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을 여는 시〉-121회(광주매일신문 2023.1.16.월)
독수리
박 금 현
보라! 여기 자랑스럽게 쭉지
수심(水心)을 긁고 허공에 차 올라
적막을 가르는 웅비(雄飛)
팔팔한 생기로 하여
하늘을 주름 잡는 만조(萬鳥)의 군왕(君王),
가슴 뿌듯한 젊음의 비상(飛翔) 속에
저- 악착같은 발톱을 모두어
피 흐르는 화려한 욕망을 물어 뜯고 있다.
(시집 『에밀레종』, 금강출판사, 1972.)
[시의 눈]
바닷가 산에 오릅니다. 멀리 비상하는 독수리가 있군요. 우리나라에 겨울을 나는 이 새는 천연기념물 243호, 희귀해졌지요. 고기떼를 지켜보며 절벽 아래로 분주하게 솟구치네요. 그가 ‘수심을 긁고 허공에 차올라’ 먹이를 낚아채는 순간, 난 오금을 짜릿 저리기도 합니다. 하면, ‘팔팔한 생기’도 덩달아 전해 받지요. 세상사 ‘화려한 욕망’도 독수리의 발톱과 부리에선 한낱 종잇장에 불과합니다. 우린 곧 찢어질 생명체에 늘 보호막만 두르려 하지요. 오늘은 차라리 그 발톱 아래 내 목을 내놓고도 싶습니다. 찢어발기는 티베트 조장(鳥葬)의 환상에 사로잡힙니다. 둥둥, 일몰의 북이 우는군요. 바람이 휘늠 울음처럼 몰아칩니다. 난 자빠집니다. 아, 찢기고 싶은 이 조장은 내 생의 현실일까요.
박금현(1927~2012) 시인은 광주 남동에 나 1954년 아시아복싱대회(마닐라)에서 금메달을 수상했고, 1969년 《한국시단》 신인상, 1970년 전남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습니다. 한 권뿐인 시집에는 서정주·백철·김택수(서문), 이상보(제자), 김해성(구성), 장순하(발행인), 최일수·김해성(발문)이 있고, 발간을 지원한 김용호, 김동리, 김현승, 김남중, 김재식, 남상집, 정현웅, 허연, 이동주, 손광은, 정소파, 문병란, 이승룡, 정봉래, 김구봉, 송호림, 최정기, 박철웅, 오지호, 김성일, 오화룡, 범대순, 김현석, 이수복, 김재흔, 조운제, 박봉우 등 많은 문인과 인사들을 밝히고 있어 소(小)문단사를 보는 듯도 합니다. (노창수 시인)