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한 현상의 재현(再現)이,
현재 우리 영도자 중에는 당시와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믿든 믿지 않든 상관없이,
현실에 물적 증거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표지의 QR 코드 확인)
우리의 의식은, 저 세상과 이 세상을,
그 환경에 적응한 육체로서 전생윤회하고 있다.
그 때문에, 우리의 의식의 중심인 마음이 조화된 생활을 하고 있는 경우에는,
잠재의식과 표면 의식의 조화가 이루어져,
과거세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게다가 자유자재로, 이 세상과 저 세상도 보는 것이 가능하다.
불교에서 말하는 관자재보살이라든가, 관세음보살과 똑같은 현상을,
보거나 듣거나 하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실제 체험의 프로세스에서,
" 대우주체를 지배하고 있는 의식 "
이야말로 우리 인간의 부모이며, 신불이다. 라고 하는 것이
우리 영도자에게 해명된 것이다.
대자연계의 만상만물도, 태양의 열, 빛의 에너지도,
모두 신불의 자비이며, 사랑인 것을 깨달은 것이다.
대자연계의 모든 존재의,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이와 같이 대우주체의 의식,
즉 신불의 의지에 의해 주어져 있다.
이 대자비는, 만상 만물에게 평등하며,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은혜에 대해서 감사의 염(念)을 잊어서는 안 되고,
보은 행위로써,
사회 인류에 대해서 자비와 사랑을 주는 것을
상념,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서,
대자연의 법칙은, 무언(無言)중에도 끊임없이
우리 인간에 대해 신리를 가르치고 있는 것은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신불(神佛)과 인간
대우주체는, 신불의 몸이며,
신불의 의식은 대우주체를 지배하고 있다.
그 의미로, 우리의 생활지역도, 대우주체의 작은 세포에 지나지 않는다.
이 신불의 몸도 물질로 구성되어 있고,
물질은 에너지 입자의 집중에 의해 그 형태가 만들어져 있다.
그 질량과 에너지의 법칙은, E = mC² 에르그
빛의 속도는 일정해서, 1초간에, 299,774㎞/sec이며, 약 30만km로 나타내고 있다.
빛도 입자의 에너지이며,
공간의 매체를 파동적으로 직진하고 있다.
전자파도, 빛의 속도에 버금간다.
게다가 열도 에너지 입자이며, 우리의 피부에 전해져 온다.
열은 입자로 되어 부딪치며, 따뜻함을 느낀다.
열에너지를 E 라고 하고, 진동수를 v, 프랑크 상수를 h라고 하면,
E = hv 이다,
프랑크 상수 h는, 6.624×10‐²⁷이라고 하는 작은 수치이다.
입자와 파동에 대해서는,
에너지가 hv의 광량자(光量子)의 운동량은 hv/c,
상대성원리에 의해 생각하면, 속도 v, 질량 m의 입자의 운동량은, mC²이다.
이때, C²/v의 위상 속도(位相速度)의 파(波)가 함께 동반하게 되어,
이것을 빛에 맞추면, v=c 로서 광량자설과 모순이 없다.
물질 입자도, λ=C²/v = h/mv로 된다. 이 식에 의해,
C/v=h/mC 그러므로 hv=mc²=E
E는 일의 량(에너지)이다.
파장은 λ으로 전해지는 파동성을 동반한다고 생각된다.
열이랑 빛이 모든 현상이 일어나는 인연으로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도 물질이며
에너지 입자의 집중에 의해 만들어져 있다는 것은 이미 설명하였지만
불교에서는 색심불이(色心不二)라고 하는 말로 신리를 설(說)하고 있다.
색(色)이란, 물질 즉 육체를 말하며
심(心)이란 마음이며,
물질과 마음은 불이일체(不二一體)라고 설명되어 있다.
우리는, 물질을 보는 것은 가능해도 에너지를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와 같이, 대우주체의 일부분은 볼 수는 있어도
우주체의 의식(意識)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자신의 육체를 보는 것은 가능해도,
육체를 지배하고 있는 의식을 보는 것은
마음이 조화되어 있는 사람들 이외에는 불가능하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는,
기껏해야 일곱 가지 색채인 무지개의 양극단인 적색과 자색의 범위뿐이다.
0.00007에서, 0.00004㎝의 범위의 색을 보는 것은 가능해도,
적외선도 자외선도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X선, 델타선, 극초단파, 단파, 장파를 보는 것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이와 같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다.
의식의 세계는, 차원이 다른 세계의 존재이기 때문에
신리를 깨닫고 있는 사람들의,
조화된 상념과 행위의 마음의 눈밖에 그곳을 볼 수 없다.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의식의 세계,
저 세상의 존재를, 누구도 부정하는 것은 무리이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믿지 않는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판단은, 비과학적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물을 생각하거나 고민하거나 상상하거나 한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육체도 피곤해진다.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것의 소비가 있기 때문이다.
또, 피로는 육체노동에 의해서도 일어난다.
그것은, 일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인 에너지를 소비했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고뇌도 상상도,
모든 것은 육체의 지배자인, 의식의 작용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물리적으로 측량할 수 없는 의식의 일에 의해서도 피로하다, 고 하는 것은,
그 실재를 여기서도 부정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될 것이다.
고통이나 슬픔, 그 밖의 걱정거리로 고민하거나 할 때,
육체가 피로하다고 하는 것은,
육체의 지배자인 의식이 문제에 대해 집중하고,
의식이 육체보다 먼저 고생하기 때문에 부조화로 되어 생기는 현상이다.
밤에 잠들 수 없다고 하는 경우도,
흥분한 의식과 육체의 조화를 이룰 수 없을 때 일어난다.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고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공부하시는군요...
@오로지팔정도 저는 그져 바보 일 뿐입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성불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