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 23일, 화요일, Asuncion, 무명 호텔 (오늘의 경비 US $22: 숙박료 30, 아침 7, 점심 25, Filadelfia 행 버스표 50, 시내버스 6, 인터넷 10, 기타 7, 환율 US $1 = 6,000 guarani) 남미와 중미 사람들은 사람을 부를 때 휘파람을 분다. 여자가 부는 것은 아직 못 봤으니 아마 남자만 부는 모양이다. 어찌나 소리가 큰지 깜짝깜짝 놀랄 정도다. 어떻게 그렇게 크게 불수 있나하고 나도 해보려고 했으나 안 된다. 소리가 나서 처다 보면 그때는 벌써 늦었다. 한 번도 휘파람을 부는 현장을 목격하지 못했다. 휘파람으로 두 사람이 연결이 되면 다음에는 손짓과 얼굴표정으로 대화를 나눈다. 말로 하기에는 너무 먼 거리이기 때문이다. 대화를 하는 모습이 재미있어서 한참씩이나 쳐다보곤 한다. 제법 복잡한 대화를 나눈다. 잡상인이 여행객을 부를 때에도 휘파람을 분다. 휘파람 소리가 나서 처다 보면 자기 물건 사라고 손짓한다. 중국 같으면 뛰어와서 따라다니면서 사라고 조르는데 남미는 편하게 나무 그늘 밑에 앉아서 손님을 오라고 부른다. 그것을 보면 남미 사람들이 중국 사람에 비해서 얼마나 게으른지 알 수 있다. 어쩌면 게으른 것 보다 생활 습관이나 인생관의 차이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는 숙달이 되어서 휘파람 소리를 들어도 못 들은 척 한다. 그러면 더 큰 소리로 휘파람을 분다. 그래도 못 들은 척 하면 한번쯤 더 불어보고는 그만둔다. 한 번도 쫓아온 적은 없었다. 오늘도 아침은 Lido Bar에서 먹었다. 오늘은 길가 테이블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먹었다. 잡상인들은 하루 장사를 하려고 길바닥에 물건을 늘어놓고 있었다. 서울로 말하면 세종로 네거리 같은 가장 중심가인데 금방 동대문 시장처럼 되어 버린다. 구두닦이 소년도 있었다. 학교에 갈 나이고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을 시간인데 길거리에서 구두를 닦고 있다. 손님을 찾아다니지도 않고 길가에 앉아서 나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만 하고 있다. 관광안내소에 들려서 Rio Paraguay 상류 파라과이 중심부에 위치한 도시 Concepcion으로 가는 배 시간과 요금에 관한 정보를 얻었다. 이번에도 며칠 전에 만났던 영어를 좀 하는 직원의 도움을 받았다. 참 친절하다. 배가 정박해 있는 부두가로 가봤다. 내일 아침 7시에 떠나는 배인데 아래층은 짐칸이고 위층에는 선실이 있었다. 선실 안을 들여다보니 비좁은 공간에 2층 침대가 있었다. 매우 답답해 보였다. Concepcion까지 배로 Rio Paraguay 강 여행을 하고 싶어서 알아본 것인데 갈지는 아직 모르겠다. 배를 보고나니 배 여행을 하는 것이 어떨지 약간은 상상이 된다. 오후에 브라질 영사관에 가서 비자를 찾아왔다. 파라과이와 브라질이 미국여권 소지자에게 높은 수수료를 받는 이유는 9.11 사태 이후로 미국이 자기네 국민이 미국 입국할 때 까다롭게 구는 것에 대한 보복이란다. 미국의 사정을 좀 봐 줄만도 한데 돈벌이를 하려고 하는 것인지 심통을 부리는 것이지 알 수 없다. Asuncion 교외에 있는 버스 터미널에 가서 내일 갈 버스표를 샀다. 내일 Chaco 지역의 중심 도시인 Filadelfia로 간다. 오후 2시에 떠나서 밤 9시에 도착이다. 너무 늦은 시간에 도착하지만 묵으려는 Hotel Florida이 바로 버스 터미널 앞에 있으니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Chaco 지역은 농업에는 부적당한 황무지 같은 땅인데 1930년대에 기독교 메노파 신도들이 (mennonites) 소련에서 이주해 와서 농업개척에 성공해서 살고 있고 근래에는 통일교에서 땅을 많이 사서 화제가 되었다. 버스 터미널에서 돌아오는 길에 Mercado Quatro 시장에 있는 한국 음식점 "이학"에 들려서 된장찌개 식사를 했다. 