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오산 공장
1974년 12월 말에 금성전기(주) 공장은 경기도 오산에 있는 신축공장으로 이전했고, 1975년 시무식은 대지가 5천 평이고 그 절반이 건평인 오산 공장에서 치러졌다.
원래 논을 사서 지목변경을 해서인지 공장 울타리 안에 논이 여러 마지기 있었고, 그해 봄에 각 부서에서 차출된 직원들이 직접 모내기를 했다.
연구소는 공장 정문 옆에 지어진 큰 3층 관리동 건물의 3층을 다 사용했는데, 잔디 깔린 운동장은 축구장보다 커서 한 번은 군부대 내빈들이 대형 수송 헬기인 시누크를 2대나 타고 온 적도 있다.
개발부장님이 연구소장이 되고 두 분 기좌는 과장이 되었으며, 연구원도 계속 들어와 수십 명을 넘어섰다.
특히 나는 현장 생산부 직원들이 매년 재미로 뽑는 기사급 인기투표에서 1등을 한 데 이어, 실제 인사고과에서 1등을 했다.
입사 3개월밖에 안 되는 신입사원이라서 사규상 호봉 특진은 못 했지만, 내 모교인 부산대학교 전자과에 무시험 특채 의뢰가 계속 요청되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대 등 7개 대학교에만 요청함)
그래서 연초에 전자과 1회 졸업생인 C선배가 입사했고, 뒤이어 매년 기수마다 여러 명씩 들어와서 2년 뒤에는 3회인 내 동기까지 모두 9명이나 되었다.
나는 VHF 주파수대역의 무전기인 KPRC-6 생산기술과 함께 별도로 진행된 ‘KPRC-6 채널조정기’ 개발을 맡아서 근 1년 만에 양산 출하시켰다. 채널조정기는 전방 중대급에서 고장 난 무전기를 수거해 수리하거나 채널을 변경하여 조정할 때 사용하는 휴대용 장비이다.
1976년쯤엔가, ADD 주관으로 전방부대의 무전기 사용현황을 점검하기 위한 시찰을 가게 되었다. 나는 검수관 3명과 함께 강원도 홍천, 인제 등지의 군부대에 들러 KPRC-6 무전기 사용에 문제점이나 애로사항은 없는지 파악하며 휴전선 최전방 포병부대까지 2박 3일간 시찰했다.
휴전선 최전방 포병 소대에 가보니 대포가 낮은 산 구릉 뒤쪽에서 북한을 향해 거치되어있었다. 대포가 북한 지역을 빤히 바라보면서 설치되어 있을 줄 알았던 나는 이외의 구조에 놀랐고, 대낮부터 술에 취한 소대장이 자기 침상 밑에서 양주를 꺼내어 권하는 바람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래도 강원도 산골짝 깊숙한 전방부대 곳곳에서 우리가 만든 무전기가 잘 사용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방위산업체에 근무하는 자부심을 느꼈고, 앞으로 맡을 개발업무에 더 충실해야겠다는 각오도 새삼스럽게 다져졌다.
돌아오는 길에 통신 장비 병참 지원부대가 있는 강릉에 들러서 동해의 짙푸른 바다도 난생처음 구경했다.
5. 지뢰 탐지기
이어서 나에게 주어진 개발 아이템은 지뢰 탐지기였다. 그때까진 우리 국군에게는 금속 지뢰 탐지기만 있었는데, 미군에서 금속/비금속 겸용 지뢰 탐지기를 사용하면서도 우리 한국군에는 지급해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ADD에서 미군 지뢰 탐지기 샘플 1대를 주면서 업체에서 분석하여 그대로 만들어보라고 했다.
낚싯대 굵기의 길쭉한 원통 막대의 한쪽 끝에 사각형으로 납작한 머리가 달려있고, 반대편 손잡이 부분에 전자회로 박스가 붙어있는 구조였다.
회로 박스를 열어서 PCB를 그대로 베끼면 전자회로는 카피할 수 있는데, 사각형의 머리는 플라스틱 재질로 몰드(mould)를 한 것이어서 내부를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ADD로부터 들은 기술적인 사항은, 레이더처럼 400MHz(메가헤르츠) 대역의 주파수를 송신하고 지뢰에 부딪쳐 반사되어 오는 신호를 수신해서 그 미미한 차이를 증폭하고 분석해서 지뢰의 존재 여부를 판단한다고 했다.
