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子曰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음이 없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고 하셨다. 不求諸心, 故昏而無得. 不習其事, 故危而不安. 마음에 구하지 않기에 고로 어둡고 얻는 것이 없다. 그 일을 익히지 않으니, 고로 위태롭고 불안한 것이다. 朱子曰 學是學其事 如讀書是學 須精思其中義理方得 如做此事是學 須思此事道理如何 只恁低頭做不思這道理 則所學者粗迹耳 故昧而無得 若只空思索不傍事上體察 則無可據之地而終不安穩 須是學與思互相發明 주자가 말하길, “學이란 그 일을 배우는 것인데, 예컨대 책을 읽는 것도 學이지만, 반드시 그 안의 의리를 정밀하게 생각해야만 비로소 되는 것이다. 예컨대 이 일을 하는 것도 배움이지만, 반드시 이 일의 도리가 어떠한지 생각해야만 한다. 그저 이렇게 머리를 숙이고 일할 뿐 이 도리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배운 것이 거친 자취일 뿐이다. 그러므로 어둡고도 얻은 것이 없는 것이다. 만약 단지 헛되이 생각만 하면서 일 위로 다가가 몸으로 살피지 않으면, 근거할만한 곳이 없게 되어 결국에는 안정되지 못할 것이니, 반드시 배움과 생각은 서로를 드러내어 밝혀야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凡學字便兼行字意思 如講明義理 學也 纔效其所爲 便有行意 무릇 學이라는 글자는 곧바로 行자의 뜻을 겸하고 있다. 예컨대 연구하여 밝히는 것이 배움인데, 조금이라도 그 행한 바를 본받는다고 하면, 곧바로 행한다는 뜻이 있게 되는 것이다. 思與學字 相對說 學這事便思這事 人說這事合恁地做 自家不曾思量這道理是合如何 則罔然而已 罔似今人說罔兩 旣思得這事 若不去做這事 便不熟則臬兀不安 如人學射 雖習得弓箭裏許多模樣 若不曾思量這箇是合如何也 不得 旣思得許多模樣是合如何 却不曾去射也 如何得 思는 學이라는 글자와 더불어 서로 대조하여 말한 것으로서, 이 일을 배운다면 곧 이 일을 생각하는 것이다. 남이 이 일은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자신은 일찍이 이 이치가 마땅히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헤아린 적이 없다면, 아무것도 몰라서 멍할 것이다. 罔이라는 것은 오늘날 사람들이 말하는 근거가 없음과 비슷한 것이다. 이미 이 일을 생각하였으면서도, 만약 가서 이 일을 행하지 않는다면, 곧 익숙하지 않아서 위태롭고 불안할 것이다. 예컨대 사람이 활쏘기를 배움에 있어, 비록 활과 화살 안에 수많은 모양을 익혔더라도, 만약 일찍이 이러한 것들을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헤아려본 적이 없다면, 안 된다. 이미 수많은 모양을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였다고 할지라도, 도리어 일찍이 가서 활을 쏘아본 적이 없다면, 어찌 괜찮겠는가? 思則自當有得 如食之必飽耳 생각하면 저절로 당연히 터득함이 있어야 하니, 예컨대 밥을 먹으면 반드시 배부른 것과 같을 따름이다. 問學謂視聖賢所言所行而效之也 思謂硏窮其理之所以然也 徒學而不窮其理 則罔 罔謂昏而無得 則其所學者亦粗迹耳 徒思而無踐履之實 則殆 殆謂危而不安 則其所思者亦虛見耳 學而思 則知益精 思而學 則守益固 學所以致廣大 思所以盡精微 曰 學不專於踐履 如學以聚之 正爲聞見之益而言 누군가 묻기를, “學이란 성현께서 말씀하신 바와 행하신 바를 보고서 그것을 따라 하는 것을 말합니다. 思란 그 이치의 所以然(그러한 까닭)을 연구하고 궁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저 헛되이 배우기만 하고 그 이치를 궁구하지 않으면 곧 멍하여 아무것도 모르게 되니, 罔은 어두워서 터득하는 바가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한즉, 그가 배운 것도 또한 거친 자취일 따름입니다. 헛되이 생각만하면서 실천하는 실질이 없다면, 위태로워지니, 殆는 위험하고 불안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한즉, 그가 생각하는 것 또한 허황된 식견일 따름입니다. 