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ReoHkR6oAYQ
[2026년 7월 19일 언약형통교회 주일 예배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
할렐루야!
오늘 언약형통교회 주일오전예배에 나오신 모든 성도님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은 사도행전 9장 19절부터 22절까지의 말씀을 중심으로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가리켜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한자로 표현하면 기독교인이라고 합니다.
‘기독’이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한자로 음역한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나 기독교인이나 같은 뜻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를 믿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것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훌륭한 스승으로 존경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를 고쳐 주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사랑을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것입니까?
물론 예수님은 훌륭한 스승이십니다.
예수님은 병든 자를 고치셨고, 배고픈 자를 먹이셨으며, 소외된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예수님께서 단순히 훌륭한 스승이나 선지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란 무슨 뜻입니까?
구약성경의 언어인 히브리어로는 메시아라고 하고, 신약성경의 언어인 헬라어로는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메시아와 그리스도는 같은 뜻입니다.
우리말로 표현하면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또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왕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를 세울 때 그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명을 위하여 그 사람을 선택하셨다는 표시였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모든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들은 장차 오실 참된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 주는 그림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사망 가운데 있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한 분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메시아요, 그리스도이십니다.
구약성경 39권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약속하고 기다리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신약성경 27권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리스도가 바로 나사렛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을 증언하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20장 3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성경이 기록된 목적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며, 우리 구원의 기초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울은 본래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죽이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후 사울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가던 사람이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없애려고 했던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자기 생명까지 내어놓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은 간단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도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알고, 예수님을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요 믿음의 주로 더욱 굳게 붙들게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 사도행전 9장 19~22절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첫째, 하나님께서는 구약성경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미리 예언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서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주장하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오시기 수백 년 전부터, 어떤 말씀은 천 년 전부터 그리스도께서 어떤 모습으로 오실지를 미리 예언하셨습니다.
그 예언들이 예수님의 탄생과 생애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1. 그리스도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이라고 예언되었습니다
미가서 5장 2절을 보면 이렇게 예언되어 있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베들레헴은 유다 땅의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작은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나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예언은 예수님이 오시기 약 700년 전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정확하게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마태복음 2장 1절부터 보면 동방에서 박사들이 별을 보고 예루살렘에 찾아왔습니다.
그들이 물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이 말을 들은 헤롯왕은 깜짝 놀랐습니다.
헤롯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불러 물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어디에서 태어난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느냐?”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 마태복음 2장 5~6절
여러분, 예수님의 출생지는 우연히 베들레헴이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계획에 따라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리스도라는 증거입니다.
2. 그리스도는 아브라함과 유다 지파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것이라고 예언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 창세기 22장 18절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하여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야곱은 유다 지파에 대하여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 창세기 49장 10절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도 그의 후손을 통하여 영원한 왕이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 사무엘하 7장 16절
그래서 마태복음은 첫 장 첫 절에서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 마태복음 1장 1절
마태복음 1장에 긴 족보가 나옵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읽다가 족보가 나오면 재미없다고 생각하여 건너뛰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족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족보는 예수님께서 아무런 역사적 근거 없이 갑자기 나타난 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유다와 다윗을 통하여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바로 그 그리스도이심을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다 지파를 통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혈통을 따라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3. 그리스도는 흑암에 앉은 백성에게 큰 빛으로 오실 것이라고 예언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랜 세월 동안 그리스도를 기다렸습니다.
특히 나라가 어려워지고 정치와 경제와 사회와 종교가 타락하여 암흑기가 찾아올 때마다 더욱 간절하게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나라를 자유롭게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백성들은 무거운 세금과 압제를 당했고, 종교 지도자들까지 부패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깊은 어둠과 절망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때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이사야 9장 2절은 말씀합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이사야 9장 6절과 7절도 말씀합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이 예언은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마태복음 4장 15절과 16절입니다.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예수님은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망의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환경이 어둡고 앞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건강의 문제로 앞이 캄캄할 때가 있습니다.
가정의 문제와 자녀의 문제와 경제적인 문제로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흑암에 앉은 사람들에게 찾아오시는 큰 빛이십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절망 가운데서도 소망을 얻습니다.
예수님을 붙들면 사망의 그늘에서도 생명의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4.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들에게 배척당하실 것이라고 예언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모든 사람이 환영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늘에서 오신 구원자라면 사람들이 기뻐하며 영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배척당하실 것이라고 미리 예언했습니다.