비금속 지뢰는 플라스틱이 주를 이루고 있으므로 땅의 주요 성분인 모래(실리콘)와 플라스틱의 유전율(입실론) 차이를 이용하여 탐지하는 원리였다.
나는 샘플을 들고 오산 읍내 큰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X-ray)로 사각형 머리 부분을 촬영했는데, 병원 직원들이 신기한 듯 웃었다.
여러 컷의 엑스레이 사진 필름으로 분석해보니 머리 부분의 내부는 인쇄 회로기판인 사각형 양면 PCB였고 한쪽 면은 송신안테나이며 다른 쪽은 수신 안테나였다.
PCB는 우리가 확대한 회로 패턴을 투명 트레이싱 페이퍼에 흑색 테이프를 손으로 발라 아트 워크(art work) 작업해서 외주를 주면, PCB 업체가 축소 촬영하고 필름을 만들어서 FR-4라고 부르는 두께 1.6mm의 유리섬유 적층판인 에폭시수지 PCB에 축소된 회로를 프린트하고 동판을 에칭(etching)하여 필요한 회로 패턴만 남은 PCB 기판을 만들어 가져온다.
에폭시 PCB는 유리섬유라서 불에 잘 타지 않고 견고하면서 양면 PCB뿐만 아니라 다중 적층 PCB도 만들 수 있어서, 고급 장비에는 기존의 싸구려 페놀 PCB 대신에 널리 사용되며, 에폭시를 여러 겹 발라서 만든 가벼운 보트(boat)도 있다.
한 번은 기구팀 과장이 된 J기좌님을 따라 서울 변두리 어딘가에 있던 PCB 공장을 방문했었는데, 공장장이 J과장님 친구분이었다.
그분의 설명을 듣다가 내가 실크스크린이 몇 메시냐고 물었더니 어떻게 그런 걸 아느냐며 놀라워했다. 나는 비단 같은 고급 섬유에 무늬를 인쇄할 때 300메시 정도의 실크스크린을 사용한다는 걸 알고 있어서 물어본 것이다.
어쨌거나, 그때 나를 빤히 쳐다보던 J과장님은 귀사 길에 “우리 회사가 PCB 생산을 직접 하면 어떻겠냐?”고 묻길래,
좋은 생각이라면서 국내에서 외주해오면서 그 특성이 아주 까다롭고 중요한 전자 부품인 수정진동자 크리스털(Crystal)도 함께 고려해보면 좋겠다고 했다.
귀사 후에 J과장님이 윗선에 어떻게 보고서를 올렸는지는 몰라도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 우리 공장 내에 커다란 PCB 생산 라인이 설치되어 가동되었다.
방문 갔던 그 PCB 업체는 매우 영세했었는데, 그 J과장님 친구분은 어찌 됐는지 모르겠다. 내가 얘기했던 크리스털은 기술적으로 매우 복잡해서 나중에는 나도 감히 자체 생산을 검토할 엄두도 못 냈다.
어쨌거나 그 영세한 PCB 공장에서 미제 지뢰 탐지기 머리 부분 송수신 안테나와 똑같은 PCB를 만들었고, 몰드 업체에서 국방색 실리콘으로 압착하여 거의 비슷한 지뢰 탐지기를 만들었다.
회사 건물 내에 시멘트로 벽을 쌓고 널따란 모래사장을 구축하여 비금속 재질인 파라핀으로 모의 지뢰를 만들어 파묻어 놓고, 지뢰 탐지기를 좌우로 스위프(sweep) 하며 모래 속 여러 깊이에 파묻은 파라핀 뭉치를 찾아내는 시험에 매달렸다.
개발이 반쯤 진행되었을 때 나는 다른 아이템을 부여받아서 지뢰 탐지기는 후배 연구원에게 넘겨줬는데, 나중에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 양산 납품되었고, 지금도 군에서 제식 장비로 잘 사용되고 있다.
첫댓글 아주 중요한 자료들과 수준급 글, 정말 감사합니다. 화이팅!!!
네, 난정 주영숙 작가님. 말씀 감사합니다.
지뢰탐지기 납품 검수용 자동 스위퍼(sweeper)를 직접 제작했는데, 스위프 속도와 각도의 조정 기능을 갖춰야 해서,
어려운 수학인 삼각함수의 사인 코사인 등 적용하여 만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ㅎ
낯선 분야의 새로운 지식을 접하게 해주신 삼일선생님 고맙습니다.
네, 뱃사공 님.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
자주 국방을 위해 70, 80년대에 음지에서 많은 노력이 있었음을 알리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