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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름 |
어원/특징 |
1. 칠천도 (七川島) |
칠천도 지명풀이 (溫泉島/七川島(漆川島)
☻온천도(溫泉島): 칠천도를 온천도(溫泉島)라 불리었는데 이는 칠천도 어온(於溫)마을에서 겨울에도 따뜻한 물이 나는 샘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칠천도(七川島):칠천도란 지명은 두개의 유인도와 다섯 개의 무인도를 묶어 이렇게 불렀다고는 얘기가 있지만 이는 확실하지가 않다. ☻칠천도(漆川島):칠천도 옥녀봉 중심으로 온통 검은소 방목이 옻칠(漆)과 같고 그 소떼의 식수원이 7개의 소하천을 상징하여 칠천이라 한 것으로 추정한다. ~~~~~~~~~~~~~~~~~~~~~~~~~~~~~~~~~~~~~~~~~ 칠천도 특징
칠천도는 고려 성종 2년(983년) 목장을 설치하고 검은소(黑牛)와 적마(赤馬)방목하였다. -삼포왜란과 칠천랸 승전:1510년 왜군이 칠천도를 침공하자 거제현령 오세한이 적군을 무치르다. -정유재란과 칠천량 패전: 1797년7월14~16일까지 3일간 격전한 전투로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이 칠천량 앞바다에서 전사하다. -일제강점기의 칠천도: 칠천도는 외해와 내해가 접하는 지역으로 고기가 많이 나는 곳이다. 1901년부터 해방이 될 때까지 어업의 전지기지였으며, 특히 멸치가 많이 잡히는 곳이었다. 지금도 양식장이 즐비하다.
-칠천도 회주도로와 칠천연육교 준공 1977년 칠천도 회주도로가 완성되고 이어서 2000년1월1일 칠천연육교가 준공되어 개통되었다. 근자에는 칠천도 크루즈선 선착장이 있기도 하다. 칠천도 일주 드라이브 코스는 20km 정도로 짧은 거리이다. 그러나 굽이굽이 자그마한 동네가 있고, 바다에는 양식장과 멸치배도 있다. 고성, 마산 등과 접해있고, 전형적인 어촌 풍경에 농촌풍경도 겸비하고 있으며 곳곳에 펜션과 횟집, 레스토랑이 있어 식사를 할 수 있다. 그리고 곳곳에 갯바위 낚시를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
2. 가조도 (加助島) |
가조도 지명풀이 (가참도, 가지미, 가조도, 가좌도, 가지매섬)
☻가조도(加助島): 가조도는 더할加와 도울 助로 보좌(輔佐)한다는 뜻이고, 유익할 조(助)라 하였으니 거제도에 달린 섬으로 거제도를 도우고 보좌하여 유익함을 더한다는 뜻이다.
☻가좌도(加佐島): 가할가(加)와 도울 좌(佐)이니 보좌한다는 뜻이다. ☻가지매섬: 가조도 방언, 어원은 알 수 없다. ‘가지매 놋다리’란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뜻이 있을 텐데~~~. 뭐, 가지매기가 많이 나는 섬인가? ~~~~~~~~~~~~~~~~~~~~~~~~~~~~~~~~~~~~~~~~~ 자조도의 특징
-자연경관:거제도 서북쪽에 위치하며 동은 광이바다, 북은 마산시 구산면, 서는 통영시 광도면, 서남쪽은 고현만에 감싸여 있다. 가조도 옥녀봉에 올라서면 고성, 통영, 마산, 진해 그리고 거제도 사등면 고현 하청 장목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조도 우회도로와 가조도 연육교 가조도 해안선의 길이는 17,5km로 우회도로가 있으며, 가조도 연육교는 2009년 7월19일 개통되어 이제는 누구나 갈수 있는 곳이 되었다.
-가조도 해넘이 거제도에서 해넘이 장소로 이름이 난 곳은 홍포와 가조도이다. 가조도 전지역이 해넘이 정소이지만 특히 가조도 연육교에서 바라보는 해넘이 광경은 황홀함 그자체이다.
-가조도 목장과 취도
가조도목장은 1400년경에 설치되었으며 말을 키웠으며 창촌마을이란 가조도목장의 창고가 있었던 곳이다. 그리고 북쪽에는 독수리섬이 있는데 1905년 노일전쟁시 승리하여 이곳에 전승기념탑을 세웠으며 지금도 있다.
