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 하느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굳센 믿음
그 무렵 23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제자들도 그분을 따랐다.
24 그때 호수에 큰 풍랑이 일어 배가 파도에 뒤덮이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
25 제자들이 다가가 예수님을 깨우며,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하였다.
26 그러자 그분은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27 그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말하였다.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마태오 8,23-27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2005년 외국의 어느 극장에 화재가 발생하여 최소 30명이 숨지고 45명이 부상을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극장 안에는 천여 명의 관객이 연극을 관람하는 중이었는데, 무대 커튼에서 불씨가 피어올라 화재가 시작되었고 그것이 대형 참사로 번진 것입니다. 희생자 가운데 상당수는 화재에 놀라 긴급히 대피하는 과정에서 발에 밟혀 숨졌다고 합니다. 화재 자체보다도 발에 밟혀서 죽은 사람이 많았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던져 주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왜 발에 밟혀 숨진 사람들이 더 많았을까요? 어쩌면 화재보다도 화재에 따른 지나친 걱정과 공포심이 오히려 더 큰 인명 피해를 낳았는지도 모릅니다.
심리학자 어니 젤린스키에 따르면 우리가 하는 걱정의 40%는 현실에서 벌어지지 않을 일이라고 하고,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라고 합니다. 22%는 걱정하기에는 지나치게 사소한 것이며, 4%는 자신이 전혀 손쓸 수 없는 일들에 대한 걱정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우리의 걱정 가운데 96%는 지나치고 쓸데없는 것입니다. 결국 걱정하여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는 나머지 4%에 불과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지나친 걱정을 하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님,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풍랑이 이는 것을 보고 ‘죽을 지경’이라고 생각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혹시 우리의 모습은 아닐는지요? 지나친 걱정에 사로잡혀 ‘지금 죽을 지경이야.’ 하고 신음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걱정은 부질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걱정으로 신음하느니, 그럴 때일수록 하루하루를 주님께 맡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래야 지나친 걱정이 불러일으키는 화를 면하지 않겠습니까? (한재호신부님 「오늘의 묵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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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 신부님 글드립니다~~
「문제 해결이 주는 의미」
1796년 어느 날 독일 괴팅겐 대학의 열아홉 살짜리 수학 천재가 저녁을 먹은 후에 지도교수가 매일 그에게만 특별히 내주는 수학 문제 3개를 풀고 있었다. 처음 두 문제는 두 시간 안에 완벽하게 풀어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문제를 푸려고 했는데 그 문제는 별도의 쪽지에 적혀 있었다.
“자와 컴퍼스로 정사각형을 그리시오.”
문제는 잘 풀리지 않았다. 자꾸만 시간이 흘러가는데도 도무지 진전이 없었다. 청년은 온갖 지혜를 다 짜내 보았지만 자신이 배운 수학 지식으로는 도저히 문제를 풀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가 너무 어렵다 보니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어떻게 해서든지 풀어야지!’ 라고 마음먹은 그는 컴퍼스와 자를 들고 종이에 그림을 그리며, 상식을 뛰어넘는 다른 사고방식으로 답을 구하려고 애썼다.
창문으로 서광이 비칠 무렵에서야 청년은 크게 숨을 한번 쉬며 고개를 들었다. 마침내 문제를 해결한 것이었다. 아침에 지도교수 앞에 선 학생은 그저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교수님께서 내주신 세 번째 문제를 푸느라 밤을 꼬박 새웠어요, 그렇게 열심히 가르쳐 주셨는데....,”
답안을 받아든 지도교수는 깜짝 놀랐다. 교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거 자네가 푼 것 맞나?”
학생은 당혹스러운 모습으로 지도교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네 그런데 밤을 꼬박 새우고 말았어요.”
지도교수는 그를 의자에 앉히고 컴퍼스와 자를 꺼낸 다음 책상에 종이를 펼쳐 놓았다. 그리고 그에게 다시 정사각형을 그려보라고 말했다. 학생은 순식간에 정사각형을 그렸다. 그 모습을 보고 지도교수는 크게 감격했다.
“자네 아나? 자네가 이천 년 묵은 수학 문제를 해결했어. 아르키메데스나 뉴턴도 풀지 못한 문제를 자네가 하룻밤 안에 풀어낸 거라고. 자넨 정말 천재야.”
알고 보니 지도교수도 이 난제를 풀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그런데 그날 실수로 이 문제를 적은 쪽지가 학생에게 끼어 들어간 것이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학생이 멋지게 해결한 것이었다. 학생은 당시를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 나에게 그 문제가 이천 년 동안 풀리지 않던 수학 문제라고 했더라면 아마 풀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청년이 바로 수학 천재인 가우스이다.
인터넷에서 보게 된 글입니다. 이 글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 역시 어떤 일을 할 때 해 보지도 않고 겁부터 내고 포기한다는 것이지요. 스스로 불가능하다며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얼마나 많습니까? 주님은 내가 감당할 만큼의 문제를 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비가 오거나 햇볕이 쨍쨍한 날씨를 선택할 수는 없지만 날씨에 어떻게 대처할 지를 택할 수 있다. 그러니 좌절로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콘스탄틴 마이클 먼티스)>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주님, 살려 주십시오.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그렇게도 믿음이 없느냐 ?