이사야 53장 3절은 말씀합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시편 69편 4절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고 부당하게 나의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였으니.”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5장 25절에서 이 말씀이 자신에게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는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 바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1장 10절과 11절도 말씀합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하신 주님이 세상에 오셨지만 세상이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그리스도를 기다렸지만, 정작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그분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자신들이 기대하던 모습의 그리스도만을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로마를 무너뜨리고 이스라엘을 강한 나라로 만들어 줄 정치적인 왕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을 타고 군대를 이끌고 오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낮고 천한 말구유에서 태어나셨고,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과 죄인들을 찾아가셨습니다.
왕관을 쓰기보다 가시관을 쓰셨고, 높은 보좌에 앉기보다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모습의 예수님만 믿어서는 안 됩니다.
돈을 많이 벌게 해 주시는 예수님만 원하고, 병을 고쳐 주시는 예수님만 원하고, 모든 문제를 즉시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만 원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는 수단이 아니라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원하는 길로 따라오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야 할 그리스도이십니다.
5. 그리스도는 제자에게 배신당하고 은 삼십에 팔리실 것이라고 예언되었습니다
스가랴 11장 1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이 곧 은 삼십 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가룟 유다에게 배신을 당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 14절부터 16절을 보면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들에게 찾아가 말합니다.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그가 그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가룟 유다는 삼 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다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고, 예수님의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돈을 사랑하여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당하실 것까지도 성경에 미리 예언되어 있었고, 예수님의 생애를 통하여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6. 그리스도는 나무에 달려 죽임을 당하실 것이라고 예언되었습니다
이사야 53장 5절과 6절은 말씀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담당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우리는 죄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지만, 예수님께서 대신 형벌을 받으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5장 30절과 31절에서 베드로는 담대하게 선포합니다.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갈라디아서 3장 13절도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실패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를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버림받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7. 그리스도는 죽으신 후에 부활하실 것이라고 예언되었습니다
시편 16편 10절은 말씀합니다.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강림 후 이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23절과 24절입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그리고 사도행전 2장 31절과 32절에서 다시 말씀합니다.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죽음으로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무덤에 장사되셨지만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확증하는 사건입니다.
로마서 1장 4절은 말씀합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께서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유다와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에게 큰 빛으로 오셨습니다.
자기 백성들에게 배척을 받으셨습니다.
가까운 제자에게 배신을 당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예언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 모든 예언을 이루신 분이 누구십니까?
나사렛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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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리스도를 기다렸지만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회당에서 매주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을 읽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실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1. 수가성 여인도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성의 한 여인을 만나셨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과 대화하던 중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 요한복음 4장 25절
수가성 여인도 메시아가 오실 것을 알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 요한복음 4장 26절
예수님께서 친히 “내가 바로 네가 기다리던 그리스도다”라고 밝히신 것입니다.
그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 요한복음 4장 29절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예수님을 전하게 됩니다.
수가성 여인은 신학을 많이 배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성경 지식이 풍부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만난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2. 백성들은 세례 요한을 보면서도 그리스도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누가복음 3장 15절은 말씀합니다.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당시 백성들이 얼마나 그리스도를 기다렸는지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광야에서 회개를 외치며 세례를 베푸는 요한을 보고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혹시 이 사람이 우리가 기다리던 그리스도가 아닐까?”
그러나 세례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요한복음 3장 28절부터 30절입니다.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세례 요한은 사람들의 인기를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속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가리키며 “나는 그분의 길을 준비하러 온 사람일 뿐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참된 하나님의 종은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끌어오지 않습니다.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합니다.
자기 이름을 높이지 않고 예수님의 이름을 높입니다.
“나는 쇠하여야 하고 예수님은 흥하여야 한다”고 고백합니다.
3. 세례 요한은 옥중에서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확인하게 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헤롯왕의 잘못을 책망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보내 물었습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 마태복음 11장 3절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내가 그리스도다”라고만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 마태복음 11장 4~6절
이 일들은 이사야 선지자가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한 일들입니다.
예수님은 말씀과 행동을 통하여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맹인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걷지 못하는 사람을 일으키셨습니다.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귀먹은 사람을 듣게 하셨습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셨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이 약속한 그리스도의 일을 그대로 행하셨습니다.
4. 그리스도를 기다렸으면서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을 출교시켰습니다
요한복음 9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보지 못하던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종교 지도자들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죄인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눈을 뜬 사람의 부모도 예수님을 두려워하여 분명하게 증언하지 못했습니다.
요한복음 9장 22절입니다.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사람은 회당에서 쫓아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얼마나 모순된 모습입니까?
