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잡는 날
해마다는 아니지만 서너 해마다 가을이면 아버지는 돼지를 잡으셨다.
봄에 조그만 새끼 돼지를 사와서 돼지 우리에 넣으면 키우는 건 엄마나 우리 몫이었다.
밥 찌꺼기나 쌀겨가 그 녀석의 양식이다. 첨에 올 땐 귀엽던 녀석도 점점 자라면서 몸집이 커지면 먹는 만큼 오물도 많아진다.
부지런히 짚을 깔아주지만 금세 오물이 쌓인다. 쇠스랑으로 찍어 리어카에 담아 집 앞 텃밭의 두엄더미로 옮기는 힘든 작업을 해야했다.
냄새는 또 어쩌고?
가끔 엄마는 부아가 나선 "느이 아부지는 돼지새끼 사다만 놓으면 그만이여. 은제 똥 한 번 치우는 걸 못봤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면 녀석은 그야말로 커다란 어른 돼지가 되어 조석으로 돼지 우리를 들여다보는 아버지의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가을 추수가 끝나고 집집마다 김장을 해서 땅에 묻고 난 후, 일년 농사의 수고로움을 뜨끈한 아랫목에 온 몸을 지지고 있을 즈음,
어느 날 아침,
우리 집 마당이 수런거리기 시작한다.
전 날 저녁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간 내게서 연통을 받은 건너말 용수 아버지가 새벽부터 막걸리라도 마셨는지 불콰한 얼굴로 와선 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커다란 망치를 들고 흔들어대며 힘자랑을 하고 있고, 마당 한 쪽 화덕위의 가마솥에선 벌써부터 물이 설설 끓고있다.
아! 오늘 돼지 잡는구나~
귀가 쫑긋 먼저 알아챈다.
부엌에선 엄마랑 올케의 치마가 휙휙~ 바람소리가 날 만큼 분주해지고, 돼지 우리속의 녀석은 그야말로 동물적인 감각으로 뭔가를 알아챘는지 불안한 신음소리 요란하다.
꿀~ 꿀~ 꿀~ 꽤액~~
그 놈의 신음소리에는 비릿한 고기냄새라도 나는 걸까~?
어떻게 알았는지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이 죄 와선 바쁘게 자기 할 일을 찾아 분주해 질 때면,
그래~ 오늘 내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마하고 단단히 벼르기라도 했는지 이젠 술기운에 불콰하다못해 검붉어진 얼굴의 용수 아버지가 양손에 침을 퇘퇘~ 뱉아 손뼉을 탁탁치며 우리속으로 들어가면, 녀석의 비명소리 또한 높아진다.
네 다리를 질긴 삼줄에 묶여 지게 작대기에 거꾸로 매달려 나오는 놈은 그저 사람들 눈엔 먹음직한 고깃덩어리로만 보일 뿐
어느 누구에게도 동정받지 못하는 그저 먹잇거리일 뿐이다.
네 다리를 모두 묶여 바닥에 눕혀진 녀석은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잃지 않았음이리라.
온 동네 떠나가게 소리를 지르며 버둥대다가 제풀에 지쳐 그예 질펀하게 똥 오줌을 내질러 놓는다.
"허~ 그 놈 똥 한 번 걸지게 싸네 그려"
왁자하니 웃는 사람들,
그렇게 놈이 마지막 싸놓은 똥 오줌은 냄새마저 구수한지 둘러선 사람들에겐 곧 이어질 성찬의 즐거움만 배가시켜 줄 뿐이다.
잠시 후, 망치를 든 용수 아버지가 사극에서나 볼 수있는 비장한 망나니같은 표정으로 사람들 틈을 헤집고 들어온다.
이럴 땐 어린애나 여자들은 고개를 돌리고 용감한 남자어른들만 구경을 한다.
퍽~! 소리에 이은 녀석의 단발마~
용수 아버지는 단 한 번에 숨통을 끊어놓는 기막힌 재주가 있다. 한 번에 죽이는 것도 녀석에겐 자비란다.
돼지를 죽인 후, 벌컥벌컥 막걸리를 마시는 용수 아버지는 어린 내겐 무슨 거인같아 보였다.
그렇게 녀석의 숨이 멎으면 가마솥에 설설 끓던 물을 놈의 몸에 들이부어 털을 밀어 낸 다음,
전 날 아버지가 숫돌에 갈아 바람도 가를만큼 날이 시퍼렇게 선 칼로 아저씨들의 해체 작업이 시작된다.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 똥을 빼낸 창자는 순대를 만들고, 나머지 내장들은 손질을 해서 가마솥에 시래기랑 같이 넣어 국을 끓인다.