-현재의 가조도 기조도는 해류의 흐름이 좋아 각종 물고기가 많았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대구어장의 기지였다. 지금도 굴 홍합등 양식장이 즐비하며 굽이굽이 돌아가는 절경과 함께 낚시터나 휴식지로도 가장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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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산달도 (山達島) |
산달도 지명풀이(三澾島, 山達島)
☻대동여지도를 보면 산달은 물개달(澾)자를 섰다. 구전에 의하면 뒷들산 소토골산 건너 재산의 산봉우리가 3개로 그 사이에 달이 솟아오른다고 삼달이 되었다는 말이 있고, 또 달이 산에서 솟아오른다고 산달(山達)이라는 말도 있다. 아무튼 산달은 달과 산 그리고 바닷가에 있는 섬이기 때문에 예전에 물개가 많이 있었다는 물개의 섬으로도 해석이 된다.
산달도의 원래 이름은 ‘삼달도’라 하였는데, 4백여년전 이 섬 출신의 정승이 나자 세도 높은 육지 사람들이 산달도(山達島)부르면서 그것이 섬 이름이 됐다는 것이다.
☻ 산달도가 최고다.
옛날 산달도에서 매구치기를 하던 중상모꾼이 재주를 넘다 마루에 쪼그리고 앉아 의 재주에 넋을 뺏기고 있던 여인네의 속살이 상무꾼의 눈에 뛴 것. 그 뒤로 농악대는 그 여인네 앞에서 온갖 재주를 다 부리며 걸쩍지게 놀았다는 얘기다.
사천, 거제, 통영, 고성 등 남해안 일대 농악놀이 중 “나와 봤다 / 너도 봤다 / 거제 팔면 다 댕겨도 / 산달도가 최고다”는 재미있는 가사가 있다.
~산달도의 특징~
<산달도의 우도 수군절도사영> 여러 가지 자료에 의하면 산달도에는 1430년대 전후로 하여 경상우도수군절제사가 있었으며 뒤에 탑포로 이동하고 다시 오아포(가배)로 옮겼다. 그 후 선조37년 고성 용두포 옮겼다. 그러나 기록만 남아 있을 뿐 현재는 그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산달도에 소를 키우는 목장이 있었다.>
산달도의 역사에서는 목장의 존재를 빼 놓을수 없다. 이는 고려시대에는 물론 조선시대에도 대부분 섬지방에서는 소나 말을 키웠다. 경상도지리지에 보면 거제현의 목장은 구천동, 산달도, 칠천도, 한산도, 용초도, 영등포, 가조음도(자조도),가라산 등 9개소가 잇었다. 기록에 따르며 1446년 전후로 목장이 설치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산달도의 조개무덤>
산달섬은 기후가 따뜻하고 해조류가 풍부하여 선사시대 인류가 살아왔다. 그 증거로 전등마을과 후등마을에 조개무덤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개발의 여파로 그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현재의 산달도>
산달도는 거제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인데 아직 연육교가 없어 법동에서 카페리호로 이동한다. 이곳은 청정해역지역으로 함부로 식당과 펜션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러나 함 목사의 노력으로 ‘아름다운 마을가꾸기’ 사업을 벌려 지금은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산달도 다리가 빠른 시간 내에 준공되기를 기대해 본다. 섬안에 섬, 산달도를 한바퀴 둘러보며 낚시의 즐거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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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화도 (花島) |
화도 지명풀이 (赤島, 角島, 火島, 花島)
-적도(赤島): 붉을 赤 섬 島 를 써 붉은 섬이라는 뜻이다. -각도(角島): 섬의 동쪽에 사슴뿔처럼 2개의 돌출부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화도(火島 ):임진왜란 시 왜구를 무찌르면서 화도가 불길에 싸여 ‘불섬’이라 부르다가 화도로 바뀌었다. -화도( 花島 ): 봄철에 진달래꽃이 만발하여 온섬이 붉게 물들어 그렇게 불렸다. 또는 일본인들이 火島를 花島로 바꾸었다고 한다.