그리스도를 기다리면서 정작 그리스도께서 오시자 거절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5장 39절과 40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성경을 많이 안다고 해서 자동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 지식이 있어도 마음이 교만하면 예수님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예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성경 지식만 쌓을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도 고집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 앞에 마음을 낮추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5.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정치적인 그리스도를 기다렸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거절한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잘못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오면 로마를 무너뜨리고 강력한 이스라엘 왕국을 세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정치적으로 해방시킬 왕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먼저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은 말씀합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가난이나 질병이나 정치적 억압보다 더 깊은 죄의 문제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우리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병든 자를 고치시고, 배고픈 자를 먹이시고, 슬피 우는 자를 위로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가장 중요한 목적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이 아무리 좋아져도 죄 사함을 받지 못하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돈이 많아지고 건강해져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단순히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분으로만 믿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구원자요,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는 주님으로 믿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과 13절은 말씀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상관없습니다.
부자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상관없습니다.
많이 배운 사람이든 배우지 못한 사람이든 상관없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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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사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울은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는 율법을 철저하게 공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도 유대인으로서 하나님께서 보내실 그리스도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사렛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거짓 그리스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증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확신했습니다.
1. 사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했습니다
사도행전 9장 1절과 2절입니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사울은 단순히 예수님을 믿지 않은 정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위협과 살기가 등등했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고 했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을 때에도 사울은 그 죽음을 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사도행전 8장 3절은 말씀합니다.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사울은 자신이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잘못된 확신의 무서움입니다.
사람은 열심이 있다고 해서 항상 옳은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대상과 방향이 잘못되면 열심이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2. 사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사도행전 9장 3절부터 5절입니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사울은 예수님께서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고 끝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께서 살아 계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사울은 예수님을 직접 박해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잡으러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네가 왜 내 제자들을 박해하느냐?”라고 말씀하지 않고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과 교회가 얼마나 밀접하게 연합되어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성도를 박해하는 것은 예수님을 박해하는 것입니다.
성도를 아프게 하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의 머리이시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사울이 물었습니다.
“주여, 누구십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이 한마디가 사울의 모든 생각을 무너뜨렸습니다.
사울이 거짓 그리스도라고 생각했던 예수님이 살아 계셨습니다.
사울이 죽은 자라고 생각했던 예수님이 하늘의 영광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사울이 박해했던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사울의 인생은 이 만남을 통하여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예수를 박해하던 사울이 예수를 전하는 바울이 되었습니다.
교회를 무너뜨리려던 사람이 교회를 세우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려고 했던 사람이 예수님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내어놓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참으로 만나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생각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살아가는 목적이 달라지고 말과 행동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았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주님을 위하여 살아갑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3. 사울은 즉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이심을 전했습니다
사울은 다메섹에서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고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먹고 힘을 얻었습니다.
그 후 사울은 무엇을 했습니까?
오늘 본문 20절입니다.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사울은 오랜 세월을 기다린 후에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자 즉시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을 죽이던 자가 아니냐?”
“이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메섹에 온 것이 아니냐?”
그런데 사울은 사람들의 시선이나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본문 22절입니다.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사울은 성경을 가지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했습니다.
구약의 예언과 예수님의 생애를 하나하나 연결하여 설명했을 것입니다.
“성경이 약속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분이 예수님이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다.”
“우리의 질고와 죄를 담당하신 분이 예수님이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지만 부활하신 분이 예수님이다.”
“그러므로 나사렛 예수님이 바로 우리가 기다리던 그리스도다.”
이것이 바울의 평생 복음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8장 5절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에서도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사도행전 18장 28절에서는 아볼로도 이렇게 전했습니다.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초대교회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핵심은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
사도행전 5장 42절은 말씀합니다.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사도들은 채찍에 맞았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는 위협을 받았습니다.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날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고 전도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은 말씀합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우리의 구원은 선행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돈으로 사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에 오래 다녔다고 자동으로 받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4. 사도 바울은 생명을 다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 평생 복음을 전했습니다.
다메섹에서 시작하여 예루살렘과 소아시아와 유럽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수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매를 맞았고, 감옥에 갇혔고, 돌에 맞았고,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로마서 15장 19절에서 바울은 고백합니다.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사도행전 20장 24절에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에게 가장 귀한 것은 자기 생명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맡기신 복음 전도의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7절과 8절에서 바울은 마지막으로 고백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바울처럼 모두 먼 나라에 가서 선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모두 목회자나 전도자가 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전할 수는 있습니다.