배우면서 생각하면 앎이 더욱 정밀해지고, 생각하면서 배우면 지킴이 더욱 견고해지는 것입니다. 學이란 광대함을 지극하게 하는 것이요, 思란 精微함을 극진하게 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말하길, “배움이란 실천함에 專一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배움으로써 지식을 모음이라는 말은 바로 식견이 늘어난다는 것 때문에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學之義廣矣 雖不專謂習其事 然此之謂學 則指習事而言耳 徒學而不求諸心 則內外不恊 外雖勉强 而中無意味 故昏而無得 徒思而不習其事 則理事爲二 理雖若有所得 事則扞格而無可卽之安 故危而不安 경원보씨가 말하길, “學의 뜻은 넓다. 비록 그 일을 익히는 것을 오로지 말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이를 일컬어 學이라고 한다면, 이는 일을 익히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일 따름이다. 헛되이 배우기만 하고 마음에서 구하지 않는다면, 내외가 화합하지 않으므로, 비록 밖으로는 억지로 할지라도 안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두워서 터득하는 바가 없는 것이다. 헛되이 생각만 하고서 그 일을 익히지 않는다면, 이치와 일은 두 개가 되어서, 비록 이치로는 다소 터득하는 바가 있는 것 같지만, 일은 곧 막혀서 통하지 않으면서 나아가 의지할만한 편안함이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위태롭고 불안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學而思 則理益明而不局於粗淺 思而學 則理益實而不荒於高虛 신안진씨가 말하길, “배우면서 생각한다면, 이치는 더욱 밝아져서 거칠고 얕은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생각하면서 배운다면, 이치는 더욱 실질적인 것이 되어서 고상하고 허황된 것에서 거칠어지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
2 | ○ 程子曰: “博學, 審問, 愼思, 明辨, 篤行五者, 廢其一, 非學也.” 정자가 말하길, “널리 배우고 살펴 물으며 삼가 생각하고 밝게 분별하며 돈독하게 행하는 이 다섯 가지는 그 하나라도 폐하면 학문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五者中庸誠之之目 程子之說 本以論中庸耳 朱子采之於此以廣此章之意 신안진씨가 말하길, “5가지는 중용의 정성스럽게 한다는 것의 세목인데, 정자의 말씀은 본래 이로써 중용을 논한 것이었을 따름이다. 주자가 이를 이곳에 채록함으로써 이 장의 뜻을 넓힌 것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朱子釋中庸 學問思辨屬擇善 知之事也 篤行屬固執 行之事也 此則以學爲習其事 是行之事 以思爲求諸心 是知之事 至若學而時習之 又引程子之言 曰時復思繹 則思 又是學習之事 若有不同者 要之 專言學 則學兼知與行 思繹亦是學 分學與思 則思字屬知 學字屬行 中庸五者 朱子謂學與行 是學之終始 問與辨是 思之終始 是也 운봉호씨가 말하길, “주자는 중용을 풀이하면서 學問思辨(박학, 심문, 신사, 명변)은 擇善에 속하므로 앎의 일이고, 篤行은 固執(굳게 붙잡음)에 속하므로 행함(行)의 일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는 배움(學)을 그 일을 익히는 것으로 여겼으니 이는 行의 일이고, 생각함(思)을 마음에서 구하는 것으로 여겼으니, 이는 앎(知)의 일이다. 學而時習之(배우면서 그것을 수시로 익힌다) 같은 경우에 이르러서는, 다시 정자의 말을 인용하여 時復思繹(수시로 거듭 생각하여 이치를 풀어냄)은 생각함(思)이니 또한 學習(배워서 익힘)의 일이라고 말하였다. 같지 아니한 것이 있는 것 같지만, 요컨대, 오로지 學만 말한다면, 學은 知와 行을 겸한 것이고, 思繹 또한 學이다. 學과 思를 나눈다면, 思자는 知에 속하고, 學자는 行에 속한다. 중용의 5가지에 대하여, 주자는 學과 行이 學의 처음과 끝이고, 問과 辨이 思의 처음과 끝이라고 말하였으니, 참으로 옳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