화도의 특징
-화도와 한산대첩: 1592년7월8일 왜군을 견내량으로 유인하여 한산도에서 확익진으로 적군을 물리친 해전. 한산대전은 바로 화도 앞에서 일어났으므로 적군은 화도로 도망갔을 것으로 추정되나 역사적인 기록은 없다. -화도 염악포 모감나무: 모감주나무는 바닷가에 생육한다. 자생지는 중국이라고 하는데, 모감주나무는 씨앗과 씨방사이에 공기방울이 있어 2개월 이상 물위에 떠 있을 수 있다고 한다. 거제도에도 한내모감주 숲과 내가 발견한 칠천도 송포바닷가, 거제대교옆 신계마을 바닷가 등에도 보인다.
-거제소속이면서 통영과 내통하는 화도 2010년까지 한명의 학생이 있던 화교초등학교는 폐교되고 말았다. 둔덕중학교에 다니던 학생도 이제 졸업하고 내년부터는 한명의 학생도 없다. 화도를 가려고 하면 통영여객선 터미널에서 하루 두 번있는 도선을 타고 가야한다. 이렇게 거제와는 교통이 불편하여 주로 통영과의 생활권에 속한다.
-화도 바다이야기 화도는 한.미 패류 위생협정에 의해 청정해역으로 지정되어 있고 한산만 수자원보존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정치망은 4개를 운영하며 어선은 50여척으로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화도를 처음에는 굴양식했으나 그 뒤에 대부분 멍게(우렁쉥이)양식으로 바꾸었다. 1990년대까지 멀게양식을하여 돈벌이가 좋아 ‘돈 섬’으로 불리었으나 근자에 와서는 양식장의 황폐화로 골몰하고 있다. |
5. 저도 |
저도의 지명풀이(鶴島:猪島)
-鶴島: 저 멀리 장산에서 보면 마치 학과같이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猪島;저도를 돝섬이라 하는데 이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태초에 태평양 바다 쪽에서 큰 구렁이가 개구리를 잡아먹기 위해 쫓고 있었는데, 마침 이를 본 학섬이 돼지로 변하여 못된 구렁이를 물어죽었다. 그 구렁이가 죽어서 蛇筋島(뱀섬)가 되고 개구리도 죽어 望蛙島(개구리섬)가 되었다고 한다. 학섬은 그 후부터 돝섬이라 하여 저도라 하는 전설이 있다.
저도의 역사
-저도에 언제 사람이 살았는지 몰라도 거제도 섬의 역사를 보면 내도 칠천도 산달도 가조도 화도 등에 조개무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수렵생활을 하였을 때에는 자연자원이 풍부한 섬지방에 사람을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왕조실록(1474년)에 보면 ‘저도에 염소를 방목하였는데 짐승들이 들어와 염소를 잡아먹으니 대책을 세워라’ 라고 적혀있다. -1920년 한일합방후 주민들(30여가구)을 이주시키고 탄약고와 대공포 진지를 구축하였다. -이 섬안에는 2만여평의 전답이 있었고 30여호가 해조류와 어업으로 평화롭게 살았다. 안동김씨와 진양정씨가 집성하여 살았고, 여기서 생산되는 쌀로 유호사람들까지 먹었다고 한다. -한일합방 후부터 1971년 박대통령 별장이 될 때까지 송재곤씨와 송달섭씨가 관리를 해왔다. -진해시 편입과 거제시 환원 군사적 요충지로 1975년 진해시로 편입되었으나 1993년 진해시에서 거제시로 환원되었다.
-현재의 저도 박정히 대통령시대 청해대로 지정하면서 각종시설이 들어서고 일반인들의 통제가 되고 있다. 관리권은 국방부에 귀속돼 해군 하계휴양지로 사용되고 있다. 2010년 거가대교 개통과 함께 군사적 중요성이 사라졌으니 이제는 거제시에 환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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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지심도 (只心島) |
지명풀이 (只心島, 只森島, 知三島, 只士島, 보리섬,동백섬)
-지심도(只心島):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섬의 생긴 모양이 마음 心자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只森島: 나무들이 울창하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한일합방 후) -知三島: 조선후기에 불렸던 이름이다. -只士島: 조선초기에 불렸던 이름이다. -보리섬: 麥島 즉 보리섬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한일합방 후) -동백섬: 근금래에 동백이 울창하다고 하여 지은 이름이다.
