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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의 열 말씀 강론 07
출애굽기 20:12
부모 공경
한국 교회가 5월만 되면 가정의 달이라고 하여 첫째 주일은 어린이 주일로, 둘째 주일은 어버이 주일로 지키는데 대표적으로 인용되는 구절이 바로 오늘 이 말씀과 에베소서 6:1-3이다. 설교의 내용은 천편일률적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부모를 공경하며 순종하는 것이 천륜이라고 하면서 기독교가 아니라도 부모에 대한 효를 가르치는데 그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일에 가장 기본적인 윤리 도덕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어떤 설교를 보니 기독교는 효의 종교이고 불효는 말세의 징조라고 하였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공자의 논어나 유명한 현자들이라는 사람들의 가르침과 다를 바가 없지 않나? 앞에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을 먼저 말씀하기 때문에 공자의 효와 다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1-4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말씀하는 것이고, 5-10계명은 사람에 대한 사랑을 말씀하는 계명이라고 가르치는 자들은 이 다섯 번째 계명이 사람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는 으뜸이 되는 계명이기 때문에 다섯 번째 계명으로 배치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다섯 번째 계명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계명인 동시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계명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계명의 가교역할을 하는 계명으로 두 가지를 동시에 말씀하는 계명이라고 가르친다. 즉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이어주는 계명이란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요 5:39, 눅 24:27, 롬 1:2 등)이며 열 말씀은 언약의 말씀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윤리 도덕의 근본이 되며 성도의 마땅한 삶이라는 식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만약 효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면 부모 공경을 어디까지 얼마만큼 해야 제대로 하는 것인가? 부모의 기준에서는 자식들이 얼마나 잘 공경해야 마음에 들어 제대로 효도했다고 인정할까? 반대로 자식의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열심히 공경만 하면 제대로 할 일을 다 한 것일까?
이 말씀을 가지고 부모를 공경하면 장수한다고 흔히들 가르치는데 실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모 공경한 것만으로 장수하였는가?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생명이 길도록 살아야 하는데 실제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모세가 120세, 여호수아가 110세까지 살았는데 장수한다면 적어도 모세와 여호수아가 산 평균 수명 이상은 살아야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 다 광야에서 죽었는데 죽은 자들은 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려야 하는 것인가?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부모를 모시는 자들이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우상을 섬기며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모습이란 부모들이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할 때 오히려 부모를 책망하며 하나님을 믿고 모세를 따르자고 했어야 하지 않는가? 그것이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모습이다. 만약 그랬다면 역으로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모세를 따른 그 믿음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출애굽기 21:15에 보면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라고 하였고, 레위기 20:9에 의하면 “만일 누구든지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그가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였은즉 그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신명기 21장에서는 “18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19 그의 부모가 그를 끌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20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면 21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신 21:18-21)라고 말씀한다. 오늘날도 율법을 잘 지키려면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를 반드시 죽여야 하는데 실제 한국 교회가 말씀대로 이렇게 실행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주신 때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셔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으로 주시겠다고 하신 가나안 땅으로 가는 중 광야에 있는 시내 산에서다. 이스라엘을 광야에 데려다 놓고 부모 공경을 잘해야 한다는 겨우 윤리 도적적인 교훈을 주시려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그런 하나님이신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빼내시며 유월절 어린 양의 피의 정신을 자녀들에게 어떻게 흘려주어야 하는지를 이렇게 말씀하셨다.
