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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 포트폴리오] 유년의 뜰 | ||||||
자연철학과 인문학 깃든 전통정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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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가드닝=2014년 12월호] 이제는 정원도 조용한 공간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가끔 날아오는 몇 마리 새가 아침을 열어주고, 화려했던 공간에는 햇볕과 그림자가 더 선명하게 공간을 채워주고 있다. 이른 봄부터 정원사의 분주한 움직임과 손끝에서 다시 태어나는 솜씨로 정원은 더 화려했던 것을 이제야 차분히 느끼는 아침이다.
이번 정원여행은 40년의 긴 세월 동안 자연과 벗삼아 지내온 임영재((사)푸르미 고문)씨의 정원을 만나고 왔다. 어느 누구보다도 정원에서 한국의 선을 그리워하며 찾고 싶어 하는 임고문의 정원을 대하는 것은 이번 정원여행을 나선 나에게 큰 행운인 것 같다. 1960~1970년에 있었던 정원사들의 이야기와 석창포, 수석등 전통정원, 자연철학에 이르기까지 아주 재미난 강의를 들었다. 오래된 구옥의 작은 방에 두 사람은 마주 앉아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게 이야기를 나눴다. 나중에는 시간이 모자라 성급히 나오기가 정말 아쉬울 정도였다. ‘유년의 뜰’부터 이야기를 풀어본다. 임 고문의 부인이 어린 시절 살던 지금의 집과 정원은 마을에서 꽤 알려진 부잣집이었다. 그래서 늘 동네 사람들이 담장 너머로 집과 정원을 구경하곤 했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이 이야기를 들은 임 고문은 아내에게 현재의 집과 마당을 사서 정원을 만들고 아내에게 선물했다. 그리고 정원의 제목을 ‘유년의 뜰’이라 했다. 땅과 인연을 맺고 정원을 가꾸는 데는 저마다 이유가 있다면 그의 정원은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다. 유년의 뜰에는 철재, 목재, 석물, 수석등 많은 정원소품과 미술품, 그리고 야생화가 가득하고 여기에 자연철학에 대한 정원의 생각이 담긴 정원이다. 정원이라는 공간이 식물만이 가득한 것이 아니라 조각물과 정원사의 분명한 철학도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 다르게 느껴졌다. 이 곳 정원은 작은 소품 하나로 이야기가 가득한 정원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정원소품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한다. 작은 수석하나까지도 직접 전국을 다니며 구매하면서 그때 만났던 사람의 얼굴과 표정, 그리고 당시 나누었던 이야기가 정원 곳곳에 숨 쉬고 있기에 그 의미가 더 깊다. 세월이 흘러 많은 이야기가 쌓여 형성된 정원은 정원사가 누리는 큰 행운일 것이다. 우리 정원에도 이런 이야기를 천천히 만들어가는 시간여행을 가져보면 좋겠다. 또한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정원을 가꾸면서 자신만의 정원 색깔을 가져가는 것도 기쁨이다. 마치 화가가 자신만의 화법을 찾아 평생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말이다. 임고문의 정원사랑이 전해지는 느껴지는 대목이다. 석창포 분에 담겨진 작은 물을 보면서 우리가 매일 접하는 수돗물, 생수와는 달리 한정된 물이 아니라 마음을 열리게 하는 정적인 멋으로 물을 담을 수 있는 분을 만드는 것을 그는 좋아하고 있다. 또한 석창포는 정신을 밝게 하고, 눈을 맑게 하고, 부드러우나 강인해 옛 선비들은 높이 평가해 문방오우라 부르며 귀하게 여겼다고 한다, 지금은 글자 하나도 컴퓨터 자판에서 손쉽게 기록하지만 글자 하나에 혼을 담아 기록하던 시절을 생각해 보면 왜 석창포를 더 귀하게 여겨왔는지 느껴진다. 석창포 사랑에 이어 자연철학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는 “자연철학을 통해서 인문학이 완성되어진다”고 말한다. 나를 공부하고 내가 존재하는 하는 것을 자연으로부터 배울 때, 나 스스로 나를 지키고, 나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나로서의 생활을 갖는 것이 자연을 통해 인문학을 배워가는 순서라고 말하며 자연철학과 인문학의 연결을 중요시했다. 임고문이 정원에서 한 가지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전통정원이다. 전통정원의 멋을 여백에서 찾고 있다. 우리의 여백 속에는 여유로움이 있고 그 안에 정이 있다. 정을 나눌 수 있는 정원을 만들고, 느끼고 위로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가는 전통정원을 좋아하고 있었다. 바라만 보거나 꽃이 가득한 것이 아닌 나무 한 가지가 늘어진 것에서 여유를 찾고 그 선에 한국의 멋을 찾는 정원이다. 이런 한국의 멋을 현대인들이 사물(정원)을 통해 자신의 인격을 수양하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정원이라 말한다. 입구의 낡은 대문을 통과하면 여기저기에서 모아온 바닥 벽돌이 정원에 들어가는 사람에게 편안함과 안도감을 선사한다. 한쪽에 놓인 기왓장을 가리키며 큰 예산을 가지고 정원을 만들 수가 없어 여기저기에서 버려진 것을 모아 만들다 보니 세련미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오히려 푸근한 느낌을 주어 임 고문만의 정원을 느끼기 좋았다. 사진으로 담기에 어려워 공유하지는 못하지만 정원 한쪽에는 아내가 가꾸고 있는 정원이 인상적이다. 전혀 디자인된 것 같지 않은 자연스러움에 고향과 엄마를 생각하게 하는 꽃길을 매년 직접 가꾸고 있는데 여기가 정말 정원이라고 말한다. 유년의 뜰은 임 고문의 정(情)이 세월과 언제나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이번 정원여행을 통해서 사진에 다 담지 못하는 이야기가 많아 아쉽지만 기회가 된다면 독자 여러분들과 이 정원에서 함께 거닐며 정원주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이성현 편집위원((사)푸르네 정원문화센터 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