그 와중에도 오줌통은 어느 새 머스마들의 손에 넘어 가 추수 끝난 논에서 이리저리 차이고 있다.
그 시간, 방안에서 숨죽이며 그 모든 것을 보고 있던 내가 슬금슬금 나갈 준비를 하면 뒤에서 이를 잔뜩 악문 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야, 너 지지배~ 나가기만 해 봐.
그냥 확~ 죽여버릴거야"
얄미워 죽겠어. 지가 뭔데 나가라 마라야. 그래도 언니의 눈길이 무서워 똥마련 강아지모냥 종종거리고 있으면 밖에서 날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
"야~ 우리 막내딸! 어여 나와서 이거 먹어야지. 나와라"
술기운이 잔뜩 묻은 아버지의 목소리가 왜 그리도 반가운지 언니의 으르렁거림도 시퍼런 눈빛도 무섭지 않아~~!
총알같이 튀어나가 내가 선 곳은 피가 채 마르지도 않은 돼지 간이 굵은 깍두기만하게 썰어져있고, 깨소금이 잔뜩 담겨진 소금 종지가 있는 커다란 도마 앞이다.
그렇다. 돼지 간,
그것도 이제 막 잡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끈한 그것을 소금에 찍어 먹는 맛이란~
상상만으로도 진저리 쳐지겠지만 어릴 때 유별나게 비린 걸 밝히던 난 어쩌다 한 번 있는 그 성찬을 언니의 으르렁 따위로는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범갈장달같은 아저씨들 틈에 조그만 계집애가 입가에 벌겋게 피를 묻혀가며 돼지간을 먹고 있는 모습이라니ᆢ
몇몇 비위 약한 아줌마들은 그런 나를 입을 딱 벌리며 바라보았지만 아직도 내 기억에 그 맛은 남아있다.
들큰하면서도 구수한ᆢ
그 뿐이랴~? 마지막으로 이빨에 씹히던 고소한 깨소금의 맛까지도 기억하는 걸ᆢ
그 날 저녁부터 언니의 구박이 심해진다.
옆에도 오지말라는 둥~
수건 따로 쓰라는 둥~
냄새난다고 입도 뻥긋 말라는 둥~
나와 달리 육고기는 아예 입에도 안대는 언니는 날 쳐다보는 눈빛이 사람보는 눈빛이 아니다.
그런 압박과 설움을 받으면서까지 그것을 먹어야 할만큼 강렬한 돼지 간의 유혹은 도저히 뿌리칠 수 없었다.
그 날 하루,
우리 집에서 온 동네 사람들 춤추고 마시고ᆢ
해가 져서 집에 가는 사람들 손에는 조금씩이나마 고깃덩어리가 들려져 있고 아까 돼지를 잡은 용수 아버지 손에는 마치 무슨 전리품이듯 돼지머리가 피를 뚝뚝~ 떨구며 따라가고 있다.
무슨 연유로 아버지께서 가끔 돼지 파티를 열었는지는 몰라도 그 덕에 난 조그만 몸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 속에서 기죽지 않고 자랐으며, 기 죽기는 커녕 나보다 덩치 큰 애들 앞에서도 당당하게 클 수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 시절, 그저 먹는 게 제일이었잖은가?
얼마 전, 티 뷔를 보니 돼지간에는 철분이 많아서 빈혈에 그렇게 좋다는데ᆢ
아~ 긴 글 쓰고나니 어지러워.
첫댓글 ㅎㅎㅎㅎㅎ~
그 땐 왜 그렇게도 비린 걸 밝혔나 모르겠어요.
지금은 단백질 보충 차원으로 조금씩 먹지만요 ㅎ
농촌에서 돼지 잡는 일은
혼례식 같은 잔치가 있거나 정월대보름을 기해 열리는 마을 "대동회大洞會 날이었지요. 아이들은 얼씬도 못하는. 돼지 잡는 장면이 선연 할 정도로 표현력이 기막힙니다. 글에 푹 빠져 그 시절로 되돌아 간 듯 행복했어요. ㅎㅎ
저는 시골서 자란 게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산과 들, 모든 자연이 친구였으니까요 ㅎ
잿빛 콘크리이트 도시에서 태어나 여지껏 거기서 늙고 있는 내게는
생소한 이야기지만 작가의 글솜씨가 뛰어나, 어릴적 할머니한테 듣던
구수한 그 느낌으로 미소띄우며 읽었답니다.
분발+건필하시어 크게 되시길..
어릴 땐 그 잿빛 콘크리트가 무척 부러웠더랬어요.
시내 사는 친구들이 어찌나 부럽던지요.
세월 지나보니 시골에서의 추억이 제겐 보석같네요.
격려의 말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