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학생
신인간 [160.7]
제 2회 대학생단 농촌활동
‘농촌 시그널’
대학생단 단장 장찬우(24) 수원교구
내가 군대에 있었을 때 이야기이다.
한창 군 복무를 조리병으로 하던 시절이라,
대략 한 끼에
500인분에서 600인분은 만들어야 했다.
나는 트럭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의
엄청난 각종 재료를 덥거나 춥거나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날씨를 따지지 않고 칼로 썰고 다듬고...
그저 병사들의 끼니를 하염없이 챙길 무렵이었다.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 많은 채소와 과일 고기들은
대체 어디서 나오고 길러질까?
한울이 한울을 먹으면서
서로 성장하고 공존하는 세상에, 부대로 오는 재료가
파는 약 30kg, 감자는 150kg, 육류 400kg 등
어마어마한 양은 순수한 자연의 손에서 길러진 것인가,
아니면 유전자 조작과 인간의 편의성과
겉만 보기 좋게 포장하여
욕심으로 탄생된 한울의 재료인가 하는 것이다.
요즘 청년들은 입맛이 까다롭지 않은 가.
밥상에 고기가 없어도 먹지 않지만,
군대식으로 600인분을 하는 조리법은
확실히 맛이 없었다.
부모님이 챙겨주시는 가정 밥상과,
밖의 음식점이나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음식 맛을
비교하자면 하늘과 땅 차이니, 아무리 재료가 좋아도
대량 조리법에는 맛이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병사들 잔반은 삼시
세끼 기준 하루에 700kg이 발생한다.
부식재료도 어마어마하지만 잔반도 어마어마하다.
저것을 처리하는데 엄청난 국가 예산이 들어간다.
물론 조리법 때문에
맛이 없어서 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21개월 동안 지켜본
결과 김치와 각종 채소 음식들,
생선 조림류를 선호하지 않아서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농어촌 지역에서 피와 땀을 흘려가며
정성스럽게 수확하고 재배한 재료들이
본연의 맛이 없단 이유로 버려지는데,
안타깝기도 하면서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라
사람의 입맛도 달라져 그런가 생각했다.
이렇듯 우리가 먹는 음식을 소중하게 느끼지 못하고
막 버리던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던 찰나
작년 ‘밥 한그릇의 이치’로
최지욱 단장이 농촌 활동을 진행했다.
그땐 나도
음식물 남기지 말자는 플랜을 걸고 참가하고 싶었다.
잔반 남긴 병사들을 다 데리고
직접 재배하고 똑같이 만들어 먹으면
그렇게 쉽게 버릴 수 있느냐고
뼈저리게 알려주고 싶었다.
다음 기회가 있다면
나라도 느껴보자며 아쉬움을 달랬다.
시간이 지나고 단장이 되어 농촌 활동이 생각났다.
잔반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이번 농촌 활동에
단원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작년에 참가하지 못한 한을 달래고자
계획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한편으론 농경생활을 그린 건 아니었지만
잠깐이나마 그저 구수하고 정신이 맑아지는
시골 냄새와 맑은 공기
24년 동안 탁한 도시 냄새와 미세먼지,
바쁘게 움직이는 일상과
하루하루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나날이
나를 지치게 했기에 계획하게 된 것도 한몫을 했다.
전희식 선생님은 대학생단이 왜 연락이 없을까 하며
목 빠지게 기다리셨다 한다.
목 빠지시지 않게 장수로 사전답사를 위해 달려갔다.
점점 산 안쪽으로 가는 길을 보며
아버지의 고향 경남 삼천포 모정마을이 생각났다.
어렸을 적 화장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할머니집 가기가 너무 싫었는데
장수 장계면 참샘길의 집을 보고는
거부감이 일절 들지 않았다.
아마 어렸을 적 싫었던 마음보다
지금의 여유가 없고 힘든 일상을
먼저 뿌리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서인 것 같다.
도착하고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는데
산골짜기 한 집에 이렇게 매료된 것은 처음이었다.
바로 집 앞에 흐르는 계곡물 소리와
아름답게 지저귀는 새소리,
나무가 바람에 흩날리는 시원한 소리...
