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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의 이름은 작품값이 되고, 청년 작가의 실력은 벽에 갇혔다
솔비·하정우·조영남·구혜선 등 ‘아트테이너’ 열풍이 던지는 미술시장의 불편한 질문
배우 하정우, 가수 솔비와 조영남, 배우 구혜선 등 연예계 스타들이 화가로 활동하면서 이른바 ‘아트테이너(Art + Entertainer)’라는 새로운 문화현상이 만들어지고 있다. 연예인이 미술을 취미로 즐기는 것을 넘어 개인전과 아트페어, 경매 등에 참여하고 작품을 판매하는 일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단순히 ‘연예인의 취미생활’에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유명 연예인의 이름을 단 미술작품은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고,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 반면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수년 또는 수십 년 동안 창작활동에 매달려온 청년·신진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알릴 기회조차 얻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결국 미술시장에서 ‘작품의 가치’와 ‘작가의 유명세’가 어디까지 분리될 수 있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1. 작품보다 먼저 알려지는 ‘스타 연예인의 이름’
연예인 미술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작품 그 자체만이 아니다. 바로 대중적 인지도다.
하정우는 2010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속적으로 미술 활동을 이어왔으며, 작품이 상당한 가격에 거래된 사례가 알려져 왔다. 2021년 보도 당시에는 100호 작품이 약 2,000만원에 판매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솔비 역시 퍼포먼스와 회화를 결합한 작업을 선보이며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고, 2021년에는 바르셀로나 아트페어에 초대돼 작품을 선보였다.
구혜선 역시 배우라는 본업을 넘어 미술 작업과 전시 활동을 이어왔다. 이 과정에서 연예인 출신 작가의 작품을 둘러싼 작품성 논쟁이 미술계와 대중 사이에서 거세게 벌어지기도 했다.
이들의 활동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다. 유명인이 자신의 창작 영역을 넓히고 새로운 예술적 표현을 시도하는 것은 문화의 다양성 측면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유명하다는 사실이 작품에 대한 관심을 만들어내고, 그 관심이 다시 작품가격으로 연결되는 구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2. ‘연예인이라서 비싸다’는 논란, 과연 근거 없는 불만인가
이 논쟁은 이미 수년 전부터 미술계에서 반복돼 왔다.
2016년 한 언론 보도에서는 하정우, 솔비, 조영남 등의 작품이 수천만원대에 거래되는 사례가 소개되면서 연예인 미술시장이 하나의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당시 전문가들은 연예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별도의 가격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작품의 활동성과 시장 반응 등이 가격 책정에 참고된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연예인 작품은 모두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단순한 결론이 아니다. 오히려 핵심은 같은 출발선에 서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무명의 청년 작가가 작품 한 점을 알리기 위해서는 공모전과 레지던시, 개인전, 단체전 등을 수년간 거쳐야 한다. 갤러리와 평론가, 큐레이터를 만나야 하고 전시장을 확보하는 데 상당한 비용과 노력을 투입해야 한다.
반면 유명 연예인은 전시를 열었다는 사실 자체가 뉴스가 된다. 작품 한 점이 팔렸다는 사실도 기사화되고, 방송과 SNS를 통해 다시 대중에게 노출된다.
‘인지도 → 언론 노출 → 전시 관심 → 작품 판매 → 가격 형성 → 다시 언론 노출’이라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청년 작가들에게는 가장 갖기 어려운 것이 바로 이 첫 단계의 ‘인지도’다.
3. 청년 작가들이 느끼는 것은 ‘질투’가 아니라 시장 접근권의 문제
연예인 작가를 둘러싼 논란에서 청년 작가들의 불만을 단순히 ‘유명인에 대한 질투’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울문화재단의 관련 기획에서도 솔비와 하정우 등 연예인 화가들이 전시 때마다 큰 화제를 모으고 작품 판매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전업 작가와 신진 작가들이 박탈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2021년 연예인 작가 논란 당시 한 미술계 관계자는 유명 작가의 고가 작품보다 연예인 출신 작가의 수천만원대 작품 판매가 훨씬 더 많이 기사화되는 현실을 지적하며, 이것이 일반 작가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청년 작가가 원하는 것은 유명 연예인의 전시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자신의 작품을 보여줄 기회라도 공정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4. 조영남 ‘대작(代作)’ 사건이 남긴 또 하나의 질문
조영남의 사례는 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조영남은 조수의 도움을 받아 제작한 작품을 자신의 작품으로 판매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았으나, 대법원은 2020년 사기죄 무죄를 최종 확정했다. 대법원은 미술작품의 제작 과정에서 보조자의 도움을 받는 것이 미술계에서 일정한 관행이라는 전문가 의견 등을 고려했고, 작품의 가치 판단에는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렸다.