지심도의 특징 -역사: 지심도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는지는 확실하지가 않으나 조선시대 현종45년 15가구가 살았다고 적혀있다. 1910년 한일합방이 되고 1935년부터 지심도에 일본군 군사시설 설치에 따라 주민들(17가구)은 소개되었다. 그 뒤 일본군은 여러 가지 군사시설을 설치하였다. 해방이 되고 1946년 9월경 17가구가 이주하였다. 현재는 14가구 20여명이 살고 있다.
-지심도 문화유적 지심도 맹종죽숲부근에서 발견된 無文土器片이 발견되고 混土貝殼層이 확인되어 청동기시대(BC2000~600)에도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한일합방후(1935) 일본군포대가 설치되 그 잔재물이 여러곳에 남아 있다. 이곳에는 1개 중대 300여명이 포진하고 있었다. 포진지 6곳, 탄약고는 지하방커식으로 4개의 방으로 되었있다. 욱일기 게양대(일본국기)1기, 전등소와 소장댁 유일하게 일본식건물 그대로 있다.서치라이트보관소와 방향지시석(6방향). 지심도 비행장 1곳, 그 외 일본 소장집, 군막사, 배급소, 병원,식당 등이 있다.
-이송연교사와 지심도초등학교
1954년 문을 연 지세포초등학교 지심도분교는 오는 선생님마다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떠나갔다. 부산에서 6시간만에 지심도에 도착하니 어안이 벙벙하였다. 교사도 제대로 없는 불모지에서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위해 노력하여 1956년 새교사를 신축하고 결혼을 하고 이 섬을 떠났다. 1991년 교육자 대상을 수상하고 1994년 정년퇴임하고 부산에 거주하고 있다. 60여년이 지난 지금도 제자를 그리워하며 황재덕,황재눌, 이용암, 서명자, 서명복, 윤기운, 윤기광, 김무남,조호용, 전상필, 전경철, 전경자, 차분선,임성호,황재금 ~~` 이승만 대통령 지심도 내방: 사실 지심도에 방문한 것이 아니고 지심도에 낚시하려 와서 ‘이런 곳에 교육에 전념하는 교사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 이라고 하며 격려를 해 주셨다. 그 후 해군통제부를 통해 하사품을 보내주셨다.
-관광지로서의 지심도 ☻ 일본군 군사시설 잔존물 ☻ 난대성 상록수림의 보고 ☻ 낚시의 고장 ☻ 천혜의 지형과 동백군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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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내도 |
내도 지명풀이( 內島, 안섬. 모자섬, 낙타섬)
-거북섬: 옛날 거북이처럼 생겼다하여 거북섬이라는 전설이 있다. -안섬 (內島): 구조라에서 보면 안에 있는 섬이 내도 즉안섬이다. 고지도에 보면 內助羅島라 되어 있다. -생긴 모양에 따라 모자섬, 낙타섬, 거북섬이라 불렀다.
내도 역사
-유물로 본 내도의 역사:내도에 분포하고 유물은 초등학교 주변의 패총(소라,고둥,백합)과 無文土器片이 분포하고 있으며, 마을 뒤쪽 구릉부에 支石墓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신석기시대(약BC1만전~3000년)부터 사람이 살아온 것으로 추정되나 문자의 기록이 없는 관계로 정확히는 알 수가 없다. 선사시대 주로 해산물을 잡아 먹던시절에는 사람들이 몇명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그 후 자원이 부족하고 문명이 발달하여감에 따라 섬을 떠나고 수천녀동안 무인도로 있다가 150년전 최씨 성을 가진 일가족이 정주하여 근대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보여진다.
