섞인 푸념 대신 그들을 다시 한번 예수님의 십자가 앞으로 인도하고 있다.
목회사관학교 학생 중 한 분이 이런 푸념을 하셨다. “목사님! 도무지 저에게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뭔가 가르치고 세워보려고 작정하면 어느새 떠나버려 기운이 빠집니다!” 나도 경험한 터라 그분의 푸념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새신자교육을 하면 예수님을 영접하므로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여 큰 기대를 하게 된다. 양육을 시작하면 믿음이 성장하는 것처럼 보여서 더 큰 기대를 한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 한두 번은 나를 실망케 한다. 그리고 어떤 분들은 연락도 없이, 인사도 없이 교회의 발걸음을 끊어 버린다. 그러면 난 애써 ‘그래! 예수님을 영접했으니 주님께서 언제 어디서든지 다시 부르시고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시겠지!’라고 생각하고 잊어버리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몇 번 동일한 경험을 하고 나면 새신자 교육도, 양육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기대하는 마음마저 사라졌기 때문이다.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다시 시작해 보지만 처음의 열정을 되찾기란 쉽지 않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 바울은 어리석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다시 십자가 앞으로 인도한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바울은 유대인들이 전한 다른 복음을 받아들인 갈라디아 교인들을 ‘어리석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받은 축복임을 말하면서 아브라함의 후손인 유대인들만의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 즉 이방인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임을 전하고 있다.
‘...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그런데 왜 율법의 저주 아래로 들어가느냐? 라고 책망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저주를 속량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고 저주에서 벗어난 자유를 누리라고 말한다.
주님은 오늘도 내가 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신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주님이 보내주시고 맡겨주신 영혼들을 다시 십자가 밑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곳으로 인도하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 성령님이시다. 그 십자가에서 저주를 속량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믿게 하시는 것도 성령님이시다. 그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신 주님이 그에게도 전하게 하시고 그에게 축복해 주시길 기도하는 것이다.
주님은 내 마음이 상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다만 내가 해야 할 일은 바울처럼 그들을 다시 십자가로 인도하므로 아브라함의 축복이 그들에게 임하게 하는 것임을 깨닫게 하신다.
주님. 작은 교회 목회자의 한숨 섞인 하소연을 듣고 뭐라고 대답하지는 못하고 함께 아파했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대안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위로와 격려도 별로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습니다. 한두 번 실망하다 보면 영혼에 대한 기대하고 소망마저 사라져 복음의 열정까지 잃게 됩니다.
그런 저에게 오늘 바울의 한탄을 통해 대안을 제시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다시 그들을 십자가로 인도하게 하옵소서. 내가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하심을 믿고 고백하게 하옵소서. 실망하지 않게 하옵소서. 다시 이 말씀을 붙들고 그들에게 아브라함의 축복을 줄 수 있다는 기대하며 나가게 하옵소서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