왜 그렇게 겁이 많으냐?”
(마태오 8,23-27)
「主よ、助けてください。
おぼれそうです」
「なぜ怖がるのか。
信仰の薄い者たちよ。」
(マタイ8・23-27)
"Lord, save us!
We are perishing!"
"Why are you terrified,
O you of little faith?"
(Mt 8:23-27)
年間第13火曜日
"주님, 살려 주십시오.
"チュニム、 サルリョチュシップシオ。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ウリガチュッケ デオッスムニダ。"
“그렇게도 믿음이 없느냐 ?
"クロッケド ミドミ オッヌニャ?
왜 그렇게 겁이 많으냐?”
ウェ クロッケ コビ マヌニャ?"
(마태오 8,23-27)
「主よ、助けてください。
슈요 타스케테쿠다사이
おぼれそうです」
오보레소오데스
「なぜ怖がるのか。
나제 코와가루노카
信仰の薄い者たちよ。」
신코오노 우스이 모노타치요
(マタイ8・23-27)
"Lord, save us!
We are perishing!"
"Why are you terrified,
O you of little faith?"
(Mt 8:23-27)
Tuesday of the Thirteenth Week in Ordinary Time
MT 8:23-27
As Jesus got into a boat, his disciples followed him.
Suddenly a violent storm came up on the sea,
so that the boat was being swamped by waves;
but he was asleep.
They came and woke him, saying,
“Lord, save us! We are perishing!”
He said to them, “Why are you terrified, O you of little faith?”
Then he got up, rebuked the winds and the sea,
and there was great calm.
The men were amazed and said, “What sort of man is this,
whom even the winds and the sea obey?”
2024-07-02「イエス様は起き上がって風と湖とをお叱りになると、すっかり凪になった。」
+神をたたえよう。神は偉大、すべては神に造られた。
おはようございます。
今日は年間第13火曜日です。
み心の主・イエス・キリストとみ心の聖マリア、聖母の配偶者聖ヨゼフ、諸聖人の大いなる祝福がありますように!
また、大天使とすべての天使、私たちの守護の天使が今日も皆さまを見守り平和でありますようお祈り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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マタイによる福音
<イエス様は起き上がって風と湖とをお叱りになると、すっかり凪になった。>
そのとき、8・23イエスが舟に乗り込まれると、弟子たちも従った。24そのとき、湖に激しい嵐が起こり、舟は波にのまれそうになった。イエスは眠っておられた。25弟子たちは近寄って起こし、「主よ、助けてください。おぼれそうです」と言った。26イエスは言われた。「なぜ怖がるのか。信仰の薄い者たちよ。」そして、起き上がって風と湖とをお叱りになると、すっかり凪になった。27人々は驚いて、「いったい、この方はどういう方なのだろう。風や湖さえも従うではないか」と言った。(マタイ8・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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ハン・ジェホ神父様の「今日の黙想」です。
2005年、外国のある劇場で火災が発生し、少なくとも30人が亡くなり、45人が負傷するという出来事がありました。劇場内には、千人以上の観客が演劇を観覧していましたが、舞台のカーテンから火が出て火災が始まり、それが大惨事へと発展したのです。犠牲者の中には、火災によって慌てて避難する過程で踏まれて亡くなった方が多く含まれていたそうです。火災そのものよりも、踏まれて亡くなった人の方が多かったことは、私たちに大きな意味を投げかけています。なぜ踏まれて亡くなった人が多かったのでしょうか?もしかすると、火災そのものよりも、その火災に伴う過剰な心配と恐怖心が、より大きな人的被害をもたらしたのかもしれません。
心理学者アーニー・ゼリンスキーによれば、私たちがする心配の40%は現実には起こらない事柄であり、30%は既に起こった事柄について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22%は心配するには些細すぎるものであり、4%は自分が全く手を出せない事柄についての心配だといいます。このように考えると、私たちの心配の96%は過剰で無駄なものであることがわかります。結果として、心配して問題が解決するのは残りの4%に過ぎないのです。
今日の福音では、弟子たちが過剰な心配をし、「主よ、助けてください。おぼれそうです(死にそうです)。」と言いました。主と共にいるにもかかわらず、嵐を見て「死にそう」と考える弟子たちの姿は、もしかすると私たちの姿かもしれません。過剰な心配にとらわれて「今にも死にそうだ」とうめいていませんか?イエスさまは言われます。「なぜ怖がるのか。この信仰の薄い者たちよ!」そうです。私たちがするほとんどの心配は無意味なものです。そのような心配でうめくよりも、そのときこそ一日一日を主に委ねるのはいかがでしょうか?そうすれば、過剰な心配が引き起こす不幸を免れることができるではないでしょう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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どんな時にも絶対的な信仰を持って平和を保つことができますように聖霊、きてくださ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