-관광지로서의 내도
내도는 지금 12명 정도 사람이 살고 있으며 여름철에는 관광객이 간혹찾는 곳이다. 이렇게 사람이 찾지 않으니 섬의 보존이 잘되어 있다. 특히 동백이 잘 보존되어 있다. 주변에 구조라, 공곶이, 서이말등대, 외도, 해금강 등으로 둘러싸여 있어 경치가 죽여준다. 그리고 낚시하기가 좋고 바닷가 주변에는 각종 해산물이 풍부하여 가족끼리 놀기도 좋다. 그리고 2009년 둘레길이 완성되어 한 바퀴 돌면서 섬과 바다와 굽이굽이 이어지는 거제도 해안선을 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2012년부터 공곶이에서 내도까지 해상 공중부상다리를 건설한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구조라 선착장에서 도선 내도호를 타고 10여분 가면 자연그대로의 섬 내도에 도착한다. |
8. 황덕도 |
황덕도 지명풀이 (老人德島,누른디기,노른디기,누른덕 노른덕)
-옛이름:누른디기,노른디기,누른덕 노른덕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노루가 많이 살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섬에 옛날 숲이 울창하여 노루들이 많이 있어 칠천도 한실사람들이 ‘누루들이 뛰어노는 언덕’ 이란 뜻으로 ‘노루언덕’으로, 그리고 그 말이 줄여 ‘노른덕’이 되었다가 ’ㅓ‘음가가 ‘ㅡ'로 되면서 ’노른덕 또는 노른디기‘라고 불렀다고 추정된다. 또 어떤이는 옛날 주민들이 나무를 잘라내어 황토가 드러나서 누릉섬(누런섬)이라고 불렀기에 황덕도라고도 한다. 또 다른 주장은 100여년전 이곳 노인들이 장수한다고 장수섬 또는 老人德島라 했다.
관광지로서의 황덕도
육지와의 거리는 200여 미터 밖에 되지 않으나 걸어서 갈수 없기 때문에 도선을 이용하여 생활하고 있다. 선비는 왕복 2,000원이고 섬사람들도 똑같이 받는다고 한다. 안동네는 3,000원 낚시꾼은 4,000원 받는다고 하였다.
황덕마을은 칠천도 대곡마을 끝부분에 있는 고다리마을과 안마을, 갈밭이, 쥐부리끝, 새어재마을이 황덕에 속한다. 이 마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지는 250년 전이라 한다. 이 마을에는 서씨, 김씨, 이씨, 박씨가 살았다. 1959년에는 43호 240여명이 살았으며 대구, 갈치를 많이 잡아 돈이 많아 ‘돈섬’이라 불렀다고 한다. 19세대 35명이 살고 있고,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어선은 17명이 21척을 보유하고 있다. 대부분 홍합과 굴을 양식하며 자망과 통발도 몇 명있다.
얼마전까지만 하여도 칠천도 황덕도에 가면 고기가 너무 많아 한 쿨라에 기득 싣고도 남았다고 하나 지금은 그렇게 많이 잡히지는 않는다.
~섬 주민일동: 생활에 불편이 많은니 빨리 다리를 놓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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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외도 |
지명풀이: (밭섬, 밖섬(外島),外助羅島)
밭섬: 본래 밭이 많아 밭섬이라 하였다. 밖섬(外島): 안섬(내도)의 밖에 있는 섬이라 하여 하였다. 外助羅島: 구조라에 鎭이 있을 때 안에 있는 내도를 내조라도, 밖에 있는 외도를 외조라도라 하였다. 거제도의 아름다운 해안 명소는 해금강주변으로 하여 지심도, 내도, 외도, 공곶이, 서이말등대, 윤돌도, 해금강, 대소병대도 등이 몰려있다.