이 판결은 법적으로 조영남에게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미술계에 남은 질문은 법률적인 문제와 별개다.
‘누가 아이디어를 냈는가’, ‘누가 실제로 붓을 들었는가’, ‘작품의 창작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구매자는 어디까지 알아야 하는가’라는 예술의 본질적인 문제가 그것이다.
특히 미술시장에서는 작품의 가격이 단순히 캔버스와 물감의 가격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작가의 경력, 전시 이력, 미술사적 의미, 평론, 갤러리의 신뢰도, 컬렉터의 수요, 시장에서의 희소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여기에 연예인의 경우에는 하나의 요소가 더해진다.
바로 대중적 브랜드 가치다.
5. 작품가격은 ‘실력표’가 아니다
미술시장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작품의 미학적 가치와 시장가격은 동일한 개념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떤 작품이 비싸게 팔렸다고 해서 반드시 미술사적으로 위대한 작품이라는 뜻은 아니다. 반대로 현재 시장에서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작품이라고 해서 예술적 가치가 낮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미술시장은 취향과 희소성, 작가의 브랜드, 컬렉터의 기대, 갤러리의 마케팅, 경매시장 분위기 등 수많은 요소가 결합된 시장이다.
따라서 연예인 작품의 높은 가격 자체를 ‘부당하다’고 단정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실제로 하정우처럼 장기간 꾸준히 미술 작업을 해온 연예인도 있고, 작품을 단순한 홍보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창작활동으로 지속하는 사례도 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시장에서 작품을 평가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기준이 모든 작가에게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는지다.
6. 미술시장이 스타에게 열려 있다면 청년에게도 문을 열어야 한다
연예인 미술의 등장은 미술시장에 새로운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대중이 유명 배우나 가수의 작품을 계기로 미술관과 갤러리를 찾고, 미술품 구매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시장 확대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따라서 문제를 ‘연예인 대 무명 작가’의 대결구도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스타의 영향력을 미술시장 전체의 저변 확대로 연결하는 시스템이다.
연예인 전시에서 발생하는 대중의 관심을 신진 작가에게도 연결하고, 아트페어와 갤러리가 유명 작가에게만 집중하지 않도록 신진 작가 전용 섹션과 전시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공공미술기관 역시 단순한 공모전 숫자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신진 작가에게 지속적인 제작비와 전시공간, 평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미술시장 역시 ‘누가 유명한가’보다 ‘무엇을 만들었고 어떤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가’를 설명할 수 있는 시장으로 발전해야 한다.
7. 스타에게는 이름이 있지만, 청년에게는 시간이 있다
연예인 미술을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양극단이다. 한쪽에서는 ‘연예인이 그린 그림은 모두 수준이 낮다’고 단정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비싸게 팔리고 유명하니 좋은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둘 다 미술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주장이다. 결국 작품은 작품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작품을 무조건 폄하해서도 안 되고,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과도한 관심과 시장 프리미엄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특히 언론과 갤러리, 경매회사에는 더 큰 책임이 있다.
‘누가 그렸느냐’만큼 ‘무엇을 그렸고 왜 중요한가’를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청년 작가들에게 필요한 것은 유명 연예인의 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도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고, 비평받고, 관객을 만나고, 시장에서 평가받을 수 있는 공정한 출발선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스타는 대중의 관심을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청년 작가에게는 작품 한 점을 세상에 알리는 것조차 긴 싸움이다.
그래서 오늘날 ‘아트테이너’ 논쟁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연예인이 화가가 될 수 있는가”가 아니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이름이 없는 작가도 자신의 작품만으로 세상에 알려질 수 있는 미술시장을 우리는 만들고 있는가.”
미술이 자본과 유명세의 게임으로만 변한다면 청년 작가들은 붓을 들기 전에 시장에서부터 좌절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스타의 대중성과 청년 작가의 창작성이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든다면 ‘연예인 미술’은 미술계의 위협이 아니라 새로운 관객과 시장을 만들어내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결국 필요한 것은 연예인에게 문을 닫는 미술계가 아니다.
스타에게 열린 문만큼, 이름 없는 작가에게도 활짝 열린 문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한국 미술시장이 풀어야 할 가장 현실적인 과제다.
이아솜(미술평론/그래픽디자이너/유투브크리에이터/조각가)

첫댓글 좋은 정보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유익한 정보 덕분에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