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능력에서 오는 모든 힘을 받아 강해져서, 모든 것을 참고 견디어 내기를 빕니다. 기쁜 마음으로 (11) 성도들이 빛의 나라에서 받는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여러분에게 주신 아버지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12)
주님께 합당한 콜로새 성도들의 구체적인 삶을 위한 사도 바오로의 세번 째 기도 제목은 하느님의 영광의 힘을 받아 강하게 되는 삶이다.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능력에서 오는 힘'에 해당하는 '토 크리토스 테스 독세스 아우투'<to kratos tes dokses autu ;his glorious might(power)>라는 표현은 하느님 자신 속에 존재하는 내적 능력 혹은 감추인 위엄을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영광 속에 존재하시는 당신 자신(이사33,17)을 나타내 보일 때에 형체가 아닌 힘으로 나타내신다(탈출19,16~25; 신명4,12.15).
여기서 '힘'을 나타내기 위해 쓰인 '크라토스'(kratos)는 신약에서 12번 사용되었는데, 그중에 인간에 대해 사용된 것은 한번도 없고 마귀에 대해 사용된 한번(히브2,14)을 제외하고는 모두 하느님께 대해서만 사용되었다.
이런 용례에서 살펴보면, 이 단어는 단순한 물리적 힘이 아니라 권능과 권세를 나타낸다.
본문에서는 하느님께서 영적 존재이신 당신 자신에게만 있는 그 권능(크리토스)을 따라 당신 백성들을 모든 힘(뒤나미스; dynamis)으로 능하게 하심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 단어를 사용했다.
여기서 '강해져서'로 번역된 '뒤나무메노이'(dynamumenoi; strengthened)의 원형 '뒤나모오'(dynamoo)는 '권한을 부여하다', '강하게 하다'는 뜻으로 연약한 가운데 있는 어떤 것을 강하게 만든다는 의미가 있다(히브11,34).
본문에서는 현재분사로 쓰였는데, 이것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신의 능력을 신앙의 여정 내내 지속적으로 부어주신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원문은 2인칭 복수 수동태로서 성도들이 능력을 계속적으로 공급받음으로써 내적 심령이 하느님에 의해 강해지는 것을 보여준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온전히 추종하는 자들에게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는 임마누엘의 약속을 상기시키거나, 또는 성령님의 역동적 활동을 통해 그들을 강하게 하신다.
'모든 것을 참고 견디어 내기를 빕니다. 기쁜 마음으로'
본문은 전치사 '에이스'(eis; so that ~ may~)를 통해 앞 문장과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강한 힘을 의지하는 믿음의 소유자들은 어떠한 어려움과 환난 가운데서도 하느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잃지 않고 인내하게 된다는 것이다.
방향이나 결과의 의미를 지닌 전치사 '에이스'(eis)로 시작하는 본문에서 '에이스'는 결과의 의미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권능을 따라 능력으로 가득한 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고 인내하며, 견딜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야고보 서간 1장 2~4절에서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날 때에 기뻐하라고 권고했듯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믿음의 시련과 시험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마지막 승리를 바라보며 담대하고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믿음의 시련을 통해서 보다 더 그리스도를 닮은 온전한 인격으로 성숙될 것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여기서 '견디어 내기를'로 번역된 '휘포모넨'(hypomonen; patience)의 원형 '휘포모네'(hypoone)는 '~아래에'(under)를 뜻하는 전치사 '휘포'(hypo)와 '머물러 있다'(remain)를 뜻하는 동사 '메노'(meno)에서 유래한 합성어로서 환경적 어려움에 굴복하거나 피하지 않고 그 환경에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견디어 내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참고'로 번역된 '마크로튀미안'(makrothymian; longsuffering; endurance)의 원형 '마크로튀미아'(makrothymia)는 대인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 가운데서 복수하지 않고 오래 참는 모습을 가리킨다.
사도 바오로가 구체적으로 기도하며 바라는,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숙한 삶의 세번째 모습은 어떠한 환경적 또는 대인 관계의 어려움 앞에서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모습을 잃지 않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권능의 힘을 받아 하느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기다리는 강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만을 신뢰하는 자가 가지게 되는 강한 능력이고 힘이며, 동시에 흔들림없는 모습이다.
'성도들이 빛의 나라에서 받는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주신~아버지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 합당한 삶을 사는 콜로새 성도들의 구체적 삶을 위한 사도 바오로의 마지막 기도 제목이 나오는데, 그것은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주신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삶이다.
여기서 '빛의 나라에서'로 번역된 '엔 토 포티'(en to poti; in light)는 '빛 안에서'라는 뜻으로 하느님의 영광, 은총, 사랑 등과 같은 개념이며, 종말론적으로는 빛 가운데 계시는 하느님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사도 바오로가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이유를 밝히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느님께서 성도들이 빛의 나라에서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주셨기 때문이다.
'상속의 몫을'로 번역된 '텐 메리다 투 클레루'(ten merida tu klleru; the partakers of the inheritance)에서, '상속'(기업)으로 번역된 '클레루' (klleru; inheritance)의 원형 '클레로스'(klleros)는 구약적 개념으로 제비뽑기로 얻게 된 '몫', '분깃'을 뜻한다.
이것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입성하면서 분배받은 땅과 관련된 표현이지만, 신약 이후로는 구원 및 마지막 종말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약속된 상급을 상징한다.
사실 모든 성도들은 죄로 말미암아 타락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이러한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이 없다.
그러나 무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죄사함 받고, 하느님의 계명을 그 사랑에 대한 사랑으로 응답하며 믿음을 실천하는 자들에게 이러한 분깃이 허락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풀어진 이러한 은혜로 말미암아 자연적으로 감사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감사는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동인 동시에 사도들이 마땅히 행해야 할 의무이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총을 생각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바로 이 감사('유카리스툰테스; eucharistuntes; giving thanks) 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