14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이것이 어찌 됨이냐 하거든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곧 종이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실새 15 그 때에 바로가 완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모든 것은 사람의 장자로부터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다 죽이셨으므로 태에서 처음 난 모든 수컷들은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려서 내 아들 중에 모든 처음 난 자를 다 대속하리니 16 이것이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가 되리라 이는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할지니라(출 13:14-16)
열 말씀의 서언에서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 20:2)라고 말씀하셨는데 ‘애굽의 종’, 즉 죄의 권세에 매인 종을 빼내 자유하는 ‘아들’로 만드셨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출 4:22)라고 말씀하셨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아들로 삼으신 아버지라는 말씀이다. 장자가 죽임을 당하지 않은 이스라엘은 유월절 어린 양의 피의 은혜로 이제부터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부모란 출애굽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넘겨주고 흘려주는 역할을 하는 자이다(출 10:2). 적어도 말씀으로 자녀들 앞에 섰을 때만큼은 하나님과 같은 존재라는 뜻이다. 자녀의 입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말씀을 하시는 것과 같은 존재로 부모를 생각하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진짜 부모는 하나님이심을 말씀한 것이다.
이사야 64:8에 보면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라고 말씀한다. 하나님께서 지으셨기에 창조자이시며 또한 아버지이시다. 이것이 언약의 관계이다. 그러나 실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여기지 않았고 영광스럽게 하지 못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죄악된 모습이라고 선지자는 외쳤다.
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사 1:2-4)
열 말씀의 본문에서 우리 성경에서는 “부모”라고 번역하였는데 ‘아버지와 어머니’로 표현되어 있다. ‘아버지’는 히브리어로 ‘아브’(אָב)인데 ‘가장, 우두머리, 조상’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히브리어에서 알파벳 ‘알렙’(א)은 기본적으로 ‘황소, 하나님’을, ‘베트’(ב)는 ‘집’을 뜻하는데 곧 ‘하나님의 집, 성전’이라는 의미이다. ‘어머니’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엠’(אֵם)인데 알파벳 ‘알렙’(א)은 ‘하나님’, ‘멤’(מ)은 ‘물, 진리’를 뜻하는데 곧 ‘하나님의 진리, 말씀’을 의미한다.
“공경하라”라고 번역된 말은 히브리어로 ‘카바드’인데 우리 성경에는 ‘공경하다(잠 3:9, 단 11:38, 말 1:6), 풍부하다(창 13:2), 무겁게 하다(출 5:9), 영화롭게 하다’(출 14:4, 17, 18) 등 다양한 뜻으로 번역되었다.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거룩하게 여기는 것이며 그것은 곧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다. 영광스럽다는 것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즉 하나님의 본질이 제대로 드러난 것이며 하나님의 뜻이 눈에 보이게 나타난 것을 의미한다. 히브리어의 뜻을 살려서 말하자면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집과 말씀을 영화롭게 하며 영광스럽게 드러나도록 하라’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실패하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셨다고 성경은 선언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요 17:1-6)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하신 말씀이다. 결국 십자가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씨 가진 존재로 이 땅에 오셔서 온전한 성전이 되심으로 그 성전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이루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성전이며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죽음을 통해 자기 백성들을 성전과 말씀이 되게 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자를 성전이라 하였고(고후 6:16), 요한 사도는 말씀이 되었다고 선언하였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계 19:9)
열 말씀이 언약의 말씀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것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집과 말씀이 영광스럽게 드러나도록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는데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워졌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받은 교회라는 뜻이다.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엡 5:26-27)
결국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에서 빼내어 하나님의 아들로 삼으신 것은 하나님을 향해 마주 선 대적자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열심으로 생명의 씨를 품게 하심으로 이루시는 것이 정결이고 거룩이며 안식이다. 생명의 씨를 품게 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하나님의 집(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진리(말씀)가 영광스럽게 드러나는 것인데 하나님의 집인 성전으로, 진리의 말씀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죽음으로 그 언약을 완성하여 영광스러운 교회로 드러났다는 의미이다.
이 언약의 말씀에는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라는 약속이 주어져 있다. 단순히 부모 공경을 잘하라는 말씀이 아니라면 이 말씀 역시 땅에서 장수할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의 열심으로 우리를 성전으로 그리고 진리의 말씀으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이 언약의 말씀 안에 담겨 있다면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이란 이 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을 땅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된 상태를 요한계시록에서 천 년 동안, 즉 영원토록 왕 노릇하는 상태로 말씀하였다(계 20:4)(20230621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