밑반찬이 10여 가지 나오는데 모두 맛있다. 밥도 맛있는 오곡밥이고 된장찌개가 양도 많고 짜지 않고 맛있다. 서울 말씨를 쓰는 단아하게 생긴 아주머니가 주인인데 내부 시설도 잘 해놓고 같은 건물 안에 노래방과 당구장도 있었다. 전화를 빌려서 교민회 사무실로 전화를 했더니 아무도 안 받는다. 아마 점심시간이라 쉬러 나간 모양이다. 교민 3,000여명에 교민회 사무실도 있고 한국 대사관도 있다. 주인아주머니에게 20여 년 전에 파라과이로 이민 온 고교 동창을 찾는다고 하니 파라과이에 이민 왔다가 남미의 다른 나라로 이사 간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찾기 힘들 것이라 한다. 옆 테이블에는 교민 네 사람이 점심식사를 하면서 한국 정치에 관해서 열띤 토론을 한다. 꼭 한국의 어느 음식점에 앉아 있는 것 같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한국 신문을 보니 이곳에서 발행된 주간신문인데 대통령 탄핵에 관한 기사로 전면이 꽉 차있었다. 신문에 광고가 크게 나 있어서 보니 내달에 있을 파라과이 이민 39년 행사에 관한 광고였다. 이민 39년이라면 1965년에 처음 이민 왔다는 얘기인데 미국 Los Angles 이민사보다도 더 오래된 것 같다. 내가 Los Angles에 살기 시작한 것이 1968년 말인데 그 때는 Los Angles에는 한국 사람이라고는 유학생들, 유학을 끝내고 취직해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불법으로 숨어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정식으로 이민 온 사람들은 없었다. 한국회사 지사로는 한국화약 (나중에 한화) 지사가 유일했다. 그러나 남미의 한국교민 사회는 미국과는 달리 영구적인 것 같지 않다. 어제 만난 운동구 집 딸도 한국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고 아르헨티나에서 만난 옷가게 집 딸은 미국으로 유학 갈 것이고 볼리비아에서 만난 사람 집 아들은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고, 다 그렇다. 이곳에 사는 일본 사람들과는 달리 진짜 이민 온 것이 아니고 돈 벌러 온 것인지 좀 어정쩡한 것 같다. 며칠 후에 브라질로 입국하기 때문에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다. 브라질은 외국 여행자들에게 위험하다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다. 얼마나 사실인지 모르지만 준비를 해 두는 것이 좋겠다. 우선 호각을 사서 목에 걸었다. 위험한 곳에서는 우범자들에 대한 경고로 보이도록 밖에 걸고 다닐 생각이다. 현금과 은행카드를 큰 배낭, 작은 가방, 몸에 차는 전대, 세 군데로 나누어서 넣었다. 한꺼번에 몽땅 털리는 것에 대한 대비다. 외출할 때 가지고 다니는 현금도 바지 안쪽으로 비밀 주머니를 만들어서 비상금을 넣어 두었다. 주머니에 있는 돈을 털려도 당장 쓸 돈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돈은 안심이 되나 카메라를 보호하는 것은 어렵다. 카메라 자체보다도 카메라 안에 있는 메모리 카드가 문제다. 카메라를 도난당하면 카메라는 새로 살 수 있지만 카메라 안에 들어있는 메모리 카드의 사진들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메모리 카드를 끼고 빼고 할 수는 있지만 너무 번거롭다. 주의하는 수밖에 마땅한 방법이 없다. 여행지도 Asuncion 중심가 길거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디언 공예품 행상들 구두닦이 소년, 학교 갈 나인데 구두닦이를 하고 있다니 Rio Paraguay 강 상류에 있는 도시 Concepcion까지 가는 배 한국 음식점에 가서 오랜만에 한국 음식을 푸짐하게 잘 먹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