날씨는 또 왜 이리 화창한지,
그냥 냅다 들어 누워 휴식하고 싶었다.
가서 어떤 프로그램을 해볼까,
계획에 맞게 진행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부순 순간이었다.
선생님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우리는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면 된다고 하셨다.
일상에 지친 나에겐
그 어떤 명언보다 마음에 와닿았고 심정을 울렸다.
비록 인원은 작년보다 적었지만,
이 인원들과 끈끈해지고 가깝고
같이 여유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서 안심이 됐다.
그렇게 우린 음식물은 남기지 말자는 규칙을 내걸고
매 끼니 전희식 선생님께서 직접 기르신
다양한 상추와 쌈 재료들을
직접 만드신 쌈장에 찍어 먹었고,
채소가 이렇게 맛있었나,
이것이 자연 농법의 단맛인가? 감탄도 하고,
각자 집에서 육류를 제외한
반찬 하나씩만 가져오자 했더니
깻잎장아찌만 3명이 가져오는 해프닝도 있었고,
선생님 집 마당에서 직접 잎을 따
말리면서 볶아 차도 우려먹고,
시장에 가서 5일장도 구경하며
시골 인심이 담긴 국밥과 찹쌀꽈배기, 각종 과일,
얼음도 갈아 빙수도 해 먹고, 감자도 삶아 먹고...
이제 와 보니 그냥 우린
자연과 농촌의 여유를 즐기러 놀러 온 사람들이었다.
아침 산책과 육십령 등산로를 따라 맑은 공기도 마시고
차가운 계곡물에 빠져 물총도 쏘아가며
막걸리 한잔, 휴지보단 손수건을 사용하자면서
천연염색도 하고, 진솔하고 분위기 있게 즐기는
마지막 캠프파이어까지...
뭐든지 재미가 있어야 기억에 남고
다음에 또 오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작년은 뚜렷한 주제로 공부하고 배웠다면
올해 2회는 자연에서 보내는 신호를 받아
휴식하고 동화되는 시간이 주제였던 것 같다.
음식은 절대 남기지 않고 먹을 만큼만
뷔페식으로 덜어 먹고
자연에서 직접 채취하여 먹는 소중한 재료들...
감자껍질 하나, 밤 껍데기 하나라도 영양분이며
버릴 것이 없는 한울님의 감응을
우리 마음에 자각하며 그렇게 4일을 보냈다.
농작물은 직접 캐고 재배할 수 있는 시즌이 아니라서
제대로 된 농촌을 경험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자연의 한가운데 태어나
먹고 자라고 하는 게 농촌 시골도 똑같다.
단지 도시에서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가공 음식을 먹고 살아가는 데
필수인지 아닌지 모르는 다양한 학문을 배우고
남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경쟁하고 서로를 상처 입히고 하는 삶 속보다
사람이 원래 있던 자연의 자리,
평화롭고 안정적인 시골 생활도
나쁘지만은 않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요즘은 귀농하는 젊은
세대들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농업에 종사하는 세대들에게
많은 지원과 혜택도 주면서
귀농 정책이 빛을 발하는 시대가 다가올 것이라 했다.
기회가 된다면 나도 나이를 먹고 정년퇴직할 때면
전희식 선생님처럼
자연과 살아가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제40회 한울나눔터 (7월 31일 ~ 8월 4일)를
계획하고 구상해야 하는 복잡한 일상에 빠졌지만
이 농활의 여유를 그리워하고
내년을 기약하며 또 살아갈 것 같다.
지도해주신 전희식 선생님과
우리들을 위해 손수 반찬도 해주시고 챙겨주신
윗집 어머님,
3일 동안 같이 즐겁게 지내셨던
한울연대 최윤하 선생님,
멀리서 와 주신 똘배 형님과
청년회 변은수 사무국장과 김대영, 정용주 선배님들
방문에 너무 감사드린다.
부디 내년 단장이
한 번 더 계획했으면 하는 소소한 바람이 생긴다.
농촌 시그널을 받아 꼭 달려갈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