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詩, 나는 이렇게 썼다
물든다는 것, 상처도 없는 아픔 같은
박현웅(시인)
특별한 밤인 듯 옆에 촛불을 켜두고 있다. 사라진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를 때 나는 촛불을 켜두는 습관이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마음이 한없이 작아지고 낮아지며 고요해진다. 눈물의 공명통으로 부르는 울음소리에 불이 춤춘다. 죽음의 자리에 거듭 태어나는 불꽃, 나도 저렇게 이 대지에 왔으리. 살다보면 또 누군가를 위한 뜨거운 불꽃의 받침이 될 날 있으리. 오늘밤은 정신병을 앓는 누나와 꽃잎 다 떼어주고 당신이 계시던 그 자리에서 가장 높은 곳에 나를 올려두고 가장 낮은 대지의 품속으로 가신 어머님을 함께 내 옆에 모시고 이 글을 쓴다.
초승달을 띄우고
세월을 밀어내는 판화 위로
붉은 노을이 되어 네가 지는구나
누이의 첫사랑이 되었고
어머니에게는 저승길의 밝은 등불이 되었지
허나, 내게는 유년의 수채화
가뿐한 함박눈이
창가에 아른거리는 날
씨앗을 퍼트리던 너의 주머니처럼
손톱에 걸린 붉은 그믐달이
네모난 창에 툭,
눈물로 터지는 구나
- 졸시,「봉숭아 꽃물」전문
밥 먹고 자라는 어머님의 말과 동시에 텔레비전을 보시던 아버지가 엎드려 자는 나를 번쩍 들어 밥상 앞에 앉히고는 숟가락까지 쥐어주셨다. 그 여름날의 어느 저녁은 몽롱하게 밀려오는 어린아이의 잠처럼 고요했다. 식사가 다 끝나기 전에 그 고요는 또 침묵으로 깨지고 말았다. 누나의 몸이 굳어지며 숟가락을 밥상에 떨어뜨리고 경련을 일으키며 방바닥에 쓰러진 것이다. 어머님은 재빠르게 누나의 몸을 바로 누이며 양손을 주물러주셨다. 아버님은 잠깐 속도를 늦추었을 뿐 식사를 계속하시고 나는 그런 누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잠깐 후 누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일어나 식사를 했다.
아주 어렸을 때라고 기억되는 그날 저녁, 처음으로 누나에게 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날 잠들기 전 어머님은 낮에 화단의 봉숭아꽃과 잎을 따 찧어 쌓아둔 비닐뭉치를 푸시고 누나의 손톱에 얹어 잎으로 말고 또 비닐을 작게 잘라 싸매고 명주실로 단단히 묶어주었다. 어머님의 것은 내가 묶어주었다. 어렸을 때의 일들이 기억에 그리 많지 않은데 그날 저녁의 일은 지금도 생생하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상처를 만들어 놓는 일이었다. 손끝에서 가슴 끝까지 온몸을 붉게 물들이는 일이었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누나와 그런 딸을 둔 어머님이 상처를 치유하는 상처를 만드는 일이었다. 어머님에게는 첫눈이 오기 전에 딸의 병이 낫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었을 테고 누나에게는 정말 사랑이 찾아와주기를 바라는 아름다운 상처였을 게다. 그러나 그렇고 그런 것이 세상이라며 흐르는 시간 속에서 상처를 치유하리라던 상처는 작아질수록 혹독하게 가슴을 낭자하는 붉은 슬픔이었다.
이 시는 2년 전 창유리에 닿으며 녹아내리는 첫눈이 내리던 밤, 집 앞의 강 건너편 마을에 켜진 붉은 가로등을 보다가 단박에 쓴 것이다. 그 후로 여러 번 조탁을 하기도 했지만 끝내는 처음 쓴 그대로의 것이다. 내 글의 첫 독자는 나의 아내이다. 쓴 글이 마음에 들어 들뜬 마음에 어떠냐며 아내에게 물어볼 때 ‘응 좋은데’ 하면 난 더 이상 그 글에 덧붙이거나 잘라내는 것 없이 그대로 마친다. 그런데 이 시는 몇 번의 조탁을 거칠수록 아내는 ‘점점 산만해지는 느낌이 들어, 처음 것이 제일 좋은 것 같아’ 라는 말을 반복했다. 결국 아내의 말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사실 내 욕심에 차지 않는 글이다.