외도의 역사
-외도 공룡발자국(동도) 외도에는 공룡발자국이 177개가 있다. 약1억만년전 백악기시대에는 공룡의 천국이었다. 외도란 작은 섬에 공룡이 어떻게 살았느냐하는 문제는 지각의 병동에 의한 것이라 보여진다. 아직까지 패총이나 그 외 다른 유물이 발견되는 않고 있으나 거제도 부속섬의 전지역에서 조개무덤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선사시대에는 이곳에서도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근대 외도의 역사 약110년전쯤 사람이 살았는데 그때에는 배가 없어 봉수대를 이용했다고 한다. 외도는 처음에는 4~6가구가 살았는데 밭을 일구어 고구마를 대량생산하여 육지에 팔았으나 그후에는 제주도 해녀들이 들어와 미역을 위시하여 각종 해산물을 수확하여 ‘갈라먹기’를 했다고 한다. -외도의 개발(외도보타니아) 이북인 고향인 이창호씨는 1968년 낚시를 왔다가 외도에 매료되어 3년에 걸쳐 이 섬을 모두 사들이고 조경사업을 실시하여1995년 4월15일 외도해상농원을 세상에 공개하였다. 740여종의 아열대성 희귀식물과 유럽풍의 정원, 이국적ㄷ인 자연풍경, 온 섬을 가득메운 꽃향기는 문화 휴양지며 남국의 파라다이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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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수도 (利水島) |
지명풀이(이물섬, 이물도, 학섬, 오리섬)
-새섬: 오리섬, 학섬의 첫 단계로 새의 섬이라 하여 새섬이라 불렸다. ~시방깨발소리의 첫구절이~ 굴까러 가세 굴까러 가세/ 연두야 새섬에 굴까러 가세~ -오리섬, 학섬: 이소도의 형상이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 학이 대금산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이라 하여 학섬이라 불렸다. -利勿島: 물이 사람을 이롭게 한다 하여 이물섬이라 불렸으며, 이를 한자로 바꾼것이 이물도이다. 이 섬에 지하수가 많이 솟아 이물섬이라 하였다. -利水島: 1942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수도라고 이름이 불리어 졌으며 그 뜻은 역시 물이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뜻이다.
이수도 역사
-이수도 유물 이수도에는 貝塚(조개무지,조개무덤)이 이수도초등학교 앞에 이었으나 지금은 시멘트 포장으로 볼수가 없다. 이곳에는 신석기시대부터 고려시대시대의 유물들이 발견된 곳이다. 신석기시대의 모개무지, 융기문토기편과 즐문토기조각, 삼국시대 타제토기조각, 고려시대 청자조각과 패총이 수습되었다. 그리고 1943년 학교부지 정리당시 흙속에 무수히 많은 인골이 나왔으나 정밀한 조사는 없었다. 이런점으로 미루어볼 때 이수도에는 신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 고려시대 그 이후에도 계속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기록상으로 남아 있는 근대의 이수도 사람은 지금으로부터 350년 전인 숙종조(1675~ )로 보여진다.
이수도 관광
-방시만노석비와 방시만노순석비 사연: 이수도외 시방의 다툼 이야기 -주변 해역은 대구의 산란해역으로 난해성 어류가 많지만 겨울에는 한해성 어류도 회유한다. 멸치, 갈치, 고등어, 도미,·대구, 도다리, 아귀, 물미기 등이 많이 잡히며 자연산 김·미역·굴 멍게 등도 있다. -거가대교 가덕도가 한눈에 보이며 특히 백도(흰여)가 한눈에 들어온다. -지금도 낚시가 잘되며 일부 밭에는 고구마, 마늘도 생산한다. 이수도 고구마는 일품이다. - 8·15광복 직전에 앞바다에 가라앉았다는 일본의 보물수송선 이야기가 전해진다. -시방에서 도선이 하루에 몇 번씩다니며, 거리는 10여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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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 연대 ( 시대구분 학자에 따라 다양하다)
구석기시대 |
BC 70만년~1만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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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시대 |
BC 8000~ 1122 |
조개무덤(섬지방 전부) |
청동기시대 |
BC 1000~30 (BC2000~BC300) |
고조선 BC2333~BC108 지석묘가 섬지역에도 발견됨. |
철기시대 |
BC 300~AD300 |
삼국시대/가야시대(BC 30~AD562) |
통일신라시대 |
AD 676~9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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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
AD 918~1380 |
이수도 유물 |
조선시대 |
전기 (15~16세기)후기(17~20세기) |
거제도 전역 |
근대 |
AD 1889~19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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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
AD 1950~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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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섬안의 섬의 유물을 보면 대부분 貝塚과 支石墓群이다. 그런고로 수렵생활을 하던
선사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 사람이 살다가 철기시대에 접어들면서 먹을 것이 희소해지니
육지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수도에는 고려시대의 유물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일부 섬지방에는 조선시대까지 사람들이 살아온 것으로 추정된다.
~ 한 일주일에 걸쳐 조사를 하다보니 머리가 멍멍하네요.
첫댓글 와 거제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많군요 천천히 보겠습니다,사실 바쁜 와중에 접속했담니다,ㅎ^^
어미닭이 병아리를 품듯한 거제안의 섬들,
거제도가 품고 있는 작은거제도 들...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