가정에서 자녀와 손주들에게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가까운 이웃에게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병원에서도, 일터에서도,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할 기회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말뿐만 아니라 정직하고 사랑하며 섬기는 삶을 통하여 예수님의 향기를 나타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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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마지막 때에는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미혹을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가 가까워지면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 23절과 24절입니다.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예수님께서는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분명히 나타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은 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줄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무조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믿어서는 안 됩니다.
병이 나았다고 해서 무조건 참된 복음은 아닙니다.
기적이 나타났다고 해서 무조건 참된 하나님의 종은 아닙니다.
말씀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 5절에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사도 요한도 요한일서 2장 22절에서 말씀합니다.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면서도 하나님을 잘 믿을 수는 없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나누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도 하나님께 갈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성경적인 복음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오늘날에도 자신을 재림 예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을 보혜사라고 주장하거나 자신이 구원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정한 사람이나 단체에 들어가야만 구원받는다고 가르치는 이단들이 있습니다.
성경 이외에 새로운 계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참된 그리스도는 이미 이 땅에 오셨습니다.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하여 태어나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사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장차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11절은 말씀합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우리는 다른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초림하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말씀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1절은 말씀합니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무엇이든지 무조건 받아들이지 말고 성경 말씀에 비추어 분별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높이는가, 아니면 사람을 높이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성경 말씀으로 인도하는가, 아니면 특정한 사람에게 절대복종하게 하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회개와 거룩한 삶을 가르치는가, 아니면 물질과 성공과 기적만을 강조하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유일한 그리스도이심을 바르게 고백하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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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사랑하는 언약형통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사도행전 9장 19절부터 22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성경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오래전부터 약속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유다 지파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에게 큰 빛으로 오실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자기 백성들에게 배척을 받으실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가까운 제자에게 배신을 당하고 은 삼십에 팔리실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나무에 달려 죽으실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죽으신 후에는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예언이 누구에게 이루어졌습니까?
나사렛 예수님에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리스도를 기다리면서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자기들이 원하는 모습의 그리스도만을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정치적인 왕과 세상적인 성공을 가져다줄 그리스도를 기다리다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님을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순간 사울은 자신이 박해하던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즉시 회당에 들어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후 평생 동안 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고난을 당해도 전했습니다.
감옥에 갇혀도 전했습니다.
매를 맞고 죽을 고비를 만나도 전했습니다.
자신의 생명보다 복음을 더 귀하게 여기며 달려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교회에 다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에 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 마태복음 16장 15절
그때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 마태복음 16장 16절
예수님께서는 이 고백을 기뻐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 마태복음 16장 17절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도 물으십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믿느냐?”
우리는 분명하게 대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삶을 다스리시는 나의 주님이십니다.”
로마서 10장 9절과 10절은 말씀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주님이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나 입으로만 주님이라고 부르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라면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시라면 내 생각과 고집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누가복음 6장 46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미워하던 사람을 용서하게 합니다.
거짓을 버리고 정직하게 합니다.
탐욕을 버리고 나누게 합니다.
교만을 버리고 겸손하게 합니다.
죄를 회개하고 거룩한 길을 걷게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게 합니다.
요한복음 14장 15절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이제까지 우리를 붙드시고 인도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를 위로하신 분도 예수님이십니다.
죄 가운데 넘어졌을 때 용서하시고 다시 일으켜 주신 분도 예수님이십니다.
앞으로 우리의 남은 생애를 인도하실 분도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남은 때를 헛되이 보내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더욱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더욱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와 손주들에게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아직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이웃들에게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담대히 증언해야 합니다.
그리고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미혹을 물리치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은 말씀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세상을 바라보다 낙심하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사람을 바라보다 실망하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환경을 바라보다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의 주요, 구원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모두가 사도 바울처럼 확신 있게 고백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원자요, 나의 주님이십니다.
남은 생애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어디에서든지 예수님을 담대하게 증언하다가 다시 오시는 주님 앞에 충성된 종으로 서는 언약형통교회의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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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죄와 사망 가운데 있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성경을 통하여 약속하신 그리스도가 바로 나사렛 예수님이심을 굳게 믿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음을 마음으로 믿고 입술로 고백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을 단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으로만 믿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구원자요 삶의 주인으로 모시게 하여 주옵소서.
입술로만 주여 주여 부르는 신앙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을 만난 후 삶의 목적이 달라지게 하시고,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담대하게 증언하게 하여 주옵소서.
마지막 때에 나타나는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며,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면서 끝까지 믿음을 지키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자녀와 손주들이 모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구원받게 하시며, 언약형통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힘있게 전하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만 바라보며 남은 생애를 충성스럽게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