혼기 넘긴 누님의 화단에는 오색의 꽃을 피웠고요
어머님의 가장 성스러운 장독대에서는
씨방이 검은 속내를 터트리고 있었지요
꼬물대는 꽃술이 조화로워 마주하고 앉았는데
아! 글쎄, 도톰한 손가락 나를 향하며
고추 보인다고 놀리는 거예요
냅다 물호스질을 해댔지요
여우와 호랑이가 결혼하는 날처럼
화단에서 장독대까지 무지개 뜨고요
누님의 시선에 노을이 자꾸 걸려요
뒤꼍 장독에 군대 간 형님을 위한 정한수 올려 지고요
하루살이 혼인 비행의 군무가 한동안 솟구쳐요
조용하신 아버지의 뽀얀 담배 연기가
동그라미를 그리며 화단 위에 한참을 머물러요
― 졸시,「채송화에 대한 여름날의 추억」전문
누나와 어머님의 치열한 삶의 고통을 소재로 한 또 한편의 시가 「채송화에 대한 여름날의 추억」이다. 이 시에 전반적으로 깔아놓은 것은 어머님과 아버님 그리고 몹쓸 병으로 혼기를 넘긴 누님과의 보이지 않는 갈등을 가족이라는 둥근 테두리 안에서 침묵으로 화해하고 이해하는 운명의 삶이다. 내게 있어 세상의 모든 여성들은 눈물을 먹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명제를 만들어준 것이 이 두 편의 시이다.
어머님은 죄인처럼 사시다가 7년 전 9월의 어느 날 아무도 없는 집안에 홀로 반듯하게 누워 그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게 홀연히 한 많은 생을 마감하셨다. 그보다 몇 해 전 아버님이 돌아가셨으니 누나의 슬픔은 말 그대로 눈물의 몸부림이었다. 장례식 때 殮襲(염습)을 맡았던 분의 전하는 말로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어머님의 손톱에 곱게 봉숭아 꽃물이 들어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후로 나는 누나의 봉숭아 꽃물 들인 손톱을 보지 못했다. 가만히 ‘어머님’ ‘누나’라고 말하면 슬픔과 동경이 포개져 가슴에 맥놀이를 만든다.
요즘 나는 나의 시 앞에 서면 머뭇거린다. 가장 내적인 것에 나는 젖어있는가? 가장 내적인 것은 어쩌면 내면이 아니라 내면에서 결론 내려져 겉으로 보이는 가장 외적인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살아오면서 만났던 많은 슬픔과 가난 그리고 병든 자의 신음을 피해 멀리 돌아갈지언정 맞서 바라보지 못했으면서 나는 지금 그것들의 내면에 닿으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 글을 쓰며 켜두었던 촛불, 젖어 녹아들면서 불꽃을 올리더니 이제 검은 심지만 남기고 꺼졌다. 바닥에 납작하게 달라붙은 촛농의 무늬가 아름답다.
▣ 박현웅 시인 ▣
▪ 중앙 대학교 졸업.
▪ 시집『첫 만남은 아련한데』로 작품 활동.
▪ E-mail : aortm65@hanmail.net
첫댓글 집안에 말썽쟁이 꼬마도 복숭아 꽃물 들이는 동안은 눈을 반짝이며 침묵을 견뎌내더군요. 꽃물 들이는 그 순간만큼의 정성과, 그 순간만큼의 사랑으로 세상이 멈춰지면 좋겠지만 현실은 다른 무언가를 견뎌야 하도록 달갑지 않은 것을 툭툭 던지기 일쑤인 듯합니다. 누님과 누님을 바라보던 가족의 마음을 애잔하게 읽고 갑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