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 대해 찾아보면서 답글을 달아야지 했는데 지금 달게 되었습니다.
불교의 업설은 우리에게 자칫하면 과거의 죗값을 받아서 현재 동물이나 신분이 낮은 사람(신분 사회 때)으로 태어났으니 이것은 당연하다, 혹은 현세에 고통을 받는 것은 과거의 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결과론적으로는 인과응보의 죗값을 치룬 것이 숙명론(정해져있다)는 것처럼 비추어져서 운명론, 숙명론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선택을 한 것이 자신이라는 것에 집중하면 보다 수월할 것 같습니다.
전통적인 불교의 업설에 따르면, 사람의 수명이 길고 짧은 것, 질병이 많고 적은 것, 외모가 단정하고 추한 것, 천하고 귀한 종족으로 태어나는 것,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등의 차별은 모두 과거생의 선업이나 악업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하여 자칫하면 숙명론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교의 업설은 과거의 업뿐만 아니라 현세의 업도 현실을 규정한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불교는 고정된 것이 없는 종교입니다. 믿으면 믿을 수록 불교는 끊임없는 변화를 이야기하며 고정된 것이 없다고 봅니다. 이는 불교의 삼법인 중 제행무상(세상의 모든 것은 끊임없이 생멸, 변화함)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선천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노력을 통해 그 결과가 바뀔 수 있다고 본다면 불교는 선천적으로 그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숙명론이 맞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불교 업설은 한 마디로 인과응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게, 자율적으로 선 또 는 악을 선택하고 행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평등하고, 자신의 행위에 따른 결과를 받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당시 인도에서 카스트제도를 비판한 점은 불교의 평등사상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불교는 대표적으로 차별이 없고 사람 간 평등을 주장한 종교입니다. 만약 업설에 따라 숙명론에 근거한다면 사회적 신분, 계급 등의 차등을 당연시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석가모니부처님은 인간의 평등을 주장하였습니다. 이 업이라는 것의 원인은 각 개인의 행위와 행동이며 그 결과에 따라 인과응보가 되고, 실제 윤회는 3세에 걸쳐서뿐만 아니라 현세에도 살면서 일어나고, 한 찰나에도 일어난다고 종종 해석되기 때문에 업설에 따른 인과응보가 꼭 전생이라고 단정짓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 - 불교의 업보윤회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속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업보윤회설은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닌, 콩을 심었기 때문에(아무도 콩을 심으라고 하지 않았는데, 자신이 콩을 심는 선택을 한 것입니다.) 콩이 난 것이고, 스스로 팥을 심는 행위를 했기 때문에 그 결과로 팥이 난 것입니다. 콩이 나고 팥이 난 그 결과에 집중하다보니 운명론, 숙명론 이야기가 나오고 실제로도 처음에는 저도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배울 때는 이렇게 이해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업설의 본 뜻을 운명론처럼 해석하게 한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지배층(삼국시대, 특히 통일 신라)이 통치를 쉽게 하기 위해, 백성들을 순응하게 만드는 도구로서 사용하기 위해 약간의 왜곡을 가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업설과 윤회설을 통해 자율과 책임이라는 단어를 떠올려봅니다.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이 바로 업설을 대표하는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